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드라칸 사냥(1)
[정거장 스테이션에 기가스 EF-02 복귀 중. 파일럿 알파, 환영합니다.]
쿠웅-.
직경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우주 정거장.
그곳의 격납고에 차례로 내려선 두 기의 기가스들.
주변에는 적잖은 수의 무장한 군인들이 있었으나, 그들 중 누구 하나 알파를 막는 이들이 없었다.
그들은 신원불명의 존재인 유성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저 한눈으로 스치듯 지나쳐갈 뿐 관심을 들이지 않았다.
유성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군인들을 뜬눈으로 목격하며 생각했다.
‘나와는 영 딴판이로군, 알파.’
그가 기억하던 자신의 전생. 이시혁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다.
그의 생활은 사생활 따윈 없는 24시간 철저한 감시 체계 하에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유성 그에 비한다면 알파는 확실히 나름대로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감시가 있음은 분명했지만 말이다.
유일한 시간 속성의 능력자인 알파였다.
그런 그녀의 반발을 사는 일따윈 제아무리 연합이라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직접 묻기보단 먼 곳에서 관찰하기만을 택했다.
‘지켜보고 있군.’
기잉-.
유성은 감시 카메라의 카메라 렌즈가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쯤, 그들을 감시하는 이들은 유성의 정체에 대해 부지런히 검색하고 있을 터였다.
아직 이 시대에서의 알파는 단순한 군인에 불과했다.
예전의 황녀 때와 마찬가지로 연합의 중추에까지 자리하거나 파고들지는 못했다.
복도를 함께 나아가던 알파가 말을 건네왔다.
“그나저나 유성.”
“말하도록.”
“이제 여기까지 왔으니, 그 다음은 말은 안 해도 알고 있겠죠? 적어도 ‘자칭’ 시혁 대장의 환생자라면요.”
“그런 셈이지. 전투에 강제로 징용된다하더라도 크게 여념치 않겠다.”
그 말에 알파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입을 가리고서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웃었다.
“하핫, 농담이에요. 농담.”
유성은 그런 그녀를 잠시간 말없이 응시했다.
하지만 그 눈의 안에, 신뢰는 없었다. 둘 사이에는 아직 믿음이란 게 형성될만한 위기나 기회라는 이름의 상황이란 게 없었다.
* * *
유성은 숙소를 배정받았다.
그 길로 알파의 바로 옆 방을 얻어낼 수 있었다.
타인은 감히 얻고 싶어도 얻지 못할 기회조차, 그는 단지 알파의 지인이라고 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유만으로 얻어냈다.
자원마저 한정되어 있는 연합이지만, 그들은 감히 알파의 감정을 수그러트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미래조차도 엿볼 수 있는 각성자 알파였다.
그런 그녀를 거스른다는 것은 전투에서의 패배를 의미했다.
실제로 그녀를 제대로 대우하지 못해 몇몇 전투에서 직접적인 패배를 경험한 적도 있는 연합이었다.
선조치 후보고.
그것이 알레이스타라는 이름의 각성자, 알파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유성은 탁자에 놓인 전자시계를 확인했다.
[2049년 9월 12일.]
잠시간 시각을 확인하던 그가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 온 뒤로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건가.’
그 아득한 현실의 체감에.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다들 잘 있을지 모르겠군.’
라피스, 그리고 리브가 걱정이었다.
메타트론의 인원들에 대한 것도 다소 신경이 쓰였다.
여전히 드라칸에 대한 타는 듯한 분노는 내면에 뱀처럼 똬리를 튼 채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는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유성은 리브가 신경 쓰였다.
그에게 있어 리브는 드라칸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나 다름 없었다.
유성이 과거의 시간대로 돌아온 지금.
과연 저 머나먼 400년 이후의 세상은 과연 그 시간축이 멈춰 있을지, 그게 아니라면 지금 유성이 있는 시간축과 마찬가지로 평행하게 전개되고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몇 배는 가속되어 한참은 더 빨리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꽈득.
유성은 곧 자신도 모르게 전자시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금이 갔다.
‘돌아갈 방도조차도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일단은 이곳에까지 왔지만 단지 그것뿐이지. 어쩌면 평생토록 이곳에 발이 묶여있어야 할 지도.’
유성은 이곳이 자신이 있어야할 세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유성은 유성이었다. 반대로 이시혁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였다.
그 육체가 속한 본래의 세상이 아니기에, 그는 한때 이곳만이 전부라 여겼던 이시혁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이질감을 느꼈다.
그런 유성이었기에.
이곳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세상처럼 여겨졌다.
‘아니.’
유성은 흩트려지려던 자신의 감정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았다.
‘난 방법을 찾는다. 어떤 식으로든. 설령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간에.’
그때였다.
[이봐요, 유성.]
문 너머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유성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저, 방법이 떠오른 것 같아요.]
* * *
“…그러니까. 알레이스타, 네 말은 시간 속성을 가진 완전체의 심장을 터뜨려 다시금 그 폭발에 휘말려보란 얘긴가?”
“네, 네. 그런 셈이죠. 실제로 그렇게 해서 유성 당신은 이곳에 왔다면서요?”
그 말에 잠시간 생각을 이어나가던 유성이 반대로 되물었다.
“이제껏 마력의 폭발에 휘말린 존재가 한둘은 아닌데, 그들은 모두 시체만 남기고 죽었지 않았나?”
“에이. 제 말은 단순히 무작정 폭발에 맞고 비명횡사하라는 게 아니에요.”
알파는 손을 휘휘 흔들었다.
마치 이상한 소리 말라는 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그 폭발 속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길을 찾아보란 얘기죠.”
그녀는 품에서 꺼내든 몇몇 책자들을 유성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강하게 밑줄 쳐진 몇몇 언급들이 있었다.
드라칸에 대한 일부의 연구 결과들이다.
“드라칸은 공간을 갈라 머나먼 거리를 단숨에 워프(Warp) 할수도, 혹은 시간축을 잘라내서 몇 초 전, 혹은 몇 초 후의 단시간 도약을 할 수도 있어요. 이 정도쯤은 알고 있죠?”
“그래. 모를 수가 없는 일이지. 모두가 전장에서 직접 경험한 일들이니까.”
“……?”
유성의 대답에, 그녀는 잠시간 눈을 가늘게 뜨고서 의심이 어린 기색으로 가만히 응시했다.
하지만 곧 두어번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흠흠. 하여튼,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개발된 게 바로 연합의 워프 기술이기도 하죠. 드라칸의 것을 베꼈다는 소리에요. 그리고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드라칸의 시간 능력을 베껴서 써볼 수도 있다는 것 아닐까요? 400년 씩이나 방대한 시간의 도약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일리가 있군.”
납득이 가는 소리다.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알파가 하는 소리였다.
그녀는 본래부터 드라칸의 능력들에 관해 흥미가 있어 여러모로 관심을 들이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일부의 능력들은, 그곳에서부터 비롯된 연구의 일각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만일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 알고 싶군. 실패했을 때, 막을 방도는 있는 건가?”
“실패?”
그 말에 잠시간 눈알을 굴리던 알파는 머리를 긁적였다.
곧 유성과 시선이 마주치자 단답으로 대꾸했다.
“그야 뭐, 실패하면 당연히 죽겠죠. 드라칸의 핵이 폭발하는데 무슨 수로 그걸 막아요?”
* * *
그로부터 반나절 가량이 지났다.
난데없이 한창 열띤 토론을 벌이던 알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팔목에서부터 통신 단말이 진동을 흘리고 있었다.
“호출인가?”
“네. 메시지를 보니 전장으로의 투입 요청이 들어왔대요. 미국 쪽이요.”
“미국이라. 꽤 바쁘겠군.”
“그럴 것 같네요. 하아. 상위체가 세 마리나 된대요.”
상위체가 셋.
확실히 각성자임을 감안하더라도 버거운 숫자다. 하물며 지금 시대의 드라칸 놈들은 온갖 전투를 모두 겪은 노련한 개체들이었다.
성장치도, 경험의 축적량 또한 나름대로 상당할 터.
“동료들은 함께 가지 않는 건가?”
“다른 녀석들은 모두 바쁘다네요. 다들 어딘가에 있으니 이번에는 저 혼자만이래요. 빌어먹게도.”
하지만 한숨을 내쉬면서도, 알파는 얌전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군인이었다.
군인은 의지와는 관계없이 전쟁을 위하여 움직이는 도구였다. 싫다고 해서 빠질 수는 없었다.
그런 알파의 모습에, 마찬가지로 유성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손을 두어 번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말을 건넸다.
“나도 함께 가도록 하지. 알레이스타.”
“네?”
알파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녀의 동그랗게 뜨인 눈이 멀거니 그를 응시했다.
“도와주겠단 소리다. 이미 도움마저 받았는데 그것만 받아내고서 모른 체할 수는 없으니까. 그만한 값어치는 해내야겠지.”
그 말에 알파는 방긋 웃어 보였다.
“와. 그거 고마운 소리인걸요? 그런데 당신에게 위험한 게 아닐까요? 아무리 그래도 전투인데.”
“어차피 잠시간의 출격일 뿐이니까. 게다가 상위체라고 하지 않았나? 고작 그 정도로 죽을 리는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파일럿 복장만 지급해주면 된다.”
“와…아.”
감탄을 하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한숨을 내쉬는 것인지.
곧 알파가 말을 이었다.
“그런 말투까지도 저희 시혁 대장이랑 똑같긴 하네요. 말투가 재수가 없어요.”
“…….”
이 시절의 알파는 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건가.
유성은 말이 없었다.
* * *
쿠오오오-.
강습 수송기가 거친 진동과 함께 흔들리고 있다.
유성과 알파.
그들이 탄 강습 수송기가 구름 기류를 뚫고서 천둥 번개가 내려치는 저 너머의 지점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충격과 흔들림이 연달아 일어났다.
알파가 느슨하게 풀려있던 파일럿 복장을 꽈악 조이며 말을 건네왔다.
“장소는 미국의 도시 중 하나인 뉴욕이에요, 유성. 거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죠?”
“그래.”
모를 리가 없었다.
뉴욕은 번화된 도시였다.
그곳은 수많은 사람들의 수 만큼이나 마력의 형질이 풍부하게 자리잡은 지구상의 몇 되지 않는 지리 중의 하나였다.
어떤 식으로든 이시혁이란 이름으로 불렸을 때에도 몇 번이고 출전한 경험이 있었다.
투입된 병력은 단 두 명이었다.
유성과 알파.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부족한 병력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다소 과한 감이 있었다.
알파는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최상의 각성자였다.
본래라면 알파 혼자서 나섰을 상황이다.
거기에 유성까지 실렸으니 과하다면 과한 전력이기는 했다.
‘완전체를 상대하기 전에 내 상태를 점검해볼 모의전으로는 충분하겠군.’
기량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시간 속성을 지닌 완전체 드라칸을 상대하고서도, 여분의 체력을 보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핵의 폭발 속에서 그것을 다루어낼 여분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음……. 그런데 유성.”
알파가 곧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말하도록.”
“정말 괜찮나요? 다른 무엇도 아니고 상위체가 셋인데? 죽는다니까요?”
그 말에.
유성은 스윽 시선을 들었다.
“넌 내가 이시혁이라고 했던 말을 듣지 않은 건가?”
“흠흠.”
알파는 뭔가 불만이라도 생겼던 모양이다.
그녀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역시 말투가 똑같긴 똑같네요. 재수가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