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라피스 엘 바이어스(4)
수갑을 부서뜨린 유성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서슬 퍼렇게 빛나는 안광이, 벽면 너머의 존재를 의식했다.
“꼼짝 마! 손들어라!”
심문관이 총을 뽑아 들며 외쳤다.
그럼에도 유성의 반응은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그는 오로지 벽 너머의 남자, 아스트라 부함장만이 보인다는 듯이.
그쪽만을 바라본 채로 입을 열었다.
“직접 모습을 드러내시죠, 부함장.”
그의 말에 대한 대답은 금방 튀어나왔다.
전자음과 함께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다수의 무장한 군인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척!
그들은 장전된 총을 그에게로 겨누었다.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둘러싸인 상황.
조금만 움직임을 내보여도 총을 발포하겠다는 의지가 명백하게 보였다.
그런 싸늘한 기류 속에서, 스피커를 타고서 아스트라 부함장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미안하네만 그럴 수는 없겠네.]
“어째서입니까?”
[우리가 아는 자네라면 충분히 이렇게 반응할 거라 예상하고 있지만, 그 또한 ‘신연합’의 클론이 위장한 모습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클론(Clone)이라고…?’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전혀 이해 못 할 소리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으나, 아까 전부터 그가 전혀 이해 못 할만한 소리들만을 하고 있었다.
카쉬파 그레고리 반시와 신연합. 거기에 클론이라.
거기에 유성을 경계해야만 할만한 모종의 이유가 있음을 그는 직감했다.
벽 너머의 남자.
아스트라 부함장의 몸체에 흐르는 마력으로 인해, 그의 형체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우리들로서는 자네가 진짜라는 가정 따윈 애초에 하고 있지조차 않아.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지.]
‘내가 진짜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도 않았다는 건가. 하긴, 그럴 만도 하겠지만.’
이해한다.
유성도 충분히 납득하는 현실이었다.
그가 다시금 돌아왔다는 것은, 분명 도심의 일부마저 날려 먹었을 게 분명한 그 막대한 폭발에서조차 버텨내었다는 소리와 동일했으니까 말이다.
무려 여왕체와 하나로 융합하여 에너지를 한데 합쳤던 완전체의 폭발이었다.
상식적으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규모는 아마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만한 규모에서 살아남는 것은 함선 규격의 건조물이라도 불가능한 소리였다.
[얌전히 있겠다 약속한다면, 구금 정도로 면해주도록 하겠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군요. 죽어가던 저를 다시금 되살려준 거야 고맙지만, 그게 호의로 그런 게 아닌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나. 마르스 공작님, 에스메랄다 후작님. 부탁하겠습니다.]
‘뭐라고?’
유성이 눈을 치켜뜨며 의문을 발하기도 전에.
기잉.
그를 향해서 총기를 겨누고 있던 무장한 군인들 중의 둘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헬멧을 벗어던졌다.
“쯧. 귀찮게 별 걸 다 시키는군.”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유성의 눈이 한층 커졌다.
드러난 군인의 얼굴은 세상사에 별반 관심이 없는 그조차도 알고 있는 이였다.
“…마르스 볼드워커 공작?”
드러난 얼굴의 정체는.
바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인물 중의 하나인 마르스 공작이라는 남자였다.
태양계 곳곳에 흩어진 가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명문 중의 하나.
50여 년 전 각성자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는 볼드워커 공작가 가문의 현 가주.
세계에 그 재능과 힘으로 이름이 널리 퍼진 각성자이자.
고위 가문의 주인이기도 한 남자.
하지만 그 일면을 마주하기가 무섭게 든 생각은, 바로 어떻게? 였다.
대체 무슨 수로 예리하기 짝이 없었던 유성의 감각을 피해내고서 이 자리에 당당하게 서 있던 것인가.
그의 감각은 각성자라 할지라도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하기 그지없던 탓이었다.
하지만 곧, 유성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력 봉인 수갑을 차고 있던 게 너 하나만이었던 줄 아는 거냐?”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 나풀거리는 기다란 머리칼을 드러내며.
볼드워커 가문의 마르스 공작이 사납게 웃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마력 봉인 수갑을 들어 보였다.
단 한 점의 기류조차도 움직이지 않는 채로 완벽하게 정지한 그의 마력은.
그가 수갑을 해제하자마자 폭풍처럼 거친 그 일면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유성은 그의 옆에 서 있는, 다른 한 명의 군인에게로 또한 시선이 향했다.
아스트라 부함장이 말한 각성자는 또 한 명이 더 있었다.
이미 백여 년도 전부터 유리 엘 바이어스와 함께 이 태양계에 각성자로서 존재했다던.
또 한 명의 고위 가문의 가주. 에스메랄다 후작.
“…하.”
유성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빈틈없이 자신을 에워싼 무리들을 둘러다 보며 입을 열었다.
“고작 나 하나를 잡으려고 각성자 둘이 이 자리에 모인 건가? 심지어 군인들까지 대동하고?”
“각성자가 둘이라고? 아니, 셋이지. 네가 어떤 놈인 줄을 알고서 우리들이 그렇게 빠져나갈 구멍을 줄 거 같나?”
심지어 둘도 아니고 셋?
단순한 허세인가 싶었지만, 저 자신감에 가득 들어찬 마르스 공작의 시선을 보자니 또 그것도 아닐 거란 생각이 일었다.
저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 또다른 각성자가 있다는 거다.
‘아주 제대로 날 붙잡기로 작정했군.’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단단히 작정들을 한 모양이었다.
하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아스트라 부함장이 이제껏 목격해온 유성이란 존재는 몇 번이고 불가능한 상황들을 헤쳐나온 존재였으니까.
그런 부함장이 유성을 적으로서 규명했다면.
틀림없이 그를 확실히 붙잡을 전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당연한 거였을 터다.
유성이 아는 부함장이라면, 확신이 없고서는 결코 나서려 하지 않는 철저한 유형의 인간이었으니까 말이다.
뽑아 든 검을 든 채로 유성을 노려다 보던 마르스 공작이 입을 열었다.
“어이. 이봐, 부함장. 정말 이 녀석이 그렇게 위험한 거냐?”
그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저 남자는 이제껏 저희들이 보아온 어떤 클론보다도 더욱 진짜에 가까운 상대입니다. 성별도 다르고 능력마저도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했던 카쉬파와 동급으로 생각하지 마시죠. 저기 있는 남자는 틀림없는 괴물입니다.]
“그래. 뭐, 하긴 마나 능력을 각성한 지 고작 수십 일 정도 만에 각성자에 준하는 능력자가 되었었다고 그랬었지? 믿을 수도 없는 소리지만, 그렇다고 우습게 볼만한 상대는 결코 아니겠지.”
“…….”
괴물이라.
그렇게까지 높여서 평가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 대상이 유성 그 자체라는 것은 전혀 달갑지 않은 현실이었다.
태양계를 모두 뒤져도 한 손에 꼽는다는 각성자가 대체 몇씩이나 이곳에 있어서 그들이 전부 유성 그 하나만을 노린다는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대처하지 않을 수도 없겠군. 순순히 잡혀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니.’
유성의 눈이 일순 에스메랄다 후작의 팔목으로 향했다.
그녀는 아직까지 수갑을 채 해제하지 않은 상태였다. 즉, 사실상 무능력자나 마찬가지인 상황.
마르스와는 달리 손쉽게 제압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말이었다.
‘대치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좋겠지만. 더 시간을 줬다간 불리해지는 건 내 쪽이다.’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움직인다.
스팟.
거의 전조조차도 없이, 유성이 탄환처럼 쏘아지며 달려들었다.
그의 바짝 세워진 수도(手刀)가 에스메랄다 후작을 후려쳤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벽면으로 에스메랄다 후작이 처박혔다.
“이 새끼가!!”
동료의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목격한 마르스 공작이 달려든다.
그가 발끈하여 검을 휘두르는 게 보이지만, 유성은 그저 짧게 혀를 차는 게 다였을 뿐이다.
“쯧.”
50여 년 전쯤에 새로 각성자에 올라선 남자라고 했던가?
과연 그래서 그런지, 검격은 어설펐다.
빠르지만 단지 그게 전부였다.
너무도 손쉽게 회피한 유성은.
텁.
오히려 파고들어 마르스 공작의 검 손잡이를 단단히 붙잡곤.
“큭?!”
당황하는 그를 힘껏 걷어찼다.
“크악!”
포탄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벽을 깨부수고 마르스 공작이 튕겨 나갔다.
손맛은 있었다.
타격은 제대로 먹혔을 것이다.
먼지가 피어오르는 저편을 향해, 유성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손에 든 검을 마르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흔들어 보였다.
“이 검은, 고맙게 받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유성이 몸을 돌리려는 순간.
주변에 대기하던 군인들이 외쳤다.
“모두 쏴!!”
타다당!!
총알이 터져 나왔다.
사방에서부터 일말의 빈틈조차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탄막들의 모습.
‘각성기.’
그에, 유성의 눈이 일순 번뜩였다.
‘사고가속(思考加速).’
일순 찬란한 황금빛이 그의 동공에서부터 번쩍임과 동시에.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시야 아래에 놓였다.
눈에 띄게 느려진 세상 속에서, 그는 느릿하게 자신을 노리고서 쏘아져 다가오는 탄환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무수한 총탄을 회피하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자세를 낮추고 공격을 하나하나 회피해가며.
마침내 모든 탄환들의 각도에서부터 빗겨갔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
그는 재빨리 각성기를 해제했다.
타다다당!
그가 능력을 해제하자마자 다시금 급가속한 총알들이 뒤편을 향해 퍼버벅 박혔다.
유성은 민첩하게 그들을 밀치고 달려나가 정면을 향해 검을 쩍, 휘둘렀다.
서걱!
너무도 손쉽게.
전함의 합금 벽면이 무른 무처럼 베여나가고, 그는 그 틈새로 그대로 빠져나갔다.
“다들 뭐하나! 쫓아!!”
군인들이 서둘러 도망친 유성의 뒤를 따랐다.
* * *
유성은 복도를 내달렸다.
“놈이다!”
“쏴!!”
타다당!
간혹 그를 마주친 군인들이 재빨리 총을 들어 쏘려 하였지만, 오히려 그의 쪽이 훨씬 빨랐다.
진작부터 주변의 마력을 감지하고 있던 그에게 있어 다가오는 사람의 기척을 읽어내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일이었다.
쾅! 콰직!
그는 대번에 전함의 벽면을 몇 개씩이나 베어 넘기며 도주에 도주를 감행했다.
하지만 그토록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유성은 몇 가지의 수를 내다보고 있었다.
‘서둘러야 한다. 금방 저 각성자들은 날 노리고서 쫓아올 거야.’
각성자란 건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다.
맨몸으로 상위체 등급의 드라칸조차 패 죽이는 괴물들이 바로 각성자라는 존재다.
제아무리 유성이 일순간 방심을 유도해서 마르스 공작과 에스메랄다 후작이라는 자들을 무력화시켰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은 찰나에 불과할 뿐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저들이 단단히 경각심을 일으킨 상태였다면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을 터다.
그러니 둘은 금세 입었던 타격을 회복하고서 유성을 쫓아올 터였다.
‘잡히면 얌전히는 끝나지 않을 거야. 무조건 무슨 일을 당해도 당하겠지.’
저들의 분위기로 보건대 제아무리 유성이 진짜라고 주장해도 소용이 없을 듯했다.
이미 그는 붙잡힌 상황에서부터 척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였다.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야 돼.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유성이 향하는 방향은 다름 아닌 격납고 쪽이었다.
여긴 전함 메타트론이었다.
한때 그가 직접 거주하며 몇 번이고 들락거렸던 만큼, 구조라면 눈을 감고서도 훤했다.
쾅!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격벽을 날려버리며 마침내 격납고에 도착한 유성은.
곧, 의외의 인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녀는 유성을 응시하고서 입을 열었다.
“유성. 네가 이쪽으로 올 줄 알고 있었지.”
“당신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내색조차 없었던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꿈틀거렸다.
이곳에 와서야, 마르스 공작이 언급했던 세 번째 각성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유리 님.”
유리. 라피스의 혈연이자, 엘 바이어스 후작가의 가주.
그녀가 유성의 앞에 서 있었다.
키이잉!
곧, 차게 가라앉은 유성이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제 앞을 막으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