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라피스 엘 바이어스(2)
번-쩍!
울창한 숲지대의 어딘가.
그곳에, 돌연 강렬한 마력 반응이 발출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곧,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진동과 함께 마력 게이트가 열렸다.
하지만 거대한 폭발과 함께 나타난 게이트는 그 기세나 크기와는 별개로 의외로 너무도 조용히 나타났다가 다시금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 나타난 것은.
한 명의 인영이었다.
“콜록, 콜록.”
그는 거친 기침과 함께 바닥에 스러질 듯이 무릎을 꿇었다.
정신이 없었다. 머리는 어질어질거렸고, 시야는 팽팽 돌았다.
과도한 마력의 팽창과 시공의 거스름은 한낱 인간의 육체로 겪기에는 너무도 강한 압박을 가져다 주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그대로 정신을 잃을 듯했다.
강한 압력은 신체의 곳곳에 불균형을 가져다주었다.
뒤틀린 오장육부에서부터 비롯된 고통.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그는 어떻게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로 정신을 부여잡았다.
당장 이곳이 정확히 어떠한 지점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록 유성 그가 이전의 시간 지점을 정확히 기억하고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왔다고는 해도, 이곳이 어디일지는 확신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산소는 존재하는 곳이다. 흙과 나무도 있어.’
그의 고개가 한곳으로 돌아갔다.
‘기가스는……. 멀쩡하진 못하군. 써먹진 못하겠어.’
그가 타고서 온 기가스 EF-02는 박살이 난 채였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어떠한 환경에서조차 활동이 가능하도록 제작된 기가스가 이번에도 가해지는 압력을 버텨내지 못했다.
유성이 지나쳐 온 시공의 흐름은 그 정도로 거센 반발과 에너지의 충돌이 연속된 공간이었다.
그는 쓰게 웃었다.
가능한 최대한의 여력을 남기고서 행한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과연 저번에는 이런 압박을 어떻게 이겨냈나 싶을지가 의문일 정도였다.
‘살았으니 된 거지. 적어도 당장은.’
스윽.
그는 지면을 짚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통 속에서도 육체는 조금씩 수복을 시작하고 있었고, 그 회복속도는 이미 한낱 평범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때였다.
오싹!
유성은 싸늘한 한기를 느꼈다.
그것을 감지하자마자 그는 땅을 박차고서 힘껏 도약했다.
본능에서부터 비롯된, 육체의 반사적인 움직임과 함께.
뒤편에서부터 날아든 무언가의 공격이 그가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유성의 시선이 다급히 뒤편을 향했다.
[■■■■…….]
으르렁거리는 듯하면서도 이질적인 소음.
싸늘하지만, 유성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익숙한 종류의 것이었다.
‘드라칸!’
그 정체를 파악함과 동시에, 유성의 눈이 다급해졌다.
[■■■■!]
놈에게서부터 느껴지는 마력량은 상당했다.
녀석의 등급은 최소 전투체였다.
그저 흔해빠진 양산체 등급 따위가 아니었다. 고위험 개체다.
촤아악!
마치 외계 문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질적인 형태를 띤 그것은, 여러 촉수들을 마치 채찍처럼 휘둘렀다.
유성이 다급히 자리를 굴러 회피하기가 무섭게 재차 다음 공격이 따라붙었다.
‘게이트의 마력 반응에 이끌려 온 개체인 건가……!’
녀석에 대한 추측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드라칸이라면 전생에서부터 현생에 이르기까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상대했던 그였다.
게이트를 강제로 발생시키며 발생한 강한 마력 입자에, 이끌리듯 찾아온 게 분명했다.
키이잉-!
그의 눈동자가 푸른 안광을 발출했다.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귀기가, 강렬한 기세를 발현시켰다.
‘놈을 상대해야 해. 시간을 끌면서 도망치는 선택지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유성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마력 문제는 아니었다. 아직 그 여분의 여력이라면 남아있었다.
다만 육체가 당장에라도 깨질 듯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간신히 육체의 수복 단계를 진입하려던 찰나, 드라칸이 기습을 가한 상태다.
지금 상황에서 상황을 오래 끌었다간 애써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그의 육체는 금이 가듯 부서져 버릴지도 몰랐다.
어떤 식으로든 오래 끌 수는 없었다.
‘두 번은 없다. 단 한 번에 놈을 끝장내야 해. 아니면 내가 당한다.’
유성의 마력이 그가 뽑아 든 나이프에 머물렀다.
만일을 대비해 챙겨 든 간소한 간이 무장이었다.
‘일격. 놈을 쓰러트린다.’
물론 그랬다간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 터였다.
드라칸은 혼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개인이 아닌 여럿으로서 돌아다니는 군체 무리형의 존재들이었다.
다른 놈이 나타나면 필연적으로 그때에 가서는 유성이 죽고야 말겠지만, 지금 그는 그러한 사정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휘리릭!
쏘아지는 연속된 공격을 간발의 차로 아슬아슬하게 회피해내던 유성이 순간적인 흐름을 읽어냈다.
놈의 촉수가 대부분 그를 노리고 쏘아진 상태였다.
녀석의 옆을 지키는 촉수는, 하나뿐.
유성은 적기임을 알아차렸다.
‘바로 지금이다!’
이제는 피할 여력조차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였다.
스팟!
단숨에 다리에 온 힘을 집중하고서 놈에게로 파고들었다.
손에 쥔 한 자루의 나이프.
오로지 그것만이 그의 유일한 무기이자 공격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콰직!
쏘아진 놈의 촉수가 유성의 어깨를 스치듯이 지나쳐갔다.
팔목의 살점이 주먹 크기는 족히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유성의 눈에 흔들림은 없었다.
그는 오로지 눈앞의 상대만을 노려보며 그대로 달려들고 파고들었다.
푸욱!
그 결과.
놀랍도록 부드럽게 놈의 갑각을 파고들어 박혔다.
꿰뚫은 지점은 놈의 마력이 한데 뭉쳐있는 마력핵 지점이었다.
급소, 혹은 심장과 같은 지점.
유성의 치명적인 일격에 적중한 놈의 몸체 내부에서부터.
퍼억, 소리와 함께 안에서부터 무언가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나름 강한 마력을 머금었던 놈의 마력핵이 작은 폭탄처럼 터지며 놈의 사지를 산산이 터뜨렸다.
후두둑, 터져 나온 놈의 푸른빛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허억, 허억. 성, 공이다.”
유성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땅을 짚은 채로, 그가 가쁜 숨을 내쉬며 정신을 부여잡았다.
쩌저적.
유성의 육체에 금이 갔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에 기다란 실선이 가는 게 보였다.
이를 악물었다.
‘버텨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아무도 없는 이런 곳에서 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유성은 아직 만나야 할 이들이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서 걸음을 내디뎠다.
문제라도 생긴 것인지 유난히 고통이 이는 한쪽 어깨를 부여잡은 채로.
숲을 걸어나갔다.
그때였다.
쿠웅.
묵직한 진동이 들려왔다.
“……?”
유성이 반쯤 감긴 눈을 한 채로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설, 마?’
익숙한 마력. 익숙한 발소리.
[■■■■.]
다가선 것은 또 다른 드라칸이었다.
이번에는 전투체가 아닌 양산체 등급의 개체였다.
이전보다도 쉬운 상대였지만, 문제는 그에게 더 이상의 여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유성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돌겠군.’
산 넘어 산.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움직일 기력조차도 없었다.
파삭거리며 떨어져 나가는 피부 표면이 그의 상태를 증명하고 있었다.
육체의 현상 유지를 위해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 머물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
드라칸이 전투체를 쓰러트린 그의 강함을 경계하면서도 조금씩 다가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인가.”
최후를 예감한 유성의 눈이 감겼다.
* * *
번-쩍!
행성 테라의 어느 지역에, 강렬한 마력이 발출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곧,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진동과 함께 마력 게이트가 열렸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나타난 게이트는.
그 크기와는 별개로 의외로 너무도 조용히 나타났다가 다시금 사라졌다.
하지만 전함 테타트론의 통제부에서는 그리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찰나기는 했으나, 그 순간 나타난 마력 파동의 세기는 압도적이었다.
어쩌면 예의 여왕체가 새로이 출현한 것일지도 몰랐다.
“라피스 엘 바이어스. 나가겠습니다.”
파일럿, 라피스 엘 바이어스 소위.
그녀는 익숙하게 헬멧을 쓰고선 즉각 해당 장소로 출격했다.
하지만 기가스를 이끌고서 나간 그녀는, 전혀 의외의 광경을 보았다.
[상황은 어떻지?]
“어…….”
통제실 인원의 물음에.
지상의 상황을 가만히 살피고 있던 라피스는 잠시간 말을 흐렸다.
그녀의 눈이 주변 시야를 담았다.
지상의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양호했다.
게이트가 열렸다고 보기에는 다소 이견이 있는 상황이었다.
동그랗게 대지가 파먹힌 흔적을 제외한다면 멀쩡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흔적의 중심에는.
당황스럽게도 외장갑이 산산이 부서진 기가스가 한 대 있었다.
‘저건, 기가스? 하지만 어째서 저런 몰골로?’
하지만 그 직후에 나온 분석 결과는 더더욱 기이한 종류의 것이었다.
[기체 등록 번호 A102845-402 EF-02, 제작년도 2047년.]
‘2047년이라고? 2400년도 중반대가 아니라?’
기가스의 분석 결과는 어처구니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족히 400년도 더 된 물건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제작년도다. 결과에 오류라도 난 것일까.
그때였다.
저 멀리, 숲의 한 방향에 드라칸 신호가 잡혔다.
두 마리였다.
하나는 사망 신호였고, 다른 하나는 아직 살아 있었다.
“저건?”
라피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가까이 다가서자 양산체 등급의 드라칸이 쓰러져 있는 한 명의 사람을 노리고서 가까이 접근하는 게 보였다.
그는 어떠한 문제라도 있는 모양인지 제자리에 쓰러진 채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도와야 했다.
“접근하겠습니다, 부함장님.”
[근처로부터의 기습을 조심하게. 라피스 소위.]
“네.”
드라칸은 쓰러진 남자의 곁에까지 가까이 다가선 상태였다.
마치 그를 경계라도 하는 듯, 조심스러운 움직임이기는 했으나 이미 코앞에까지 다가선 상태였다.
혹여나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 놈이 과격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기에 라피스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기가스를 움직여가며 조용히 놈에게로 접근했다.
고오오-.
조용히 내려앉는 기가스 EF-07.
라피스의 기체가 머리 위에까지 도달해 그림자를 만들고서야, 드라칸은 그 접근을 알아차렸다.
[■■■?]
하지만 이미 늦었다.
라피스가 탄 기체의 대검이 지상으로 쾅 내려꽂히며 녀석의 몸체를 짓뭉개듯 으스러트렸다.
* * *
탁!
헬멧을 벗은 라피스가 기가스에서부터 뛰어내렸다.
기체의 높이는 상당했지만, 마나 사용자로서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그녀에게 있어선 일도 아닌 가벼운 일이었다.
그녀는 죽은 드라칸의 가까이에 쓰러져 있던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거기! 괜찮아요?”
“하아. 하아.”
남자의 숨은 가빴다.
당장에라도 멈출 듯이 가파랐으며, 또한 팔다리에서부터는 마치 금이라도 간 듯한 균열을 통해서 피를 쏟아내는 듯한 기세로 흘리고 있었다.
피투성이에 푸른 드라칸의 체액을 뒤집어쓴 모양새.
처참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뭔가가 이상했다.
라피스는 이 남자의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익숙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코앞에까지 다가가서야, 그녀는.
“유, 성?”
그의 정체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