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초군체(1)
최근 들어.
초군체(超群體)라 불리는 기이한 드라칸 무리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게 눈에 보이고 있었다.
하나의 단일한 지배 체계를 가진 드라칸 무리.
연합의 각지에서 그러한 놈들이 등장하는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목격되고 있었다.
그러한 개체들의 등장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 녀석들이 목격된 것은 4개월 전, 북부의 어느 수림 지역에서부터였다.
사실 처음부터 녀석들의 등장과 행적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연합의 전산망에 등록된 적이 있었던 완전체, 17번과 19번이 함께 나타나 행동을 같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연합의 지휘부에서는 강한 당황을 드러내며, 다소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경우의 수였기 때문이다.
17번과 19번 완전체는 전혀 다른 무리에 속해 있고, 또한 전혀 다른 여왕체를 따르던 개체들이었다.
그러한 놈들이 난데없이 하나의 무리처럼 행동하기라도 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이질적이기 짝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드라칸은 다른 드라칸 무리를 적대한다.
힘을 합치기보다는 서로를 견제하고 노리며 상대의 마력 에너지를 탐하고 잡아먹기를 택하는 부류였다.
서로가 다른 여왕체를 어머니 모체로서 따르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따라서 이 두 완전체의 기이한 연합은 실로 의아하기 짝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연합? 설마 두 개의 세력이 힘을 합쳤던 것인가?
하지만 그 같은 광경은 얼마 후 전혀 다른 남부 지역에서마저 똑같이 재현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행성 테라의 전역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합은 마침내 결론을 마감 지었다.
믿기 어렵지만 분명 이들의 배후에는 ‘초군체’라고 하는 기이한 지배자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 지배자란 어쩌면 하나일 수도, 혹은 여럿일 수도 있다고.
연합은 그렇게 결론지었다.
사실상 제대로 지배자가 목격된 적이 없었기에 내려진 잠정적인 결말이었다.
초군체의 세력에 알려진 녀석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그것은 놈들의 완전체들이 행성 테라의 각지를 중구난방으로 돌아다니며, 일명 ‘강자’로 알려진 일부 특별한 개체들을 자신들의 세력으로 집어넣는 데에 혈안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
놈들의 군체 무리에는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다른 여왕의 지배 체계 아래에 속한 드라칸들을 자신들의 무리 내부로 편입시킬만한 능력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초군체.’
유성은 눈매를 가늘게 떴다.
최소한, 그것은 적어도 유성이 알던 어떠한 여왕체들의 능력과도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아니.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 대상이 여왕체인지, 다른 무엇인가의 능력인지는 그조차도 감을 잡지 못했다.
‘놈들이 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건지, 어떤 여왕체를 따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오오-.
그의 모니터 화면 속에는 이곳의 연합군을 지독할 정도로 애먹였던 상대, 완전체 하얀 상어가 담기고 있었다.
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연합의 파일럿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지. 그건 바로 인간을 적대한다는 것.’
그가 생각의 사고들을 이어나가던 순간.
저격 지점을 가만히 노려다 보며 온 정신을 집중하던 엘리자가 입을 열었다.
[지시대로 날개를 노리겠다.]
그녀의 음성이 채널 내에 울려 퍼짐과 거의 동시에.
번-쩍!
강렬한 번쩍임과 함께 터져 나온 빛의 무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허깨비가 사라지듯 말이다.
하지만 그 기이한 광경에 의문을 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엘리자의 저격이 실패하거나, 불발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본래부터가 그것이 시공 진동탄의 정상적인 효력이었으니까 말이다.
빛의 번쩍임이 세상에서부터 지워짐과 동시에.
콰앙!
완전체 하얀 상어의 날갯죽지 부근에서부터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해당하는 폭발이 터져 나왔다.
시공 진동탄의 효력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포문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김과 함께, 정확하게 1초 전의 과거로 역행하는 공격을 쏘는.
말 그대로 과거의 지점을 노리고 쏘기에 빗나가려야 빗나갈 수가 없는 확실한 전용 무장탄이었다.
[…….]
놈, 하얀 상어.
이제껏 그칠 데 없이 거칠게 움직이던 놈의 움직임이 처음으로 멈췄다.
치이익.
곧, 녀석이 마치 상어의 지느러미를 닮은 듯한 날갯죽지 부분의 새카맣게 탄 곳을 응시하더니.
[■■■■?]
곧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 위의 그들 일행을 쳐다보았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놈의 동공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푸른 안광이, 사뭇 서늘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유성은 아무렇지 않은 태연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놈의 사냥을 시작한다. 분대 알파는 나와 함께 녀석을 치도록 하지.”
그 말에 베타 분대의 분대장, 블레이드가 물었다.
[그렇다면 대장, 우리는 그동안 뭘 하고 있지?]
“베타 분대?”
[그래.]
블레이드의 대답에, 잠시간 주변을 둘러보던 유성이 이내 답했다.
“근처에서 망이라도 보고 있어.”
[아마 내가 알기로 완전체는 저거 하나뿐일 텐데? 우리도 전투에 참여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지금만 해도 이미 완전체 하나를 상대로는 차고 넘치는 전력인데, 너희들까지 나설 필요는 없지. 힘이나 잘 비축해두고 있어.”
블레이드가 피식,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가. 내가 괜한 걸 물었어.]
* * *
알파 분대와 베타 분대.
그들의 역할이 정해진 직후.
유성을 위시한 다른 네 기의 기가스 분대가 추락하듯 강하하기 시작했다.
[■■■■.]
놈, 하얀 상어 또한 새로운 적수가 나타났음을 인지한 것인지.
뜻 모를 중얼거림과 함께 녀석은 몸을 돌렸다.
녀석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서 제대로 대응조차도 하지 못하는 너절한 기갑 파일럿들 따위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런 것은 싸움조차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냥도 아니었다.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일개 잡졸들.
최소한, 저항의 맛이 있는 상대여야 싸울 맛이 있을 터였다.
그러한 면에서 저 새로운 난입자들은 그러한 맛이 존재하는 상대로 보였다.
다름 아닌 자신의 자랑이던 날개에 전조조차도 없는 일격을 가했으니까.
완전체, 하얀 상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콰앙!!
놈이 쏘아지듯 지면에서부터 날아올랐다.
마치 미사일이 터져 나오듯, 폭발적인 마력의 분출과 함께 지상에서부터 쏘아진 놈이 순식간에 그들을 향해 접근해 왔다.
놈의 날갯죽지 끄트머리에 쥐어진 거대한 양날 대검이.
분명한 위세를 드러내며 휘둘러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한 놈을 향해 마주 접근하며 유성은 짧은 한마디를 낮게 읊조렸다.
“산개하라.”
[알겠다.]
[알겠다.]
그의 음성이 채널 내에 퍼져나감과 동시에.
다수의 응답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그를 정 중앙에 내세운 채.
4기의 기가스들이, 마치 그물망처럼 넓게 펼쳐지며 하나의 진(陣)을 형성했다.
“시간을 오래도록 끌지 않는다. 녀석은 자신이 불리하단 것을 깨닫게 되면, 주저 없이 물러설 거야.”
이제껏, 그들 열 명의 마나 사용자들로 이루어진 무력 집단, 넘버즈(Numbers)들은 몇 번인가 저것들 초군체에 속한 완전체를 마주친 전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경우의 수는 단 하나다.
바로 직접적인 의미에서의 마찰을 뜻하는 교전.
놈들과 마주쳤을 때 녀석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접전을 시도해왔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죄다 한결같은 놈들이다.
아직도 유성은 물론이고 연합의 어느 누구도 그 무조건적인 확률의 접전에 대한 이유도, 어째서 그러하려는 지에 대한 감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인간 측에 있어서 해당 이유에 대한 것은 결코 고려할 것이 못 되었다.
그들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었으니.
바로 놈들, 드라칸의 무조건적인 척살이다.
번쩍.
유성의 안광이 새파란 빛을 발했다.
“가장 빠르게 놈을 사냥한다.”
능률이 떨어지는 전투일수록.
해당 접전에 더더욱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진정한 싸움이란 어디까지나 접전 직전까지 최대한의 준비와 효력을 통하여 이뤄지는 것이다.
쐐애액-!
대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강렬한 속도감과 함께.
쏘아질 듯 달려든 그들의 검이 서로를 향해 맞부딪힌 그 순간.
쿠웅!!
강렬한 진동이 대기를 터뜨리듯 터져 나오며 굉음을 발했다.
* * *
아직 인류의 발이 닿지 않는 행성 테라의 변경 지대.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최근 들어 이 땅에서 가장 큰 위협으로 자리 잡은.
초군체라 부르는 다수의 드라칸 세력이 한데 뭉쳐진 기이한 세력이.
[■■■.]
[■■■■■.]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까, 다들 너무 그러지들 말아.”
비치듯이 푸른 물빛 머리칼이 눈에 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형상을 한 소녀였다.
소녀는 주변에서부터 말을 건네는 드라칸들의 음성에 답하며 제단의 중앙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양측으로 족히 십수 미터에서부터 수십 미터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드라칸들이 보였으나.
정작 그들의 사이를 걷는 소녀의 체구는 어린아이 정도로 아주 작았다.
아마도 이 광경을 본다면 누구라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대체 어째서, 이 거대한 괴수들의 한 가운데를 한낱 인간 소녀가 이토록 자연스럽게 거닐 수가 있는 것인지를 말이다.
하물며 누구라도 쉬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녀의 양쪽에 자리한 드라칸들에게서 강렬한 호의의 기세마저 느껴진다고 한다면.
더더욱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조용히 자세를 낮춘 채로.
소녀를 응시하는 드라칸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제껏 인간들의 시선에 모습을 드러낸 개체들이었다.
드라칸들 중에서도 특별하고 희소한 놈들.
바로 완전체라 이름 붙여진, 치열하고 오랜 성장의 축적 끝에 마침내 진화한 개체들이었다.
완전체의 색감에는 두서가 없었다.
어떠한 개체는 희고 검게 얼룩이 져 있었으며.
어떠한 개체는 피처럼 붉었으며, 또한 어떠한 개체는 눈처럼 새하얬다.
크기나 그 형태마저도 규칙이나 일관성이 없었기에.
여기 있는 그 모든 완전체들의 출신이 모두가 다름은 분명한 듯 보였다.
소녀, 리브는.
바로 이들 완전체의 새로운 여왕체로서 등극한 존재였다.
지난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리브는 많은 일을 해왔다.
행성 테라의 전역에 흩어져 있던 대부분의 드라칸 세력들을,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은밀하게 끌어모은 동시에 그 수마저 행성이 감당할 수 있는 규격의 한도 내에서 적절하게 조절해 왔으니까.
사실 지금에 와 테라에서부터 영향력을 지닌 대부분의 여왕체와 완전체들은 이미 리브의 지배하에 편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리브가 이곳에 없더라도.
지상에서의 통제는 적절하게 이루어질 터였다.
‘지상에서는 말이지.’
리브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행성 테라의 지상이 아닌.
그 너머의 우주.
리브의 영향이 닿는 것은 아직 이 지면이 한계였다.
하지만 그 준비 기간도 오늘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