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격전지(3)
행성 테라의 격전지 중 하나인 북반구의 섹터 48영역.
평상시에도 적잖은 수의 드라칸 세력들이 서로 뒤엉키고 그로 인해 치열한 격전이 수시로 일어나는 이곳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출현해 있었다.
[■■■■.]
완전체, 하얀 상어.
놈이 등장한 순간.
이제껏 그런대로 인간들 측에 유리했던 전황이 순식간에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물러서! 파일럿들, 검은 상어다! 지금 즉시 물러서라!]
[대열을 유지해라! 이탈하는 놈들이 없도록, 각 분대장들이 상황을 관리하도록!]
이제껏 주변 전황을 지켜보던 지휘부 측에서는 완전체의 출현이 확인되자마자 소리쳤다.
이미 완전체가 나타난 지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름대로의 대응법, 매뉴얼이 등장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온 그들이었다.
심지어 놈은 무려 예의 그 하얀 상어였다.
무려 수차례, 연합 측에 등장하여 몇 번이고 큰 피해를 안겨준 상대.
이미 섹터 48영역의 파일럿들치고.
녀석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고 단언해도 될 정도로 그 악명이 여지없이 퍼진 녀석이었다.
[이런, 제기랄! 오늘도냐?!]
파일럿들은 내려오는 지령에 이를 갈면서, 욕설을 낮게 지껄였다.
그들은 지휘부 측의 전언대로 저마다가 분대 상태를 유지한 채로, 천천히 물러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시선만은 상대를 똑똑히 노려보았다.
[저 자식,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다른 여왕 측 세력과 영역 다툼 중인 거 아니었어? 설마 벌써 그 싸움이 끝났다고?]
[정말 빌어먹을 이로군.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는 건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제아무리 체계적인 대응 방식이 등장했다고는 하나 계란으로 바위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결국 계란이 바위를 상대하는 법은, 어디까지나 회피를 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응 방식이었다.
오늘 저 상대의 시선을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C분대였다.
인간들의 대응 방식은 간단했다.
완전체를 상대할 만한 전력이 없는 곳에서, 완전체가 출현했을 시. 그 상대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분대 측에서 ‘모든 것을 도맡아서’ 하기로 말이다.
그 말인즉슨.
쉽게 말해 미끼 역할을 자진하여 맡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통신을 타고서 하얀 상어를 상대하는 C분대원 파일럿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크악!]
[분대장 님, 물러서십쇼! 여긴 저희가…! 커억!]
아득.
그들은 이를 악물었다.
통신을 타고서 들려오는 소리는 참혹했다.
조종석이 우그러드는 참담한 소음과 하얀 상어를 상대해야만 하는 파일럿들의 비명 소리까지.
그것들 모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채널을 타고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저들의 죽음을 제물로 삼아서, 그 나머지의 인원들이 지금 이렇게 물러나고 있었다.
쾅!
분기를 참지 못한 한 명이 조종간을 힘껏 내려쳤다.
[…이런 빌어먹을!]
[참아라, 아리오스. 저들의 희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렇기에 하는 소리가 아닙니까. 나가지 못하고 외면해야 하는 이 현실이 말입니다!]
녀석에게 하얀 상어라는 별칭, 또는 개체명이 붙은 것은 그다지 대단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녀석이.
유달리 ‘상어’와 같은 형태와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포악하면서 동시에 부드러운 날갯짓과 함께.
허공을 헤엄치듯 쏘아진 녀석은 일방적으로 기가스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콰직!
그 상어를 닮은 수십 개의 이빨들로, 기가스를 잡아 뜯을 때면.
여지없이 하나의 기체가 격추되어 지상으로 추락했다.
[■■■■■-!]
녀석의 기백은 흉포했다.
사나운 포효와 함께 세련되지 못한, 거친 날 것 그대로의 기세가 힘껏 퍼져 나왔다.
그 광경을 보고만 있던 동료 파일럿 중의 하나가.
격렬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서 까드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들 분대의 분대장은, 여전히 낮지만 서늘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녀석은 초군체의 일원 중 하나다. 우리로서는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녀석이야.]
참아야 한다.
아니, 그것 외에는 수가 없었다.
녀석들은 드라칸, 괴물이었다.
평범한 인간들로서는 저런 괴물 녀석 하나를 감당할 힘조차 없었다.
피해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단 하나뿐이다.
최대한 분기를 삭이며 죽은 듯이 천천히 물러나는 것 뿐.
이건 수치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수치를 참아내야만 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동료의 자진한 희생을 기리는 방법이라곤, 오로지 그게 전부였다.
[자극하지 않도록, 천천히 물러서.]
그들은 녀석의 한계선을 잘 알고 있었다.
저 완전체 등급, 하얀 상어는 결코 일정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영역까지만 빠져나가면 되었다.
평소의 녀석은 언제나 다른 여왕체들과의 분쟁에 가장 우선하여 참전하는 개체이기에, 인간들 세력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는 했다.
그저 오늘의 운이 나빴을 뿐이다.
콰득. 콰드득.
하지만 그들의 동료였던, 기가스를 통째로 씹어 삼키고 있는 완전체, 하얀 상어.
결국 마지막 파일럿을 쓰러트리고야 만 녀석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 ■■■?]
시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오싹!
그 순간, 그들은 알아차렸다.
오늘의 시선은.
평소와는 달리, 그렇게 순하지만은 않음을.
시선에 대한 의미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분대장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물러서!! 속도를 높여라!]
구태여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직감했다.
언제나 적당한 선에서의 한도를 지켰던 녀석이, 오늘만큼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저 시선에 담긴 지독할 정도의 살기와 폭급한 기세가, 정확하게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큭, 어째서? 어째서지? 왜 오늘은 평소와 패턴이 다른-.
하지만 당황과는 별개로 기가스 분대는 이미 하나둘 속도를 빠르게 높이고 있었다.
콰직!
순식간에 쏘아진 녀석이.
단숨에 기가스 중의 하나를 붙잡아 지면에 패대기쳤다.
[크악!]
[허드슨!]
채널을 타고서 당황에 찬 음성이 울려 퍼졌다.
녀석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워낙에 느리게 기동하고 있었던 탓에.
따라잡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 새끼가!]
분대원 중 가장 성질이 성급한 편이었던 파일럿, 아리오스가 대번에 분개하며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돌아와, 아리오스!]
분대장이 뒤늦게 소리쳤지만.
이미 그는 녀석의 지척에까지 다가선 상태였다.
오히려 아리오스 쪽에서 더욱 크게 소리치며 맞받아쳤다.
[이미 저 녀석은 우리를 놔줄 생각이 없습니다! 여기서 죄다 죽일 셈이란 말입니다!]
달려든 아리오스의 기체, 기가스 EF-07이 날렵한 움직임으로 녀석에게 검을 휘둘렀지만.
[■■■■?]
완전체 하얀 상어는.
비스듬하게 고개를 들어 그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그 시선에 대한 의미가 마치 고작 그 정도로? 라는 듯 보여, 아리오스는 오히려 두려움을 떨쳐내듯 소리를 내질렀다.
[으아아악!]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일말의 가치조차도 없는 무의미한 돌진이었다.
퍽, 콰직.
지느러미 날개를 할쫙 펼치며 허공을 유영하듯 미끄러진 하얀 상어가, 기체의 옆구리를 콰득 뜯어 발기며 그대로 자세를 쓰러트렸다.
그 과정에 기가스의 왼팔 하나마저 통째로 잡아뽑았음은, 그들 간에 그토록 지대한 격차가 있음을 드러내는 광경이었다.
[■■■■■.]
너 또한 죽여주마.
녀석은 드라칸의 언어로 그렇게 낮게 읊조리며, 날개 끄트머리에 날을 치켜세웠다.
키잉!
마치 전등빛처럼 보일 정도로 분명한 밝기를 보일 정도의 새파란 마력이 날개에 치솟는 게 보인다.
[아리오스!!]
하얀 상어와 아리오스, 그리고 그 밖에 다른 모든 파일럿들.
모두가 아리오스의 최후를 분명히 예감한 그 순간.
번-쩍!!
하늘에서부터 날아든 강렬한 빛의 광채가.
정확하게 하얀 상어를 맞추었다.
[■■■■?]
녀석의 상어의 지느러미를 닮았던 날개 부분이 일순간 새카맣게 타버렸음에.
녀석은 물론이고 그 밖에 다른 모두가 반사적으로 하늘 위쪽을 쳐다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분대장 님! 화면을 확대해 보십시오!]
모두가 당황해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가장 먼저 정체를 확인한 한 명의 외침에, 그들이 다급히 화면을 확대시켰다.
그러자 저 높은 대기 중에서부터.
번뜩이는 일련의 빛무리가 포착되었다.
분대장이 미간을 모았다.
[…저건?]
쿠오오오-!
그것은.
칠흑색이 유난히도 돋보이는 다수의 기가스들이었다.
* * *
유성은 모니터 화면을 조작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격전지에 진입한다. 분대명은 둘로 나누도록 하지. 알파와 베타.”
[알겠다.]
[알겠다.]
그의 음성이 채널 내에 퍼져나감과 동시에 다수의 응답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딸깍. 딸깍.
그는 조종석 내부의 기압차를 조정했다.
천장에 달린 각종 계기판을 연달아 조작하며, 기가스 내부 상황을 조절했다.
마치 하나의 색감으로서 통일이라도 한 듯.
새카만 다수의 기가스들이 편대를 이루어 지상을 향해 추락하듯 강하를 했다.
그때, 저 멀리 아래의 지상으로.
다수의 기가스 분대가 하나의 드라칸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광경이 보인다.
그 모습을 목격한 것이 그 하나만은 아닌 듯.
곧 통신 채널을 타고서 블레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성, 저 아래쪽에 왠 하얀 드라칸 한 녀석이 날뛰고 있다.]
[임무 중에는 대장이라고 부르라고 했을 텐데.]
[이런, 깜빡했군. 지금부터는 주의하도록 하지, 대장.]
말을 하면서도 녀석의 얼굴에는 실금같은 미세한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유성이 다소 서늘한 시선으로 블레이드를 응시했다.
녀석는 알고 있었으면서도 구태여 간을 보았음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구태여 따질 상황은 아니지.’
언제나 모든 상황에는 경중이란 게 있는 법이다.
저 아래 지상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날뛰는 드라칸 하나로 인해 다수의 파일럿이 휩쓸리고 있다.
유성이 입을 열어 상황을 지시했다.
“엘리자, 녀석에게 시공 진동탄을 쏴라.”
[알겠다.]
짤막한 대답과 함께.
대열의 가장 뒤쪽에 자리하고 있던 기가스 하나가 등 뒤편의 추가 무장을 어깨 위로 꺼내들었다.
거의 기가스만큼이나 거대한 포대를 철컥 둘러맨 뒤.
엘리자가 자신의 마력을 주입시키기 시작하자.
쿠오오오!
포문에 강렬한 마력 입자가 모여들기 시작하는 게 보인다.
시간선을 강제로 어그러트리는 시공 진동탄.
오로지 시간에 대한 속성력을 가지는 클론체, 엘리자만이 사용가능한 전용 기가스 무장 중의 하나였다.
유성은 순식간에 모여들기 시작하는 가공한 에너지를 감지하며.
엘리자를 향해 말했다.
“엘리자. 저 하얀 녀석의 몸이 아닌 날개 끄트머리만을 노려서 쏴라.”
그러자 엘리자가 미간을 모았다.
그녀가 의문을 드러냈다.
[어째서지?]
“너, 지금 분명 저 파일럿마저 통째로 없애려 생각한 게 아닌가? 명심해. 내가 대장으로 있는 한 우리는 인간을 죽이지 않을 거다.”
[아, 그렇군.]
그제야 뒤늦게 그것이 실책이라는 것을 인지한 그녀는.
포문의 각도를 약간이나마 비틀어 조정했다.
바뀐 표적은 놈, 하얀 상어의 오른쪽 날개 부분이었다.
유성의 지시대로 녀석에게 공격당하는 기가스의 파일럿에게 최대한 영향이 가지 않는 최대한의 지점이었다.
저격 지점을 가만히 노려다 보며.
엘리자가 대답했다.
[지시대로 날개를 노리겠다.]
쿠오오오!
곧, 한계치에까지 모여든 가공할 에너지의 포격이.
놈을 향해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