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열리는 문(1)
쐐애애액!!
유성의 기가스.
EF-07의 검세가 빠른 속도로 짓쳐 들었다.
표적이 무엇인가는 분명한 듯 보였다.
커다란 흑색의 드라칸 위에 올라선 한 명의 인영. 작은 소녀.
바로 그것이 그가 노리는 대상이자 표적이었다.
하지만 그 검날의 끝부분이 리브의 코앞까지 닥쳐드는 그 순간까지도.
정작, 리브가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리브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의 끝부분이.
우뚝!
정확히 그 앞에서 멈춰설 것이란 것을 말이다.
리브가 빙긋 웃었다.
“역시 날 죽이진 않네?”
“…….”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그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유성은 이어지는 리브의 말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대답조차 없었다.
그의 검 끄트머리는, 정확히 리브의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선 채로 정지하였을 뿐이다.
[대장? 뭘 하는 거야?]
[어서 끝내!]
통신 채널을 통하여 들려오는 다른 이들의 음성이 들려온다.
여덟 명의 넘버즈들.
그들은 하나같이 유성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삑.
하지만 다른 분대원들의 재촉을 잠시간 흘깃 바라보던 유성은, 이내 통신 채널을 꺼트렸다.
그의 청각을 시끄럽게 어지럽히던 목소리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방해다.’
이 순간, 그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그게 아니었다.
오로지 눈앞의 상대만이 그의 전부였다.
유성은 이곳에서 리브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밝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선택이다.
넘버즈. 그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리브와의 관계성을 언급하는 것은 제2의 블레이드와 다를 바가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순되었다.
모순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유성은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와 리브 사이의 관계성이었으므로.
리브의 시선이 일순간 좌우를 훑었다.
유성과, 그리고 그의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넘버즈들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정을 이해하였다는 듯 빙긋 웃어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나나 내 아이들은 세상에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을 거야. 오히려 이건 행성 테라와 모두를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해.”
“…….”
리브의 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동안에도, 유성 그는 물론이고 우뚝 선 리브의 발아래에 위치한 완전체 드라칸조차 이를 드러내기만 할 뿐 직접적인 기세는 그러내진 않았다.
리브에게서 어떠한 명령조차도 없는 한에는 말이다.
“이건 필요한 ‘정화 작업’이야. 하지만 그래도 날 노릴 거야?”
유성이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없다.
행성 테라와 모두를 위한 일이라.
하지만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적어도 유성 그가 알기로는 알지 못했다.
지금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적어도 예전의 리브가 아니다. 그저 살거죽만 동일한 인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건, 적이다.
‘만약 예전 그대로의 리브였다고 한다면, 이런 일을 벌이진 않았겠지.’
이미 리브와 초군체. 그리고 세계 각지에 나타난 완전체의 드라칸들은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죽어나갔으며,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순간에도 바깥에서는 한창 이어지고 있는 전투로 인해 양측이 피해를 입고 있었다.
‘리브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지금 중요한 건 리브 하나로 인해 세상이 더욱 혼란에 젖어들고 있다는 것 뿐.’
그들 사이에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도 많은 수의 다른 이들이 뒤편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며 그것은 유성 그나 넘버즈들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리브에게도 또한 자신의 군체에 속한 무리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놈들에게 리브란 여왕체이자 어머니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긴 대화는 불필요하다.
하지만 쓰게 웃은 리브가 물었다. 이것만큼은 정말로 필요한 물음이었으므로.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정말 날 막을 거야?”
“그야-.”
스윽.
검을 치켜들며.
유성은 처음으로 답했다.
“당연히. 그게 인간과 드라칸의 관계이니까.”
인간과 드라칸.
그들은 이미 수백 년도 더 전부터 서로 대립해오던 관계의 존재들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드라칸은 그들을 잡아먹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죽여 왔다.
유성이 알고 있는 불변의 진리는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사아아-!
리브의 두 눈이, 끌어올린 마력으로 인하여 새파랗게 광채를 발하기 시작하였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는 나대로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힘을 행사할 수밖에 없겠네. 그렇지?”
“피차일반인 셈일 뿐이야.”
양측이 같다.
유성에게도 목적이 있고, 그것은 리브도 마찬가지다.
여긴 전장이다.
서로 물러설 수 없으며 그 목적을 위해서 양측 모두 양보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곧 서로의 대립으로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
금세 가열되기 시작하는 분위기를 읽었다는 듯이.
리브의 발아래에 있던 거대한 완전체 드라칸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싸움의 직전에 앞서, 리브는 단 한마디만을 입에 올렸다.
“봐줄 생각은 없어. 난 전력을 다할 거니까.”
“얼마든지. 오히려 바라는 바야.”
그들의 대화가 끝마쳐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껏 어둠 속의 가림막에 숨어 있던 다수의 드라칸들이 나타났다.
* * *
수백 마리의 드라칸.
그리고 군함과 기가스가 서로 뒤얽혀 싸우는 어지러운 전장.
상황은 좋지 못했다.
삑-!!
경고음이 복도를 타고 울려 퍼졌다.
각 구획에 대기를 타고 있던 군인들이 다급히 소화전을 들고서 뿌리기 시작했다.
“F 구획 전소! 불타고 있다! 서둘러 화재를 진압해!”
“방금 전의 폭발로 동원가능한 인력들이 대부분 죽었어! 여유가 없다고!”
상황은 좋지 못했다.
전함 메타트론의 내부는 연이어 치솟는 불길과 가파른 압력으로 위태위태했다.
하지만 채 불길이 가라앉을 여유조차도 없이, 연달아 외부에서부터 이어지는 충격으로 인해 폭발의 규모만 갈수록 거세어졌다.
통제실이 붉게 물들었다.
함선 전체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적색 경고 신호였다.
사방에서부터 연달아 비명과도 같은 브리핑 음성이 새어들었다.
“함선의 외부 장갑 파손이 심합니다! 이미 손쓸 수준을 벗어났습니다!”
“에너지 실드의 마력 에너지 대부분 소모! 현재 14퍼센트 미만입니다! 회복 불능!”
라프티리아 함장이 자리에서 일어선 채 소리쳤다.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다수의 상위체 확인! 현재 저희들의 전력으로는 무리입니다!”
“무리인 건 이미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냐는 거야!”
그 말에 빠른 속도로 모니터 화면을 두들기던 오퍼레이터 중 한 명이 외쳤다.
“앞으로 길어도 30여 분! 그 이후에는 전함이 버티질 못합니다! 이미 주변에서 드라칸의 시선을 돌려주던 기가스 분대가 대부분 전멸하여 여력이 없습니다!”
불리하다.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눈으로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주변 전장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각 전함들과 기가스들로 인한 주홍빛의 폭발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전황은 속속 밀려나가고 있었다.
모니터 스크린에 표시되어 있던 아군 파일럿들이 탑승한 기체들이 하나둘 X표시로 뒤바뀌는 게 보였다.
사방에서부터 달려드는 드라칸들에 격추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각 함선들의 최대 전력 중 하나인 주포와 남아 있는 에너지 실드로서 어떻게든 시간을 버텨내고 있지만, 그마저도 그리 길지 못할 터였다.
결국 자원이란 건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었고, 그것마저 다 떨어진다면 남은 것은 오로지 죽음이다.
곳곳에서 함대가 스러지고 있다.
불과 연기에 휩싸인 전함들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달려드는 드라칸들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지만 결국 그것도 시간 문제에 불과했다.
본래부터 드라칸이란 건 전투체 등급 정도만 되어도 기가스 한 기의 전력에 준할 정도의 상대였다.
그런 것들이 단순한 수적인 측면은 물론 질적인 측면에서조차 가볍게 웃돌고 있으니.
제아무리 연합의 총력을 한데 긁어모은 함대라 할지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모든 게 어려운 상황.’
라프티리아 함장은 전방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어려운 건, 바로 저 상위체들이다.’
상위체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상대불가한 특수한 개체들이었다.
일정 한도 이상의 경험과 성장이 동반되는 순간을 기점으로 완전체로의 진화마저 가능한 그러한 상대.
그런 놈들이 전장의 곳곳에 뒤섞여 있었다.
당연하지만 전투체에조차 애를 먹는 보통의 파일럿들이 그 녀석들을 상대로 한순간이나마 버텨줄 리가 만무했다.
주변 전황을 빠른 속도로 넘나들며 전장을 어지럽히고, 당황한 파일럿들을 잡아먹는 저것들에 의해.
결국 전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처음부터 지는 싸움이었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어.’
예상했다. 철저하게 밀릴 것이라고.
하지만, 연합은 그마저도 이미 감안한 채로 전투에 돌입했다.
알면서도 그러한 이유는 간단했다.
놈들에게 더 이상의 시간과 여력을 안겨주어 성장할 후일을, 그들로선 더 이상 감내할 만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
불과 수 년만에 연합으로서도 처치 곤란한 괴물들이 여럿 등장한 판에.
여기서 더 싸움을 미루겠다고?
그것은 인류의 생존조차 희박하게 하는 선택지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모험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연합 측에서는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삑!
그때 통제실의 대형 모니터 스크린이 켜지며, 어느 익숙한 외형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봐!]
유리 엘 바이어스 후작이었다.
스크린 화면에 비친 그녀의 얼굴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동안 격한 전투에 휘말리기라도 했던 모양인지, 핏물에 젖어 붉게 질척이는 머리칼이 휘날리고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간 조들은 어찌 됐지?!]
“현재 여왕체의 거처에서 유성과 그들이 서로 대면한 상황입니다. 다만, 에너지 반응으로 보아 해당 공간에 적어도 4기의 완전체 드라칸이 함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 완전체가 넷씩이나? 산 넘어 산이로군! 라피스, 그 아이 쪽은 어떻게 됐나!]
“현재 에스메랄다 후작은 관지기, 그 이외 두 완전체와 대치 중이며 마르스 공작과 라피스 소위가 나란히 여왕체의 거처에 도달하려는 상황입니다.”
처음부터 이 싸움에서 이기리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건 희박함을 넘어서서 불가능에 가까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것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을 상정하고 짜내었으며, 또한 실행에 옮겼다.
애당초 진짜는 현재 여왕체를 향해 접근한 그들 분대였다.
나머지는 전적으로 드라칸 군단의 눈길을 돌리기 위한 시간벌이용 미끼나 다름없었다.
쉽게 말해, 그들은 처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던 거다.
각성자라고는 오로지 유리 엘 바이어스 후작 그녀 혼자만이 이곳에 남았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