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열리는 문(2)
콰앙!
폭발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 거대한 공동 공간에 숨어 있던, 드라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
[■■■■.]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천장과 벽면, 그리고 지상에 몸을 묻고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고 있던 완전체들이 등장과 동시에 그들을 급습했다.
터업.
커다란 손아귀로 기체의 머리통을 꽈악 움켜잡은 완전체의 기습에.
아서가 이를 악물었다.
[큭, 이 새끼가!]
[■■■.]
그를 붙잡은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이 푸른 안광을 빛내며 강한 마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숨통을 끊으려 하는 것이다.
덜컥! 덜컥!
조종석의 레버를 당겼으나 기가스에는 반응이 없었다.
끼리릭, 기체 내부의 프레임이 조아지며 연신 파일럿의 의지를 따르려 하였으나 쇠사슬에 묶이기라도 한 듯이 전신이 조였다.
기체가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이 움직임을 봉인당했다.
그를 움켜쥔 완전체의 근력이 상당한 탓이었다.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 엑소더스(Exodus).
놈은 지난 수개월 사이에 새로이 목격된 신종 개체 중의 하나였다.
주변의 사물들을 투과하는 능력을 지닌 놈의 능력은.
드라칸들 중에서도 지극히 기이한 능력 중의 하나였다.
이런 방식의 갑작스러운 급습과 기습에 능한 녀석이었다.
카가각!
한편, 리브가 올라탄 채로 있던 완전체, 다크 레이븐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던 유성이 아서의 위기를 알아차리곤 소리쳤다.
“실비, 아서와 함께 그놈을 막아라! 녀석이 위험하다!”
[큭! 알고 있… 어!]
전방에서부터 날아든 또 다른 완전체의 마력 포격을 가까스로 막아낸.
넘버즈 중의 하나, 실비가 황급히 기체의 방향을 돌렸다.
[아서!]
퍼버벙!
그녀는 아서를 붙잡은 완전체, 엑소더스의 등판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푸른 불꽃과 함께 터져 나온 마력 탄환이 놈의 갑각질을 두들겼다.
[■■■?]
그러자, 놈이 붙들고 있던 아서의 기체에 힘이 풀렸다.
[허억, 허억.]
간신히 자리를 박차고 물러선 아서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죽음이 코앞에 있었던 위험한 순간이다.
삐익-!
그런 그의 뒤편에서부터 돌연 강렬한 마력 반응이 감지되었다.
금세 적색 표시로 돌변하는 모니터 화면의 변화에, 그들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거기에는 거미의 형상을 한 드라칸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고오오-!
녀석의 입에 가공할 기운이 모이고 있었다.
급속도로 치솟는 마력 반응과 함께, 주변이 금세 환해진다.
[피해!]
[큭! 이 새끼가!]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인 각각의 전투가 이뤄졌다.
나타난 드라칸들의 수는 모두 넷이었다.
더군다나 정면의 여왕체인 리브까지 합한다면, 그 수는 다섯에 달했다.
하나같이 완전체 등급에, 무엇 하나 쉬운 놈이 없는 상황.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사방에 마력 폭발과 다급한 고함들이 오갔다.
‘오래 끌다가는 모두 당하겠군.’
전력상으로 격차는 상당했다.
표면상의 드러나는 수는 그들이 훨씬 많으나, 적은 다른 무엇도 아닌 무려 완전체였다.
‘게다가 그런 놈들이 한둘도 아니고 무려 넷. 내가 한 녀석을 틀어막는다 해도 나머지 인원으로 저것들을 쓰러트리는 건 어려워.’
비록 넘버즈들이 강력한 전력이기에 두셋만 모인다고 하면 충분히 완전체를 상대할 순 있다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를 할 수 있다는 거였지, 압도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시간을 끈다면 전투에서 승리를 확신할 순 있다.
넘버즈들에게는 드라칸 이상의 다양한 능력군이 존재했고, 그것들을 조합하여 싸운다면 완전체라 할지라도 착실하게 이겨나갈 수 있기 때문.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전장에서의 패배’ 일 뿐이었다.
‘우리들이 녀석들을 싸워 이길 때까지 바깥에서 시간을 끌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시간에 쫓기는 건 우리 쪽이다.’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을 모두 잡을 때가 된다면.
아마 바깥의 함대를 이루고 있던 전함들은 모조리 패퇴하고 패배를 확실시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설령 이곳에서의 싸움에 이기더라도, 바깥에서 나머지 유인되었던 드라칸들마저 모조리 다시금 안으로 복귀할 것이 당연지사.
그렇게 되면 빠져나갈 틈도, 여왕체를 격퇴할 틈조차 없이 내몰려 죽고 말 터였다.
‘그러니-.’
그 전에 모든 것을 끝낸다.
키이잉-!
마치 급가속을 하듯.
유성의 내부를 순환하던 마력 고리가 빠른 속도로 팽창하며 부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안광이 새파랗게 빛나기 시작한다.
‘여기선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내가 나서는 게 맞겠어.’
가능하면 어찌 될지 몰라 힘을 온존하려 했다.
여긴 여왕체가 머무르는 거대한 드라칸의 심장이었고, 놈들의 진영 중심부였다.
변수는 어떤 식으로든 벌어질 수 있고, 설령 그조차 예상치 못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난데없이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예상치 못하기에 최적의 선택을 하려 하였으나, 이렇게까지 시간이 촉박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 그들에게는 여력이란 게 없었다.
이대로라면 전투에 패하는 것은 그들이다.
때문에, 능력을 개방한다.
‘각성기.’
번-쩍!
한계까지 치달은 유성의 안광이, 조종석 내부를 밝힐 정도로 환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안광이, 찬란한 빛을 발하는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차원분신(次元分身).”
유성의 뒤편의 공간이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세 기의 기가스가 갈라진 공간의 틈새를 찢어발기며 모습을 드러낸다.
각 기가스들은, 유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태연하게 통신을 보내왔다.
[상황이 많이 급한가 보군.]
[잘못하면 이대로 끝날지도 모르겠는데.]
낯익은 모습. 귀에 익은 음성.
익숙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한 이들이, 유성을 향해 말을 건넨다.
[그렇지 않나, 본체?]
유성의 과거에 속한 이들이 그에게 보내는 음성.
서로가 완벽하게 동일한 존재들이 한 자리에 서서 익숙하게 통신 채널에 참가했다.
“그래.”
그 말에 동의하듯. 유성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급하기는 하지. 어찌되었든, 시간이 꽤나 촉박하거든.”
[뭐, 그럼. 이미 기억을 받았으니 대충 우리가 해야할 일은 알고 있긴 하지만.]
여유로운 기색이 만연한 그들 세 파일럿의 생김새란, 놀라울 정도로 유성 그와 닮아 있었다.
아니, 닮은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동일했다.
음성이나 외견도. 심지어는 그들이 타고 있던 기가스에 나 있던 작은 흠집 하나하나마저도 말이다.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곳에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모두가 유성 그의 일정 시첨에 속한 과거 영역대의 분신들이었으므로.
각각의 차원분신들.
세 명의 분신체가 본체인 유성을 향해 느긋한 웃음기와 함께 말을 건넨다.
[불러낸 만큼 부담은 단단히 부담해야 할 거야.]
[한둘도 아니고 셋씩이나 불러낸 만큼 후폭풍은 상당하겠지. 지금의 우리 수준이라면 죽음까지는 아닐 테지만, 아마 일순간 심장이 한 번 정도는 정지할 정도는 될 거다.]
“상관없어.”
주륵.
대답하는 유성의 눈가를 타고서, 시뻘건 핏물이 주륵 흘러내린다.
“전력으로 가겠다. 여유 따윈 없으니까. 다들 알고 있겠지?”
[물론.]
[물론.]
그의 물음에 일사불란한 하나의 대답이 채널 내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동시에-.
철컥.
그들, 네 기의 기가스 EF-07 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일시에 붙잡은 검을 치켜든다.
고오오오!
각각의 대검에서부터 강렬한 기세와 함께, 이제까지 이상으로 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금 저마다의 모든 분신체와 본체가 내면의 힘을 끌어냈다.
“태극(太極). 각성기, 물질동조(物質同調).”
그들의 마력이 대기 중의 물질들과 완벽한 융화를 시작함과 동시에.
힘이 넘치는 것이 감지된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그를 억압하던, 그 제약이 한 꺼풀 벗어졌다.
기가스의 내부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마력이, 힘이, 기운이 강렬하게 유성을 온전한 과거의 그가 가진 강함의 경지로 돌아가게 하고 있었다.
보다 튼튼하며,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정체불명의 현상이 기가스의 구조 전체를 변질시키고 있었다.
눈에 보이고 느껴질 만큼이나 빠른 변화였다.
심지어 그의 마력마저 무시무시한 기세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고작 한 줌의 마력이 전부였던 그의 전신에 지금은 힘이 넘칠 듯 차오르고 있었다.
주변 대기를 진동시킬 만큼이나 강한 마력 진동이.
이내 파도와 같은 파장이 되어 주변을 울렸다.
[허억, 허억.]
[■■■■?]
한창 완전체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서.
거친 숨을 내쉬던 그는 물론이고, 다른 두 넘버즈와 드라칸마저 난데없이 이 어두운 공간을 밝혀오는 눈부신 빛의 등장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오오오!
거기엔 네 명의 완벽하게 모든 것이 동일한 기가스들이 찬란한 금빛을 흩뿌리며 자신들의 등장을 알리고 있었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뭐야, 저게?]
그것은 그들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강렬한 진동이었다.
그들이 당황을 내비치려던 찰나.
유성의 모든 분체들이 움직인 것도 거의 동시간대의 일이었다.
그들은 타는 듯한 황금빛을 발함과 함께.
일시에 검을 내뽑아 휘둘렀다.
[벼락검. 기린(麒麟).]
[벼락검. 천둥(霹雷).]
[벼락검. 우레(雷鸣).]
그 순간.
압도적인 뇌전을 머금은 천둥폭풍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마치 모든 것을 잡아먹을 듯한 강렬한 기세와 함께.
* * *
해적선의 통제실.
“…슬슬 시간이 됐나.”
그녀는 잠겨 있던 어둠 속에서부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마치 주변의 암흑이 의지라도 가지고 있기라도 한 듯 그녀의 행동을 뒤따라 움직였다.
스멀거리는 어둠과 함께.
이내 자리에서 일어선 빌객스의 모습에.
“…쯧.”
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봄버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제야 막 파일럿 복장을 착용하는 빌객스의 모습을 힐끗 보더니 물었다.
“이제 갈 겁니까, 보스?”
“그래.”
대답은 단촐했다.
언제나 싱글거리던 때와는 달리, 오늘 이 해적선단의 주인인 빌객스의 음성은 다소 무거웠다.
주변에 넘실거리는 듯하던 어두운 흑색 마력조차, 오늘만큼은 다소 정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에 불과했다.
이내, 빌객스는 본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그녀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걱정해주는 거야?”
“…그런 건 아닙니다. 보스야, 어차피 알아서 잘 돌아올 인간이니까.”
“오, 알긴 아네.”
하지만 이내 뭐가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봄버는 툴툴대며 불평을 자아냈다.
“그나저나 대체 그 인간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이렇게까지 하려는지….”
“하하!”
그 말에 빌객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봄버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왜 그럽니까?”
“질투 적당히 좀 해라. 이것아.”
“그럼 안 하게 생겼소? 난데없이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가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