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신 연합(4)
“큭, 이 자식!”
보통 놈이 아니다.
아서는 상대를 마주해서 첫 접전을 치르는 순간 직감했다.
기가스 EF-07 에 탑승한 상대 파일럿.
놈은 현저히 그들보다도 우위에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한가? 대체 어떻게?
그들은 다름 아닌 의도적으로 배양된 블레이드 시리즈의 배양체들이었다.
하물며 이 주둔 기지에는 그러한 클론체가 하나도 아닌 둘이나 배치되어 있었다.
이 두 명의 마나 사용자들은 완전체조차 능히 상대하는 충분한 전력들이었다.
각성자? 각성자도 마찬가지다. 유리 엘 바이어스가 아닌 그 나머지의 것들쯤은, 얼마든지 상대할 힘을 가진 이들이었다.
아니, 둘이니까 오히려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놈은 자신들을 가지고 놀고 있는 거지?
이건 말이 안 된다. 불가능하다고!
까득!
아서가 초조한 듯 이를 악물었다.
마력을 발출하느라 빛나는 그의 안광이 연신 바쁘게 움직였다.
쾅! 콰직!
놈의 기가스가 푸른 안광과 함께 쏘아지듯 대검을 휘둘렀다.
그에 아서와 블레이드가 타고 있던 기가스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손쉽게 밀려 나갔다.
‘이 새끼, 대체 정체가 뭐지?!’
그런 아서를 향해 블레이즈가 통신을 건네왔다.
[아서, 출력이 불안정하다! 계속해서 상시 발현 상태를 유지해!]
“제기랄, 알고 있다고! 나도 알고는 있는데, 이 새끼가…! 큭?!”
카가각!
거대한 기가스의 대검날이 그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쳐갔다.
콰드득.
강렬한 쇠붙이들의 마찰에 의해.
아서가 타고 있던 기체의 어깨 장갑이 통째로 뜯겨나갔다.
…어마어마한 출력이다. 괴물 같은 새끼.
상대는 거의 정신이 나간 수준의 강함과 성능을 내보여주고 있었다.
아서는 하마터면 자신의 어깨가 아닌 머리통이 뜯겨나갔을 뻔한 상황에 식은땀을 흘렸다.
순간적인 소름의 감지로 등줄기에서 땀이 질척할 정도로 새어나왔다.
‘놈과 우리의 기가스는 모두가 동일한 EF-07 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 정도로 성능 차이가 느껴지는 거지?’
분명 그들의 기가스들은 모두 같은 세대였다.
7세대를 뜻하는 EF-07 말이다.
비록 그 개조된 성능이나 외형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지언정 기본 성능은 거의 동등하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너무도 현저한 차이가 난다.
이건 차라리 인간이 아니라 출력이 미친 듯이 드높은 오래 묶은 완전체 놈을 상대하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출력을 보이는 주제에 여전히 지친 기색조차 없다. 심지어 검술이나 기교마저 블레이드를 찍어누를 정도야.’
상대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예리했다.
마치 언제 노려야 그들의 집중력이 흩트려지는지를 아는 듯했다.
그들 형제자매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력인 블레이드마저 같은 검격에서부터 놈에게 밀렸다.
똑같이 검을 휘두르는데 녀석은 아주 살짝 검격의 각도를 비트는 것만으로 블레이드와 아서가 휘두르는 두 검격을 거뜬히 막아내고는 오히려 역공을 취하기까지 했다.
기가스를 타는 것은 단순히 마력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거였다면 애당초 마력량만 미친 듯이 키운 놈들이 온 세상을 집어삼켰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타고난 재능으로서 더욱 큰 효율을 이루어내듯이.
기가스에 탑승하고 그것을 조종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블레이드와 아서는 그러한 면에서 분명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 마르스라는 이름의 남자였던가?
볼드워커 가문의 공작이라던 실력은 없고 자신감만 흘러넘치던 인간이 있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주제에 쓸데없이 자존심만 더럽게 많던 놈.
그 마르스 공작이라는 녀석은 블레이드가 나설 필요조차 없었다.
어찌나 볼품없는 실력을 가졌었던지, 아서 혼자만으로 나름대로 상대가 가능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어쨌거나 그들 클론의 위상은 그 정도였다.
이 태양계 전체에 널리 이름을 떨치는 각성자조차도 별 게 아닐 정도로 손쉽게 상대하는 새로운 시대의 능력자들.
그런데 상대는 대체 뭔가.
놈은 그들 둘을 상대로 아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건, 이건 그냥 상대조차 되질 않는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질질 끌려다닐 정도였다.
심지어 놈은 출력은 출력대로 높고 기교는 기교대로 압도적이었다.
빈틈은 없고 오히려 그들 둘을 상대로 빈틈을 강제적으로 비집고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주 제대로. 웃도는 아득한 실력자란 소리다.
그 천하의 유리 엘 바이어스조차 이 정도 괴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는 최소한 상대는 가능할 정도의 여지는 있었으니까 말이다.
쾅!
그가 타고 있던 기가스가 형편없이 뒤로 밀려나갔다.
조종석을 타고서 강렬한 충격이 한 차례 전해졌다.
“크…!”
이윽고 그의 안광의 불길이 꺼지려는 듯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그의 초조한 내면을 드러내는 듯이 말이다.
[아서!]
“빌어먹을, 닥쳐! 너 때문에 집중이 자꾸 흐트러지잖아!”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과도한 흥분과 함께, 아서의 기가스가 필요 이하의 수준으로까지 동화율이 떨어졌다.
기체가 순간 덜그럭거리며 끊김이 일었던 찰나.
눈앞의 상대방, 놈이 대검을 세우고서 달려들었다.
블레이드가 통신을 타고서 다급히 외쳤다.
[이대로는 안 돼! 각성기를 사용해라!]
쿠오오오!!
놈의 대검이 코앞에까지 들이닥쳤다.
그에 따라, 자연히 그 광경을 눈앞에서 분명하게 목도하고 있던 아서의 동공이 크게 확장했다.
‘제기랄!’
이판사판이다.
이젠 뒤가 없다. 무조건 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저 검날에 찍혀 그대로 죽고 말 거라는 걸 직감했다.
각성기는 사실상 최후의 보루였다.
목숨이 위험한, 다급한 순간에서야 무리를 해서라도 사용하는.
육체적인 여러 제약들이 뒤따르는 그들로서는 그 후폭풍이 절대로 만만찮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고오오-!
그의 안광이 이글거리며 삽시간에 타올랐다.
새파란 푸른 불꽃이 금세 가열되는 듯이 새하얗게 변하고, 이윽고 그것을 넘어 찬란한 황금빛까지 도달했다.
동시에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류가 빠르게 맥동하기 시작한 것이 느껴졌다.
신체의 전역에서부터 금세 이상 현상을 감지하고서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서는 이를 악문 상태 그대로 일선을 넘어섰다.
‘각성기, 공간 절…!’
눈앞의 놈이 있는 공간 그 자체를.
강제로 비틀고 찢어발기기 위해 손을 앞으로 내민 직후.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잡았다, 이 자식!’
놈이 오롯한 영역의 안에 들어 있었다.
이제 이대로 그대로 비틀어 쥐어짜내기만 하면…!
하지만 그 순간.
으스러지기 시작하던 주변 공간이, 돌연 자신의 통제 영역에서부터 벗어났다.
“무슨?!”
순간 자신의 조작이 먹통이라도 된 듯이 먹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을 때.
놈에게서부터 뻗어 나온 유형화된 푸른 마력이 그대로 그의 기가스를 붙잡았다.
“커헉?!”
어처구니가 없게도.
상대 기체는, 마치 손아귀를 펼쳐 잡는 시늉과 함께.
아서의 각성기를 ‘붙잡아’ 내었다.
우득. 우드득.
기체가 비명을 내질렀다.
기가스가 강제로 으스러지고 있었다.
삽시간에 손상이 크게 확대되었다.
금이 가고 기체의 각 연결 부위를 타고 흐르던 마력이 끊기고 방출되기 시작한다.
“커, 커헉. 이, 이런 미친 새…!”
상대는 괴물이었다.
아서의 전유물이었던 공간을 강제로 점거하고 으스러트리려던 에너지를 한순간에 깨부수더니 오히려 그를 무력화시켰다.
심지어 빠져나갈 수조차 없었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놈의 등판에 푸른 마력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팔이 솟아나 그를 단단히 포박했다.
[그 손 놔라!]
그런 놈을 노리고서 측면에서부터 블레이드가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녀석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블레이드의 검격을 죄다 틀어막았다.
그 모양새란 게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무슨 단단한 철벽에다 무의미해 보이는 공격으로 보이는 수준이었다.
블레이드는 잠재력만으로 따진다면 거의 홀로 완전체를 상대할 만한 역량의 뛰어난 클론체였다.
그런 녀석과 아서, 이렇게 둘이서 합공을 하고 있었는데도 철저하게 밀렸다.
심지어 상대는 그것으로도 모자라 각성기의 기미를 귀신같이 눈치채고서 그것을 틀어막았다.
그게 말이나 되는가?
“쿨럭.”
역류한 핏물이 목울대를 타고서 뿜어졌다.
조종석의 모니터 화면이 뿜어져 나온 피로 물들었다.
[…각성자도 아닌 주제에 각성기를 사용한다라.]
그때, 검을 맞댄 상대에게서부터 처음으로 음성이 들려왔다.
콰앙!
그는 옆의 무인 터렛에서부터 쏘아진 공격을 너무도 간단히 틀어막고는.
다시금 전방의 아서를 응시하더니 말했다.
[이해했다.]
구 연합 소속의 기가스, EF-07.
놈이 타고 있을 기체의 안광에서부터, 섬뜩한 안광이 번뜩였다.
[신 연합의 클론이라는 게 바로 너희를 뜻하는 말이었군.]
녀석의 시선을 마주친 아서는.
등 뒤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꼈다.
* * *
“리브.”
3년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리브의 체형은 과거와 차이가 없었다.
여전히 리브는.
예전 그녀 라피스와 유성이 처음으로 만났던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변화가 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방대한 마력량이었다.
“으으, 엄마. 여기 너무 공기가 무거워.”
리브는 침대에 누운 채로 앓는 소리를 흘렸다.
여전히 짧은 아이의 다리를 한 채로, 팡팡 침대를 때렸다.
하지만 라피스는 그저 쓴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써 타이르듯 말했다.
“리브, 힘들더라도 참아줘. 왜 그런지는 알고 있지?”
“응….”
그동안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던 게 아닐까 우려했던 라피스의 생각은 일단락되었다.
여전히 리브는 예전 그대로의 리브였다.
성정은 온순했다.
‘다행이야. 그래도 일년 여 사이에 무언가 바뀌었을 줄 알았는데…. 적어도 그런 일은 없는 모양인가.’
리브의 겉모습은 그저 평범한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결국 겉모습뿐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간에 리브는 결국 드라칸의 여왕체였다.
그것도 무려, 라피스의 배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마력량을 가진.
이미 라피스의 마력량은 3년 사이에 선대 가주인 유리와도 맞먹을 정도로 성장했다.
폭발적인 성장세였다.
그런 그녀조차도 가볍게 웃돌 정도로 리브의 마력량이 불어났다는 것은 그동안 잠들어 있었을지라도 꾸준한 성장을 동반했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리브의 성장은 일년 여 동안의 수면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꾸준히 이뤄졌다.
변함없이.
‘…이대로는 안 돼.’
라피스의 씁쓸한 표정이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 듯했다.
‘슬슬 마력 결계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어.’
그동안 리브가 수면에 취하며 마력이 일정한 상태였을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리브가 눈을 뜬 직후에서부터 방 안에 설치해두었던 마력 결계가 조금씩 불안정해지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게 깨지고 나면 그날이 신호탄이 될 터였다.
아마도 전함 메타트론에 타고 있을 모두가 리브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
함장과 부함장을 제하고서라도.
그 밖에 다른 각성자들 전원이 말이다.
“…….”
한편, 침대에 엎드린 채로 눈을 감고 있던 리브는.
스윽.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치켜떴다.
리브의 동공에는 희미하지만 푸른 빛이 머금어져 있었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새어나온 마력이, 조금씩 방안을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