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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71화 (171/200)

171화. 초군체(4)

해적선의 통제실.

그곳에는 머리칼이 유난히 긴 거친 인상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

힐끗 유성을 응시한 그는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여긴 왜 온 겁니까?”

“이봐, 봄버. 말조심해. 유성은 내 상관이라고.”

봄버. 그는 이 해적 선단의 부두목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빌객스의 보좌관이기도 했다.

빌객스가 곧장 지적하자, 그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놈이 당신의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는 오히려 대놓고 불만을 표출했다.

“이런 제기랄, 빌객스. 내가 따르는 건 어디까지나 당신이지 여기 이 남자가 아닙니다.”

보좌관 봄버는 지난 수십 년간 늘상 해적 선단의 이인자로서 자리매김한 인물이었다.

그는 빌객스가 자리를 비운 십수 년 동안에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켜왔다.

만약 그가 하고자 했다면, 진작 선단은 모조리 그의 것이 되었을 터였다.

빌객스가 감옥에 갇혀 있었던 시간은 족히 하나의 세대가 나고 성장할 만큼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봄버가 그러하지 않았던 것은.

그에게 있어 빌객스란 이름이 지니는 가치가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해적이란 건 시대가 어느 때라고 할지라도 그 의의가 비슷하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했다.

그들은 정부의 허가 하에 움직이는 정식적인 세력이 아닌 오로지 자신들의 이득과 의의를 위한 철저한 무허가 집단이었다.

비록 상황이 상황인지라 최근 들어서는 연합의 아래에 고용되어 오래도록 발이 묶여 있다곤 하나 그것의 의미는 여전히 동일했다.

저마다의 이해득실을 가지고 모인 이곳 해적 선단에서, 봄버에게는 그것이 빌객스라는 인간 하나가 목적이자 방향성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와는 다르지만 비슷하게.

빌객스가 구태여 이런 자유분방한 인간들을 한데 끌어모아 하나의 집단을 형성한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알파가 빌객스 그녀에게 점지했던 말이 있었다.

[아그네스. 너는 언젠가 반드시 네가 원하는 그 날에 도달할 거야.]

빌객스는 오로지 알파가 남겼던 예언 하나만을 위하여 이 같은 단체를 유지했다.

그녀에게 해적들은 거쳐가는 과정의 일부에 불과한 것, 단지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봄버, 너….”

하지만 빌객스가 그의 불온한 태도를 채 지적하기도 전에.

나선 것은 이 대화에 마찰을 이끌어낸 유성 그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유성의 말에.

빌객스는 물론이고 봄버의 불만 가득한 시선마저도 그를 향했다.

“그래도 뭘 알기는 하는가 봅니다?”

“모를 수가 없지. 제아무리 내가 빌객스의 등에 얹혀 이곳에 왔다고는 한들, 결국 너에게 있어 나란 존재는 난데없이 나타나 우두머리의 자리를 위협하는 거치적거릴 뿐인 존재일 테니까.”

외부인은 외부인일 뿐이다.

이곳의 이인자인 봄버가 이 같은 불만을 표출하는 데에는 분명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에게 있어 유성이란 존재는 그저 하루아침에 뜬금없이 등장한 불청객에 불과할 뿐이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을 좋아할 인간은 없었다.

제아무리 유성과 그의 분대원들, 넘버즈의 가치가 뛰어나다고 한들.

그것과는 별개의 이유였다.

“하지만.”

유성은 여전히 차분한 음성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빌객스는 나를 더 중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 아마 너와 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면 녀석은 주저 없이 날 택할 거다.”

그는 이 같은 불필요한 분쟁으로 그러잖아도 부족한 시간을 할애할 생각 따윈 없었다.

체제가 다른 세상에서는 그 체제를 따라야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봄버의 생각대로, 여긴 빌객스가 주인으로서 자리매김한 세상이다.

여긴 극단적인 주의가 만연하는 해적 선단이었다.

그들은 충분히 호전적이고, 무엇보다도 대화로 상황을 풀어가기보단 총칼을 휘두르는 데에 더 익숙한 거친 자들이었다.

다만 이곳의 주인이 유성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유성이 별다른 마찰조차 없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할 뿐이었다.

“끙….”

봄버는 불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차마 아니라는 반박 따위를 하지는 못했다. 만약 그러했다면, 이미 빌객스가 먼저 유성을 내보냈을 테니까 말이다.

그도 눈치는 있었다.

빌객스가 유성을 바라볼 때 보이는 눈빛은 자신이나 다른 동료들을 바라볼 때와는 다르다는 것 정도는.

다만 유성은, 그 한없는 호의를 적당한 선에서 이용할 줄 아는 것뿐이다.

까드득.

봄버는 소리가 나게 이를 갈았다.

‘족히 일백 년을 넘도록 살아온 보스가 상관으로 모시는 저 남자는 정말 뭐하는 인간인 건지.’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을 살아온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봄버 그는 생각했다.

비록 겉모습은 저런 식으로 새파랗게 어려 보일지라도 말이다.

실제로 드라칸이라는 이름의 괴물 놈들을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능수능란하게 상대하는 저 괴물 이상 가는 강함은, 최소한 정상적인 축의 경계는 진작에 넘어섰다.

그에 대한 의심을 더더욱 짙게 드리우게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두려움의 결정체나 다름없었던 그녀, 빌객스조차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유성은 언제고 마음만 먹는다면 홀로 이 선단 전체를 파멸로 이끌 힘이 있었다.

그 기이할 정도의 강함이.

역설적으로 봄버 그에게 유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게 한 것이었다.

결국 이 불편한 자리를 참아내지 못한 봄버가 홱 몸을 돌렸다.

“이 자리에 더 있기조차 싫군. 난 먼저 가보도록 하죠, 둘이 마음대로 하십쇼.”

기잉-.

전자음과 함께 열리는 문을 그가 나섰다.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춘 그 모습에, 빌객스가 멋쩍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 대장.”

“봄버의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니까. 저렇게 경계하는 것도 당연한 거지.”

그 거친 성향을 가진 해적치고 저 정도의 성질머리면 양호한 편이었다.

적어도 봄버는 나름대로 그 자신을 절제할 줄 알았다.

아마 그는 뻗친 성질머리를 다시금 잠재우고서야 다시금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이미 몇 번이나 보아왔던 모습이다. 물건 몇 개 정도는 집어던지기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보다 전함 메타트론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고 싶은데. 혹시 위치라도 잡힌 게 있었나?”

유성의 물음에.

빌객스는 모니터 화면 앞에 앉아있던 부하들을 향해 물었다.

“어때, 얘들아?”

“수 시간 전 즈음에 남반구 쪽에서부터 관측되었다고 합니다.”

* * *

“심호흡해라, 아서.”

“후우.”

치익.

완전체 드라칸의 핵. 그 기운을 소량 희석하여 정제해낸 혈청.

블레이드가 아서의 걷어낸 팔목에 그것을 투약하자, 대번에 그의 두 눈이 푸르게 번뜩였다.

혈청에 들어있던 마력이 그의 육체에 스며들자 대번에 마력이 스멀스멀 일어서기 시작했다.

블레이드가 말했다.

“흥분을 가라앉혀라, 아서.”

“나도 알고 있… 큭!”

이를 악다문 아서의 안광이 푸른 빛을 뿜어내고 꺼지길 반복했다.

불안정한 기류를 고스란히 말해주기라도 하듯, 그의 주변에 존재하던 대기가 조금씩 밀려 나갔다.

하지만 아서는 가까스로 불안정함을 억누르듯 참아냈다.

여긴 전함의 내부다. 지상이 아니었다.

지면과 흙이 존재하던 행성의 지상에서야 설령 기운이 불안정하다 할지라도 내뿜으면 그만이었지만 여기선 그러면 안 되었다.

당장 이 전함의 바깥은 새카만 우주가 엿보이는 대기의 상층이었다.

물론 상당한 내구성을 지닌 물질로 건조된 전함이 고작 마력 폭풍에 휘말린다고 훼손될 거라 보기는 어려웠지만.

하지만 그들은 그저 그런 수준의 마나 사용자들 따위가 아니었다.

하고자 한다면, 공간마저도 가르는 게 가능한 이들이었다.

혈청의 투약 과정은 클론들 모두가 힘겹기 그지없다.

그것은 블레이드에게도 또한 해당하는 것이었다.

육체에 본래 없던 활기를 강제로 주입시키는 과정이었다.

서서히 꺼져가던 배터리의 용량이 갑작스럽게 한계치까지 아슬아슬할 정도로 확 차오르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것을 스스로의 몸으로 온전히 받아내기 위해선 안정감을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이 투약 과정이 아서 그만큼은 다른 클론들보다도 유난히도 불안정했다.

버거울 정도였다.

아서가 가진 본질적인 성질 탓이다.

하지만 곧, 서서히 거친 기운을 잠재운 모양인지 아서의 안광이 서서히 꺼트려졌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서의 모습을 바라보며.

블레이드는 생각했다.

‘생각 이상으로 혈청의 효과가 강하다. 아서가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만큼.’

이전에 소장이 내어주던 수준의 것과는 불안정함을 억누르는 강도의 수준이 달랐다.

자칫하다간, 터져도 이상할 게 없을 수준에 달할 만큼이나 말이다.

다만 이때까지는 그 위험한 과정을 일부나마 블레이드가 옆에서부터 보조해왔기에 그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기잉-.

그때, 돌연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다 끝났나? 문 너머에까지 마력이 날뛰는 기세가 느껴지던데.”

유성은 근방의 대기 중에 퍼트려진 마력을 그대로 손을 쥐어 붙잡으며 말했다.

일부의 푸른 마력들이 형체가 보일 정도로 유형화되더니 그대로 그의 신체로 흡수되었다.

유성의 태연한 등장에, 블레이드가 말했다.

“조금 늦었군. 오늘은 아서가 혈청을 맞을 날임을 알고 있었을 텐데.”

“나름대로 서둘러서 온 거야. 그렇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유성의 말에.

그가 눈을 빛냈다.

“전함 메타트론 말인가?”

“그래.”

유성은 털썩,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힐끗 옆의 아서를 보았다.

“하아, 하아.”

녀석은 채 유성에게 시선을 향할 여유도 없는 듯 보였다.

그저 식은땀만을 흘린 채로 있을 뿐이었다.

이제 빌객스의 선단 안에는, 그들 넘버즈들 또한 함께하고 있다.

비록 규모는 다른 어떠한 곳보다도 작지만 연합 어느 곳도 무시 못 할 힘이 한데 모여 있었다.

사람이 한데 모이면 그만큼 조직의 덩치는 커진다.

하지만 그에 비례하여 그만큼의 생각들이 한데 모이기 마련이다. 저마다의 이득과 손해가 서로 뒤섞이고, 마찰 또한 벌어진다.

유성은 블레이드의 동공 안에 서린 강렬한 무언의 열망을 읽었지만 무시하듯 흘려넘겼다.

적어도 그가 본격적인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아직까지는, 녀석의 가치와 효용성은 충분히 존재했다.

‘블레이드.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내게 이 녀석이 필요해. 나 혼자서 모든 드라칸들을 상대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한 손은 결코 여러 손을 막아낼 수 없는 법이다.

제아무리 유성이 강하다고 한들 그 혼자서는 각지에 속속 나타나고 있는 완전체들을 상대하기가 무리였다.

넘버즈들은 그를 위한 전력이었다.

물론 블레이드 또한 그의 생각쯤은 충분히 알 터였다.

서로가 서로의 이해와 득실을 위해 함께 하고 있는 셈이었다.

“연합에서부터 연락이 왔다.”

“어느 쪽이지? 구 연합인가?”

“그래. 그쪽. 달의 기지 쪽에서부터 기묘한 드라칸 무리의 행적을 발견했다고 하는군.”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아차린 블레이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초군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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