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추락하는 별(5)
[끄, 으아아아아-!!]
블레이드.
놈이 타고 있던 기체에 급작스러운 변화가 일었다.
기가스 전반에 걸쳐 푸른 혈관과 피부라 할 만한 기이한 마력 줄기들이 다발로 엮여 뒤덮여 드는 그 광경은.
가히 기형적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란.
이미 동료들이 보기에도 결코 정상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저, 저게 뭐야?]
[저건 우리들이 알고 있던……. 블레이드가 맞는 건가?]
통신 채널을 타고 퍼지는 것은 분대원인 넘버즈들의 음성이었다.
하나같이 당황, 혹은 경계하는 것이 역력한 기색.
하지만 유성은 큰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녀석의 변화를 말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그는 이미 이것과 유사한 변화를 목격한 바가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스스로가 직접 경험했다고 해야지만이 더 정확할 테지만.
그는 단지 눈에 보이는 녀석의 기가스에 걸친 변화만이 아니라.
조종석 내부에 걸친 녀석의 직접적인 변화를 꿰뚫고 있었다.
고오오-.
끌어 올린 마력과 푸른 안광을 빛내며 내부의 형체를 흐릿하게나마 꿰뚫은 그는 대번에 놈, 블레이드에게서부터 솟구친 거무죽죽한 형체를 읽어내었다.
녀석은 이미 인간의 외형을 벗어 버린 뒤였다.
마치 드라칸이라도 되는 듯이 번들거리는 갑각질의 형상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였다.
때문에 유성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완전히 인간의 형상마저 집어던진 건가. 너. 정말로 드라칸이라도 되려는 거냐?”
[시, ■끄러워어■-!]
이제는 이미 인간의 것이라 보기조차 어려운 괴성을 내지르며 놈이 달려들었으나.
설령 이전보다도 더욱 강렬한 검세 또한 유성은 별다른 문제 없이 방어할 수 있었다.
활짝 펼친 날갯짓과 함께 달려든 놈의 검세는 일직선이었다.
빨랐으나, 그것이 전부였고 단순했다.
유성은 저돌적으로 맹공을 퍼붓는 놈의 검세를 막아내며 생각했다.
‘확실히 강해지기는 했군. 힘과 속도만큼은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그것이 고작이다.
‘자의식을 내다버린 대가로 얻은 것은 겨우 그 정도가 전부인가.’
이미 블레이드에게서부터 쏟아지는 일직선적인 공격들은 자제심을 잃은 게 눈에 보였다.
과격한 흥분과 저돌성에서부터 비롯된 몰자각적인 공격은, 사실상 한낱 상위체 등급의 드라칸만도 못한 수준의 것이었다.
본래부터 녀석의 장점은 검술의 기술적인 측면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저 물리적인 강화가 더해져 봐야, 별다른 특출남이 없었다.
뚜렷한 능력의 강점도 없고, 이미 녀석의 공격은 검술이라고 할 수준도 되지 못했다.
힐끗, 뒤편의 넘버즈들을 살폈다.
한때, 블레이드의 충실한 우군이자 그의 동료임에 주저함이 없었을 이들.
하지만 아서를 비롯한 녀석 중 누구도 둘의 접전에 반응하는 이가 없었다.
카드득!
블레이드와 맞붙은 검날에서 푸른 불똥이 튀었다.
격렬한 접전.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시류를 읽어냈다.
‘본래라면 여기서 블레이드를 도왔어야 알맞았겠지. 하지만 누구 하나 그러지 않아.’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미 블레이드는 모두의 신망을 잃었다. 그 대신 모두에게 들어선 것은……. 오로지 경계심과 더불어 경멸감인가.’
블레이드에 대한 동료 의식.
그것은 본래 녀석이 가지고 있었던 침착함에서부터 비롯된 신망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깨져 버린 이상 더 이상 녀석을 아군이라 생각할 이는 이 중에 없다.
녀석은 스스로 그 자리를 집어던졌다.
“전원.”
때문에.
그는 통신 채널을 통하여 입을 열었다.
당황으로 굳어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린다.
“눈앞의 적을 격살한다.”
움찔.
그의 말에, 모두가 일순간 꿈틀거리며 당황을 드러낸다.
하지만 유성은 그저 담담히 자신의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이견은 받지 않는다. 놈은 이미 드라칸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야.”
강렬한 의지를 지닌 그의 말에, 분대는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어느 누가 그를 따르겠다 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저 반사적으로. 혹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따랐을 뿐이다.
유성의 지시와 거의 동시에 그들 넘버즈들은 일사불란하게 블레이드를 둘러쌌다.
그 광경에, 주변을 둘러다 본 블레이드가 입을 열었다.
[■, ■■. 너희들. 나를 적으로 규명하겠다는 거냐?]
[…….]
[…….]
그러나 블레이드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간단하지만, 분명했다.
그것만으로도 뜻은 명확해졌다.
“후-.”
유성이 물었다. 그의 입가에, 티가 나지 않을 만큼이나 미약한 미소가 지어졌다.
“할 말은 그게 전부인 건가?”
[유성! 이 개 같은……!!]
블레이드가 반사적으로 날개를 활짝 펼치며 달려들려던 순간.
사방에서부터 포위한 넘버즈가 놈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콰드득!
분명한 살기를 머금은 다수의 검격이 녀석의 기체를 후려쳤다.
[이 새끼들이! 뭐 하는 거냐?!]
그제야 미약한 정신이나마 차릴 수 있었던 건지 녀석이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넘버즈들은 두셋만 모여도 완전체 수준의 드라칸마저 상대가 가능한 이들이었다.
그런 수준의 상대가 순순히 여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놔둘 리가 만무했다.
콰-직.
블레이드의 기체 장갑을 뚫고서, 다수의 검격이 동시에 달려든다.
시간차 없이 찌르는 거의 완벽한 합격술.
넘버즈들은 이미 전투에 이골이 난 이들이다.
[크아악!]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녀석을 응시하며 유성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넌 이성을 잃은 순간부터 이미 통제권을 잃었다. 하물며 인간도 아닌 드라칸의 편에 선 순간은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였지.”
[유성! 너 이자-……!!]
콰-직.
놈이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
푸른 섬전처럼 달려든 유성의 검이놈을 스치듯 지나쳤다.
잠시간 정지한 듯 멈춰섰던 블레이드의 기가스가 위아래로 양분되었다.
[커억! 어, 어째서?]
“바보가 아닌 이상에는, 네가 언제고 반발을 하리란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지. 물론 그게 지금일 줄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하긴 했지만.”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당황한 놈의 음성이 채널을 타고 흘러들었다.
하지만 진작부터 유성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 찾아든 이 기회를, 그가 쉽사리 놓칠 리가 만무했다.
때문에 그는 그저 무심히 답할 뿐이었다.
“된다. 그게 나니까.”
콰앙!
그 말을 끝으로, 블레이드가 탄 기체가 폭발했다.
불꽃이 터져 나오고.
매캐한 연기가 허공의 한 가운데에 비산함과 함께.
“리브.”
유성은 이제 뒤편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네 차례다.”
* * *
쿠오오오-!!
거대한 터널.
두 기의 기가스가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었다.
전략 적성 병기. 아크 드레드노트 G-02.
그리고 리제네레이터.
[대량의 마력 반응이다.]
그 두 기체 중.
압도적으로 거대한 기가스인 푸른 기체를 향해 나란히 선 마르스 공작이 말을 건넸다.
[상대는 아마도 완전체일 거다. 한 번만 발을 묶어라.]
통신 채널을 통해 둘의 시선이 서로 오갔다.
대답은 필요 없었다.
물론, 그 정도만큼의 여력이 없기도 했다.
이미 반대편에서부터 접근하는 대량의 마력 반응이 금세 코앞에까지 치달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라피스가 탑승한 아크 드레드노트가 손을 내뻗었다.
그녀의 기체가 뒤편에 무장하고 있던 전용 무장 컨테이너가 개방되며 거검 아스타로트 블레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잉!!
강렬한 마력이 검의 극점에 모여들었다.
동시에 라피스의 안광 또한 강한 빛을 발했다.
치솟는 광활한 마력 에너지의 분출에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풀거리듯 거칠게 나부꼈다.
‘필요한 것은 일순간의 집중과 평정.’
라피스의 모니터 화면에 표시되어 있던 동화율 수치가 빠른 속도로 치솟았다.
삑. 삑.
[현재 동화율 수치 : 74퍼센트.]
[현재 동화율 수치 : 78퍼센트.]
[현재 동화율 수치 : 82퍼센트.]
찰나이지만.
그 한순간에 끌어 올리는 극한의 제한된 집중의 순간.
한때 오로지 유성만이 가능했던 그 의식적인 재능의 편린을, 이제는 라피스 그녀 또한 의식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능했다.
더 이상 그녀는 3년 전의 라피스가 아니었다.
마침내 라피스의 집중력이 최대 한도에까지 치솟았을 때.
번-쩍.
저편의 어둠에서부터 작은 일점이 반짝였다.
드라칸이었다.
완전체 등급의 상대.
놈이 고속으로 그들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다.
마르스 공작이 외쳤다.
[지금이다!]
콰드-득!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쥐고서 휘두르는 듯한 그 동작과 함께.
거검은 마치 일섬(一閃)이 번쩍이듯 짧은 번뜩임과 함께 그녀의 의식을 따라 휘둘러졌다.
통로의 벽면이 통째로 으스러졌다.
주변의 모든 공간이 일순간 썰려나가고, 고속으로 접근해 오던 드라칸을 덮쳤다.
진동이 찌르르, 대기 중을 타고서 울릴 정도로 막대한 파괴 행각이었다.
압도적인 기세를 머금은 기습.
하지만, 상대가 상대였던 탓인지.
[■■■■.]
완전체는 무너진 통로에 처박힌 상태에서조차 그 매끈하던 갑각질의 일부만이 조금 그슬리고 타들어갔을 뿐, 형상을 멀쩡히 유지했다.
물론 라피스 또한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
상대가 막는다는 가정 하에, 그녀의 공격이 통하는 것은 상위체 등급의 상대까지가 한계였으니까.
삐익-!
[현재 동화율 수치 : 57퍼센트.]
한계까지 출력을 끌어올렸던 반동으로 라피스의 기체 동화율이 급속도로 추락했다.
다만 처음부터 그녀도 이것을 노렸다.
녀석이 무력화되는 이 찰나의 순간을 말이다.
이 직후, 강렬한 공격을 받아낸 놈은 옴짝달싹조차 할 수 없었다.
“마르스 공작님!”
[알고 있다.]
대답과 동시에, 이미 마르스 공작의 적색 기체는 벽면에 처박힌 놈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화르륵!
그의 기체가 강한 적색 색채감과 함께 불에 타오르며.
강렬한 떨림을 자아냈다.
[…각성기.]
한계까지 달궈진 그의 동공이 붉은빛을 발했다.
마르스 공작의 몸은 마치 용광로의 시뻘건 불길이 번뜩이는 듯했다.
마르스 공작. 그리고 그가 속한 볼드워커 가문.
그들은 대대로 불을 터득한 속성력을 다룰 수 있었다.
어느 누가 알려주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깨우친 자연적인 능력이었다.
그러했던 탓인지, 마르스 공작이 깨우친 각성기 또한 자연스레 불을 피워올리는 것과 일치했다.
그는 열기가 솟구치는 이빨을 아득 깨문 채로 체내의 마력을 방출했다.
[초중용왕 홍염검(初重龍王 紅焰劍).]
쿠오오오!
주홍빛의 불길이 무력화된 상태의 완전체를 향해 모조리 쏟아 부어졌다.
“큭!”
압도적인 열선이었다.
강렬한 색채감에 눈이 부신 라피스가 순간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서서히 열기가 가라앉으며 뒤늦게서야 라피스는 다시금 정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파묻힌 열기에 드라칸이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끝이다.]
한동안 거친 숨을 내쉬던 마르스 공작이 라프스를 향해 말을 건넸다.
[움직이자, 여왕의 방이 코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