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알파(3)
사람은 변한다.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었고, 또한 그 성질 또한 조금씩 흐르듯 변해간다. 조금씩.
하지만 그 기반이 되는 성정만큼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이다.
쿠우우웅-.
한창 체력 단련을 하던 유성.
그는 군사 기지의 천장이 낮게 떨리는 것을 감지했다. 무언가 나타났다.
곧, 이안 중령이 등장해 그에게 말을 전달했다.
“유성. 자네의 상관이 도착했다. 준비하도록.”
“직접 왔다는 말입니까?”
“그래.”
그 말에, 유성은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씻고서 곧장 바깥으로 나섰다.
거기에는 느긋한 기색을 한 예의 ‘그녀’ 가 있었다. 알파였다.
“오, 유성.”
“왔군요, 대장.”
눈이 마주치자 알파가 방긋 웃어 보였다.
그 미소를 마주한 유성은 생각했다.
‘여전히 그대로로군.’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 * *
고오오오-.
야심한 새벽녘의 하늘.
두 인물이 나란히 사막과 다름없는 모래 위를 밟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알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성이라고 했던가요? 당신. 왠지 모르게 저희 대장과 성격이 비슷해 보이는군요.”
“이시혁과?”
“네.”
그 말에.
유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웃음이 나왔다.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둘은 다른 이가 아닌, 동일인물이었으니까.
그들은 황야에 선 채로 대화를 나누었다.
본래라면 그럴 여유조차 없어야 마땅하지만, 지금 알파는 수면을 취해야 할 회복 시간까지 쪼개고서 이 자리에 온 마당이다.
어차피 잠을 자지 않기로 했으니 이 이상 거칠 것도 없었다.
유성은 알파가 시종일관 그를 계속해서 탐색해 나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의 마력형질이 하나의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전신을 은밀하게 훑고 있었다.
알파는 보기보다 궁금한 것이 많은 여자였다.
지금의 그녀는 아직 스물을 채 넘기지 못한 한낱 소녀에 불과했다. 흥미가 있다면 궁금해하고, 어리숙한 면모를 숨길 줄 몰랐다.
다른 각성자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비슷한 나잇대였으니까.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봐라. 그렇게 은근슬쩍 툭툭 건들어대지 말고.”
유성은 세계에 널리 알려진 각성자인 알파를 앞에 두고서도 말을 낮추지 않았다.
그 대신, 턱짓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시종일관 일관된 태도를 고수했다.
“묻는 말에 몇 가지 정도는 답해주지.”
“어…… 걸렸습니까?”
“그래.”
그의 대답에 알파가 난처하게 웃어 보였다.
예상 밖의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표정이 그것을 증명했다.
스윽.
알파는 고개를 돌려 뒤편을 바라보았다.
저 뒤돌아본 군사기지에는 이안 중령이 서 있었다.
그는 이 도시에 몇 남지 않은 책임자 급의 인물 중 하나였다. 이안 중령은 낯선 외지인인 유성, 그리고 알파를 강력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금 유성 쪽을 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당신, 정체가 뭔가요?”
“이시혁이다.”
“네?”
“네 상관, 이시혁이라는 말이다.”
그 난데없는 소리에.
알파의 미소가 깨지고, 대번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 * *
“흠흠. 그러니까.”
몇 번, 어색하게 헛기침을 한 알파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허공을 어지럽게 움직였다. 마치 자신의 복잡한 사고를 드러내는 듯이.
“당신의 말은 지금의 이시혁이 400년 후에는 유성이 되고. 그 유성은 모종의 사고를 겪어서 이곳 지구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뭐, 그런 걸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런 셈이지.”
유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약해요? 오히려 더 세져야 정상이 아닌가?”
“…….”
그 말에, 유성은 팔짱을 낀 채로 말없이 알파를 응시했다.
가늘게 뜬 두 눈이, 그녀를 응시하자 왠지 모르게 툴툴거리는 듯한 반문이 즉각 튀어나왔다.
“뭐요. 왜 눈을 그렇게 떠요?”
‘역시 말투나 태도부터도 어린 느낌이 나오긴 하는군. 내 시간대에서의 알파는 말투부터도 성숙한 느낌이었었는데 말이지.’
황녀로 자신을 가장하며 긴 시간을 버텨온 알파는 다소 기력이 쇠하고 여러모로 그 내면을 꿰뚫기가 어려운 느낌의 인물이었다면.
지금 시대의 알파는 그에 비한다면 여러모로 가벼운 느낌이 강했다.
어느 모로 보나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어쩔 수 없기는 할 터였다.
‘이런 성정이 자라나게 되면 미래엔 그렇게까지 변하는 건가. 꽤나 큰 폭으로 성장하는군.’
당시의 이시혁이었던 그에게 있어선 이렇다는 생각이 없었었는데, 그건 아마도 그 자신 또한 어렸던 탓이 큰 거겠지.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사고 또한 비슷할 거였다.
한숨이 나오는 상대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의 유성에게 있어서 가장 제대로 된 협력이라는 것을 해줄 대상은 눈앞의 인물뿐이었으니까.
이시혁이나 아그네스, 그밖에 다른 인물들은 이토록 순순히 넘어오지 않을 이들이었다.
알파는 단순한 흥미만으로 자극해도 충분하지만 나머지는 다르다.
“알레이스타 시타델.”
“제, 제 이름을 어떻게?”
그녀의 눈이 당황으로 얼룩졌다.
알레이스타의 이름은 세계 정부, 연합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그녀의 본명을 아는 이들은 각성자들 중에서도 몇 없었다.
하지만 유성의 볼 일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서늘하기 짝이 없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마나 포션이나 넘겨라. 내가 고작 네 궁금증이나 풀어주러 이곳에 온 것 같은가?”
움찔.
그 말에. 알파는 저도 모르게 움츠려드는 제 자신을 감지했다.
유성과 이시혁.
둘 사이에 존재하는 마력의 격차는 한없이 후자가 압도적이었지만, 그 기세나 눈매만큼은 모두가 동일했다.
…마치 사람을 찍어누르는 듯한 압도적인 기세라니.
목소리의 저변에 깔린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 차디찬 기색에, 알파는 저도 모르게 그대로 멈춰 서고야 말았다.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결국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의사를 전하는 것이었다.
“챙겨오기는 한 건가?”
“네. 부탁했으니까 가져왔죠. 어차피 저에게 있어서도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말이죠. 자요.”
유성은 알파가 건네주는 마나 포션을 그 자리에서 곧장 집어삼켰다.
목울대를 타고서 넘어간 그 강렬한 기운이, 순식간에 위장을 타고서 전신으로 빠르게 흡수되었다.
“와. 순식간에 그 전부를 집어삼키네.”
각성자인 그녀는 유성의 체내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를 알 수 있었다.
바닥이나 다름없었던 그의 내면에 마력이 차올랐다.
그래. 딱, 마나 포션을 먹은 만큼 그의 마력이 생겨났다. 거의 1대1에 가까운 완벽한 치환비였다.
“저조차도 이 정도의 치환은 불가능한데. 확실히 시혁 대장을 언급하며 말할 정도의 능력은 있군요.”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알파가 감탄했다.
본래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몸에 집어삼킨 마력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것은 드라칸조차 감히 해내지 못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남자, 유성은.
놀랍도록 태연히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다음.”
하지만 그 말에 답하지 않은 채로, 유성은 손을 내밀었다.
“자요.”
알파는 다시금 품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어 내밀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전적으로 다른 상등품 품질의 마나 포션이 제공된다.
언제고 전선에 곧장 투입되어야만 하기에, 그 반동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의 마나 포션이었다.
유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금 그것을 목울대를 통해 넘겨버렸다.
본래라면 정체불명의 상대인 그를 한없이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알파는 달랐다.
당장 이시혁이나 아그네스, 그밖에 인물만 하더라도 곧장 유성을 크게 경계하며 거리를 벌리려 했겠지만.
본래부터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알파는 그런 의심이 깔릴 리가 없었다.
‘오늘 난 어떠한 공격도 당할 예정이 아니다. 죽을 위기 또한 없지.’
따라서 자연히 그런 경계심 또한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녀의 사고는 대부분의 의심이 밑바탕에 딸린 평범한 인간들과는 달랐다.
그것은 유성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알파는 그를 두고서 허튼 수작을 부리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흥미와 궁금증을 가진 상대방을 동물원의 사자 보듯 관찰하는 성격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후우.”
유성은 감았던 눈을 떴다.
내면에 차오르기 시작한 마력의 기운. 그 양이,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한가요?”
그 말에, 유성이 말없이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아직 불충분하다는 의미였다.
알파가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쿠오오오-!
두 기의 기가스들이 나란히 상공을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푸른 빛줄기가 그들이 지나쳐가는 아래로 흔적을 남겼다.
통신 채널의 반대편에 위치한 알파가 말을 건네왔다.
[기가스의 운용에도 능숙하군요.]
“능숙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가?”
[저희 시혁 대장을 입에 담았던 일이라면 영 효과가 없었다고 말해주고 싶군요. 차라리 다른 각성자들의 이름이었다면 모를까.]
그 말에 유성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믿어지지도 못할 농담이란 소리라는 건가.
하긴 그럴만도 했다.
각성자들의 사이에서도, 자신의 과거였던 이시혁은 그 존재부터가 의심될 정도로 강력한 인물이었으니까.
각성자 간에서도 급이라는 게 있었다.
이시혁은 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였다.
그가 기가스에조차 탑승하지 않은 채로 상위체를 상대했던 일화는 꽤나 유명했다.
지금 알파는 본래의 기지로 복귀 중이었다.
최소한의 회복을 위해, 달의 근방에 위치한 우주정거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알파.”
[말씀하세요. 듣고 있으니까.]
“너라면 4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가능해 보이나?”
그 말에 알파가 침묵했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간 화면 속 유성을 응시하고 주변을 둘러보기를 반복했다.
시선이 한 군데에 멈춰 있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한동안 생각하는 듯하던 그녀가 되물었다.
[제게 가능한지를 묻는 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가능할지를 묻는 건가요?]
“둘 다다.”
알파에게는 한정된 일부의 시간을 건너뛰듯 움직이는 몇몇 기술들이 있었다. 유성이 묻는 것은 그쪽이었다.
알파는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속이 내비치지 않은 웃음을 드러내 보였다.
[안타깝지만, 둘 다 불가능합니다. 딱 봐도 나오는 대답이잖아요?]
“그런가.”
유성은 잠시간 눈을 감았다.
물론, 이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대답이기는 했다.
애당초 그러한 것이 가능했다면 인류는 몇 번이고 종말에 다다르는 결말을 회피하려 시도라도 해보았을 터였다.
[그보다 유성.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뭐지?”
[정말로 당신이 먼 미래의 인간이라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된 건가요? 제가 꿰뚫어 본 미래에는 종말뿐이던데요? 혹시 전쟁에서 이겼다든가 하는-.]
“도망쳤다, 너희들은.”
[…….]
“전쟁에서 패한 너희들은 종의 완전한 멸절만은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 도망쳤지. 그게 전부야.”
통신 채널에는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