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격전지(2)
쿠오오오!
새파란 하늘의 연속.
그러한 상공의 위에서, 하나의 거대한 존재가 대기를 가로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백색과 흑색이 한데 뒤섞인 기이한 색감의 드라칸이었다.
녀석은 과거에는 쌍둥이 개체인 화이트 레이븐과 함께 목격된, 드물기 그지없는 형제형 드라칸이기도 했다.
해당 개체는 이전부터도 간혹 인간들의 눈에 목격된 바가 있었다.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난 것도 여럿이었다.
그 때문에 몇 차례의 접전 끝에 정식적으로 개체명이 명명된 개체이기도 했다.
3년 전부터 인간들의 시선에 꾸준히 목격되고 하던 녀석의 정체는.
바로 상위체 등급의 개체명 다크 레이븐(Dark Raven).
[■■■■.]
녀석의 동공에 새파란 빛이 번뜩였다.
과거 인간들에게 목격되었던 그때보다도 더욱 크고, 거대한 체격과 마력 용량을 가지게 된 녀석의 기세는 보기만으로도 서늘한 예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치 잘 단련된 전사로서의 사나움과도 같았다.
수도 없이 이어진 죽음의 위기에서부터 마침내 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낸 녀석은.
이제 와선 완전한 완전체의 일선에 발을 들인 상태였다.
그러한 녀석의 손아귀에는 한 명의 소녀가 올라타고 있었다.
소녀가 웃었다.
“오랜만이야.”
[■■.]
소녀의 말에.
드라칸, 다크 레이븐이 수긍하듯 짧게 답했다.
“하하.”
그 모습에 소녀는 빙긋 웃더니 녀석의 손에 몸을 기대어 누웠다.
마치 포근함이라도 느끼는 듯이, 진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둘의 해후는 족히 수년 만에야 이루어졌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실제로 적어도 소녀가 알에서 깨어난 이래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소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비록 그 겉모습만큼은, 어느 인간의 형상을 빌렸을지언정 그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내용물만큼은 틀림없이 드라칸들의 여왕체가 가진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아이는 리브였다.
전함 메타트론에서 마침내 벗어난 리브는 오늘에서야 드디어 이제껏 때만을 기다리며 침묵하던 다크 레이븐과 마주할 수 있었다.
리브는 충실하면서 동시에 유일한 심복이기도 한 다크 레이븐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 우리는 이 땅에서 모든 드라칸들을 몰아낼 거야.”
[■■■?]
그러자 드라칸, 다크 레이븐이 낮지만 분명한 의문을 발한다.
녀석의 체격은 한참이나 거대하였으므로, 단지 낮은 소음의 발출만으로도 소녀의 몸이 가늘게 진동할 정도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주어진 정황의 사고만으로 본다면 마치 ‘어떻게?’처럼 들리기도 했다.
녀석의 소리는 인간의 사고로는 흉내 낼 수 없는 한층 더 복잡한 언어체계였기에 해석할 수는 없었으나.
리브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선할 정도로 분명하게 들려왔으니 말이다.
녀석의 의아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전력은 기껏해야 단 둘뿐이었다.
그 수준은 제대로 된 드라칸 무리의 규격에조차 들어가지 못한 신생 세력.
사실상 무리라고 칭하기에도 모자란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리브는 구태여 따지자면 아직 본격적인 산란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어린 드라칸 여왕체였다.
과거, 지구 시절.
개미라고 불리던 무리 생활에 특화된 일부의 종들이 있었다.
그것들 곤충류의 무리는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한 무리 생활이 특성이다.
그러한 개미들의 군체를 나누는 단계는 여러 단계로 나뉘지만.
그중에서도 일개미들의 수가 한 자릿수에 달하는 수준을 초기 군체 단계로 불렀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분명 단 둘로 구성된 그들은 기껏해야 초기 군체 단계에도 들어서지 못한 단계였다.
실제로 그것은 리브도 인정하는 바이다.
게다가 다른 군체 무리 중에는 이미 다수의 완전체가 존재하는 개체들도 여럿 존재했다.
그들은 수십, 수백.
그리고 더욱 심하면 이미 수천에 달하는 대군체의 무리에 도달하기까지 했다.
이미 이곳 행성, 테라에서 하나의 영주들로 우뚝 서기에 충분한 규격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렇기에 비록 제아무리 다크 레이븐이 완전체 등급에 도달했을지라도 이렇게나 조촐한 전력을 가지고서는 사실상 무엇을 하려 한들 할 수가 없다.
무리의 규격에 다다를 만한 최소의 한도와 병사인, 양산체와 전투체 마저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리브는 이전의 개체들과는 전혀 다른 성장 방식을 가진 여왕체였다.
소녀는 인간이기도 한 동시에, 드라칸이기도 했다.
구태여 따진다면, 그 둘의 장점을 동시에 내재한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리브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어떡해야 할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구태여 내가 다른 여왕체들의 단계를 뒤따르듯 따를 필요는 없지.”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성장 방식이 있듯이.
드라칸에게는 드라칸의 성장 방식이 있다.
그처럼 리브에게는 그 자신만의 과정이라는 게 있었다.
구태여 리브는 오랜 시간과 자원들을 소모할 시간을 들여, 하나의 거대한 세력을 일구어낼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리브 본인에게는 스스로 그 모든 시간들을 단축해낼 지대한 능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번쩍.
곧 감고 있던 리브의 눈이 뜨이자.
그곳에 보인 것은 불길할 정도로 새카만 기류를 가진 검은빛이 새어들어 있었다.
“우리는 지상의 모든 무리들을 먹어치울 거야.”
구태여 무리를 낳고 일구어낼 필요는 없다.
그러한 과정 따위는, 단시간에 스치듯 지나쳐갈만한 능력이 리브에게는 존재했으니까.
그를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기도 했다.
스륵.
리브의 새카만 동공이 아래쪽으로 향했다.
저 멀리 지상에.
다수의 드라칸들이 점처럼 작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드라칸의 무리였다.
리브가 목적으로 했던 소규모의 작은 신생 군체 무리 중의 하나였다.
아마 저곳의 우두머리로 존재할 드라칸의 여왕체는 아마도 리브 자신보다도 훨씬 어린 개체일 터였다.
어쩌면 한 살. 혹은 그것보다도 아래쪽일 정도로 어릴 터였다.
마력은 그동안의 성장 시절 동안 넘칠 정도로 축적했다.
당분간의 여력은 충분할 터였다.
그러니 첫 번째 목표로 정하기에 저것만큼이나 훌륭한 표적이 없었다.
“좋아, 첫 번째 목표는.”
저 아래 지상에 보이는.
작은 드라칸의 무리이다.
* * * *
[■■■.]
[■■. ■■.]
소규모 드라칸의 무리들.
어린 여왕체를 받드는 그들 무리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숲의 환경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양산체들로 이루어진 그것들의 역할은 간단하다.
바로 자원의 채취와 그것들의 보급이 존재 목적이었다.
녀석들은 환경 지대 곳곳에서부터 채취해낸 자원들을 무리 전체의 성장을 위하여 그들의 여왕체에게로 전달해주는 존재 의의를 지녔다.
오늘도 그와 마찬가지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채취해낸 자원들을 옮기고 있었다.
[■■.]
녀석들의 사고는 대체로 단순한 편이다.
어느 정도의 지성을 지닌 나름대로 지성체이긴 했지만, 그보다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간단한 수준의 의사만을 부여받은 정도에 불과하다.
굳이 따지자면 어른이라기보다는 흡사 아이와도 같은 단순한 지성체였다.
그러한 성질은 비록 녀석들이 어느 정도 자라난 성체 단계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로지 여왕체를 향한 충실함, 그리고 하나의 무리만을 향한 온전한 친밀함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했다.
언제나 아이는 어머니를 향하여 한없는 사랑과 애정을 갈구하는 존재였으니까.
바로 그것이 다른 무리를 보면 주저 없이 적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창 자원 채취에 몰두하는 녀석들의 머리 위에서부터.
쿠오오오!
돌연, 강렬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녀석들이 대번에 의아해서 고개를 들었다.
곧 그 소음의 정체가 드러났다.
흑백의 색감이 한데 뒤엉킨 거대한 드라칸 하나가 저 위에서부터 천천히 지상에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
그 즉시, 양산체의 드라칸들은 전투태세를 취했다.
녀석들은 대번에 양다리의 발톱을 높게 치켜들고, 이빨을 드러냈다.
명백한 적대성이었다.
애당초 전력부터가 완전히 차이 났다.
등장한 상대는 무려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의 모든 드라칸을 쓸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고위험 개체라는 것 정도는 스스로의 본능을 통하여 자신들 또한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곳은 그들의 여왕체의 영역이었다.
여왕체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보호해야 할 어머니였다.
때문에 양산체들은 상대의 강함과는 상관없이 날카로운 경고성의 고함을 내질렀다.
“하나같이 소리가 요란하네.”
완전체, 다크 레이븐의 어깨 위에 올라탄 리브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꽤나 요란한 반응이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탓에 리브는 한동안 그 모습을 말도 없이 그저 관찰자의 눈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낳아준 어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위험마저 불사하는 것이 바로 드라칸이다.
드라칸에게 무리와 여왕체란, 자신의 모든 것이자 동시에 상징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껏 인간들의 생활 속에서 지내왔던 리브에게 있어서는 익숙치 않은 종류의 것이기도 했다.
“…….”
잠시간 말없이 그것들을 내려다보던 리브가 이내 입을 열었다.
“움직이자.”
리브의 명령과 동시에.
다크 레이븐이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정면을 향해 비행하기 시작했다.
[■■■■!]
저 아래 지상에서부터 적대감을 발출하는 드라칸들을 무시하듯 지나치며, 단숨에 리브와 다크 레이븐이 향한 방향은 여왕체의 기운이 느껴지는 둥지 쪽이었다.
깊숙한 토굴을 빠른 속도로 진입한 둘은 금세 둥지의 가장 깊숙한 지점에까지 다다랐다.
[■■■?]
그곳에는 드라칸의 여왕체가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리브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저게 드라칸의 여왕인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이제껏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부터 살아왔던 리브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기이한 형상을 취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여왕의 위험을 감지한 드라칸들이 여왕체의 주변으로 하나둘 몰려들었다.
그 기색이 한눈에 보기에도 여왕체를 보호하려 함은 분명한 듯 보였다.
하지만 하등의 상관이 없는 일이다.
오늘이 지나면, 저것들의 무리 전체가 리브의 아래로 편입될 테니까 말이다.
[■■■■.]
물러가라.
여왕체는 그렇게 말을 보내왔다.
서로 간의 의사소통 체계는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브에게는 똑똑히 그 의미가 해석되어 들려왔다.
그들의 무리는 쉽사리 달려들지 않았다. 또 적대감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명백한 주도권을 가진 쪽은 완전체인 다크 레이븐이었다.
녀석은 이곳에 있는 전원을 우습게 도륙낼 수준이기도 했다.
상대 여왕체는 그것을 잘 알기에, 그저 긴장된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곧, 리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너희들을 어떻게 할 생각이 없거든.”
[■■■?]
리브가 상대의 언어를 이해했듯이.
상대 또한 리브의 언어를 이해했다.
리브의 말에 여왕체는 반문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의미는 분명히 리브에게 닿았지만, 리브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펄럭.
곧이어, 리브의 내면에서부터 솟구치기 시작한 마력이 마치 소용돌이치듯 점차 새어 나왔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형상을 지닌 듯이.
새카만 무기질의 연기와 날개의 모습으로서 자신을 드러냈다.
이 불길한 색감이 가진 능력은 다름 아닌, 드라칸 전체를 집어삼킬 막대한 힘이었다.
마력에 서린 불길함을 읽은 듯.
긴장된 여왕체가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리브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초군체(超群體)로 거듭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