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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44화 (144/200)

144화. 알파(2)

‘흠. 이 인간은 뭐지?’

알레이스타 시타델.

동료들에게는 본명보다는 ‘알파’ 라는 이름으로 곧잘 불리우곤 하던 그녀는, 모니터 너머의 상대방을 응시하며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가늘어진 알파의 눈매가 유성이라 자신을 밝힌 상대방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훑었다.

알파는 본래 불과 수 시간 전에 전투를 끝마치고 한창 휴식기에 도달한 차였다.

간신히 치열한 전투를 끝마치고서 이제야 쉬는가 싶었더니.

조금 눈을 감고 있으니 난데없이 통신 요청이 걸려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하필이면 그녀를 지목하여 불러내는 통신이었다.

[난데없이 누구야?]

짜증이 치솟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각성자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세계는 매일같이 전쟁과 비명으로 아우성이다.

재앙 중의 재앙,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마저도 하루가 멀다하고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통에 제대로 휴식을 취할 만한 여유조차 없이 꼬박 사흘간을 내리 고막이 울려대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보내야 했다.

잠을 자지 못했으니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 또한 당연한 결과였다.

쿵쿵, 불편한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낸 걸음걸이로 복도를 나아가며 알파는 생각했다.

‘쓸데없이 부른 거면 제대로 으름장을 놔주지. 한국 쪽에는 보급 지원이 간다고 들었던가? 그것부터 상부에 말해서 끊어주겠어.’

그러한 동아시아의 외딴 나라에서 갑자기 알파, 그녀를 지명하여 부른다는 점에 의아해하면서도.

애써 치솟으려는 짜증을 꾹꾹 누르며 통신을 수락했던 결과가 이거였다.

자신을 호출했던 그 ‘유성’이라는 인간을 마주하자마자.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짜증을 놀라울 만치 순식간에 사그라트렸다.

‘뭐지, 이 인간은?’

알파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녀는 다른 각성자들과는 본질적으로 그 급수부터가 다른 인간이었다.

시간의 속성을 날 때부터 타고난 인간은 세계에서 오로지 알파 그녀만이 유일했다.

모름지기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미래라고 부르는 시간선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타고난 강대한 능력은 그녀가 의식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가까운 미래를 자연히 내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서는 어떠한 기류조차도 느껴지질 않는다.

완벽한 흑색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내가 지금 잘못 본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옆의 이안 중령을 보았다.

분명 그 미래의 색감이 뚜렷하게 보인다. 적색이다.

앞으로 1년, 혹은 그 미만의 시간 안에 죽을 거라는 뜻이다.

‘착각이 아니다?’

알파, 그녀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에 다시금 유성을 보았으나.

여전히 그는 지독한 흑색으로만 점철되어 있었다. 넘실거리는 어둠이 어찌나 지독했던지, 아예 주변에 치렁치렁 넘쳐 흐르는 게 보일 정도였다.

‘이만큼이나 자신의 마력을 통제하는 인간은 각성자들 중에서도 한 명뿐이야.’

각성자라 불리우는 극소수의 마나 사용자들.

그들은 저마다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육체에 넘쳐 흐르는 마력을 다루기 마련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수준은 한낱 마나 사용자와는 천지 차이 수준으로 완벽에 가깝다.

그 정도로 자신의 에너지의 통제에 능숙하기에 알파에게조차 미래의 색감조차 거의 드러나질 않기는 했다.

하지만 드러나기는 분명히 드러났다.

어떤 식으로든 흐릿하게나마 말이다.

단 한 명.

적어도 알파가 태어난 이래로, 완벽한 흑색을 지닌 불가해의 초인, 이시혁이라는 이름의 그 남자를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어느새 알파는 흥미가 생겼다.

“그래. 이안 중령이라고 했나?”

알파의 부름에 이안 중령이라 자신을 밝힌 중년인의 고개가 그녀 쪽을 향했다.

“녀석을 구해다 준 대가로 기가스 세 대를 보급해주도록 하지. 그 녀석은 우리 쪽에서도 나름대로 소중한 인재라서 말이야.”

알파는 선심 쓰듯이 제안을 던졌다.

처음에는 예의 따위는 진작 집어치우려 하였으나, 얘기가 달라졌다.

‘유성. 저 남자는 각성자다.’

한시가 급박한 그들의 상황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남자다.

그가 어떻게 자신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나, 그것과는 별개로 틀림없이 저건 전력이 된다.

속마음이 다급해졌다.

하지만 그것을 애써 내면에 감춘 채, 그녀는 모니터 너머의 상대방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 밖에 일부 보급품에 관해서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해주도록. 그 정도는 흔쾌히 내어주겠다.”

알파에게는 그녀 나름의 재량이라는 게 있다.

제아무리 연합이 가장 강대한 국가 넷이 합쳐진 세력이라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보급품이나 기가스는 틀림없이 귀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진작이 온갖 전쟁으로 지맥의 기류가 말라붙은 지구에선 더 이상 작물이 자라나지 않았다.

황폐화한 대지는 무엇을 심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발전된 기술을 통해 적은 효율로서 어떻게든 작물들을 생산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가치는 이루 말할 데가 없이 대단했다.

다만, 덧붙인다면.

각성자의 가치가 그 이상으로 대단할 뿐이었다.

이런 재량권을 여지없이 나눠주었을 정도로.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서도, 막 나가는 감이 있었다.

꿈틀.

그 기색을 느꼈던지, 이안 중령이란 이름의 사내의 눈매가 일순 꿈틀거렸다. 미약한 불쾌감이 은연중에 드러났다.

지금 알파의 어조는 완벽한 하급자를 대하는 어투였다.

무례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미 보상도 지급해주기로 한 마당에 저 남자가 뭐라할 수 있을 만한 여력은 없었다.

상대방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각성자들의 전력은 맨몸으로 전함조차 격퇴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들의 위상은 세계에서도 손에 꼽혔다.

이안 중령은 그녀의 변덕을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얌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이만 통신을 끊도록 하지.”

삑.

통신이 끝났다.

“후하하.”

화면이 꺼지고 난 직후.

돌연, 알파는 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유쾌한 기세를 머금은 마력 파장이 줄기줄기 퍼져나갔다.

유성이라던 이름의 그 남자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그 일말의 감정조차 드러나지 않는 차분한 눈매하며, 말을 하는 어조나 패턴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놀라울 정도로 그 마력의 색감이었다.

꼭 그들 각성자들의 대장, 이시혁과도 닮은 듯했다.

철저할 정도로 자기 통제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였다.

* * *

일방적으로 저쪽에서부터 통신이 끊긴 직후.

잠시간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곧 이전보다도 한층 차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이안 중령은 입을 열었다.

“태도가 유난히도 시건방지군.”

“각성자들은 몇 날 며칠간을 자지도 못한 채로 전투에 임해야 하니까요. 오히려 그녀 정도면 각성자들 중에선 얌전한 축에 가깝습니다.”

알파 정도면 그래도 양호한 편이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축에 속했으니까 말이다.

다른 각성자들의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참아내지 못하고 주변인을 해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들은 늘상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린다.

“개중에는 심심풀이로 사람을 죽이는 이들도 있죠. 이안 중령께서도 괜히 심기 거스르지 않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건 협박인가?”

“단순한 사실이 그러할 뿐입니다.”

이 시대의 각성자들은 400년 후의 까마득한 미래와는 달랐다.

전장에 투입되는 그들은 격전지의 한복판에서 24시간 내내 극심한 자기 통제를 이루어내야만 했다.

당연하겠지만 그건 제아무리 통제력이 뛰어난 각성자라고 할지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최악을 염두하고 행동해야만 하는 이들이다.

일어나지 않는 아군의 죽음을 전제에 깔아두고, 항상 의심부터 하고 보는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했다.

단순히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자들인 각성자들도 그러한 판에 그보다도 전력이 떨어지는 일반 마나 사용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쨌거나 이것으로 확실해졌군.”

이안 중령은 권총을 품에 집어넣었다.

그는 차게 가라앉은 눈으로 말을 이었다.

“자네는 그 이시혁조차도 본 적이 있나?”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유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은 사실이었으니까.

그 정점에 선 것이 바로 유성의 전생, 이시혁이었다.

언제나 신중하며, 관찰력은 본능의 밑바탕에 깔릴 정도로 예리한 이였다.

방법이 없으면 활로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자리에 있었던 그다.

“쯧.”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찬 이안 중령이 몸을 돌렸다.

“얌전히 지내도록.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괜찮으나, 사고는 치지 말았으면 좋겠군.”

“그러도록 하죠.”

유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망설임 없이 이 자리를 나섰다.

마치 그와는 더 이상 한 자리에 있기조차도 싫은 것처럼.

바깥으로 나선 이안 중령은 생각했다.

‘건드리지도 못할 괴물이었군. 부디 얌전히 있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알파의 직속 부하임이 드러났기에, 더 이상 그는 유성을 멈춰 세울 자제력을 잃었다.

강력한 마나 사용자는 한낱 군인들에 불과한 그들 따위와는 급수부터가 달랐다.

설령 유성이 살해를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이안 중령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을 터였다.

그것이 마나 사용자의 위상이자, 각성자를 뒷배로 둔 이의 능력이었다.

* * *

유성은 지하 기지를 돌아다녔다.

군인들이나 일반인들의 시선이 지나쳐가는 그에게로 꽂혀 들었다.

하지만 그 중의 누구 하나 그에게 제동을 걸지 않았다.

이안 중령은 그의 가슴팍에 건드리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의 적색 표식을 달아두었다. 결코 제지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부릉-.

몇몇의 군인들을 태운 트럭이 바깥을 향해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가족으로 보이는 일부 사람들이 멀어지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자체적으로는 식량을 생산할 수가 없어졌기에,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몇 번이고 황폐화한 도시를 향해 나서야만 했다.

설령 그것이 죽음을 자초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보급품은 오로지 도심에만 존재하였으니까 말이다.

‘이곳은 어떤 식으로든 오래 가지 못하겠군.’

유성은 주변 사람들의 눈에 깃든 그득한 절망감을 읽었다.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대화 주제는 온통 이제 식량이 얼마만큼 남았으며, 앞으로 몇 개월을 더 버틸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어떤 식으로든 이제 이들은 시한부의 삶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코앞에까지 칼날이 들이밀어 진 느낌일 것이다.

실제로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조리 끝장날 터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일 년 정도가 지나고서는, 더더욱 강대한 절망인 궁극체마저도 튀어나오게 되는 시점이 도래할 테니까 말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이 세계의 미래인 거니까. 받아들여야 해.’

세상은 착실하게 종말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제 이 메마른 대지는 완전한 침묵이 도래할 터였다.

그때가 된다면 지금처럼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조차도 완전히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드라칸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면 뭐든 취하고 잡아먹었다.

마력은 놈들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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