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추락하는 별(3)
푸확-!
덤벼드는 드라칸들을 일격에 도륙하며, 유성은 깊숙한 내부로 진입했다.
그의 눈이 모니터 화면을 통하여 주변 환경을 주의 깊게 살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이제는 더 이상 드라칸들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보다 깊숙한 영역으로 진입했다는 소리였다.
‘여긴 통로의 마지막 끄트머리 부분이다. 그렇다면 저 앞에 있는 것은-.’
그 답은 하나였다.
그것은, 아마도. 이들 초군체 무리의 여왕이 있을, 둥지의 내핵 부분.
쿠오오오-.
십여 기의 기가스 분대는 빠른 속도로 수백여 미터에 이르르는 기다란 통로를 고속으로 주파한 끝에 마침내 예상 지점에 도달했다.
여왕체가 머무를 것이라 예상되는, 이 거대한 완전체 드라칸의 핵(核) 이 자리한 깊숙한 가운데 지점.
그곳은 거대한 공동으로 이루어진 빈 공간이었다.
파직. 파지직.
강렬한 마력 에너지가 율동하며, 벽면 전체가 마치 두근거리듯 끊임없이 박동을 계속했다.
그들이 들어선 이 공간의 벽면 전체가 모두 완전체의 핵이었다.
당연한 결과다.
이 거대한 전함의 형태를 한 탈 것은, 실상을 알고 보면 극도로 거대한 드라칸이었으니까.
유성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진작부터 예감하고 있던 적의 우두머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어느 무리라도 제한 없이 자신의 것으로 취한다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통합, 통솔 방식을 취한 신종(新宗)이자.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의 의태로 종 본연의 성질을 탈바꿈한 새로운 여왕 개체.
상대는 정면에 등장한 유성의 기체를 응시하더니 웃어 보였다.
“왔구나.”
“…리브.”
유성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용의 모습을 한 거대한 완전체 드라칸의 머리 위에 걸터앉아 있는 소녀, 리브를 응시하다가.
돌연 낮게 읊조렸다.
“역시 너였었나.”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확실시하고 있었다.
그 정체가 누구일지.
그리고 이제껏 유래조차 없던 이 상황마저도.
[인간의 형상을 한 드라칸이 있는 듯하다.]
연합에서부터 들려왔던 몇몇 소식들을 접했을 처음의 순간에만 하더라도, 유성은 애써 그 사실들을 외면해왔다.
하지만 그 목격담들이 몇 번이고 이어지고.
끝내는 본격적으로 이곳 우주권에 진입한 초군체의 무리의 등장과 함께 진실로 포착되면서.
그러한 유성의 내면의 고뇌는, 마침내 그 종착지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초군체의 여왕체는.
아마도 틀림없이 리브일 것이라고 말이다.
적어도 유성, 아니 이시혁이었던 그 시절에서부터 줄곧 단 한 번도 유래가 없었던 특이 능력을 가진 여왕체라고 한다면.
적어도 그만한 특이성을 가진 개체였을 테니까.
“…….”
유성은 수 초에 이르른 긴 시간 동안, 어떠한 말도 의문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침묵을 지켰다.
고오오오-.
그는 가만히 조종석에 앉은 채로.
표정에 일말의 변화조차도 없이 모니터 화면 너머에 내비치는 리브의 얼굴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처음, 드라칸의 알에서부터 태어난 리브를 마주한 그 순간에서부터.
리브의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이어나갈 때마다.
유성 그의 내면에서는 늘상 이러한 전개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그 능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또한 마력의 크기 또한 방대해지면서.
그 불안감은, 마침내 현실이라는 이름의 결정이 되어 이곳에 다다랐다.
키잉-.
유성이 타고 있던 기가스, EF-07의 대검에서부터 고요히 푸른 마력이 분출되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했다.
유성은 분대 채널을 통해 모두에게 담담히 명령을 하달했다.
[지금부터 신종 여왕체의 토벌을 시작한다.]
[알겠다.]
[알겠다.]
클론, 넘버즈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통일된 하나의 대답으로, 유성 그의 지시를 묵묵히 이행할 뿐이다.
한치의 이견조차도 없이, 저마다의 전용 무장을 뽑아 들며.
마치 편대를 이루듯 진형을 이뤘다.
그들 열 기의 기가스들의 안광이 새파랗게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 *
한편.
유성의 기가스 뒤편에 자리하고 있던 2번 분대장, 블레이드.
그는 드러나지 않을 만큼 미미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찾았다.’
지난 수 개월 동안 그토록 찾아 헤매이던 대상을, 그는 마침내 찾아냈다.
블레이드의 타는 듯한 열망이 담긴 눈동자가 용의 모습을 한 드라칸 위에 앉은 소녀를 향했다.
눈이 저절로 꽂히는 듯했다.
마치 꽃이 만개하는 듯하다. 무수히 펼쳐진 풀밭에 오롯하게 펼쳐진 단 하나의 꽃을, 마주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오로지 세상에 저 소녀 하나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인간들은 저 소녀를 드라칸의 여왕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인류의 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블레이드에게는.
전혀 상관없을 일이다.
하나가 죽어 이제는 아홉이 되어버린 그들 넘버즈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 2분대장인 블레이드는.
유난히 드라칸의 인자를 진하게 이어받은 클론체였다.
스윽.
블레이드는 뽑아든 검을 든 채로, 그 이끌림에 따랐다.
여왕체 리브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마치 유성과 그의 분대를 적대라도 하듯이.
동시에 리브를 지키기라도 하듯이.
[…블레이드. 지금 그 행동은 무슨 의미이지?]
유성의 서늘한 시선이 꽂혀 들었다.
등줄기가 알싸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살기였다.
과연 그들의 원종다운 압도적인 기세다.
클론인 그들 넘버즈들로서도 감히 흉내내지 못하는 기세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느껴져 왔다.
그 넘치는 재능과 찬란할 정도의 무력을 가진 유성이다.
압도적인 그 본연의 강함은 감히 인간도, 드라칸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아득한 파일럿이 그였다.
하지만 블레이드는 유성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했으면서도 정작 입가에 서린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나는 여왕을 따르겠다.”
그 난데없는 단편적인 통보에.
아서가 돌연 당황해서 소리쳤다.
[야, 블레이드. 그게 난데없이 무슨 소리야?]
“큭, 미안하지만-.”
그는 유성을 담담히 응시하며 입을 열 뿐이었다.
“난 원래부터 이럴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줄곧 말이지.”
[너…….]
아서가 으르렁거리듯 블레이드를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는 거냐? 우리를 배신하기라도 할 셈인 건가?]
“하하.”
오히려 블레이드는 추궁하는 듯한 아서의 말에도 소리내어 웃을 뿐이었다.
그는 주변의 분대원, 넘버즈들을 한껏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도 다들 이제껏 느껴오던 바가 있었을 텐데. 어째서 우리들이 드라칸을 죽여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
[…….]
넘버즈들 중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는다.
강한 부정 따윈 없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다.
모두가 동일하게 이 이유 모를 강렬한 끌림을 감지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이미 진작부터 말이다.
블레이드는 양 팔을 힘껏 펼쳤다.
“나를 따라 여왕의 편에 서라. 여왕은 말이 통하는 상대야. 우리는 분명 여왕의 자비와 편애 아래서 살아 숨쉴 수 있다! 다들 이 강렬한 끌림을 느꼈을 텐데!”
클론체들은 본래부터 인간보다는 드라칸에 더 가까운 육체를 지녔다.
그들은 때때로 이유 모를 강렬한 친밀감을 드라칸에게서부터 감지할 때가 있었다.
그 마력적인 재능과 성질, 그리고 특성이 유성에 근접할 정도로 강하면 강할수록.
클론체들 중 몇몇은 유독 그런 기이한 감각을 간혹 맛보고는 했다.
특히나.
개중에서도 유독 강한 블레이드가 그런 감각에 휩싸이는 편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그 감각을 애써 흐트러트리려고도, 무시하려고도 하는 모양이었으나.
블레이드, 적어도 그만은 아니었다.
‘드라칸의 살에 검을 박아 넣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란 마치 동족을 죽이는 듯한 느낌이다.’
강렬한 거부감이 치솟는다.
역겨움이 치솟았다.
드라칸을 죽인다는 행위 자체가 그에게는 모독으로 느껴졌다.
줄곧 이 행동들이 마치 함께하는 동족을 죽이는 듯 강한 반감이 감지되었다.
클론의 태생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이것은, 자연스러운 문제였다.
“자신이 속한 본연의 태생에 이끌린다는 것이, 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들은 본래부터 드라칸의 인자를 강하게 타고 났다.”
블레이드가 말했다.
“하물며 다른 무리의 드라칸들을 죽일 때에도 느끼던 이 감정은 초군체와 여왕을 마주한 순간 더더욱 크게 다가왔지. 어쩌면 우린 본래부터 이 여왕체라는 존재의 피가 아주 옅게나마 섞인 것일지도 모른다.”
드라칸은 드라칸의 여왕을 따른다.
이유 따위도, 의문도 필요없다.
개미들이 여왕 개미를 섬기듯이.
드라칸에게는 그것이 그저 당연한 것이었다.
블레이드에게도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
한동안 침묵하던 유성은.
그저 담담히 대꾸할 뿐이었다.
[그렇군.]
유성이 타고 있던 기체의 마력 검기가 더욱 거세어졌다.
푸른 빛줄기가 힘껏 터져나오듯 분출되는 게 보였다.
[언젠가는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그게 지금이었던 건가.]
유성은 크게 동요를 내비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예상했다.
다만, 그것이 지금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상관은 없었다.
언젠가 블레이드는 반드시 자신의 반감을 드러냈을 것임을 알았던 그였다.
그렇다면 결과는 간단하다.
블레이드와 리브, 모두를 베어넘기기만 하면 될 뿐이니.
* * *
고오오오-.
다수의 전함이 지구권 태양계의 각 행성들을 향하여 진출하고 있었다.
이때의 인간들은 행성들에 대한 탐사와 연구가 활발하였으며 아직 외계에 대한 경계를 갖추지 못한 때였다.
서기(西紀) 2032년경.
당시의 인류는 태양계의 각 행성들에 대한 진출이 활발하였다.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인류는 아직 마나라는 에너지의 존재조차도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이 드넓은 우주에, 지성종이라는 것은 오로지 그들 인간들 뿐이라고 말이다.
인간들은 적어도 1년이 더 지난 2033년이 되어서야 이 우주에 지성체가 그들만이 유일한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
[■■■!!]
드라칸들의 존재가 처음으로 목격되며, 동시에 그것들의 침공이 시작되었다.
놈들은 말 그대로 압도적인 존재였다.
드라칸의 갑각질 표면은 뛰어난 방어 능력을 자랑했으며, 동시에 인간이 가진 물리적인 화기 대부분을 무효화시켰다.
인간의 것들은 어디까지나 그들 지구에서나 통하던 물질적 무기에 불과했다.
드라칸들은 강하고 민첩했으며, 동시에 인간들이 본래 알고 있던 생명체의 카테고리에 속한 것들과는 그 수준이 하늘과 땅 정도로 차이가 났다.
오로지 함선이나 전투기의 포격 정도만이 물리적인 충격 대부분을 무시하는 놈들의 갑각질 표면을 뚫고서 충격을 주었을 정도였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일부 상위체라 이름 지어진 고위 드라칸의 경우에는.
그마저도 통하질 않았다.
놈들은 괴물, 압도적인 괴물이었다.
체내에 머무르는 강력한 신에너지가 압도적인 운동 성능을 선사해주며 그 공격들마저도 모조리 회피하도록 해주었다.
태양계 외부의 행성들을 차지한 드라칸들은, 금세 안쪽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였으며.
나중에는 달의 근방에까지 심심찮게 모습을 드러냈다.
전쟁은 급속도로 심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을 기점으로.
인간들 사이에서 하나들 믿기 어려운 능력을 가진 이들이 나타났다.
마력을 사용할 줄 아는, 마나 사용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