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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76화 (176/200)

176화. 추락하는 별(1)

유성의 분대가 중앙에 위치한 분화구 통로에 진입한 시각.

한편, 그와 같은 동시간 대에 측면부의 통로 쪽으로 진입한 또 다른 전력이 있었다.

[■■■■!!]

[■■■-!]

통로의 사방을 가득 메우고서 달려드는 십여 마리의 드라칸들.

무려 하나도 빠짐없이 전투체 등급이었던 만큼, 놈들의 기세는 상당히 매서웠다.

다만, 죽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콰-지직!!

통로의 저편에서부터 난데없이 등장한 ‘거대한 검’.

그것은 등장하자마자 드라칸 전부를 모조리 으깨어 버렸다.

뭐라 할 것도 없이, 통로를 일직선으로 화살처럼 지나치며 죄다 썰어버렸다.

하지만 그 사나운 기세와는 별개로.

돌연, 그 거검(巨劍)은 전조조차도 없이 제자리에 우뚝 섰다.

마치 조금의 관성이나 무엇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곧이어 거검이 지나쳐간 통로의 저편에서부터 일련의 기가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체 중, 가장 앞서 있던 기가스 쪽에서부터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마어마하군. 그 일격 한 번에 여기 있던 놈들이 모조리 쓸려나가 버린 건가?]

[그럴 수밖에. 검의 크기가 크기니까. 굳이 귀찮게 싸울 필요조차 없이 죄다 한 번에 쓸어버리면 그만일 뿐이지.]

그들의 말처럼, 실제로도 검의 크기는 무식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거대했다.

실제로, 무려 이 검의 길이는 직경만 하더라도 족히 일백여 미터에 달할 정도였으니까.

고오오오-.

오로지 단 한 명을 위하여 제작된 전용 무장.

거검 아스타로트 블레이드.

무려 완전체 셋의 핵을 각각 갈아 넣어 완성시킨 그것은.

우습게도 도시 하나를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략 무기나 다름이 없었다.

단지 기동, 그 하나만으로도 여타 파일럿들에게는 버거울 그 대량의 에너지를 머금은 무구.

이것을 온전히 다룰 만한 파일럿은 오로지 한 명밖에 없었다.

유리의 피를 이어받아, 현 세대에 태어난 새로운 마나 사용자 중의 결정체.

[라피스 소위, 길을 뚫어 주는 것을 부탁하겠다.]

“알겠습니다, 마르스 공작님.”

콰드-득!

거검은 손에 쥐고 있지 않음에도 마치 무형의 의지라도 지닌 듯이 그녀의 의식을 따라 휘둘러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들고서 휘두르는 듯한 그 동작과 함께.

통로의 벽면이 통째로 으스러졌다.

주변의 모든 드라칸들이 육편 쪼가리가 되어 튕겨 나가고, 벽면이 꿰뚫리면서 새로운 통로가 나타났다.

진동이 찌르르, 대기 중을 타고서 울릴 정도로 막대한 파괴 행각이었다.

[하하. 어마어마하군.]

지켜보고 있던 적색의 기가스.

마르스 공작의 허탈한 웃음 소리가 통신 채널을 타고서 흘러들었다.

[그 많던 상위체들을 단 일격에 모조리 끝장내버린 건가?]

[마르스 공작,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지 말도록. 여긴 전장이다.]

[알고 있습니다, 후작님. 저도 이미 나이가 일흔이요. 예전, 후작님이 머리나 쓰다듬던 시절의 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쉽게 흥분하는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저번에도 그러다 그 클론 녀석에게 당했었지?]

[하하! 거 참. 후작님도 당해놓고는.]

마르스 공작. 에스메랄다 후작. 그리고 라피스까지.

이렇게 셋이 유성의 분대와는 반대편에서부터 진입하여 심부에 투입된 또 다른 전력이었다.

얼마 전까지 전함 메타트론에서 대기하던 중요 전력이던 그들이었다.

이제껏 힘을 온존하며, 만전을 기하던 그들은 이번 전장에서 놈들의 핵을 파괴하는 역할을 맡았다.

“후우.”

라피스. 그녀는 차분한 심호흡을 했다.

거검, 아스타로트 블레이드를 휘두른 탓에 적잖은 심력을 소모한 탓이었다.

저 검은 단순히 크기만 커다란 무장 따위가 아니었다.

공간 그 자체를 진동시키는 물리력 그 이상의 효력을 지닌 것이었기에 사실상 제아무리 강력한 방어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조리 무용지물로 만드는 초월적인 무장이라 할 수 있었다.

라피스가 저것을 다루기 위해선 분명 다른 이들에 비해 정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물론,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제껏 그녀는 몇 번이고 저것을 다뤄왔으니까.

그때 통신 채널을 타고서 일말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는 에스메랄다 후작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마르스 공작, 라피스 소위. 내가 먼저 진입하겠다. 뒤를 따르도록.]

[알겠습니다.]

음성이 울려 퍼진 직후.

에스메랄다 후작의 전용기, 녹색의 장갑을 한 기가스 마그나레이터가 저 아래쪽, 깊은 심부를 향해 진입하기 시작했다.

고오오-.

눈앞에 보이는 모니터 화면은 거칠기 그지없었으나, 정작 조종석의 내부는 그러한 소음들마저 거의 닿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거친 전장 속의 정적, 이라고 하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터였다.

“…….”

라피스의 시선이 모니터 화면에 표시된 동화율 방향으로 향했다.

[현재 동화율 수치 : 78퍼센트.]

[현재 동화율 수치 : 81퍼센트.]

[오차 수치 플러스마이너스 4퍼센트 미만입니다.]

‘80 언저리인가. 동화율 수치는 이만하면 순조로운 편이야.’

호흡이 조금 거칠어진 탓인지 약간 수치가 하락하기는 하였으나 어차피 이 정도는 충분히 감안했다.

거검 아스타로트 블레이드를 휘둘렀으면서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오히려 충분히 양호한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벌써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예전, 고작 양산체 등급의 드라칸 하나에조차 애를 먹던 생도 라피스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없었다.

있는 것은 이미 치열한 전투에 익숙해진 한 명의 군인뿐이다.

그녀는 거친 환경 끝에 어수룩함을 벗어던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라피스, 그녀의 뇌리에서는 여전히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는 지금도 누군가가 해 주었던 조언이 되살아나듯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기가스와의 동화는 언제나 의도적으로 정신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일정한 호흡, 일정한 정신의 율동이 중요하지.]

그것은 언젠가 유성이 스치듯 해 주었던 조언이다.

그 조언은 지금도 여전히 그녀에게 남아 몇 번이고 다시금 복기되고 있었다.

짧았지만, 우습게도 그 몇 마디의 조언들이야말로.

여전히 그녀가 이 위와 아래가 구분조차 되지 않는 전장에서의 혼란 속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래. 충분히 가능해.’

짧은 심호흡과 함께 숨을 가다듬은 라피스는 아크 드레드노트를 조종하는 데에 다시금 정신을 집중했다.

고오오오-.

조종간을 타고서 기체의 떨림이 느껴진다.

비교적 얌전한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체인 탓에 그 진동이 나름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전략 적성 병기. 아크 드레드노트 G-02.

대함, 대 요새용을 목적으로 지어진 그것은 거의 소형의 함선만큼이나 거대한 사이즈를 가진 초대형의 기가스였다.

막대한 자원량. 그리고 막대한 금액까지.

오로지 황족이 아니고선 결코 건조될 수 없었던 그것은, 이제 와선 라피스의 전용기로서 분명히 자리 잡았다.

기체의 체구는 보통의 기가스와는 격이 달랐다.

자연히 운용하는 데에 소비되는 마력의 자원 단위 또한 다른 기체들과는 수준부터가 달랐으나 이미 라피스는 이에 대해 적잖게 적응을 한 뒤였다.

하지만 라피스는 이내 그 잔류한 기억마저도 고개를 저어 떨쳐 버리고는, 오로지 전방의 모니터 화면만을 주시했다.

‘집중해, 라피스. 아직 임무 중이야. 잡생각은 방해다.’

저 앞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곳은 무려 초군체의 여왕이 머물 것이라 예상되는 놈들의 심처였다.

오로지 불안요소만이 가득하다.

그때 에스메랄다 후작의 음성이 다시금 무거운 음성 채널에 울렸다.

[1킬로미터 진입 중. 다들, 경계를 늦추지 마라.]

고오오오-.

열린 통로의 길목을 따라.

깊숙한 심부를 향해 진입하는 그들의 시야는 갈수록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기가스에서부터 밝혀진 불빛이 주변 통로를 비추고는 있었으나, 통로의 크기가 워낙에 넓은 탓인지 주변의 어둠을 모두 밝힐 정도로 밝지는 못했다.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온다 한들 이상할 게 없었다.

세 기의 기가스 분대.

그리고 그곳에 탑승한 세 명의 파일럿들은 어느새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쉼 없이 주변을 경계했다.

제아무리 마력의 흐름에 민감한 각성자가 둘이라고 할지라도, 여긴 놈들의 심처였다.

완전체가 몇이나 될지 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어느 정도 추측은 하고 있을지언정 완벽하게 측정조차도 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개중의 일부는 각성자들에게서 마력의 흐름마저도 감춘 채로 은밀하게 행동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확실시된 지금.

방심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때, 돌연 전방을 주시하던 에스메랄다 후작이 멈춰 섰다.

[…잠깐.]

채널을 타고서 울리는 그녀의 음성에.

둘이 타고 있던 기가스들이 천천히 멈춰 섰다.

칠흑같이 어두운 통로의 저편.

그 너머에, 일단의 형체가 다수 엿보였다.

마치 관처럼 보이는 것들을 나열한 채.

그것들의 앞에 조용히 선 그 녀석은.

마치 기가스를 흉내 내기라도 한 것처럼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한 마르스 공작이 드물게 감정의 동요를 드러냈다.

[돌겠군. 설마 저 자식도 초군체 무리 중 하나였나?]

“왜……. 그러시는 겁니까?”

무거운 기류.

에스메랄다 후작이나 마르스 공작,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않음에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한 라피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르스 공작이 긴장한 티를 역력히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아. 너는 모르는 게 당연한 건가. 당시 너는 놈과 맞선 적이 없었으니까. 저 녀석이……. 바로 그 ‘관지기’라는 이름을 받은 자식이다.]

그 말에, 라피스의 눈이 크게 치켜뜨였다.

“관지기요?”

[그래. 정말 욕 나오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개체명, 관지기(棺知己).

그것은 무려 네임드(Named)의 판정을 최초로 받아낸 개체였다.

라피스 또한 놈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다.

관지기.

녀석은 무려 연합의 모든 전력을 쏟아붓고서도 끝내 미처 쓰러트리지 못한 터무니없는 강함을 보유한 특수 개체였다.

모든 전력.

그 말인즉슨 간단했다.

각성자 전원이 전력으로서 투입되었음에도 당해내지 못했다는 소리였으니까 말이다.

처치 곤란에 혹여나 전장에서 마주친다면 즉시 회피를 권고하기까지 연합 전체에 지령으로서 내려지기까지 한 상대.

녀석은 S랭크의 초고위험도 판정을 받은 특수 개체로서 분류 받은 완전체였다.

놈이 한낱 완전체임에도 그토록 위험한 상대임은 크게 대단한 게 아니었다.

녀석 본연의 능력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신체 능력이나 마력 용량은, 여타 다른 완전체들에 비한다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연약하니까.

다만, 그 부가적인 능력이 터무니없을 뿐이었다.

그래, 놈은-.

관(棺)지기다.

이미 죽어, 숨이 완전히 멎어버린 다른 완전체들을 인형처럼 움직이며 전투말로 쓰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관지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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