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추락하는 별(4)
드라칸과의 전쟁은 태양계 전체에 불안정한 균열을 일으켰다.
곳곳에 크고 작은 블랙홀과도 같은 균열이 생겨나고, 마나 에너지라는 비과학적이며 초월적인 에너지가 세상 전체에 널리 퍼져 나갔다.
인간과 드라칸.
그들의 전쟁은 그러한 와중에도 멈춤이 없었다.
오히려 급속도로 가속되어, 나중에 가서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였던 핵무기를 사용하는 경우마저도 수시로 벌어졌다.
전화의 불길이 갈수록 치솟았던 것이다.
최초의 마나 사용자들 중 하나였던, 인간 유성.
아니, 넘버즈의 이시혁.
그가 태어났던 때 또한 이러한 불안정한 시기 중의 하나였다.
“…….”
이시혁이 기억하던 최초의 기억.
그것은 바로 새하얀 전등불이 밝혀진 어느 실험장 공간이었다.
그는 연구진들의 사이에 누운 채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마도 다섯 살.
혹은 그 전후에 불과한, 상당히 어린 시기였을 것이다.
어린 그를 내려다보던 것은 이곳 실험장의 부소장이었다.
“눈을 떴나, 9호?”
하지만 이시혁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부소장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주변으로는 부소장을 보조하기 위한 다수의 연구진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전신에는 전기 바늘이 빼곡하게 꼽혀 있었다.
“9호. 대답하도록.”
끄덕.
재차 이어지는 지시.
그제야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좋아.”
하지만 그 정도로도 만족한 듯, 부소장은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다.
이시혁은 다른 최초의 마나 사용자들보다도 훨씬 감정의 표현이란 게 적었다.
대답을 하지 않는 경우도 앞전과 같이 부지기수였으며, 설령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아주 미세한 반응만을 보였다.
그 당시 이시혁의 이름은 이시혁이 아닌 9호였다.
당시의 이시혁은 감정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만 할 그 기본적인 삶의 요소라는 게 없었다.
그의 마력적인 성질을 관찰하던 연구원 중의 하나가 입을 열었다.
“9호에게는 다른 넘버즈들과 다른 성질이 있습니다. 모든 마력적인 성질 부분에 우호적이군요. 하지만 때때로 어떤 경우에서는, 모든 마력을 의도적으로 배제시킵니다. 완벽할 정도로요.”
“그게 가능한가?”
“믿기지가 않지만… 오로지 9호만이 유일합니다. 다른 넘버즈들에게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시혁.
그에게는 기이한 특질이란 게 있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는 모든 마력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다루지만.
때때로 그 모든 마력적인 간섭 영역에 철저할 정도로 배제하는 특이성이 돋보였다.
다른 모든 마나를 의도적으로 밀어버린다니, 그런 것은 마나 생명체인 드라칸에게서조차 보지 못한 미지의 현상이었다.
이 시기에 각기 태어나기 시작한 다른 열 명의 넘버즈들 중에서도 오로지 그만이 유일하게 모든 마력 영역에 간섭이 가능했다.
특이체 중의 특이체였다.
어떠한 감정조차도 내비치지 않은 채, 무심한 눈으로 주변을 응시하는 이시혁을 마주 응시하던 부소장.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마치 드라칸과도 같군. 놈들은 지성체이지만 감정 따위가 철저하게 배제된 것들이지.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말이야.”
그 말에 어렸던 이시혁은 눈을 깜빡였다.
‘내가, 드라칸 같다고?’
당시의 어렸던 이시혁이라도 드라칸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전쟁의 대상.
지성체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대화에 대한 여지 따위는 조금도 통하지 않는 적대적 생물체.
감정이라고는 철저하게 배제된 그 정체불명의 괴수들.
그의 말에 대한 의미는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알 수 없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단지 이시혁은 그렇게 기억할 뿐이다.
그의 말에서부터 무언가를 느꼈던 바가 있었던 모양인지.
이시혁을 가만히 관찰하던 연구원 중의 한 명이 물었다.
“설마 인간이 아니라 드라칸에게서부터 태어난 것은 아니겠죠, 부소장 님? 이런 능력이 드라칸도 아닌 한낱 인간에게 있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이질적인데 말입니다.”
“그건 아니야. 확실해.”
툭툭.
부소장은 품에서부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보글거리는 녹색 액체 용기에 떠다니는 것은 허여멀건한 무언가였다.
눈을 깜빡이던 연구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뭡니까, 그건?”
“9호를 낳은 산모의 신체 일부다.”
“그, 그 말 진짜입니까?”
“그래.”
“우웁!”
부소장은 대번에 대경실색을 하며 멀어지는 연구원을 향해 말을 이었다.
“9호가 인간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우리들도 녀석의 특질이 유난히 기이해서 녀석을 낳았던 산모를 직접 찾아갔던 적이 있었지. 하지만 산모는 그저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어머니에 불과했어.”
새파래진 얼굴을 한 채로, 연구원이 물었다.
“그, 그럼 그 산모를 죽인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다. 우리가 가기 전에 이미 그녀는 죽었지. 산통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했다더군.”
말을 하던 부소장의 눈길이 물끄러미 자신을 응시하는 이시혁과 마주쳤다.
일말의 감정조차도 내비치지 않던 이시혁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저 꼬마가 태어난 것은 그저 환경상의 돌연변이적 탄생인 셈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새로운 마나 사용자가 태어나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속속들이 마력을 가진 신생아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적었고, 더군다나 이시혁과 같은 특성을 가진 이는 더더욱 없었다.
오로지 그 혼자만이 유일했다.
그리고 그보다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때.
이시혁이 자신의 자아를 분명하게 형성하기 시작한, 그런 어린 시기가 도래했을 때부터.
그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려 실험소의 한 공간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모두가 넘버즈라 불리던 이들이었다.
이제 이시혁은, 예전의 무감각한 모습과 눈빛들을 어느 정도 떨쳐낸 상태였다.
드물기는 하지만, 웃을 줄을 알았으며 말을 할 줄도 알았다.
“갈수록 자의식이 강해지고 있나. 분명 어린 시기에만 하더라도 거의 감정이란 요소 자체가 없는 듯해 보였을 정도인데 말이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부소장이 말했다.
“확실히 조금 묘하기는 합니다. 마치 감정을 배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감정이란 건 단순히 함께 지낸다고 배우거나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확실히 자네 말처럼 묘하기는 하군.”
* * *
콰드득-!
드라칸의 여왕체를 앞에 두고서 두 기가스가 서로 검을 맞부딪혔다.
통신 채널을 타고, 블레이드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나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유성! 지난 시간 이래 널 이기기 위해 능력을 갈고 닦았지!]
유성과 그의 두 기체가 파란 빛줄기를 뿜어내며 쏘아졌다.
화르륵!
검은색 장갑을 두른 블레이드의 전용기, 스트라이커(Striker) 의 안광에서부터 새파란 귀기가 치솟았다.
대장기인 놈의 기체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출력은 다른 기체들보다도 압도적이었다.
무려 고등급 드라칸과의 접근전을 상정하여 개수된 전용기체다.
추진부에 부착된 백팩 스러스터는 완전체의 날개 일부분을 파일럿의 성향에 알맞게 개조한 덕에 예전 이상으로 압도적인 출력을 내보이고 있었다.
카가각!
두 대검이 서로 맞부딪히자, 파란 마찰빛이 치솟았다.
[크하하! 이 자리에서 넌 죽을 거다!]
블레이드가 광소를 터뜨렸다.
[이제껏 네 녀석의 기술을 지켜보며 몇 번이고 파훼법을 복기했지! 지금에 와서 더 이상 넌 내 적수가 아니다!]
“…….”
잔뜩 흥분해서 소리치는 블레이드의 음성이 통신 채널을 타고서 울려퍼졌다.
그의 음성을 듣는 유성의 눈길은 어떠한 감정의 저변을 표현하는 일도 없이 고요했다.
푸른 검세가 서로를 거칠게 몰아치고 있지만, 그 접전 속에서도 그는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었군. 이미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
블레이드는 분명 눈에 띄게 크게 흥분해 있었다.
분명 처음에만 하더라도 녀석은 신중함으로 클론체 전원을 이끌던 이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그렇지 않다.
당장 아홉 명의 넘버즈들 모두가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분명하다.
이미 녀석은 신망을 잃었다.
그나마 가장 가까이서부터 지내던 아서조차, 이미 진작부터 눈에 띄게 폭급해진 녀석의 태도를 줄곧 의심해오고 있던 차였다.
그런 와중 이번 상황은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스륵.
눈앞의 상대, 블레이드에게서부터 시선을 든 유성이.
저 뒤편의 여왕체, 리브에게로 향했다.
‘이 녀석이 혼란해하는 이유는 분명 리브와 관련이 있다.’
단순히 전후 상황을 근거로 한 불확실한 가정.
하지만 그것은 거의 기정사실임이 확실했다.
리브의 무엇인가가 분명 블레이드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블레이드가 소리쳤다.
[여왕이야말로 나의! 아니, 우리들의 어머니이시다!]
‘그랬군.’
그러자 문득 자연스레 한 가지 사실에 도달한다.
이제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블레이드는 지난 수개월 동안, 초군체 무리의 일원일 거라 추측되던 드라칸들을 상대하던 사이에 착실하게 성격과 성질이 변해가고 있었다는 걸.
그는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어쩌면 그것 또한 전혀 다른 무리에 속한 드라칸들마저 자신의 것으로 삼는 특이체질인 리브의 영향일지도 몰랐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유성 그 이외에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블레이드가 이제껏 그들 클론체들을 자연스레 이끌어왔던 대장이었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몸이 따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
유성은 알아차렸다.
‘놈의, 기가스의 움직임이 한층 빨라졌다.’
아니,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가속에 가속을 더하듯이.
본래부터도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던 녀석의 기체, 스트라이커가.
이제는 거의 완전체에 준할 정도릐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가스의 원래 성능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이었다.
빠직. 빠지직.
동시에, 기가스의 외관 전체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나무의 벽면을 타고서 수많은 넝쿨 식물들이 자라나듯.
블레이드의 기체의 중심부에 자리한 드라칸의 핵에서부터 강렬한 반응이 치솟더니, 내부 뼈대를 이루는 프레임과 외부 장갑에 이르기까지 푸른 줄기 다발들이 급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건?”
그 이질적인 성장과 변화만큼은, 지켜보던 유성조차 다소의 감정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이 광경. 이 형상이라니.
마치, 기가스가 드라칸의 형상을 취한 듯 보이는 기괴한 모습은.
언젠가, 유성 그가 리브의 도움 아래 완전체를 상대했던 그 순간과 같은 강렬한 변질이었다.
[끄, 으아아아아-!!]
전용기, 스트라이커의 파일럿, 블레이드.
그는 내부에서부터 치솟는 강렬한 성장감을 견딜 수 없다는 듯 강한 고함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