183화. 열리는 문(3)
몸을 돌려, 기가스를 타러 나서는 빌객스를 향해.
봄버가 덧붙였다.
“쯧, 보스. 너무 무리하지 마십쇼.”
그의 말에 빌객스는 웃었다.
“너무 걱정 마.”
기잉-.
그 말을 끝으로 닫히는 문과 함께.
홀로 통제실에 남은 봄버는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스를 보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인가.’
그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빌객스의 얼굴에 서린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비장함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그녀는 본래부터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이 지극히 서툰 인간이었다.
이제껏 선단을 운영해오며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모두 겪어온 그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러니 아마도, 그들은 여기까지다.
그와 빌객스가 다시금 마주하는 날은 없을 터였다.
“…….”
고오오오-.
봄버는 전자음과 진동만이 울리는 통제실에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내,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번-쩍!!
네 자루의 벼락검.
거대한 뇌전이 마치 검의 형상을 하고서 휘둘러졌다.
압도적인 뇌전을 머금은 천둥 폭풍이 주변을 집어삼키며 강렬한 파동이 울렸다.
막대한 파문이었다.
[무… 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이게…. 한낱 인간에게 가능한 일이라고?]
그 광경을 눈앞에서 모조리 지켜보고 있었던.
아서를 비롯한 넘버즈들은, 제자신들의 눈을 순간 의심할 정도였다.
터무니없는 기세의 발출이었다.
막대한 진동에 일순간 주변 공간이 우우웅, 떨려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껏 그들 넘버즈들은 유성을 몇 번이고 보아왔다.
비록 그가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나며, 또한 강력한 마나 사용자이자 기갑 파일럿이라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여겼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건.
이건, 정말이지, 그 이상이다.
아니, 애당초 같은 인간의 카테고리 안에 속했는지조차 심히 의심이 갈 수준의 광경이었다.
차라리 그가 아닌 드라칸이 한 것이라는 게 말이 될 정도였다.
때문에.
아서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같은 인간이기는 한 건가.]
우습게도, 바로 그것이 인간보다는 드라칸의 속성에 더욱 가까운 아서가 한 소리였다.
고오오오.
파직거리며 튀어 오르는 황금빛 뇌전의 여파는 그 후로도 한참동안이나 이어졌을 정도로 강렬하게 잔류했다.
곧 그것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할 찰나.
주변에 가득하던 빛이 가라앉고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네 마리의 완전체들 중.
살아남은 개체는 누구도 없었다.
하나쯤 공격에서 살아남을 만도 한데도, 그럼에도 산 녀석이 없었다.
완전한 일격이 아닐 수 없다.
그것들 전부가 새카맣게 그슬려 타버린 채로, 지면에 처박혔다.
그 목탄과 같은 광경만이 한때 놈들이 이곳이 존재하였음을 드러내어 보일 뿐이었다.
물론 넘버즈 그들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지금, 유성은 무려 넷으로 늘어난 채 저마다가 드라칸을 하나씩 베어넘긴 셈이었으니까.
철저하기로 이미 모두에게 인식을 산 다름 아닌 유성 그가, 녀석들을 놓칠 리가 없었다.
이윽고 역할을 다한 분체들이 하나둘 대기 중의 마력으로 흩어지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대량의 마력 소모는 본체가 아닌 분체들로서는 버거운 일이었다.
“다 끝난 거야?”
시야를 가득 메우는 광채에 주변 시야를 가리고 있던 리브가, 이내 천천히 손을 내렸다.
리브는 주변을 한 차례 훑어 보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야. 저 녀석들로는 상대도 안 되네. 그래도 나름대로 공을 들인 준비였었는데.”
유성은 리브의 앞에 선 채로 물었다.
“리브. 이게 다인 건가?”
태연히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 유성 그로서도 그리 온전한 상태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물과 같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과도하게 확장된 폭발적인 기세의 방류는 그의 육신 전체에 무리함의 대가를 안겨주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완전체 넷을 한순간에 모두 쓸어버린다는 게 평범한 것을 대가로 가능할 턱이 없었다.
결국 유성은 본래라면 불가능한 수준의 힘을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끌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반작용은 틀림없이 찾아온다.
아마 이후에 그를 가파르게 짓누르겠지.
‘하지만 이 순간에 그것을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지금 난 리브의 앞이다.’
쓰게 웃고 있던 리브가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는 거대한 기가스의 검, 유성의 검이 겨누어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리브는 그 검날을 마주 응시하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저 코앞에 겨누어진 그것을 바라보며, 리브는 입을 열었다.
“이제껏 나는 단 한 번도 내 자식을 직접 낳은 적이 없어. 그건 알지?”
“그래.”
알고 있다.
이제껏 리브가 다뤄온 모든 드라칸 군체는 무엇 하나 스스로 일궈온 것이 없었다.
전적으로 오로지 능력 하나만으로 생겨난 후천적 결과물이었다.
그저 다른 드라칸 군체들을 리브가 가진 여왕체 고유 능력인 지배력으로 하나로써 통일하고.
그들의 군체를 자신의 것처럼 다루어 왔을 뿐이다.
실제로는 제대로 된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음을.
유성 그는 알고 있었다.
“뭔가 숨겨둔 게 더 있는 건가? 있다면 꺼내는 게 좋을 거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리브는 그것을 원치 않는 듯했다.
“난 싸우고 싶지 않아. 비록 아빠가 여기까지 일을 망쳤지만……. 그래도 난 탓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그 씁쓸한 얼굴을 바라보는 유성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무심함만을 수면 위로 드러내어 상대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들은 적이었다.
인간과 드라칸이 대립하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 없었다.
드라칸은 반대로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은 그런 드라칸을 혐오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것이 당연한 존재들로서 작용한다.
왜, 냐는 물음 따위는 차라리 없느니만도 못했다.
그런 존재들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작용을 하기에, 그 이상가는 감정도 교류도 불필요했다.
그것을 리브 또한 잘 알고 있다.
리브는 유성이 자신을 막을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서로 충돌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유성은 리브가 무엇을 꾸미고 있던. 어떤 생각을 하던.
전혀 상관치 않았다.
수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드러내도록 할 뿐이다.
“그렇다면, 내 쪽에서 먼저 가는 수밖에.”
검을 내지른 순간.
문득 뇌리에 언젠가 알파가 남겼던 음성이 스치듯 지나쳐갔다.
[대장은 선택을 해야 할 거야. 아마도 그 선택은 신중해야겠지.]
선택이라.
알파의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 떠오른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우연일 수도, 혹은 필연일 수도 있다.
그가 기억하기로 이제껏 알파는 의미 없는 말과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보다 먼 미래의 시간선을 내다볼 수 있었던 그녀에게는 늘상 이유라는 게 존재했다.
지금 유성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도, 라피스가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이유도.
모두가 알파의 덕이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유성이 리브와 다시금 맞닦트릴 이 순간마저도 모두 내다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남긴 말이 지금 이 순간을 뜻하는 것일지. 그게 아니라면 과거의 한 시점이거나 미래의 다른 시점일지.
그것은 지금의 유성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에게 있어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현재였다.
‘당장 중요한 것은, 오로지 리브의 죽음뿐.’
리브가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리브는 소중했다.
비록 그 내면은 드라칸의 여왕체라 할지라도, 녀석과 함께 했던 기억만은 틀림없는 진짜였다.
‘녀석이 죽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한다. 내가 아니라면 누구도 할 수 없어.’
그때였다.
[그만 둬!!]
그 순간 끼어든 것은, 다름 아닌 라피스였다.
저 반대편의 통로에서부터 거대한 기가스가 막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리브에게 검을 내지르려는 광경을 발견한 그녀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라피스.’
이럴 것 같아서 서두르려 했건만, 벌써 온 건가.
유성은 표정을 굳혔다.
라피스라면 틀림없이 막을 것이다.
지금만 하더라도 그러했다.
이미 그녀는 다급한 기색을 드러내며 접근해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도달하기 전에 먼저 검을 내질러야 했다.
리브를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것은 라피스를 포함한 전 인류였다.
행성 테라는 파멸할 것이고 그것을 시작으로 태양계 전체에 퍼져 있는 나머지 인간들마저 착실하게 섬멸될 것이다.
리브에게는 그것이 가능했다. 리브는 유성 그조차도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전무후무한 여왕체다.
어쩌면 리브가 가진 다른 모든 군체 무리를 다스리는 능력조차 사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편린의 일부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때문에 유성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라피스를 죽게 두진 않는다. 설령 상대가 리브 너라도!’
오로지 그 일념 하나만으로, 검을 내지른다.
[안 돼!]
그 기색을 느낀 듯, 라피스가 필사적으로 소리쳤으나.
그녀의 거리는 아직까지 멀었다.
쐐애액-!
내지른 검이 느릿하게 리브를 향해 뻗어나가는 것을 느낀다.
주변의 모든 것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는, 리브에게 검이 닿기 직전.
그 아래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거대한 손아귀를 순간 목격했다.
“……?!”
그 난데없는 상황에 순간 유성이 채 대처를 하기도 전에.
콰드드득!
전조조차 없이 튀어나온 손아귀가 대검을 붙잡더니 그대로 박살 내 버렸다.
[무슨!]
[완전체인가!]
대번에 넘버즈들이 사방에서부터 나타난 정체불명의 손을 경계하여 둘러쌌으나.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다급히 접근해오던 라피스조차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을 정도였다.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키이잉.
단지 팔이라고 하는 신체의 일부만을 드러낸 그것만으로도, 불길한 기세가 충분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압도적인 기세다.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자면, 흉흉하기 짝이 없는 기세. 마치 불길한 오오라가 유형화하기라도 한 듯이, 푸른 마력이 안개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나타난 거대한 팔목은, 정말이지 음울했다.
동시에 불길했다.
마치 여왕체 리브를 보호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리브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그 팔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나고, 둘이 셋이 되고.
마지막에 네 개까지 늘어났을 때.
음울한 기세는 더더욱 강렬해졌다.
흉악한 기세다.
마치 이해 못 할 온 우주의 불가해(不可解)가 하나의 형상으로 형용화한 듯한 이 끔찍한 기세.
그 기운을 감지한 듯이, 주변의 넘버즈들조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강렬한 존재감은 때때로 지독한 압박으로 주변을 짓누르기도 한다. 바로 지금과 같이.
‘설마.’
그제야 상대의 존재를 알아차린 유성의 눈이 급속도로 커졌다.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그는 언젠가, 이 기운을 스스로 직면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 불길한 마력색을 알고 있다.’
그의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저것은 아마도 전생의 그가 지구에서 마주했던 궁극체.
“언터처블(Untouchable)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