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초군체(2)
“이제, 우리는 저 하늘 위의 세상으로 갈 거야.”
리브의 선언과 함께.
나열한 듯 양측으로 도열하여 있던 완전체 드라칸들의 안광이 번뜩였다.
이곳의 전원이, 각기 다른 여왕을 모체로서 태어났음에도 약속이나 한 듯이 리브의 말에 응답했다.
리브의 지배력은 그 어느 드라칸을 막론하고서 여지없이 통한다.
그렇기에 완성된 절대적인 일인을 위한 초군체.
스스로가 약간의 패널티만을 감수한다면, 이 모두가 오로지 리브 하나만을 여지없이 따르는 것이다.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지면 전체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
그것은 강렬한 기세를 담은 포효였다.
고오오오-.
왜냐하면 소녀의 발아래에 위치한 그것마저도.
한낱 흙과 돌로 이루어진 지면 따위가 아닌 거대한 질량과 무게를 지닌 완전체 드라칸이었으니.
막대한 체격을 지닌 드라칸의 몸체가 부유하듯 상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리브는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푸른 안광을 빛냈다.
그 시선이, 이 우주와 태양계가 아닌.
그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저 멀리 지구라 부르는 그곳을.
유성과 라피스.
두 명의 인간에게서 물려받은 리브의 적성은 인간의 한계치를 초월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가능성의 고점에 다다른 한계 적성을 거머쥘 수 있는 능력을 손에 넣었다고 해야 맞을 터였다.
이 시대 유일한 등급의 마력 용량을 가진 라피스의 마력적 소질과 유성의 기술 적성을 베이스로서 탄생한 리브는.
그들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하지만 리브가 가진 것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드라칸의 여왕체에게는 세대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인자의 기억이란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는 인류의 기억, DNA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지구 생명체의 인자인 DNA가 단지 인간의 육체를 조금씩 변질시키고 환경에 알맞도록 진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면.
드라칸의 여왕체가 가지는 기억은 말 그대로의 것을 의미했다.
수백여 년 전, 지구라 부르는 세계를 침공한 그 시절의 전대 여왕체의 기억을 떠올리며.
리브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초군체가 가지는 힘이 턱없이 모자람을 알았다.
당시의 여왕체가 가지고 있던 기억을 통하여 목격된 궁극체의 존재.
그만한 상대를 직접 감당해낼 만한 존재라면 이 막대한 규격을 가지게 된 초군체 내에서도 오로지 리브 혼자뿐이었으니까.
* * *
고오오오-.
다수의 전투 순양함들이, 행성 테라의 푸른 배경을 아래로 둔 채 순회하며 움직이고 있다.
별과 어둠이 지천으로 깔린 새카만 우주.
행성 테라의 대기권을 지키는 달의 전진기지. 문 스테이션(Moon Station).
그곳에 있던, 구 연합의 군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바쁘게 돌아다니며 지상으로의 관측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관측병 김아연 중사.
새카맣게 가라앉은 다크서클을 한 채로 모니터 화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그녀 또한, 그러한 이들 중의 하나였다.
후룩-.
그녀는 옆에 놓인 진하게 탄 믹스 커미를 마시며 온종일 화면만을 노려보듯 응시했다.
김아연. 그녀는 다소 묘한 성과 이름 구성을 가진 이였다.
과거 지구 시절의 성과 이름 방식을 고착하는 몇 안 되는 보기 드문 인물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하필이면 김씨라니. 확실히 드물다면 드문 이름 구성이었다.
그것은 지금의 행성 테라 시대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드문 ‘구 세대의’ 의 일가 중 하나였다.
실제로도 그녀의 외형은 이곳에 다른 인간들과 비교하면 꽤나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과거인들, 아시안의 형질을 다수 물려받은 탓이었다.
그래서인지 김아연 중사는 여러모로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같은 나이대에 비해 유난히 어리고 쾌활한 분위기가 자연스레 풍기는 덕분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고운 얼굴 위로.
요즘 들어 유난히도 눈에 띄는 새카만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게 보였다.
“하아.”
김아연 중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피곤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손에 쥔 이 커피잔을 힘껏 내던져 버리곤 침대로 달려가 드러눕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했다.
그동안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는 대로 굴려졌더니 몸의 체질이 연일 최악의 기로를 달리는 탓이었다.
사람인 이상에는 몇날 며칠이고 기계처럼 무작정 혹독한 근무를 할 수만은 없는 법이다.
그것은 마나 사용자인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녀는 기껏해야 마력적인 재능마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탓에, 말이 마나 사용자이지 실상은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래, 쉽게 말하자면 일반인보다 아주 약간 더 뛰어난 수준에 불과하달까.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시의 그녀는 그래도 나름대로 여유가 있는 삶을 누리는 편이었다.
이곳 문 스테이션 달 기지에서의 근무는 답답했지만 그런대로 버틸만 했고, 거기다 휴가 또한 넉넉하게 내려다 주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야속하게도 최근 들어 매일같이 변화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지독한 혼란의 연속이었다.
연일 어디서부터 튀어나온 건지 이유도 알 수 없는 드라칸이라 불리우는 괴수들의 등장과 더불어 ‘신 연합’ 이라 부르는 반동 세력마저 등장했다.
게다가 그들이 내세우는 ‘클론’ 이라 부르는 것들마저 말이다.
하나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심지어 무엇 하나 쉽지도 않으니 연합으로서는 진정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심지어 최근에는.
‘초군체’ 라 불리우는 드라칸의 연합 세력 따위와 같은 것마저 생겨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에 없던 온갖 혼란들이 불과 수년 사이에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진짜 세상이 무너지려고 그러나?’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아마 과거, 400년 전 대전쟁의 시절에도 드라칸들로 인해 인류는 결국 무너졌다고 들었었는데.
어쩌면 그때의 결말이 지금에 와서 자신의 세대에 다시금 재현되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요즘 들어 드라칸의 세력이 우후죽순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단지 행성 테라만이 아니라, 태양계 곳곳에서 놈들의 서식 활동이 목격되고 있는 와중이었다.
‘왜 하필이면 지금인 건지.’
요즘 들어 김아연 중사는 일을 때려치울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다.
‘그래도.’
지쳐있던 김아연 중사의 입가에,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떠올랐다.
‘다음 주면 드디어 잠시나마 쉴 수 있을 거야.’
드디어 다음 주다.
다음 주 월요일만 되면, 잠시나마 조금 멀리 떨어진 콜로니로의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세상이 비록 연일 정체 모를 괴수들의 등장과 강림으로 인해 최악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지만.
이런 세상에서도 여전히 연인을 사귈 사람은 존재하고, 휴가는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그녀는 다음 주에 있을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를 고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을 기다리며 한창 근무를 버텨내고 있던 그녀의 미간이.
조금씩 모아지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지?”
무언가가, 행성 테라의 대기권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색적 반응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듯 그 부분만을 이질적으로 마력을 지워버린 탓에 기지의 색적 탐지에는 잡히지 않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 부분에 마나 신호가 다른 곳에 비해 더욱 적다는 표시가 떠올랐다.
시스템은 대체로 대량의 마력 반응만을 관측하기에.
이것은 오로지 관측병 김아연 중사만이 확인할만한 그런 작고 소소한 반응이었다.
뭔가가 저기에 있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달의 탐지 센서를 그쪽으로 돌렸다.
희끄무레한 뭔가가 보인다.
모니터 화면이 해당 지역으로 빠르게 확대와 확대를 반복하기 시작하고.
곧이어, 김아연 중사는 해당 지점에서부터 무언가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대체 뭐지? 전함이라기엔 상당히 이상한데? 함선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상어처럼 보이는 게 차라리… 드라칸처럼 생겼잖아?’
그것은 상당히 기이한 디자인을 한 무언가였다.
이 시커먼 우주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천연색인 새카만 흑색에, 흡사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형상의 상어처럼 보였으니까 말이다.
의아해하면서도 그녀는 그 기괴한 형상을 한 의문의 비행체를 확대시켜 보았다.
그리고 곧.
그것의 머리 위에 서 있는, 한 명의 ‘인간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이게, 대체. 대체 무슨?
희고 여린 피부. 팔다리와 머리를 가진 그것.
저것은 분명 인간이었다.
그 정체를 확인한 순간.
이제껏 정면만을 향하던 소녀의 시선이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김여안 중사와 소녀.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연속된 당황으로 인해 이성이 마비된 찰나.
불과 초등학생 저학년이나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보이는 그 소녀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지어졌다.
오싹!
그 부드러운 미소를 마주한 순간.
김아연 중사는 등줄기를 타고서 털이 치솟는 짜릿한 소름이 오소소 돋아남을 느꼈다.
설마 저건.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설마. 진짜로.
“…드, 드라칸인, 건가?”
하지만 뇌리의 당황과는 별개로.
그녀의 몸은, 여지껏 받았던 훈련의 반복 그대로 행동했다.
자리에서부터 벌떡 일어서고선 옆의 ‘긴급 호출’ 메시지가 적힌 빨간 버튼을 쾅 내려찍듯이 눌렀다.
“비상!!”
* * *
[…….]
놈의 시선이 유성 그를 향한다.
그 또한, 굳은 표정으로 녀석을 내려다 보았다.
‘이 녀석.’
완전체. 하얀 상어.
녀석은 상당히 ‘기이한’ 상대였다.
‘이런 녀석은 처음이로군.’
이제껏 검술을 사용하는 놈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오히려 꽤나 흔하게 보인다고 할 수 있었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발전된 전투 성향을 보이며 진화하는 녀석들의 특성상 더욱 효율적이면서도, 더욱 뛰어난 전투력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반사 작용이기 마련이었지만.
이 녀석은 확실히 그 중에서도 달랐다.
다르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출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덩치가 유난히 거대하거나 특유의 강점이 있는 건 아니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꽤나 대단한 선전을 했다.
무려 그들 알파 분대를 상대로 족히 수백여 초 가량을 홀로 대적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그들의 전방에서는 유성이 분대장으로서 자리매김을 하여 수적인 우위로 철저히 내리눌렀는데도 그러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족히 오 분 가까이 버텼다.’
비록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강력한 두각을 보일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최초는 아니었다.
최근 들어 이러한 개체들이 각지에서부터 목격되고 있었다.
초군체에 속해 있을 거라 예상되는 일부의 개체들이 바로 그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