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드라칸 사냥(2)
유성과 알파가 탄 기가스 EF-02가 빠른 속도로 대기를 가르며 강하하고 있다.
삽시간에 구름을 내리가르며 떨어지고 있는 상황.
그런 그들의 눈에.
불기둥이 여러 차례 솟구치는 게 보였다. 폭발과 폭음이 여럿 들려왔다.
곧 그 모습을 내려다 보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이미 전투가 한창인가 본데.”
[그런 모양인가 보네요.]
점차 지상과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그러한 모습들이 확연히 잘 보이기 시작한다.
시야에 가득 찰 정도로 드넓은 도심들의 사이로.
여러 기가스들과 대치한 반대편의 검은 물결이 보인다. 드라칸 군체 무리다.
타다닥.
유성은 모니터 화면을 조작했다. 카메라가 확대에 확대를 거듭하더니 한층 자세하게 지상의 모습을 내비쳤다.
[■■■■-!!]
콰앙!!
입을 쩍 벌리며 푸른 입자를 쏘고, 또한 날카로운 앞발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드라칸 놈들과.
그것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강렬한 기운을 머금은 열포탄과 포격들.
그러한 것들이 정신없이 터져 나오는 전장의 모습이, 보다 확연히 보인다.
몰려드는 드라칸의 대군체에 어떻게든 기가스들은 조금씩 후퇴를 반복하며 저항하지만 밀리고 있는 게 보였다.
놈들의 무리는 끝이 없었다.
도시는 쑥대밭이 되고, 빌딩 중의 일부는 연이어 몰려오는 그것들의 공격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잠시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난장판이로군.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죄다 서로 뒤얽혀서 싸우고 있어.”
그때 한창 모니터 화면을 조작하던 알파가 근방의 상황을 살피더니 말했다.
[여기, 생각보다 상황이 좋질 않네요.]
“현재 상황은 어떻지?”
현재 그들의 대장기는 알파가 탄 기체였다.
그녀는 공식적인 연합의 각성자 일원들 중 하나이지만, 외부인인 유성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탄 기체는 아직 공식 등록조차 끝마치지 못하고 생산 공장에서 막 보내져 온 기초 무장 단계의 기가스였다.
그렇기에 대장기인 알파만이 이곳 전장의 정보 대부분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드라칸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져 있어요. 하나는 도시를 향해 밀어닥치는 200여 마리의 드라칸 무리. 다른 하나는 상위체 셋만 따로 빠져서 도시의 방위 인력을 상대하는 무리로요.]
“그런가.”
알파가 통신 채널 너머의 유성을 바라보며 짧게 웃어 보였다.
[골라 보시죠. 선택권을 드릴 테니까요. 어느 쪽을 택하겠어요?]
“그렇다면.”
유성은 가만히 시커멓게 우글거리는 드라칸들이 몰아닥치는 지상을 내려다보다 이내 답했다.
“난 그나마 수가 적은 상위체 드라칸쪽을 상대하기로 하지. 수가 많은 것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건 내 적성에 맞질 않아서 말이야.”
[역시. 그럴거라 생각했어요. 시혁 대장과 똑같은 선택을 하는군요. 조금이라도 수가 적은 쪽을 택하는 성격마저더 똑같다니.]
그 말에, 유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직도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그럴 수밖에요.]
채널을 타고서 짧은 농담과 대화들이 오간다.
현재의 상황과는 걸맞지 않을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대화들.
하지만 곧, 유성이 입을 열었다.
“슬슬 여기서부턴 찢어지도록 하지.”
[그러죠. 북동부 20여 키로미터로 향하세요. 지금 위치 파일은 전송해드리죠.]
“알겠다.”
그 말을 끝으로.
둘의 기체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푸른 빛줄기와 함께 쏘아진 그들이.
서로가 맡은 전장을 향해서 거침없이 나아갔다.
* * *
“이 자시이익!!”
쾅!
뉴욕의 앞에는 수십 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방벽이 존재한다.
기가스 파일럿들은 현재 그곳을 목숨을 걸고서 틀어막는 도중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근방을 따로 사수해야 하는 일부 파일럿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전력이 해당 지역에 대기한 상황이었다.
일곱이나 되는 그들 파일럿의 상대는 단 셋.
[■■■■.]
[■■. ■■■.]
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노려보는 상위체 등급의 드라칸 세 마리였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지면 아래에서부터 난데없이 등장한 드라칸들로 인해, 현재 뉴욕의 방어 시스템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놈들의 침입을 우스울 정도로 손쉽게 허용하고 말았다.
“크으.”
드라칸 분대의 대장 지크 멘하일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타는 듯한 시선이 저 반대편의 상대를 노려보았다.
쉽지 않은 상대였다.
무려 상위체 등급의 드라칸 셋이었다.
하나하나씩이라면 어떻게든 동료들과의 발을 맞추어 상대를 해볼 수 있겠지만, 저 숫자는 진작에 한도를 넘어선 마당이었다.
‘경험마저 풍부한 개체들이다. 우리들로선 상대하기가 무리야.’
놈들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뛰어난 지성과, 그것을 보좌해주는 풍부한 경험이 저것들에게는 존재했다.
이제껏 적잖은 수의 전장과 전투를 경험해보았다는 얘기였다.
지금 도시의 상황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녀석들을 빨리 처치해야만, 뉴욕으로 타고 넘어간 다른 드라칸 놈들을 추격할 수 있었다.
다른 동료들이 그것들을 막아내고 있다지만, 이번에 몰려온 놈들의 수는 족히 200마리를 훌쩍 넘는다.
아주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편도 아니었다.
여왕체의 번식이 나름대로 한창 활발한 무리임이 틀림없었다.
대장 지크 멘하일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켜지지 않는 세컨드 통신 채널을 힐끔거리며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제기랄. 연합의 파일럿 놈들은 뭘 하는 거야, 대체? 지원은 언제쯤이 되어서야 오는 거지?”
이대로라면 도심 한복판으로 넘어간 드라칸 무리를 상대하기도 전에 이곳에서 먼저 죽을 판이었다.
이미 동료 중의 셋이 저세상에 가버린 마당이다.
제아무리 그들이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파일럿이라도 이 이상은 무리였다.
보내준다던 각성자들을 향해 애먼 욕설을 내뱉는 와중.
하지만 그 순간.
쿠아아아-.
강렬한 소음과 함께, 대기를 가르는 난폭한 굉음이 하늘에서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콰앙!
곧,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상에 떨어져 내린 것은 단 한 기의 기가스였다.
번-쩍.
유성이 탄 EF-02.
그가 탄 기가스의 안광이, 섬뜩한 빛을 발했다.
삑.
그런 그의 통신이 갑작스레 켜졌다.
[지원군? 연합에서 보내준다고 했던 지원군인가?]
“일단은 그런 셈이죠.”
틀린 말은 아니니 유성은 잠자코 수긍했다.
어째서 지원군이 달랑 하나뿐이라는 물음 따윈 해오지 않았다.
연합에서의 ‘지원’ 이라 함은 단 하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바로, 각성자의 투입을 뜻했다.
그러므로 저들이 단 하나뿐인 전력의 등장에 실망을 할 만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곧 시선을 든 유성이 차분한 눈으로 상대를 주시했다.
그를 가만히 경계하는 세 드라칸들이 보였다.
새로운 상대가 등장했기 때문일까.
그들은 조용히 유성을 응시하며 경계하고 있었다.
활짝 펼친 수 장의 날개.
거기에 빼든 놈들의 대검까지.
‘인간형이로군.’
어쩌면 꽤나.
적잖은 경험을 축적한 상위체 개체들일지도 모르겠다.
곧, 놈들의 갑각질에 유난히 오래된 상흔들이 여럿 있음을 발견한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연습전 정도로는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하겠어.’
* * *
상위체 무리를 향해서 날아가는 유성의 뒷모습을 보며.
알파는 생각했다.
‘저렇게까지 자신을 할 정도였으니, 어떻게든 상위체를 상대할 정도의 실력은 있겠지.’
본래부터 유성에게 느껴지는 마력의 총량은 한없이 적었다.
그 적은 수로, 움직인다고 한다면 그나마 적격인 것은 분명 수가 한참은 적은 상위체들을 상대하는 것이 최선이라면 최선일 터였다.
하지만 그것과 놈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었다.
이 세계에서 저마다 한 자리씩을 차지한 상위체들이 결코 쉽지 않을 상대임은 너무도 분명하였으니까.
대충 무리의 규모로 보아선, 아직까지는 그리 세력을 불리지 못한 대단찮은 놈들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결국 상위체는 상위체였다.
각 개체들은 틀림없이 치열한 전장과 전투를 반복하여 경험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상대를 혼자서 상대한다고 하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도 싶었지만.
어차피 알파는 아직까지 유성에 대해서 그리 신용하는 편이 아니었다.
난데없이 시혁 대장의 이름을 팔아가며 나타난 저 인간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알 바가 아니란 소리다.
‘혹여나 죽기라도 하면 내가 직접 나서면 될 일이고. 그게 아니라 잘 살아남는다면. 약간의 신용은 올라가는 셈이고.’
어떤 식으로든 알파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거들 인력이 생겼으니까. 설령 사망하더라도 직접 나서면 그만일 일이었다.
‘생각은 여기까지.’
그렇다면 이제는 알파 그녀 또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내야만 했다.
그녀는 다른 잡생각은 모두 지워버렸다.
지금은 일단 도심의 안으로 침입한 드라칸 놈들을을 어떻게든 틀어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
하늘은 이미 드라칸 놈들에 의해 빼앗긴 지가 오래였다.
그것들은 도망치는 사람들을 추격하며 하늘에서 그대로 낚아채고 있었다.
사람의 육체가 산산이 부서지고, 그 살점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거짓말같은 광경이 도시의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놈들은 마치 누군가 등이라도 떠미는 듯이 도시 안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길을 가로막는 전차와 군인들, 그리고 일반인들을 그대로 집어삼키고 짓밟으며.
그 무수한 검은 점들을 응시하는 알파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쯧. 이 벌레 자식들이.”
최악이다. 사람의 육편이 한낱 저것들의 배를 채울 간식거리에 지나지 않는 이런 악몽과 같은 광경을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그녀가 사는 시대의 세계상이었다.
그리 드물지 않고, 오히려 어딜 가나 흔하게 목격할 수밖에 없는 광경.
이것이 바로 종말이 드리워 암운이 닥친 지구의 풍경이었다.
알파는 치솟는 불쾌감을 지우려는 듯 본능이 가리치는 대로 무작정 쏘아지고 있었다.
그녀가 탄 기체, EF-02가 마력 입자 진동검을 뽑아든 채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상대의 몸체를 갈랐다.
촤아악, 하고 새파란 형광 물질이 기가스의 몸을 적시듯 흩뿌려졌다.
* * *
‘각성기(覺醒技).’
고오오!
그 순간 은은한 빛을 발하던 그의 눈동자가 더욱 강렬해지다 못해, 아예 색이 변색되기 시작했다.
동공의 색감이 바뀐다. 마치 새빨갛게 가열된 용광로가 더더욱 극점에 이르러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듯 찬란하기 그지없는 황금빛의 동공으로.
그 번쩍이는 두 눈에서부터 빛을 흩뿌리며, 유성이 전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개방했다.
‘사고가속(思考加速). 발동.’
주변의 모든 것이 삽시간에 급속도로 느려지기 시작하는 순간.
무언가 낌새를 눈치 챈 듯한 상위체의 드라칸이 느릿하게 대검을 앞으로 세우려는 것이 보인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한없이 느린 듯한 움직임.
유성이 검을 빼들며 생각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생각과 동시에, 쏘아지며 놈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