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추락하는 별(2)
[■■■.]
관지기.
놈은 침입한 3기의 기가스들을 마주한 채로 가만히 응시했다.
다른 드라칸들과는 달리, 녀석은 자신들만의 언어 체계로서 무어라 입을 열었다.
‘뭐라는 거지?’
물론, 인간인 그들이 관지기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놈들의 언어 체계는 인간들과는 그 구성 방식이란 게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분필을 칠판에 긋는 듯이 듣기 싫은 거친 소음이면서도, 동시에 사나운 괴수로서의 강렬한 기세가 머금어져 있었다.
설령, 관지기의 음성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터였다.
인간은 인간.
그리고 드라칸은 드라칸인 법이다.
그들이 마찰이 아닌 대화로서 상황을 풀어내는 것 따위의 결과는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바로 인류가 드라칸을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것들은 명백한 지성체였으므로.
인간의 장점을 체득하고, 습득하며, 끝내는 그 이상의 강함을 손에 넣는.
마르스 공작은 놈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때 전장에서 사라진 이후로 어딜 사라졌나 했더니, 설마 저 자식도 초군체에 속한 놈일 줄이야. 아주 제대로 지뢰를 밟았군.]
그의 음성에 서린 것.
그것은 명백한 경계심인 동시에 긴장감이었다.
비록 마르스 공작이 현 각성자들 중에서는 젊은 세대에 속하는 만큼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어도 그 또한 각성자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긴장한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지금 등장한 상대는 그만큼의 고 위험성을 지닌 개체였다.
좀 더 정확히는, 놈의 능력이 말이다.
마르스 공작은 전방의 놈을 가만히 주시한 상태 그대로 입을 열었다.
[…라피스.]
“말씀하시죠.”
[놈의 양 옆을 봐라. 무언가 관 같은 게 보이지?]
그 말에, 라피스는 놈의 양옆을 살폈다.
관지기.
녀석의 좌우에는, 놈을 지키듯이 에워싼 두 개의 정체 모를 관(棺)과 같은 것들이 서 있었다.
그녀가 주시하는 모니터 화면에서도 또한 강한 적색 경고가 표시되어 있었다.
대량의 마력 에너지가 저 관 안에서부터 감지되고 있다.
뭔가 있다.
저 관과도 같은 것 안에 무언가 있었다. 시스템이 경고성을 발할 정도의 뭔가가 말이다.
라피스 또한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상에는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최소한 그녀는 이전에 녀석을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어도, 놈의 악명 정도는 익히 들어왔으니까 말이다.
“…바로 저거인 겁니까?”
[그래. 저게 놈의 능력이다.]
놈이 구태여 ‘관(棺)지기’라는 기이한 명칭으로서 불리는 이유.
그것은, 놈이 말 그대로의 능력을 가진 특이 개체이기 때문이었다.
[■■■■.]
그때 관지기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번에 통신 채널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고, 모든 파일럿들이 놈을 응시했다.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할 정도로 긴장을 한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무려 각성자들이.
[…….]
무거운 침묵 속에.
쿠웅!
이제껏 녀석을 호위하듯 지키고서 서 있던 두 관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을 목격한-.
“저, 건……?”
라피스의 안색이, 차가울 정도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서늘한 한기가 치밀 정도로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그때 에스메랄다 후작이 눈앞의 광경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어차피 관지기 본체의 능력은 그리 강하지 못해. 기껏해야 평범한 상위체 등급의 개체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이지.]
그럼에도 놈은 연합에서부터 최초로 네임드의 판정과 동시에, S급의 고위험도 개체임을 인정하는 지령이 내려졌다.
[그럼에도 녀석이 위험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 녀석은 이미 죽은 완전체들을 제 마음대로 조종한다.]
[…■■,■.]
[■■…….]
두 개의 관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두 완전체의 사체였다.
[오래전 우리들이 잡은 적 있던 놈들이로군. 왼쪽은 검은 상어. 오른쪽은 체스터다.]
하지만, 그것들은 삐걱거리듯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이내 관을 비집고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에스메랄다 후작은 연신 좌우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나마 저번보다는 나아졌군. 일 년 전 저 관지기 녀석이 최초로 등장했을 때에는 무려 네 기나 되는 시체를 한꺼번에 이끌고서 나타났었는데 말이지.]
사실 지금에 와 드라칸들의 사체는 이제 그들이 사는 태양계 어디에서나 쉽사리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죽어나가고 있을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 탓에, 전투 직후 몇몇 다급한 상황에서 완전체의 사체를 처리하지 못하고서 분실한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놈은 그것들을 다시금 되살린 채로 등장했다.
충격적인 일화였다.
그때 이후로 연합에서 반드시 지키는 몇 가지의 지령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쓰러트린 모든 완전체의 사체를 철저하게 파손하여 완전 분쇄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설령 전투가 한창이라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조차도 말이다.
그 덕분인지, 지금 관지기가 데리고서 나온 개체는 기껏해야 둘 뿐이었으나.
여전히 상황이 불리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통상적으로, 완전체 하나를 상대하는 데에 투입되는 전력은 각성자 둘이었다.
당연히 지금 그들의 수로는 셈이 걸맞지 않았다.
실제로 저번의 전투에서도.
무려 넷이나 되는 놈들이 한꺼번에 나타났었을 때 그들은 각성자의 힘으로 놈들을 타격하는 대신 대범위 포격을 가해 지역 자체를 날려 버리는 것으로 상황을 해결했었다.
“반대편으로 진입했을 클론 분대로의 지원 요청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던 라피스는.
이내 자신들과 그들 간의 거리 차이를 떠올리곤, 스스로 대답에 이르렀다.
“어렵겠군요.”
[후. 그래.]
에스메랄다 후작은 잔뜩 경직된 얼굴을 한 라피스를 돌아보더니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 정도의 상황쯤은 다들 예상하고 온 게 아니었나? 여긴 놈들의 심장부잖나.]
하지만 그녀의 말에 응답하는 이는 없었다.
라피스도, 그리고 마르스 공작도.
평상시 마르스 공작이 능글맞게 말대답을 한다는 것을 떠올려 볼 때에, 그가 얼마나 크게 긴장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들이 오래도록 시간을 소요할만한 여유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이 넘는 상위체와 전투체 드라칸들에 의하여 함대는 계속해서 격추당하고 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그들 쪽이었다.
결국, 여기까지 그들이 직접 진입한 것도, 모두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구태여 가장 소중한 전력인 각성자들을 이런 적진의 가장 깊숙한 지점인 사지에까지 내몰지 않았을 터다.
에스메랄다 후작은 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마저 피식 너털웃음을 흘렸다.
[다들 그렇게 굳어 있지들 말라고.]
“그렇게 말씀하셔도…….”
[시간에 여유가 없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방법은 있지.]
그녀는 말했다.
[마르스 공작. 그리고 라피스 소위. 가라.]
“예?”
들려오는 난데없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라피스는 반문하고 말았다.
그녀는 모니터 화면 속의 상대를 향하여, 놀라서 순간 고개를 돌렸다.
“지금 뭐라고…….”
[가라. 두 번 말하지는 않겠다.]
여기서 어차피 이렇게 붙들려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여기서 쩔쩔매고 있다간, 전원이 맡은 바 임무에 실패할 것임은 불 보듯 뻔했다.
에스메랄다 후작의 의지는 강렬했다.
그런 그녀의 기색을 느꼈던 마르스 공작은, 딱 한 마디만을 했다.
[후작, 여기서 죽지는 마십쇼.]
[내가 죽을 사람으로 보이나?]
마르스 공작이 탑승한 적색 기체. 리제네레이터가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자. 따라와라, 라피스 소위.]
[■■■■]
그대로 이곳을 지나쳐 나아가려는 그들의 앞을, 관지기와 두 완전체가 나섰다.
이유는 명백해 보였다.
진입을 막아서기 위함이었다.
[네놈들의 상대는 나다.]
하지만, 이미 말했던 대로 에스메랄다 후작의 녹색 기체, 마그나레이터가 놈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
대번에 격분한 두 완전체.
놈들의 안광이 새파란 마력을 줄기줄기 뿜어내더니, 순간 화살처럼 쏘아졌다.
그 순간 에스메랄다 후작의 기가스가 쌍검을 뽑아 들며 휘둘렀다.
콰과곽!
서로가 맞부딪히며 강렬한 마찰광이 번뜩였다.
가까스로 놈들의 공격을 틀어막은 에스메랄다 후작이 소리쳤다.
[가라!]
안간힘을 다해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그녀를 향해, 지나쳐가는 라피스가 말을 남겼다.
“다시 꼭 돌아올게요. 그때까지 버티셔야 해요!”
그 말에 에스메랄다 후작이 웃었다.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소위.]
* * *
“하아. 하아.”
에스메랄다 후작.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조종석의 곳곳에는 그녀가 흘린 핏자국이 흥건했다.
불과 수 분 전까지만 하도 찰랑거렸던 그녀의 자랑이던 녹빛 머리칼은, 지금에 와선 땀에 절어 뭉쳐 있었다.
그녀는 유리 엘 바이어스 후작과 더불어 쌍성(雙星)으로 불리던 가장 오래된 각성자이기도 했다.
보증된 실력자이자, 동시에 연합의 가장 큰 두 전력 중 하나였던 그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데에 급급했다.
[■■■■!]
콰앙!
강한 기세와 함께 양쪽에서부터 달려드는 두 완전체의 공격을 가까스로 흘려내며, 조종석 내부의 치솟는 압력에 다시 한번 피를 토해냈다.
“컥!”
상황은 버거웠다.
놈들은 자신들을 상대로 착실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비록, 이미 숨이 멎은 개체들이라서 그런지 본래의 전력을 모두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완전체임은 분명한 만큼 그 강함은 진짜였다.
오로지 그녀 혼자만이 이곳에서 상대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스윽.
에스메랄다 후작은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내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나 혼자서 이놈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에스메랄다 후작은 놈들과의 전력 차를 객관적으로 놓고서 비교해 보았다.
자신과 놈들.
그들 사이에 있을 압도적인 전력 차를 말이다.
애당초 이긴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터였다.
물론 버티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렵겠지.
얼마나 가능할까.
한 시간? 삼십 분?
아니, 천만에.
길어야 십여 분 조금 남짓한 정도나 버티면 다행일 터였다.
저것들은 무자비한 괴수들이었으니까.
본래라면 계산상으로는 각성자 넷이 모여야만 상대가 가능할 그런 괴물 놈들이었다.
사실상 인간의 힘으로는 무리인 상대.
무려 함대 차원의 막대한 에너지 포격을 쏟아부어야 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실제로 불과 오 분도 넘기지 못한 듯한데 벌써 진이 다 빠질 정도다.
[하하.]
하지만 그럼에도 에스메랄다 후작은 소리 내어 웃었다.
최소한, 그녀가 태어난 이래 이렇게 어려운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설령 에스메랄다 자신이 죽더라도, 여기서 그녀는 저들이 임무를 마칠 때까지 죽어도 죽으면 안 되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것들은 금세 다른 둘을 뒤쫓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주륵.
그녀는 입에서부터 피를 울컥, 물처럼 쏟아내며 중얼거렸다.
[최소한, 여기서 네놈들을 막는 것만큼은 해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