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라피스 엘 바이어스(6)
한편 그 시각.
전함 메타트론은 한창 떠들썩한 와중이었다.
이미 유성에 대한 입소문은, 파다할 정도로 모든 이들에게 전파되고 있었다.
무려 셋이나 되는 각성자들이 배치되었음에도, 유성을 끝내 붙잡지 못했다.
오히려 그 불과 수십 초밖에 되지 않는 접전 만에 그들 셋 전부가 패했다.
그 충격적인 소식은, 전함 내에 이미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퍼진 뒤였다.
그리고 라피스 또한.
뒤늦게 그 소식을 접한 이들 중의 하나였다.
‘역시 내가 나섰어야 해.’
라피스는 입술 끝을 살짝 깨물었다.
쏴아아아!
쏟아지는 찬 물줄기를 맞으며.
그녀는 한창 생각에 잠겨 있었다.
라피스는 각성자들 셋을 모두 쓰러트리고 끝내는 도주하는 데까지 성공한 유성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내 기가스인 아크 드레드노트라면 녀석을 상대할 수 있었을 거야. 어쩌면 붙잡을 수도 있었겠지.’
만약 통제실에서부터 라피스가 출격하는 것을 허용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아니,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라피스 본인만은 그렇게 생각했다.
‘통제실에서는 내 출격을 허용했어야만 돼.’
만일 그녀가 직접 나섰다면. 그랬다라고 한다면.
상황은 지금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 라피스의 전용기는 ‘아크 드레드노트-G2’ 라 부르는 기체였다.
수많은 기가스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준전함 등급의 판정을 받은 예외 기체다.
다른 각성자들조차도 그 특유의 방대한 마력량으로 인해 기체의 조작조차 버거워할 정도의 강력한 출력을 지닌 거대한 기가스 말이다.
오로지 그녀만이 그 성능을 모두 발휘할 수 있었기에, 앞으로도 거의 유일하게 그녀를 위한 유일한 전용기나 마찬가지였다.
라피스의 특기 중의 특기는 전함에 준하는 수준의 원거리 포격으로 상대를 원거리에서부터 완전히 격멸시키는 것.
때문에 그녀는 이번 상황에서 자신이 나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각성자들마저 연달아 격파한 말도 안 되는 무위를 내보인 유성을 상대로 라피스를 출진시키는 일이었기에, 통제실의 전원이 거의 만장일치로서 거절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녀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제아무리 그녀의 전용기체가 크고 강하다고 한들.
유성 그를 상대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고 그들은 판정했다.
물론 이해가 가기는 하는 선택지였다.
유성이 세 차례나 연거푸 상대한 존재는 다름 아닌 각성자였으니까 말이다.
기가스에 탑승한 유성은 전함 메타트론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 자리를 벗어나는 쪽을 택했다.
때문에 통제실의 인원들은 그를 쫓는 것보다는 것을 선택하기보다 당장의 피해를 수습하는 쪽을 택했다.
하물며 마지막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녀, 엘 바이어스 후작가의 유리가 아니던가.
유리는 맨몸으로 완전체의 드라칸을 상대한 일화로도 유명한 최강의 각성자였다.
그녀는 무려 각성자 중의 하나를 잡아먹었을 정도로 그 악명높던 재해(災害), ‘루시퍼’마저 상대한 유일한 창사였다.
하지만 유성은 그런 각성자 유리마저 꺾었다. 그것도 불과 몇 수만에.
그 말도 안 되는 현실에.
통제실의 인원들 전원이 그에 대해 가지는 위기감이 크게 격상한 상황이었다.
삑.
라피스는 단말기기를 조종해 몇 번이고 병실에서부터 벌어진 유성의 전투 영상을 재생시켰다.
피잉-, 퍽!
짧고 예리한 찰나의 일격.
전투 영상은 짧았다. 애당초 유성의 접전은 불과 십여 초가 채 넘지 않을 정도의 찰나의 것이었다.
손날을 세운 수도를 날리는 유성의 공격은 간결하고 단조로웠다.
겉으로 보기엔 별 게 아니었으나, 저 간단한 동작에 담긴 일격들이 각성자 둘을 연달아 날려버렸다.
각성자들이 무슨 평범한 마나 사용자라도 되는 것처럼 차례로 볼썽사납게 튕겨나가는 게 영상에 보인다.
그 말도 안 되는 영상에, 라피스는 노려보듯 눈을 치켜떴다.
‘공격에 극의(極意)가 담겨 있다. 어떻게 저런 동작들만으로 각성자를 상대한 거지?’
유성이 보인 움직임은 수준 낮은 마나 사용자들조차 간단히 막아낼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짧고 간결한 동작이었다.
구태여 표현하자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고 별 게 아닌 동작으로 보이는 셈.
하지만 그 공격들이 드라칸을 맨몸으로 상대하는 각성자들마저 연이어 쓰러트렸다.
자연히 충격일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사실상 그로 인해.
전함 메타트론의 통제부 측에서는 상대방을 유례없는 위험인물로 지정했다.
그의 무력은 모두의 상식을 초월했다.
라피스가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봐도, 그녀가 알 수 있는 것은 마치 짜고 친 듯 각성자들이 패하는 영상뿐이었다.
화면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큭…….”
결국, 그녀는 더 이상의 격분을 참지 못하고 영상을 꺼버렸다.
쿵!
분한 듯이 샤워실의 벽면을 힘껏 때렸다.
수준 높은 마나 사용자의 일격이 벽을 울렸다.
라피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영상 속에서 느낀 것은 하나였다.
바로 아득한 역량의 차 말이다.
‘나와는 아예 수준 자체가 달라.’
라피스는 지난 3년여간 크게 성장했다.
그녀의 신체는 물론이고, 역량마저 가파르게 치솟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로서도 영상 속 유성을 보자니 그저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그때 그 시절.
3년 전의 유성, 바로 그에게서나 느꼈었던 그 아득한 기분의 재현이 다시금 느껴졌다.
‘유성.’
그녀는 샤워실의 물줄기를 맞으며.
그렇게 오래도록 벽에 기댄 채로 서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그의 존재가 그리웠다.
* * *
“하아.”
긴 시간 동안의 샤워를 마친 라피스가 나왔을 때.
그녀는 내면에 차올랐던 답답함을 어느 정도 치워낸 상태였다.
감정을 덜어낼 줄을 알아야 했다.
그녀는 그것을 목욕이라는 것과 함께 치워내는 게 습관이었다.
격한 전투를 몇 번이고 겪다 보면, 처음에는 제아무리 깨질 듯 기울었던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적응하기 마련이었다.
라피스도 마찬가지였다.
유성이 없던 시절 동안 몇 번이고 위태로운 순간들이 연달아 펼쳐졌지만.
그녀는 오늘날까지 끝끝내 살아남아 버틸 수 있었다.
물론 그 앙금들은 여전히 남아있을지라도, 비록 꿉꿉하게나마 가슴 속 한켠에 묻어두는 정도로 버텨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이제 라피스는 완전한 어른이 되었다.
나이로도, 정신적으로도, 성인이 된 셈이다.
지금의 라피스는 자신의 숙소로 아무도 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함장인 라프티리아와 더불어 가장 안쪽의 깊숙한 개인실을 따로 쓰고 있었다.
단순한 사생활 따위가 이유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숨겨야 할 하나의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피스는 복잡한 얼굴로 낮게 중얼거렸다.
“…리브.”
그녀가 이토록 사생활에 철저해야만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리브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쇄액. 쇄액.
고른 숨소리와 함께.
곤히 잠들어 있는 리브가 보였다.
“…….”
라피스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러한 리브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오로지 유일하게 그녀의 혈연인 유리를 제외한다면, 어느 누구도 리브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유난히 주변 기척을 읽어내는 데 특화한 각성자들인 마르스 공작이나 에스메랄다 후작들조차도 그러했다.
고오오-.
낮게 진동하는 마력 흡수재가 그녀의 방 전체를 푸르게 물들이고 있었다.
라피스의 방은 24시간 그러한 방식으로 주변의 에너지를 모조리 빨아들인다.
마나는 모든 인간들을 비롯하여, 동식물, 심지어는 사물과 환경에조차 존재하는 에너지였다.
그런 에너지를 온종일 빨아들이는 기기의 안에서 생활하다니.
당연하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진작 기가 빨려 죽을 정도로 피곤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이런 피곤함을 감내할 만한 이유가 그녀에게는 있었다.
라피스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리브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선 힘들더라도 감내할 수밖에.’
유성이 죽은 지금에 와선, 더 이상 리브를 지켜줄 인간은 오로지 라피스밖에는 없었다.
리브는 드라칸이었다. 그것도, 한낱 평범한 개체 따위가 아닌 무려 여왕체 등급의.
그만한 현실을 감내할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어쩌면 라피스마저도 무슨 식의 처벌을 당할지 모른다.
아니, 확실히 당하고도 남을 터였다.
지금의 세상은 세력이 무시무시하게 번져나가는 드라칸과의 전쟁으로 온 세상이 한창 신음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드라칸은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는 여론이 강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지금의 리브는 주욱 잠들은 채로 있었다.
이렇게 된 지는 벌써 이년을 훌쩍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이유를 알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으음.”
쩝쩝.
그때. 돌연, 잠들어 있던 리브가 잠꼬대라도 하는 것인지 입맛을 다시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라피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래도록 경직되었던 그녀의 표정이 처음으로 풀렸다.
그래, 이걸로 된 거다.
‘눈을 뜨진 않더라도 리브는 리브니까.’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일 때의 이야기였다.
리브가 어떻게 된 것인지, 무언가 문제라도 생긴 것인지.
그녀의 친할머니인 유리와 함께 백방으로 알아보고 의료기기들을 몰래 들여 검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속해 있던 본질의 영역부터가 다른 탓이었을까.
애당초 무엇 하나 그들이 알 수 있던 것은 없었다.
단지 유일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꿈을 꾸듯 오랜 수면 기간에 들었다는 것뿐.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처럼 한 것이 전부일 뿐이다.
“그래도 괜찮은지 확인은 해야 하니까.”
라피스는 이제는 익숙한 듯이 옆의 검측 기기들을 확인했다.
삑. 삑.
옆에 자리한 모니터 화면에, 일정한 주파수가 보인다.
리브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곧 모두 정상 수치임을 확인한 라피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오늘도 괜찮은 것 같네, 리브.”
리브가 의식을 잃은 지 지난 이년.
그 사이 라피스는 어째서 리브가 이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 이유를 알기 위해 헤매이다 이미 의료 전문가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의 상태가 되어 있었다.
사실, 이제는 그녀에게도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답답했지만 그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해야 할 측정을 모두 마친 라피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단말기기를 꺼내 들고선 다시금 유성과의 전투 장면을 하나하나 돌려보기 시작했다.
피잉-, 퍽!
그 짧고 간결한 수 초 동안의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 재생시키며 무엇이라도 건져내기 위해 한창 몰두하고 있던 찰나였다.
“엄마?”
돌연, 옆의 침대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라피스는, 그만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리, 리브?”
이제껏 어떠한 변화도 없이 잠들어 있었던 리브가.
침대에서부터 몸을 일으킨 채, 멀쩡히 눈을 뜨고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