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드라칸 사냥(3)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투는 놀라우리만치 수월하게 끝마쳤다.
“…후우.”
상위체의 드라칸 셋.
그 상대를 문제없이 상대하는 데 성공한 유성은, 상공의 한가운데에 떠올라 있었다.
그가 타고 있던 기가스 EF-02 는.
장갑에 남은 몇몇 깊숙한 상흔들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종석에 몸을 파묻은 채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쿠오오오.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익숙한 소음이 들려온다.
‘하늘을 가르고 다가오는 소리. 기가스로군.’
그 소리에, 유성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곧, 저 반대편에서부터 다가오는 한 기의 기가스가 보였다.
통신 채널이 켜지며 누군가의 얼굴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알파였다.
[명색이 시혁 대장의 환생자라더니, 너무 약한 것 아닌가요?]
“…내가 태어난 시대는 한때 평화로웠지.”
[꼭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로만 들리는데요.]
유성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리 없이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답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평화로웠다.
그것은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이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기도 했다.
400년 간 이어진 평화가 그가 환생을 한 시대에 난데없이 깨졌다는 소리를.
과연 한다고 믿을 존재가 있기나 할 것인가. 아니, 있을 턱이 없다.
당장 유성 그 자신조차도 몇 번이나 제 눈을 의심했을 정도였으니까.
무슨 운명의 장난이 아닌 이상에야.
유성은 어린 시기부터 진작에 마나 능력을 깨우치고서 각성마저 끝마친 이시혁과는 다른 시기를 보냈다.
어떤 식으로든 의식적으로 능력을 제한하고 봉인해오며, 자신을 숨겨오는 것이 가능한 평화로운 시기였다.
경험의 축적치는 지금의 그가 더 나을 순 있어도, 그 밖에 신체적인 우세함에서라면 이시혁의 쪽이 더 나은 게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내 그는 땀에 젖은 머리칼을 털어버리며 입을 열었다.
“신경이 쓰인다면 이 기체에 저장된 메모리 카드를 확인해서 전투 장면이라도 보든지 해라. 어차피 증명을 할 방도조차 없는 이상, 의심을 하려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지.”
[흐음. 확실히.]
일리가 있다는 듯, 알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네요. 증명할 방도 따위가 없기는 하죠.]
“그보다 전투는 모두 끝마쳤으니 이제 복귀할 건가?”
[네. 더 이상 이곳에 머물 필요도 없으니까요. 저도 방전된 체력을 회복하려면 조금이라도 서두르는 편이 맞기도 하고요.]
방전된 체력과 한정되어 있는 파일럿의 숫자.
지금의 세계에서는 한 번의 전투에서 살아남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 싸움을 이겨냈다면 다음을. 그리고 그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이곳에서 노닥거리며 시간을 할애할 여유는 없었다.
파일럿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고 반대로 전쟁은 연일 벌어지고 있으니, 연합으로서는 그들을 최대한 많은 전투에 재차 투입시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수가 없었다.
물론, 거기에 파일럿의 의지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쉬어두어야만 연합의 다음 명령에 응할 기력이 생길 터였다.
[돌아가죠.]
쿠오오오.
두 기체가 나란히 대기권의 영역을 빠져나오기 시작하자,
곧, 그들의 머리카락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방울져 둥실 떠오르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유성의 시선이 잠시간 자신의 앞을 지나쳐 부유하는 땀방울에 가 멈췄다.
“…….”
익숙한 광경이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다고 여겼던 광경의 재현이었다.
하지만, 이제 유성은 이 거짓말 같은 현실을 받아들인 지 오래였다.
그는 다시 한번 과거의 그 때로 돌아가야만 했다.
육체든. 혹은 정신이든 간에 상관없이.
* * *
콰앙! 콰직!
전투 영상이 재생되었다.
알파는 놀라우리만치 간결하며, 또한 단순한 움직임으로 적을 상대하는 유성의 전투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방금 전 유성이 탑승하고 있던 기체에서부터 빼든 메모리 카드의 영상 파일이었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공격 하나하나에 압축된 검의 정수가 담겨 있어.”
알파는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로서는 제아무리 오래도록 흉내를 낸다 한들 따라하기 불가능할 검기의 극(極)이 그곳에 있었다.
비록 그것이 조종사의 시점에서부터 촬영된 탓에 3인칭이 아닌 1인칭이라고 할지라도.
오랜 시간을 목숨을 건 사선의 영역에서부터 싸워온 알파는 당시의 유성이 얼마나 완벽하고, 분명하게 적의 수를 먼저 읽고서 대처했을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같은 검을 들고, 같은 자세를 취한다고 한들.
띄고 있는 생각과 찰나의 읽어낸 기류와 함께 검세는 얼마든지 능수능란하게 변이하고 또한 역변한다.
콰가가각!
지금 유성은 극히 미세한 약간의 비틂과 각도의 변형만으로 세 마리의 상위체를 상대하고 있었다.
유성이 내지른 한 자루의 대검이, 상위체 셋이 내지른 검격을 놀라울 정도로 손쉽게 틀어막았다.
…느릿한 하나의 검이 세 자루의 검을 동시에 틀어막는다니.
거짓말 같다.
그것은 마치.
짜고 치는 듯한 광경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절묘한 검의 접전이었다.
그 아득한 격차. 기가스에 탑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수 센티미터에 이를 정도로 미세한 검세의 조작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같은 세상을 살아감에도 전혀 다른 ‘종’ 이라도 되는 듯한 기이한 특별함이 느껴졌다.
마치. 이것은 마치.
‘정말로 시혁 대장의 환생자라도 된 것 같은 완벽한 검세야.’
그들 각성자들의 대장으로 불리우는 이시혁이라도 되는 듯한 광경이었다.
확실히. 이 영상 하나만으로도, 유성이 남겼던 말에 대해서 없었던 신뢰마저 생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 * *
그로부터 한달 여의 시간이 흘렀다.
유성은 이후로도 몇 번이고 알파와의 전투에 함께 투입되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상위체와의 전투 차출이었으며, 간혹 일부 소수의 경우 완전체 단일 개체를 상대하는 것이 그의 주된 역할이었다.
상황이나 누군가의 명령 때문에서가 아닌, 그 스스로가 직접 행한 오롯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전투 양상에서.
주로, 알파는 멀찍이서 그의 전투를 지켜보는 데에 집중했다. 간간이 보조만을 맞추어줄 뿐, 실제의 전투는 그 혼자서 이뤄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성 또한 그리 불만은 없었다.
연이은 전투는 그의 역량과 신체의 한계치 또한 차츰차츰 상승시켜주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필요한 일이라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합을 맞추어야 간신히 상대할 수 있었던 완전체마저.
나중에 가서는 그가 전투의 기류를 주도할 정도로 조금씩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완전체란 여전히 혼자서는 무리인 상대지만, 틀림없이 그는 상승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군요?]
한참을 그렇게 지켜보고 있던 알파가 난데없이 던진 말이었다.
마치 관찰이라도 하는 모양새로 곰곰이 그의 성장세를 지켜보던 그녀는 말했다.
[각성자도 아닌 듯한데 성장력의 역치가 이토록 상당하다니. 저나 제 동료들이 수 년 간 걸렸던 지점에 빠르게 도달하고 있어요. 보고 있는 제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군요.]
“어처구니가 없나?”
[그럴 수밖에요. 완전체는 저조차 쉽지 않은 상대라고요.]
그 말에.
유성은 그저 피식 웃음을 흘렸을 뿐이다.
그녀가 놀라는 것도 이해한다.
완전체는 각성자인 그녀조차 결코 쉽지 않은 상대였으니.
누군가의 조력이나 협력이 없이 1대1로 완전체 놈들을 상대하려면, 그녀도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완전체는 그런 존재였다.
하나의 개체가 성장과 진화의 끝에 마침내 완성된 진화체이기에 완전한.
둥지의 깊숙한 곳에 틀어박힌 여왕들이.
오로지 하나의 상위체에 수 년간의 심혈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탄생시킬 수 있는 그들의 결정체와 같은 존재였다.
제아무리 유성이 그녀의 보조를 받는다고 한들, 이토록 수월하게 상대할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무섭도록 성장하는 유성의 성장세를 본다면 알파마저도 놀랄 정도였다.
복도를 지나쳐가는 유성의 눈이, 중간중간 서 있던 몇몇 군인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상대의 동공 아래쪽에 어려 있던 명백한 감시의 시선을 읽어냈다.
저들의 시선에 뒤얽힌 명백한 의도를 감지했다.
‘슬슬 연합에서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정보들은 알아서 지워내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목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미 얼마 전부터는 감시역마저 붙기 시작했다.
‘내게 뭔가가 있음을 눈치채고 있는 게 보여.’
한정된 자원과 한정된 인원만이 존재하는 소규모 우주정거장인 이곳.
그들 중 몇몇 군인들의 이목이 소리없이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시선이 마주칠 때면 아닌 척하고는 있지만, 그가 몸을 돌리면 다시금 뒤에 달라붙는 시선으로 인해 뒷목이 따끔거릴 정도다.
하지만 대체로 시간은 넉넉한 편이었다.
그에게 간섭하는 인원도, 제지를 가하는 이도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정체조차 밝혀지지 않은 한낱 외부인일 뿐이니. 그저 기가스를 다룰 만큼의 마나 사용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무엇 하나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알파와는 사정이 다르지.’
한창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알파와는 다르게.
유성은 그 이름조차 제대로 등록되지 못한 신원 미상의 파일럿이었다.
본래라면 군에서는 그를 경계하고 의심해야 마땅하나 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는 이곳에서 그런 여력이 있을 턱이 없었다.
고작 그 하나에게 인력을 배치하기에, 이곳의 인원들은 한낱 계급 낮은 군인들마저도 모두가 대체 불가능한 값비싼 이들 뿐이었다.
저벅. 저벅.
유성은 오늘도 어김없이 단련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는 그의 시선이 저 멀리 한쪽에 닿았다.
저 멀리, 한창 몸을 단련하는 데 여념이 없는 한 명의 ‘소년’ 이 보인다.
유성의 눈길이 소년의 가슴팍에 붙은 표식으로 향했다.
[세계통합 방위 군단, 1번대 소속.]
[싱글 넘버즈 007호. 소대장 이시혁.]
최초의 각성자들. 넘버즈.
그리고 그들의 대장격인, 이시혁.
그 존재가, 지금 이 단련실의 한 공간에 있었다.
유성과 반대한 맞은편인 바로 저곳에.
무장한 몇몇 군인들에 의해 엄중한 감시와 관리를 동시에 받으면서도.
이시혁의 얼굴에는 표정이랄 게 무엇 하나 그 위로 드러나질 않고 있었다.
마치 감정조차 차단된 듯 무심하기 그지없다.
그 소년을 바라보는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의 나로서는 아직 따라가기 어려운 강력한 마력량. 그 이상으로 철저한 기세의 갈무리까지.’
확실히 이렇게 보니, 새삼스럽기는 하다.
대전쟁 시절의 그는 저렇게나 대단한 수준에까지 도달했던 건가.
지금의 유성과 비교해보니 그 격차가 상당하다고 표현해야 될 정도였다.
‘어쩌면 지금의 나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격차가 크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지.’
겉보기로는 아직 앳된 기색마저 보이지만, 그를 감시하는 군인들의 얼굴에는 진중한 기색이 가득했다.
당연할 터였다.
바로 저 소년이야말로.
이 우주에서 대체제 따위가 없는 유일한 등급의 인간이었으니.
쿠웅.
한창 벤치 프레스를 하고 있던 소년병, 이시혁이 기구를 내려놓았다.
그 무게감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주변이 미약하게 울릴 정도였다.
몸을 일으킨 이시혁의 시선이 들어선 유성과 마주쳤다.
“…….”
전생의 존재 이시혁.
그리고 40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다시금 되살아난 환생자 유성.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닥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