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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50화 (150/200)

150화. 라피스 엘 바이어스(1)

쿠웅-.

그들이 탄 두 기가스가 차례로 내려앉았다.

다만, 그곳은 일반적인 지상이 아니라 새하얀 얼음으로 들어찬 대지였다.

유성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적이다.”

[알고 있습니다.]

콰직!

대답과 동시에, 둘이 타고 있던 기체들이 발아래의 빙판을 향해 득달같이 검을 내질렀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한 동시다발적인 움직임이었다.

그 움직임에 대한 이유는 명확했다.

곧 푸른 체액이 묻어나오며 아래쪽에 드라칸이 숨어 있었음이 증명되었다.

쿠르릉.

깨진 얼음 대지 속.

그 너머에서부터 살벌한 기세를 머금은 푸른 동공이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

그 섬뜩한 안광을 마주한 유성이 짧은 웃음을 흘렸다.

“첫 대면부터 완전체인가.”

그것이 시작이었다.

콰앙!

아래의 얼음을 박살 내며 숨어 있던 놈, 완전체가 지면 아래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

드러난 신체의 일부만으로도 상당한 체구를 가진 놈이었다.

녀석의 거대한 집게발이 그들을 노리는 것을 감지하기가 무섭게, 유성이 타고 있던 기가스 EF-02 가 대처했다.

쩌엉!

강렬한 기세의 마력을 머금은 그의 검격이 놈의 집게발을 정면에서부터 틀어막았다.

공격은 방어했으나, 놈의 체구가 거대했던 탓에 유성의 기가스는 사정없이 뒤로 주욱 밀려나갔다.

“큭!”

상당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단 일격이었을 뿐이지만, 놈의 덩치가 덩치인지라 제아무리 기가스라도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강렬한 충격이 기가스를 타고서 전해졌다.

유성의 눈이 주변을 훑었다.

얼음에 의해 가려진 놈의 형상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진 않았으나, 마력을 선명하게 감지하는 그의 감각은 그것들을 꿰뚫어 보았다.

‘크기가 상당하다. 집게발의 크기만으로도 족히 기가스에 견줄 정도로군.’

쿠르르릉.

곧 아래의 얼음들이 무너지고 놈의 형상이 드러났다.

푸르스름한 혈관 다발들이 줄기줄기 내비치는 거대한 체구.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규격의 마력이 놈에게서부터 느껴져 왔다.

‘전갈의 형상을 취한 놈인 건가.’

방금 전 그들이 내질렀던 검격이 놈의 등판에 푸른 체액을 흘리면서 그 상흔을 남긴 것이 엿보였다.

[■■■■■■-!]

녀석 이외의 다른 드라칸은 보이지 않았다.

녀석의 몸체 거대한 아래에 은연중에 가려져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단 하나의 개체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숨기려고는 하고 있으나 유성은 그 특유의 고에너지 반응을 진작 느끼고 있었다.

녀석이 아래쪽에 숨기고 있는 존재는 틀림없이 그것이었다.

‘여왕이다.’

적은 오로지 완전체 하나뿐이라는 적은 숫자.

거기에 아래에 숨기고 있는 단 하나의 여왕체의 존재까지.

그렇다면 이것들의 특성은 명확했다.

‘정해진 거처 따위가 없이 방랑하는 이주형 개체다.’

이제까지 유성이 마주친 무리들의 종류만 하더라도 여럿이었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수의 규격에 힘을 실은 절대다수의 무리형 개체들이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극히 적은 경우의 확률로 이번과 같은 상황이 있었다.

강력한 몇몇 개체들만을 생산해내고서 보다 마력 에너지가 많은 지점을 향해 끊임없이 이주를 하는 그런 녀석들이 말이다.

‘가뜩이나 잦은 전쟁으로 여유도 없을 연합에서 따로 알파를 지정해서 토벌 명령을 내릴 만했군.’

유성은 이런 식으로 통상적인 드라칸의 무리 개념에서부터 벗어난 개체들이 유달리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놈들은 대개의 경우, 긴 시간을 주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험에 의한 축적에서부터 비롯된 확신이었다.

수가 적은 대신 여왕은 극히 일부의 적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모든 전력을 집중했다.

이러한 놈들에게서부터 태어나는 자식들은 보통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머금었다.

수는 적지만, 그만큼 하나하나가 다른 무리의 동급의 드라칸들보다도 훨씬 뛰어난 편이었다.

자연히 시간을 주게 되면 그만큼 더 완전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컸다.

즉, 결론은 간단하다.

이런 극소수의 무리를 거느린 여왕 개체는 머잖아 완전체만으로 이루어진 무리 군체를 이룰 가능성을 머금고 있다는 소리였다.

군체를 구성하는 전원이 오로지 완전체만으로 구성된 무리라니.

상상조차 하기 끔찍한 경우의 수다.

연합의 쪽에서부터 구태여 부족한 전력까지 쪼개어가며 토벌 명령을 내리기에는 분명 차고 넘치는 이유였다.

우습게도 이시혁이었던 시절, 그는 연합이 무리의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방치했던 몇몇 전력이 나중에 가서는 감당조차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수로 불어난 경우를 목격한 바가 있었다.

“알파!”

[알고 있어요!]

유성이 부르기도 전에 이미 알파는 놈의 아래쪽으로 파고든 상태였다.

완전체가 숨기고 있는 놈의 어미, 여왕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놈들의 경우에는 정면에서의 처치가 곤란하다.

그렇다면 자연히 그 이외의 수단을 강구하기 마련이었다.

이 순간 유성과 알파가 생각한 수단은 여왕체를 처치함으로서 놈의 혼란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물론.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

쾅!

놈의 배 아래에 숨겨져 있던 한쌍의 집게발이 갑작스레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접근하는 알파를 틀어막았다.

[큭, 이런 수를!]

그녀는 놈의 공격 수단이 추가적으로 더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당황해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놈의 집게발은 기가스에 견줄 정도로 거대했다.

저곳에 붙잡히게 되면 각성자고 뭐고 간에 끝이다. 제아무리 기가스에 장갑이 있든 없든 간에 상관없이 그대로 몸체가 으스러지며 끝장나겠지.

회생불가의 타격을 입으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큭, 공격 수단이 더 있던 건가?!’

녀석은 통상의 전갈들과는 달랐다.

집게는 두 개만이 아닌 네 개씩이나 되었다.

유성 또한 진작에 거리를 벌린 상태였다. 저곳에 붙잡혀서야, 유성 또한 살아남을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가 파일럿인 이상에는 기가스의 한도를 벗어난 일격을 받아내는 것은 무리인 일이었다.

“알파.”

유성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알파의 시선이 통신 채널 속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구태여 시간을 오래도록 끌 필요는 없겠지. 전력으로 간다.”

[…괜찮겠어요?]

하지만 그 말에, 오히려 알파는 우려의 기색을 표했다.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지금 그녀가 묻고 있는 것은 유성의 상태였다.

본래 이시혁은 각성기의 사용 여부조차도 온전히 통제부의 판단에 맡겨야만 했다.

이유는, 본래부터 육체의 내구성이 다른 각성자들 만큼이나 뛰어나지 않기에 각성기의 사용 하나하나가 그의 몸상태에 상당한 부담감을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유성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우려를 표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아직, 지금의 나는 문제없다. 다만 하나까지가 내 한계야.”

[그 정도라면. 알겠어요. 바로 가죠.]

알파는 이견을 달지 않았다.

대신 충실히 그의 말에 따랐다.

그가 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러한 것이었으니.

“각성기(覺醒技).”

변화를 감지한 완전체가 처음으로 물러서서 거리를 벌린 그 순간.

감고 있던 유성의 눈이 뜨였다.

그의 눈은 찬란한 빛을 발하는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차원분신(次元分身).”

유성의 뒤편의 공간이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한 기의 기가스가 갈라진 공간의 틈새를 찢어발기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로지 그만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알파의 쪽에서도 또한 마찬가지의 변화가 일었다.

기다란 저격총기와 검으로서 무장한 기체가 공간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통신에 참가하지.]

[저도요.]

통신을 걸어오는 두 파일럿의 존재.

그들은 놀라우리만치 각각 유성, 알파와 닮아 있었다.

유성이 말했다.

“지금의 나는 그리 오래도록 이 시간을 유지할 수 없어. 아마도 시간은 1분. 무리를 하더라도 처음부터 전력으로 가겠다.”

그와 함께, 네 기의 기가스가 거의 동시에 놈을 노리고서 쏘아졌다.

* * *

“하아, 하아.”

유성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가 피로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시간 눈을 감았다.

그의 기체 아래에는, 예의 완전체가 있었다.

푸른 체액을 물처럼 흘린 채로 숨을 꺼트린 녀석의 미간에, 단단히 박혀 있는 대검이 보였다.

뚝. 뚜욱.

방울져 떨어지는 땀방울에 잠시간 시선을 내리던 유성이.

이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일단, 임무는 완료로군.”

[그런 셈이네요.]

콰직.

유성의 기가스가 놈의 미간에 박혀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검날을 타고서 놈의 체액, 새파란 형광 물질들이 물처럼 떨어져 내렸다.

둘 사이에는 잠시간 대화가 끊겼다. 이 순간이 둘의 마지막 대화임을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곧, 알파 쪽에서부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정말로 대장이 맞기는 했군요.]

그 말에 유성은 저도 모르게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 날 뭘로 생각한 거냐.”

[이제껏 다른 국가의 스파이 등의 상대 정도로 여겼죠. 난데없이 시혁 대장을 들먹이면서 나타났으니, 믿지 못할 수밖에요.]

그러한 알레이스타, 알파가 이제 와 유성을 믿게 되었음은 다름이 아니다.

유성 그가 마지막 순간에 와서 보여주었던 일말의 각성기 탓이었다.

세상에 각성기를 그런 식으로 몇 종류나 연속적으로 쓰는 인간은 오로지 단 한 명뿐이었다.

전쟁의 중반기에 들어선 지금.

사실상 세계에 남은 마나 사용자는 거의 대부분이 전쟁에 차출될 대로 차출된 차였다.

이제 와 아직도 전장에 투입이 되지 않은 자들은 갓 태어난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없었다.

이런 마당에 시혁 대장에 견줄만한 각성자가 혜성처럼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정말로 그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하물며 알파의 고유 각성기인 차원분신기마저 고스란히 사용할 수 있다면야.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겠지.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서, 그녀 알파는 입을 열었다.

[이봐요, 대장.]

“말해.”

[저번에 지구상의 인류는 완전히 끝장이라고 그랬지 않나요?]

“…그랬지.”

[역시, 그건 틀린 말이 아니겠죠? 대장이 헛소리를 하는 경우는 보질 못했으니까요.]

그 말에 유성은 입가에 저도 모르게 옅은 호선을 그렸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인간들은 아예 지구를 저버리고 도망친 거나 다름없다는 소리로군요.]

“대답은 하지 않겠다.”

[그 정도라면 충분해요. 이미 대략적인 전개들은 그려지니까.]

“그런가?”

기력이 빠진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그렇게 되묻다가, 문득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그랬었지.

이 시기의 지구는 이미 회복불능의 치명적인 시점에 돌입한 상태였다.

알파가 내린 답은 아마도, 더 이상 ‘지구에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일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틀린 답이 아니었다.

[대장. 전 제가 까마득히 오래 살 운명이란 걸 알아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기간은 거의 수백 년을 넘더군요. 하지만 대장은 그렇지 않았죠. 아마 당신은 수 년 이내에 단명할 거예요.]

유성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점차 진해졌다.

그의 시선이, 이제는 더 보지 못할 상대와 마주쳤다.

둘은 서로를 마주하고서 잠시간 침묵을 이어나갔다.

[다시금 드라칸과 싸우기 전까지는,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나요?]

“알레이스타. 비록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이번 생에는 없었던 부모를 가지고 미래를 꿈꿨지. 친구를 사귀어 보기도 했어. 그거면 충분했다.”

알파가 옅게 웃었다. 평소와는 다른 꾸밈없는 미소였다.

[다시 볼 수 있나요?]

“그래. 그때에는 아마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알파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키이잉.

유성은 곧, 마력을 끌어올린 검을 그대로 들어올리더니.

드라칸의 심장을 향해 박아넣었다.

파직, 파지직!

순간, 강렬한 마력 파동이 주변으로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이만 나는 가야겠다.”

알파가 타고 있던 기가스가 거리를 벌렸다.

[꽤 오래 걸리겠군요. 보고 싶을 거예요.]

그 말에.

유성은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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