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격전지(1)
“지금 당장 영상 틀어봐.”
[알겠습니다, 보스.]
부하의 대답과 함께, 빌객스가 바라보던 모니터 화면에 해당 지점의 영상이 비쳤다.
본래 신 연합 소속의 연구소 건물이 있었던 지점.
그런데 그곳이 지금에 와서 다시금 확인해보니 완벽하게 사라져 있는 게 확인되고 있었다.
“통째로 날아갔잖아?”
내려다 본 지상의 상황은 단적으로 말해 깔끔했다.
해당 영역은 정말 깔끔하게도 날아가 있었다.
쿠오오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는 건물이 있던 자리에 불기둥마저 치솟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든지 간에 상관없이, 그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곧, 빌객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하. 아주 제대로로군.”
[보스.]
그때 그런 그녀를 향한 짤막한 통신이 들려왔다.
“왜 불러.”
[저기에 대체 뭐가 있었던 겁니까?]
“신경 끄셔.”
빌객스는 실실대며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감정이 다소 고조된 것은 숨길 수 없는 모양인지, 조종석의 주변으로 시커먼 마력이 넘실거리며 차올랐다.
그런 그녀의 성정을 익히 알아왔던 부하 봄버는 혀를 찼다.
저 정도로까지 감정의 변화가 눈에 띄게 드러날 정도라면, 이유는 분명했다.
[뭔가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하하, 그래 보여?”
[다 티가 납니다, 보스. 표정만 봐도 안다고요.]
빌객스와 봄버는 나름대로 지대한 시간을 함께 해왔던 동료 사이였다.
그들 해적 선단이 본격적으로 연합에 악명을 떨치기도 이전인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내 행동을 같이 했으니 말이다.
하물며 그녀는 평소부터 유난히도 기색을 읽기 쉬운 이였다.
주변을 가득 메우는 암흑 매터는 그녀가 가지는 감정의 변화를 분명하게 내보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부하 봄버로서는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아.]
그는 마치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라도 한 모양인지.
푹 한숨을 내쉬더니 물어왔다.
[지금 바로 출발할 겁니까?]
“물론이지.”
봄버의 콧수염이 꿈틀거렸다.
[우리들, 아직까지 솔라스 란 그 양반 밑에서 일하는 처지인 건 알고는 있습니까? 이대로 떠난다면 아마 꽤나 성을 낼 텐데?]
“하!”
그 말에 빌객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이미 손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양, 조종간을 붙잡은 채로 대꾸했다.
“그러면 어쩔 거야? 지가 뭐 우리를 상대로 포격이라도 쏘겠어?”
[최소한 받아먹은 것의 일부는 토해내야 할 거 아닙니까? 거래를 했으면 사람의 상도덕이란 게-.]
“야.”
빌객스는 대번에 말을 잘랐다.
그녀는 여전히 웃는 기색이 다분했다. 전혀 눈치를 보는 듯한 기색이 아니었다.
“우린 해적이야, 봄버. 해적은 뭐다? 먹고 나르는 게 본래의 취지에 걸맞는 삶이거든. 그동안 충실히 계약을 이행해줬으니 이제 튈 때도 되긴 했지.”
돌겠군, 이거.
봄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빌객스의 모습에 처참함을 숨기지 못하고서 눈을 감아 버렸다.
예전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그들의 우두머리는 자기 멋대로인 성향이 유달리 다분했다.
쉽게 말하면 자유 분방하고, 나쁘게 말하면 통제 불능이겠지.
물론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기에 해적단인 것이겠지만 말이다.
[…난 모릅니다, 보스. 나중에 사령관 그 양반이 성질을 주체못하고 우리 쪽으로 폭격이라도 가하면 제일 먼저 토낄 테니까요.]
봄버가 이제껏 경험하기로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의 총사령관 솔라스 란은 그리 허튼 인물이 아니었다.
솔라스 란은 기본적으로 수완이 좋은 책략가였다.
나름대로 적당한 수준으로 기가스를 움직일 줄도 알지만, 그 이상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우수한 거래 능력이었다.
그 말인즉슨 간단했다.
거래를 봄에 있어서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 그런 인물상이라는 소리였다.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이득을 챙기는 타입이라는 거다.
그들이 범죄자 출신인 해적단임에도 그가 거래를 기꺼이 청해 온 데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무려 각성자, 빌객스가 우두머리로 나앉은 해적단이다.
그녀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무력 하나로는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단체였으니 무력 단체가 필요했던 솔라스 란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솔라스 란은 기본적으로 빌객스가 어떤 무례를 범하든 대체로 넘어가주는 편이었다.
무려 완전체를 상대로 대적이 가능한 각성자라는 건 그만한 가치가 능히 있는 전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라도 한 가지 만큼은 유독 철저했는데, 그것은 바로 손실에 관해서였다.
자신에게 마이너스적인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병적으로 그 손실을 메꾸려 했다.
하지만 빌객스는 전혀 듣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화면 너머의 상대를 향해 손을 휘휘 젓더니 제 할 말만을 했다.
“우리가 이제까지 격퇴한 완전체만 몇인 줄 알아? 요 육개월 사이에 벌써 셋이야, 셋. 그거만 해도 이미 제 역할은 다 했는데 심지어 요번에는 죽을 뻔하기까지 했다고.”
그들은 철저한 선불제 무력 집단이었다.
돈을 받고서 무력을 빌려주는, 쉽게 말해 용병단 역할을 이제껏 했던 셈이다.
특히나 저번 전투는 정말이지 제대로 위험했다.
완전체만 해도 충분히 그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인데, 그만한 상대를 어떠한 지원조차 없이 족히 홀로 수십 분 간을 버텨내야 했다.
정말 제대로 죽을 뻔한 것이다.
때문에 빌객스는 그것으로 나머지 몫을 모두 제하기로 했다.
결국 봄버는 두 손을 들었다.
[뭐, 대충 그런 걸로 칩시다.]
“그러니 잔말 말고 지금 바로 부하 녀석들에게도 일러두기나 해. 지금부터 한 시간 후에 바로 출발할 거라고.”
삑.
그 말을 끝으로, 빌객스는 통신을 꺼트렸다.
* * *
삑.
통신이 꺼진 직후였다.
“하아, 이것 참.”
봄버는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참으로 뭐라하기가 난처했다.
하지만 그는 이대로 넘길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반대편의 다른 화면을 보았다.
“그렇다고 합니다, 총사령관 나으리. 저희 보스가 더 이상은 당신들네랑 일을 같이할 마음이 없다는군요.”
[하하. 뭐, 아쉽지만 별 수 없나.]
화면에 비춰지는 것은 다름아닌 베자리우스의 총사령관 솔라스 란이었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자네도 고생이겠군.]
“그런 셈이죠. 제멋대로인 보스를 따르려면 목숨이 한두 개로는 영 모자라니, 절로 움츠러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곧, 그는 확인 차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후환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겠지요?”
[그럼. 물론이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솔라스 란은 흔쾌히 답했다.
그 대답만큼은 분명 호감이 절로 일 정도로 잘생긴 미남의 선한 긍정문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봄버의 눈매는 다소 굳었다.
“…….”
사령관이 이런 대처를 할 때면 영 좋지 않은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라스 란도 그런대로 유능한 인물이었지만.
봄버도 나름대로 눈치는 있는 이였다.
해적이 이 우주를 살아가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동반해야 하는 것이 바로 공기를 읽는 흐름이었다.
하물며 그는 빌객스를 대신하여 이제껏 이 해적단을 오래도록 적당하게 잘 이끌어오고 있는 보좌관이다.
‘총사령관의 입장에서 우리 대장만큼이나 쓸만한 전력을 구하기는 쉽지 않지.’
전쟁 이전의 시대였다면 전혀 상관이 없는 소리였을 테지만, 지금 이 태양계에서는 매일같이 드라칸과의 전투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한 마당에 빌객스라는 이름의 각성자는 상상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욕심을 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이토록 쉽게 풀어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질 않는 소리다.
봄버는 경직된 표정을 풀지 못하고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차라리 원하는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말하는 게 어떻습니까? 돈이라면 제가 보스 몰래 일부라도 토해내도록 하지요.”
하지만 솔라스 란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웃어 보였다.
[아니네. 이번에는 정말로 하는 소리야. 왜냐하면, 지금 자네들의 보스가 어디로 향할 건지 대충 감을 잡고 있거든.]
봄버의 미간이 모아졌다.
“…보스가 말입니까?”
[그래. 누구랑 만날지도 알고 있는데, 내가 괜히 신경을 거스를 순 없는 일이지. ‘그’ 는 생각 이상으로 성정이 사나운 인물이라서 말이야. 하하,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꽤나 두려울 정도더군.]
‘그라고?’
봄버로서는, 다소 이해 못 할 소리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대화의 주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솔라스 란은 전혀 아랑곳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호남형의 미소를 그대로 드리우며.
마지막 전언을 보냈다.
[나중에 그를 마주하면 안부나 전해주게. 다시금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다고.]
* * *
“제기랄.”
아서는 욕설을 지껄였다.
그는 제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그의 것이 아니라, 방금 전까지 격한 표정으로 즐거움을 드러내던 소장의 것이었다.
연구소를 통째로 터뜨리고서 빠져나온 그들은 인근의 숲에 진입한 상태였다.
기가스는 따로 챙겨오지 않았다.
어차피 기가스는 세 기가 전부였던 데다, 이곳 연구소 시설에도 충분히 다수의 기체들이 대기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반대편 손에는 심장이 담긴 용기가 들려 있었다.
소장이 말했던, 카쉬파의 것이다.
카쉬파는 아서가 그토록 따르고 의지했던 존재다.
그의 정서가 전대 클론에 비해 다소 거칠은 성향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만든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이였다.
자연히 그에 따른 감정적인 동요는 감출 수 없었다.
“우웩!”
결국 더 이상의 감정을 주체못한 그가 토악질을 했다.
쩌적!
그 순간, 주변의 공간이 찢어지듯 벌어졌다.
새카만 균열이 모습을 드러내며, 수도꼭지가 틀어져 물이 터져나오듯 마력이 분출되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그의 동태를 관찰하던 블레이드가 말했다.
“흥분을 가라앉혀라, 아서. 주변 대기가 제멋대로 날뛰고 있어.”
“크윽! 하, 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 우욱!”
아서의 능력은 전반적으로 불안정한 편이다.
본래부터도 공간을 다루기에 가뜩이나 동적인 능력인데, 심지어 사용자의 성정마저도 불안정한 탓에 여러모로 그 기세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 편이었다.
연신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그가 어떻게든 마력을 다루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리 쉬워 보이지 않았다.
“쯧, 내가 이런 것까지 도와줘야 하나?”
그 모습을 멀리서부터 잠자코 지켜보던 유성이 다가왔다.
그는 혀를 차더니 이내 아서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댔다.
블레이드가 눈을 빛냈다.
“뭘 하려는 거지?”
“놔라! 내게 손을 대지…! 우욱!”
“잠자코 입이나 다물고 있어.”
그는 거칠게 저항하는 아서를 향해 한 마디를 하곤, 이내 내면으로 마력을 흘려보냈다.
모든 마나 사용자들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주변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격정적인 감정을 품으면 자연히 그에 따라 대기 중에 센 바람이 일고, 반대로 감정을 다스리면 다스릴수록 주변의 기류에 동화된다.
그러한 면에서 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클론체들은 썩 훌륭한 녀석들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감정의 변화가 고스란히 외부에까지 드러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큰 에너지를 가진 녀석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