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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72화 (172/200)

172화. 초군체(5)

“초군체인가.”

블레이드의 낮은 중얼거림에 동의라도 하듯.

유성은 블레이드와 마주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최근 들어 기묘함을 보이기 시작한 새로운 드라칸의 무리라고 한다면, 생각날 만한 대상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바로 초군체 말이다.

각지에서 서로 다른 여왕체를 따르던 그 녀석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연합을 하기 시작한 그 전례가 없는 기이한 행태만큼은.

이제 와선 구 연합과 신 연합,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알았다.

그것은 물론 이곳, 빌객스의 해적선단의 이들마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난 수 개월 동안 놈들을 이골이 날 정도로 상대해오며 초군체가 어떠한 것들인지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나마 판단을 내렸다.

초군체.

놈들은 여러 세력들이 무엇인가를 기점으로 한데 뭉친 하나의 무리다.

“아마도 연합에 또 무슨 문제라도 생긴 모양이지?”

블레이드가 입가에 조소를 머금은 채로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는 유성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소유자였다.

유성 그가 무언가를 눈치 차렸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대로 블레이드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연합이 사실상의 무허가 괴뢰 단체나 마찬가지인 해적 따위를 상대로 연락을 요청한다는 것은.

분명 나름대로 바라는 바가 있어서라고 손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마도.

연합의 선에서는 홀로 처리하지 못하는 ‘어떠한 경우’ 때문인 것일 터였다.

그들은 빌객스가 이끄는 해적 선단이 현재 넘버즈가 함께한다는 사실을 이미 확신하고 있다. 두 개의 세력이 한데 힘을 합쳤기에 지금 그들은 연합 이상 가는 전력을 지닌 정예 집단이기도 했다.

‘거기에 신 연합 측에서는 아마 넘버즈의 정체가 소장을 죽이고서 도주한 클론들인 것마저 예상하고 있을 터.’

난데없이 완전체를 상대할만한 다수의 전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결국 기존의 전력이 자리를 옮겼다는 게 더 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어느 쪽에서도 그러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꺼내 들지 않는 것은 더욱 큰 현실적인 문제가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서였다.

드라칸에게 인간은 모두가 똑같다.

놈들에게 있어 인간이란 그저 죽이고 잡아먹을 자원으로만 보일 뿐이다. 중립 따윈 있을 수가 없다.

세력이 다르다고 해서 다르게 대우해주길 괴수에게 바라는 것은 무지몽매한 어리석음이었다.

유성이 입을 열었다.

“초군체의 여왕으로 보이는 개체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여왕이라고?”

처음으로 블레이드의 표정이 기색을 드러냈다.

그 소리만큼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기에.

옆에 있던 아서마저도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릴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기도 했다.

“아직 녀석의 정체가 뭔지는 제대로 전해 받지는 못했지만…. 지금, 놈들이 이 지상을 벗어나 우주권으로 움직이고 있다는군.”

“하. 이제는 본격적으로 세력이라도 넓히겠다는 건가? 이곳 행성 테라 정도에 안주하지 않고?”

블레이드는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입가에 한껏 비소를 드리웠다.

“꼴 좋군. 어쩌면 인류가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르겠어.”

“그게 재밌기라도 한 건가? 거기에는 너도 포함되어 있을 텐데.”

“미안하지만 내 관점에선 인간이란 그 소장과 죄다 똑같이 죽일 놈들로 보일 뿐이다. 나나 형제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이것들이 모두 멸망한다고, 내가 아쉬워할 이유는 없어. 오히려 좋아해도 모자랄 게 없을 정도이지.”

역시 이놈은 위험하다.

유성은 놈이 서슴없이 내뱉는 위험한 사상의 일부를 엿보았다.

블레이드, 녀석이 가진 사상의 저변에는 이런 생각들이 깔려 있었다.

유성처럼 신중한 듯 보이지만 은연중에 저돌적이고.

위험한 사상이 충만하며, 인류 자체를 경멸한다.

아마도 그는 이에 대한 이유를 내심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자아의 확립이 이뤄지던 시절 소장이 이끈 부정적인 사고가 깊숙이 자리한 탓인 듯했다.

‘역시 믿을 수가 없는 놈이다. 이 녀석은 같은 인간을 증오하고 경멸해.’

당장에야 필요성 때문에라도 함께 하고 있었지만.

유성은 녀석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위험한 사상에 찌들어있는 놈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이 이제껏 대체 무슨 수로 다른 형제자매들의 격인 클론들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요즘 들어 블레이드는 그 태도에 섞인 위험한 사상을 감출 생각조차도 없어 보이는 듯했다.

유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혈청을 맞을 때마다 폭주의 위험을 떠안는 아서보다도 더욱 위험한 놈이 바로 블레이드였다.

녀석은 날이 갈수록 더욱 기세등등해지고 있다. 게다가 그 생각을 실현시킬 만한 충분한 힘마저도 가진 녀석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각성자들마저도 애를 먹일 정도의 실력자가 바로 블레이드였다.

‘분명 처음에 만날 당시에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녀석은 아니었었는데. 무언가 심경의 변화라도 일으킬 만한 자극적인 요소라도 있었던 건가?’

의심이 가는 구석은 많았다.

소장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 임의로 만들어내기 시작한 혈청의 투약. 연이은 전투로 인한 정신적인 피로함의 고난까지.

하지만 다른 클론들은 오히려 날이 갈수록 심경이 안정되고 있다는 게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같은 클론들이라면, 블레이드 또한 날카로운 기세가 가라앉아야만 정상이었다.

‘알 수가 없군.’

이내 의문을 뒤로 한 채.

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일 건가?”

그런 그의 움직임에 블레이드가 물었다.

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휴식이 먼저다. 세 시간 후에 만나자.”

“그러도록 하지.”

유성이 먼저 자리를 비운 뒤.

“…….”

한동안 그가 사라진 문을 가만히 응시하던 블레이드는 생각했다.

‘유성. 네가 내 위험성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처우를 고민하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유성이 한 번 저러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이상.

지금의 이 미묘한 흐름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거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에 일기 시작하는 심경에 변화쯤은, 블레이드 그 자신조차도 명백하게 느끼고 있을 정도로 확연한 종류의 것이었다.

이전의 그가 신중하며 내면의 감정을 확실하게 다스릴 줄 알았던 이였다고 한다면.

불과 반년이라는 짧은 시간 사이에 완전히 그 성정이 뒤바뀌었다 해도 될 정도로 역변했다.

이미 형제들 사이에서도 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이들이 여럿 나타난 마당이었다.

하지만 블레이드는 이 불온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선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이유는 내면에서부터 드리우기 시작한 초조함 때문인가.’

특히나 그 같은 현상은 유성에게서부터 전함 메타트론에 관한 내용을 듣고서부터 더더욱 확연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곳에 있을 상대에 대한 집착이 더욱 심해진 것이었다.

꽈득 움켜쥔 주먹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힘이 들어간 것을 인지한 모양인지.

옆에 있던 아서가 그를 향해 의아한 듯 물어왔다.

“블레이드,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블레이드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갈무리했다.

아직, 상하관계는 확고하다.

명백하게 유성이 윗줄의 상관이었다. 무력으로든, 그게 아니라 무엇이든.

최소한 적절한 시기가 오기 전까지.

그는 자신을 자제할 필요성이 있었다.

* * *

그로부터 세 시간이 지난 뒤.

다수의 기가스가 배치된 격납고에서 그들은 다시금 만났다.

“왔군, 블레이드. 그리고 아서도.”

“그래.”

유성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친 뒤였다.

그는 당장에라도 출격할 듯 파일럿 복장을 착용했다.

그러한 유성의 옆에는 나란히 선 이곳 선단의 주인이 있었다. 그녀, 빌객스였다.

그녀 또한 함께 나서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블레이드가 물었다.

“그녀도 우리와 함께 나서는 건가?”

유성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을 만나러 갈 거야. 최소한, 연합과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 만큼 빌객스를 데리고 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겠지.”

“그렇군.”

유성은 머리 위로 헬멧을 덮어쓰며 말했다.

“슬슬 시간이다. 움직이도록 하지.”

* * *

쿠오오오-.

새파란 대기 중의 하늘.

끝도 없는 아래의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듯 떨어져 내리는 4개의 유성과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새빨간 화염에 휩싸인 채 추락하는 그것은, 다름 아닌 편대를 이룬 기가스 분대였다.

그들이 이내 지상으로부터 불과 수 킬로미터 위의 대기층에까지 진입하자.

그제야 서서히 그들의 기체를 감싸고 있던 열기의 기세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장갑에 머금어져 있던 열기는 차가운 대기층의 공기와 만나 금세 식혀졌다.

이전의 세대들과는 다르게, 이번 세대의 기가스들은 열기에 버티는 능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대기층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며 상층과 하층을 넘나드는 일이 늘어났기에.

필요성에 의해 의도적으로 강화한 부분이었다.

[대기권 진입 완료. 속도를 늦추겠다.]

그러한 기가스 분대의 가장 앞에 서 있던 유성은 거칠게 떨려오는 조종간을 붙잡았다.

강하하는 기체의 떨림이 조종간을 타고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유성은 통신 채널을 켜고, 자신의 분대원에게 말했다.

“잠시 후 연합과의 대면 지점에 도달한다. 전원, 내 허락이 없이는 채널에 끼어들지 말도록.”

[알겠다.]

[알겠다.]

선단의 주인은 빌객스였으나, 어디까지나 이번 대면에서 그녀가 크게 힘을 작용할 부분은 없었다.

그녀는 이러한 상황에 크게 익숙지 못했다.

때문에 나설 이는 유성 그만이 유일했다.

고오오오-.

편대를 이루고 예정된 지점으로 향한 그들의 앞에.

곧 거대한 전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함, 메타트론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전함의 존재를 확인하며, 블레이드가 말을 건네왔다.

[이번에 모든 오해의 소지를 풀어야 한다. 가능한가, 대장?]

“안 되더라도 시도해 봐야겠지.”

유성은 어쩌면 이번이야말로 처음이자 마지막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을 놓친다면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번이 기회다. 가능한 불필요한 오해들을 모두 해결해야만 해.’

현재 연합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라피스.’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전방의 모니터 화면을 주시했다.

하지만 그 뒷면에는 그 나름대로의 복잡한 심경이 존재했다.

아직까지도 그는 자신에게 깃든 오해를 풀지 못했다.

그럴 기회도 없었거니와 드라칸들로 인해 연일 시름을 겪는 연합에게 있어 그는 그저 또 다른 잠재적 적대 세력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고오오오.

전함 메타트론.

그곳에는 무장한 다수의 전력이 함께 하고 있었다.

몇몇 준중형의 전함들과 십여 기 이상의 기가스들이 보였다.

유성은 갑판 위에 선 작은 인영, 유리 엘 바이어스 후작 또한 발견했다. 역시나, 그녀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웅-.

그때 화면에 전함 메타트론에서부터의 통신 요청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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