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초군체(3)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 하얀 상어.
콰드득!
놈의 가슴팍에서부터 에너지원의 역할을 하던 드라칸 핵을 손으로 잡아 뜯어내어 뽑아낸 순간.
[■■….]
녀석의 푸른 안광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숨통이 끊어져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얀 상어의 죽음을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든 유성이 입을 열었다.
“이제 이곳에서 물러선다.”
[알겠다.]
[알겠다.]
유성의 음성이 채널 내에 퍼져나감과 동시에.
그들이 탄 기가스들이 자리에서부터 떠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대기 중의 상공으로 떠오른 그들 다섯 기의 기가스들이, 쏘아지듯 움직였다.
쿠오오오.
금세 속도를 가속하여 하늘을 날아가기 시작한 그들은.
어느 누가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대열을 맞추었다.
이미 몇 번이고 전투로의 투입은 있어왔던 그들이었다.
익숙해질 만큼의 시간이라면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치직-.
그때, 통신 채널로 익숙한 한 명의 얼굴이 내비쳤다.
베타 분대의 분대장, 블레이드였다.
그는 미묘한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말을 건네왔다.
[유성 대장, 역시나 이번에도 금방이로군.]
“어려울 것은 없는 상대였으니까.”
유성은 조종간을 손에 쥔 채로.
눈을 감고서는 그렇게 답했다.
시야가 피로했다.
전투의 지속 시간과는 별개로, 완전체를 상대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피곤한 일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괴물인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그 자신 또한 일순간이나마 괴물이 되어야 했다.
단순히 실력이 뛰어나고서는 놈들을 상대할 수 없다.
놈들은 그렇게 되도록 ‘진화’ 한 괴물이었으니.
‘괴물을 잡기 위해선 나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야 하는 법이니.’
때문에 그 찰나의 일선을 벗어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이 세상 유일한 파일럿, 유성은.
일순간이나마 아슬아슬한 경계감을 느끼며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유지해야만 했다.
강제로 정신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그 단계를 유지하는 일은 분명 피로한 일이다.
하지만 유성 그는.
그 약간의 피로감조차 내색하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수적으로도 밀리지 않았던 데다 심지어 하나하나의 질 또한 우수했으니 말이지.”
[하하. 아니, 아니지.]
하지만 블레이드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는 반문했다.
[사실상 이번에도 거의 일대일로 맞붙었던 거였지 않나?]
“…….”
[그런 면에서 생각해본다면, 확실히 대장의 강함은 터무니없는 수준이긴 하군.]
유성은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기도 하거니와, 상대방이 다른 누구도 아닌 블레이드였기 때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녀석은 그로서도 경계해야 할 인물이었다.
방심을 하는 모습을 내보여 허튼 생각을 할 만한 구석은 내비치지 말아야 했다.
시선을 돌린 유성은 정면의 모니터 화면으로 눈길을 향했다.
그가 타고 있는 대장기 기체.
그 기가스의 손에 쥐어진 것은 다름 아닌 완전체인 하얀 상어의 드라칸 핵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이번 분량도 어찌어찌 채웠군.”
[하. 덕분에 말이지. 이번에도 우리 모두가 당분간 버틸 분량으로는 충분하겠어.]
“이 정도 마력 분량이라면 어느 정도나 버틸 수 있지?”
[글쎄. 대충 마력량을 환산하면 28만 테트라 정도이던데 그 정도라면 우리들이 이 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군.]
“생각보다 짧은데.”
[참으로 빌어먹을이 아닐 수 없지.]
블레이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이 초군체라는 무리의 놈들을 잡는 것으로 우리의 목숨이 유지가 될 수 있다니 말이야.]
프로젝트 블레이드 시리즈.
유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들 아홉 명의 클론들.
불과 수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로지 혈청만이 유일하게 생을 이어나갈 수단이었던 그들이다.
다만, 이전까지는 말이다.
현재에 와서는 그 기준이 조금 달라졌다.
어째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지금에 와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의 생존 수단이 생겨났다.
바로 지금 유성의 손에 들린 드라칸의 핵이 그것이었다.
“슬슬 광학미채(능동위장) 위장술을 발동해.”
[그러지.]
키이잉-!
그의 말과 거의 동시에.
대번에 그들이 타고 있던 기가스의 형체가 지워지듯 사라지기 시작한다.
물론 당연하게도.
사실, 정말로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 개발된 스텔스. 혹은 카모플라쥬(Camouflage)라 부르는 기술이 기체에 적용되기 시작한 탓이었다.
순식간에 대기 중의 푸른 하늘색과 거의 동일하게 색감을 뒤바꾼 그들의 장갑은, 주변과의 동화를 끝마쳤다.
전함으로부터의 색적 탐지 작용에도 자유로운 은밀한 기동 시스템이었기에.
그들이 행성 테라를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로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쿠오오오-!
그렇게 자신들의 모습을 감춘 그들은.
상공의 저편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이 상공의 저편으로 올라가는 모습은.
금세 하늘의 색감에 뒤섞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 * *
그리고 지상에서는.
“저게 바로.”
하얀 상어의 습격에 당해, 부서진 기가스에 타고 있던 연합 소속의 파일럿들은.
그저 굳은 표정으로 그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멀어지는 유성의 분대를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검은 악마들인가….”
넘버즈.
완전체를 불과 수 분 만에 도살할 정도로 대단한 정체불명의 파일럿들이 한데 모인 단체.
구 연합의 이들에게, 저들의 존재는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었다.
* * *
고오오오-.
행성, 테라의 푸른 대기가 내려다보이는 드높은 상층에 위치한 대기권.
시커먼 우주마저도 엿보이는.
행성과 우주의 그 중간층에, 일렁이는 듯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마치 물결이 치는 듯 투명한 색감이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그곳에 무언가가 있음은 분명했다.
[광학미채 위장술을 끄도록 하겠다.]
곧이어.
누군가의 통신과 함께, 그들의 모습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제껏 정체를 감추고 있던 그들은 다름 아닌 열 기의 기가스 분대였다.
유성을 위시한 넘버즈 분대가 차례로 대열을 맞추었다.
[갑판에 안착하도록 하겠다.]
키이잉.
유성과 그의 분대원들은 차례로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오로지 시커먼 우주뿐인 듯 보였던 그곳에 그들 분대가 진입함과 함께.
이제껏 투명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그것’ 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고오오-.
놀랍게도 그것은.
이제껏 어떻게 형태를 감추고 있었던지조차 의문일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전함이었다.
쿵! 쿠웅!
길게 이어진 활주로의 형태를 한 갑판 위에 차례로 안착한 넘버즈들이.
하나둘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전함의 내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 * *
“하아.”
유성은 땀에 젖은 머리칼을 흔들어 털어냈다.
중력의 작용을 거의 받지 않는 우주층에 진입해있는 탓인지, 땀방울은 방울져서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런 그의 앞으로, 넘버즈들이 다가왔다.
“대장. 우리들은 먼저 가서 쉬고 있겠다.”
“그래.”
그의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이들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잠시간 그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유성을 향해, 한 명의 인영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유난히도 시커먼 이질적인 기세의 마력.
그것은 다름 아닌 빌객스였다.
생글생글 웃는 표정이 역력한 그녀는.
자신을 힐끗 바라보고서 지나쳐가는 블레이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더니 유성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그에게 무언가를 휙 내밀었다.
“자, 받아.”
유성은 그녀가 내민 수건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고서는 젖은 머리칼을 닦아내었다.
“고마워, 빌객스.”
“하하, 이 정도로 뭘.”
빌객스가 웃어 보였다.
주변에 퍼져나가던 시커먼 마력들이 응답하듯 넘실거렸다.
그녀는 익숙하게 유성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이야, 이제는 키가 나보다도 커졌네. 장신인 축에 속하는데?”
“어깨를 걸치기엔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지.”
유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들이 재회를 하는 데만 자그마치 삼 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한창 성장기에 들어섰었던 그에게서 과거의 모습이 사라지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실제로 유성 그가 경험했던 시간은 그 정도로 길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그의 육체가 성장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더군다나 마력적 재능을 의도적으로 성장시키며 육체의 성장을 촉진시켰던 그다.
그러한 느낌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저나 여기 사람들은?”
“여전하지, 뭐.”
빌객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는 힐끗 주변을 살폈다.
곳곳에서 힐끔거리며 그들 둘을 살피던 엔지니어들이 화들짝 놀라하며 다시금 작업에 열중하는 척을 해 보였다.
여긴 빌객스가 우두머리로 자리한 해적 선단이었다.
유성이 폭발과 함께 자취를 감춘 지난 삼 년여의 세월 동안, 그녀는 다시금 본연의 자리로 복귀해 있었다.
물론 저들의 시선이 의미하는 바가 그러하듯이.
그녀의 존재는 이곳에서는 형체화된 두려움으로 자리 잡아 있었다.
하긴, 그것이 당연할 터였다.
세계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의 마력적 재능을 타고난 그녀는 오로지 맨손으로도 충분히 기가스와 드라칸을 잡아 뜯을 정도로 강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몇몇 해적들이 나누곤 하던 대화를 들어보니, 그러한 광경이 심심찮게 벌어졌음은 쉬이 예상이 가능했다.
‘아마 얼마 전까지는 군의 사설 병력으로 일했다고 하던가.’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빌객스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넌 그동안 그쪽에 있었다고 했지. 그 인간은 잘 지내고 있었어?”
“그 인간?”
빌객스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는 표정이었기에, 그는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너희들이 함께 일했다는 그 사령관 말이야.”
“아아, 그 인간 말이지!”
그제야 이해한 빌객스가 양손을 짝 마주쳤다.
금세 씩 웃어 보였다.
“꽤 좋았지.”
그녀는 손으로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번에 받은 전함이 꽤나 좋은 신품이었거든. 나온 지 불과 이년 째 밖에 되지 않은 거였지. 심지어 무장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전함? 설마 전함을 받았다는 소리인가?”
“그럼.”
빌객스가 수긍하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게다가 받은 전함도 한 척이 다가 아니야. 달라니까 달라는 대로 다 주던데?”
“……?”
달라는 대로?
그 말이 순간 의문스러워서, 잠시간의 생각 끝에 유성이 혹시나 하며 물었다.
“설마 더 있는 건가?”
“선단째로 받았지. 하하! 물론 돈도!”
빌객스는 대놓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녀의 기세와 함께, 주변 대기가 훅 밀려 나갔을 정도다.
하지만 유성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총사령관이라도 그 정도의 재량은 없었을 텐데. 그게 가능했던 건가?”
“안 될 것도 없다던데?”
“뭐라고?”
“어차피 우리들이 없었다면 죄다 죽고 터졌을 거라던데, 오히려 주고서라도 드라칸을 막는 게 이득이라길래 나도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더라고.”
그런 의미였던 건가.
확실히, 그녀가 아니라면 감당을 못할 상대가 있었던 만큼.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전함을 주고서라도 막는다면 그편이 나았을 터다.
제아무리 빌객스가 해적이라고는 하더라도.
상대는 그 이상의 존재인 피도 눈물도 없는 드라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