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라피스 엘 바이어스(5)
고오오-!
격납고에는 두 명의 인간들이 있었다.
한 명은 한때 연합의 수도를 지키던 후작가의 가주 유리 엘 바이어스.
다른 한 명은 유성이라 불리는 이였다.
세 번째 각성자의 존재가 누구인지.
이제야 그 정체를 확인한 유성의 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반대편에 대치하듯 선 유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유리는 예전, 그가 기억하던 시절의 모습과는 다소 달라져 있었다.
왼눈에는 안대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팔은 본래의 것이 아닌 기계팔로 대체되어 있는 게 보였다.
드라칸과의 지독한 전쟁은 세계의 꼭짓점에 우뚝 선 각성자라도 결코 피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의 유리는 멀쩡한 모양새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아마도 모종의 이유로 왼눈과 왼팔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지금, 유리는 손에 예의 그 거대한 마상창을 쥐고 있었다. 강력한 신체 능력을 지닌 각성자가 무기를 손에 쥠의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바로 싸움을 위해서이겠지.
유성은 푸른 안광을 빛내는 시선 그대로 입을 열었다.
“보내주지 않으실 겁니까?”
유성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르스 공작에게서부터 빼앗아 든 검을 결코 내리지 않은 채였다.
지금 그들의 사이는 예전과는 다르다.
유성은 조금도 흔들림 따윈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의 입에서 원하는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면 즉각 대응할 생각이었다.
설령 그녀가 눈과 팔을 잃는 부상을 입었다고 할지라도, 지금 그에게는 그녀를 배려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바로 그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던 유리는 피식 웃음만을 흘릴 뿐이었다.
그녀는 유성을 향해서 올곧게 겨누고 있던 거대한 마상창을 천천히 내리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 도달했다는 건 그 두 놈들을 한순간이나마 이겼다는 소리겠지.”
“…그게 무슨 상관이라도?”
“아니. 그거면 됐다. 충분해.”
그로써는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릴 하고 있었다.
유성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상대는 태양계 전체에서 가장 위명이 자자한 초인 중의 초인이었다.
찰나의 순간, 찰나의 빈틈만 있다면 그녀는 얼마든지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방심을 읽어내고 파고들 만한 실력자였다.
실제로 유성이 두 각성자들인 마르스 공작과 에스메랄다 후작을 일순간 제압했던 그 방식을, 그녀는 언제고 역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녀가 그 무엇도 장착하지 않은 순수한 맨주먹만으로 날뛰던 우주 해적의 전함을 깨부순 일화는 지금도 유명했다.
단 한 번만 공격을 허용해도 유성은 산산이 터져나가도 이상할 게 없다.
유리는 턱짓으로 옆의 기가스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가라.”
“……?”
전혀 이해 못 할 소리였다.
지금, 적이나 다름없이 대치하고 있던 상태인 자신을 향해서 가라고 한 건가?
유성은 똑똑히 들었음에도 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황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는 그럴 생각이 아니라는 듯 소리쳤다.
“치프! 격납고 문을 열도록!”
“이미 준비는 다 해놨소!”
덜컹!
그 순간, 격납고가 강렬한 진동을 일으켰다.
강한 흔들림과 함께, 닫혀있던 개폐문이 쿠구궁 열리기 시작했다.
세찬 바람이 격납고의 공기를 빨아당기기 시작했다.
강렬한 기류가 내부에 몰아닥쳤다.
머리칼이 사정없이 나부끼는 칼바람 속에서, 유리가 입을 열었다.
“쯧, 너처럼 각성자를 둘씩이나 두들겨 팰만한 녀석이 한낱 성능 떨어지는 복제품일 리가 없지. 넌 틀림없는 진짜다. 널 이미 상대해보았기에 할 수 있는 소리야.”
그 말에 유성은 대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유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가 진짜 유성 본인임을 알아차린 게 틀림없었다.
그 클론이라는 것들과 그것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 또한 말이다.
그때였다.
뒤편의 복도 너머에서부터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몇몇의 작은 마력 반응들.
무장한 군인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유성과 유리. 둘은 각성자였다.
저 조그마한 기척을 감지하지 못할 턱이 없었다.
그것을 느꼈던 유리가 잠시간 뒤편으로 시선을 주다가 입을 열었다.
“날 쳐라.”
“괜찮겠습니까?”
“안 될 것도 없지. 정황상 내가 너한테 졌다는 흔적 정도는 이곳에 만들어 놔야 나중에 내가 곤란하지 않을 것 아니냐. 그렇지 않나?”
“그건, 그렇겠지만.”
“시간이 없다. 당장 해.”
끄덕.
그 말에, 유성은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였다.
이미 군인들의 기척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저들이 이곳이 도달하기 전에 유리는 유성의 손 아래 쓰러지는 상황을 보여줘야만 했다.
유성은 마력을 두른 주먹으로써 힘껏 유리의 복부를 후려쳤다.
그 순간까지도, 정말로 유리는 일말의 방어조차도 하지 않았다. 순순히 그의 공격을 허용했을 뿐이다.
퍽!
둔탁한 듯하면서도 분명한 타격음이 한 차례 울렸다.
“큭!”
일순간 이를 꽉 깨물었던 유리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생각보다 아픈….”
그녀는 채 말을 끝마치지도 못하고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정신을 잃은 그녀를 뒤로 한 채로, 유성이 열린 기가스의 조종석에 도약하듯 뛰어 탑승했다.
한가롭게 머뭇거리기나 할 여유 따윈 없었다.
그는 시간이 촉박했다.
쿠우웅!
복도와 이어지는 문이 열렸다.
다수의 무장한 군인들이 안으로 밀어닥치는 게 보였다.
“저기 있다! 기가스에 탑승하고 있어!”
“발포해!”
타다다당!
쏘아지는 총알들.
하지만 유성 쪽이 가까스로 한발 빨랐다.
조종석의 개폐문이 닫히며, 쏟아지는 총알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유성은 빠른 속도로 잠금장치를 해제하곤 기가스의 조종간을 조작했다.
그의 눈이 모니터 화면을 바쁘게 움직이며 살폈다.
‘EF-07. 못 본 사이에 기체가 한 단계 발전했다. 새로운 신 기체야.’
400년 전의 대전쟁 이래로, 지난 수백여 년간.
기가스들은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을 조금의 발전조차도 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 와서 유성은 그 대략적인 전후 사정에 관해서 알고 있었다.
수도가 무너지기 전.
황녀로서 자신의 신분을 위장했던 알파는 그와 마주친 날 자신이 행했던 일들을 스스럼없이 모두 공개했다.
‘그것은 알파에 의한 의도적인 기술의 통제였지. 기가스의 기술은 발전하지 않은 게 아니라, 발전하지 못한 거였었으니까.’
황녀로서 신분을 가장한 알파의 의도에 의해서.
세간에서부터 기가스에 대한 기술의 발전은 강제로 멈춰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사망과 함께, 기술의 통제가 해제됨과 함께 기가스에 대한 기술력이 빠르게 발전한 것이었다.
불과 삼 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한 단계가 발전해 있었다.
벌써 하나의 세대를 건너뛴 상태였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 녀석이 그런 일을 벌인 것인지는 아직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기이잉-.
유성은 조종간을 붙잡은 채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무장한 군인들이 바깥에서부터 소리치는 게 들려온다.
“내려!”
“여기 유리 님이 쓰러져 있습니다!”
“뭐라고?!”
저 멀리 치프가 보였다.
‘치프.’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기가스에 타고 있는 유성이었으니만큼 그럴 리가 없지만, 그는 잠시간 서로 시선이 맞닿았음을 느꼈다.
치프. 그리고 유리.
그는 속으로 둘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들이 돕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결코 탈출할 수는 없을 터였다. 어쩌면 더 나아가지 못하고서 이 자리에서 붙잡혔을 수도 있었겠지.
번쩍!
유성 그가 탑승한 기가스의 안광에 푸른 불이 번뜩이자, 군인들이 놀라서 물러서는 게 보였다.
기가스에 탑승한 유성은 그들에게 충분한 위협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에게 그럴 만한 생각이나 의도 따윈 전혀 없지만, 저들은 필시 그렇게 느끼고 있을 터였다.
쿠우웅! 쿠웅!
유성이 탑승한 기가스 EF-07 이 열린 개폐문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드넓은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곧, 유성이 탄 기가스가 전함 메타트론을 빠져나와 대기를 가로지르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번-쩍!
전함 메타트론에서부터 쏘아진 포격이 그를 노렸다.
‘날 죽일 셈이다. 봐줄 생각 따윈 추호도 없어.’
사정을 봐주려는 일말의 기미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주포에서부터 쏘아지는 가공할 에너지에서부터, 그를 반드시 적중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왔다.
유성은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지나쳐가는 포격의 떨림에 기체가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가까스로 공격을 회피했다.
쿠오오오-.
이내 옅어지는 공격의 기세.
두꺼웠던 주포의 섬광이 얇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자, 더 이상 전함 메타트론에서부터 가해지는 공격은 없었다.
마침내 사정거리를 벗어난 것이었다.
유성은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을 더 기가스를 움직여 벗어나야만 했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족히 반나절 동안을 더 대기를 가로지르며 나아가고서야.
그는 마침내 속도를 줄일 수 있었다.
“하아, 하아.”
그동안 유성의 숨결은 한결 거칠어져 있었다.
쉬지도 못한 채로 온종일 동안을 기가스를 조종했기 때문이었다.
유성이 까마득한 상공 영역에서부터 벗어나 도달한 곳은 울창한 숲 지대였다.
인간의 발길 따윈 닿지 않은, 녹색이 우거진 미지의 지대였다.
삑.
유성은 모니터 화면을 조작했다.
주변의 대략적인 지리를 담은 맵(Map) 이 화면 위로 떠오르며 적당한 지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곧 그는 착륙할 만한 장소를 발견해냈다.
유난히 움푹 들어가서, 분지의 지형을 가진 지점이 보였다.
“저기다.”
유성은 기체를 조작하여 그쪽으로 움직였다.
* * *
쏴아아아-.
맑은 물줄기가 위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기다란 강이 펼쳐져 있었다.
흐르는 강물에 고개를 파묻었던 유성이 이내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일어섰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여러 복잡한 상념들이 담긴 한숨이었다.
그는 잠시간 멍하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파란 구름들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이곳 행성 테라에서는 어디서고 마주할 수 있는 평화로운 광경이다.
하지만, 정작 유성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눈을 뜬 직후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한치도 여유가 없었을 정도로 정신없는 순간들을 보내왔다.
지나쳐가는 구름들을 바라보며 유성은 잠시간 상념에 젖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들었던 것들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클론. 그게 대체 무엇인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나와 관련이 있다.’
아마도 카쉬파라고 했던가.
그 또한 유성 그 자신과 관련이 있을 터였다.
어째서 유성이 이토록 저들에게 경계를 받아야 했는지.
지난 3년간 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인지.
일단 그것들에 대한 실마리부터 얻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