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알파(1)
저 앞에는 군인들이 모여 있었다.
유성과 소대장 한신이 다가서자 그들의 시선이 모였다.
한적한 주변 상황에 긴장을 놓고 있던 군인들은 잠시간 한신을 응시하다 곧 옆에 함께 선 유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소대장 한신의 얼굴이라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유성의 얼굴은 생소했다. 그는 외부인이었다.
두어 번 상황을 살피던 그들이 허리춤에 걸린 총기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언제고 발포할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가볍고 한산하던 주변 분위기가 대번에 가라앉았다.
그런 이들을 마주한 채, 유성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이 도시의 지휘부를 만나보고 싶다.”
“…지휘부를?”
그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눈빛에 경계심이 역력하다.
군인들은 이곳을 지나쳐가는 인원들을 검증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때 옆에서 한 발 앞으로 나선 소대장 한신이 말을 거들었다.
“이름은 유성. 강화 시술을 끝마친 강화 인간이다. 드라칸들에게 쫓기던 우리들을 구해줬지. 혼자서 둘을 거뜬히 상대하는 초인이더군.”
“드라칸을 둘이나 죽였다라. 소대장 한신. 보증하나?”
“보증하지. 내 다른 동료들도 모두 눈으로 보았으니까.”
“그런가. 알겠다.”
군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옆으로 비켜섰다.
진작부터 가지고 있던 무거운 분위기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탁, 하고 가볍게 풀렸다.
그들은 허리춤에 걸치고 있던 손을 내렸다.
총기에서부터 손을 뗀 그들이 이제까지의 경계심과 적대감은 진작에 사라진 얼굴로 턱짓했다.
“안으로 들어가라. 지휘부 인원이 대기하고 있을 거다. 허튼짓은 하지 말고.”
“그러지.”
무장한 군인들의 무리를 지나쳐 들어서면서, 유성이 말을 건네왔다.
“생각보다 검열이 심하진 않군요. 그만큼 이곳 한국 쪽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반증입니까?”
유성의 물음에.
그는 쓴웃음을 드러내어 보였다.
“…그런 셈이지. 지금 한국은 최악의 가도를 달리고 있어. 이 군사 기지가 한국에 남은 마지막이니까. 이곳이 무너진다면 이제 한국은 사실상 끝장이나 마찬가지야.”
그는 숨기려 들지 않았다.
애당초 유성도 자신을 군인이라 밝힌 상황이었다. 옷차림새나, 절제된 동작들 모두가 그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니 군인 출신일 그에게 숨긴다고 될 턱도 없긴 했다. 차라리 진작부터 그들이 처한 현실을 드러내고 말하는 편이 맞았다.
이런 마당에 전투 인력인 유성의 존재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들에게는 유성이란 이가 필요했다.
물론, 유성이 그들의 요청을 순순히 따라줄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은 했어도 사실 이미 한국은 끝장난 상태나 마찬가지기는 했다.
수개월 전 동아시아 연합군이 괴멸하며 마지막 정부 집단이 쓸려나갔다.
중국은 진작에 붕괴한 지가 오래였고, 이제는 한국의 차례였다.
이곳에는 당시 동아시아 연합 작전에 참여하지 않고서 남아 있던 나머지 인원 정도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 * *
펄럭.
천막으로 가려져 있던 막사의 안으로 들어서자, 지긋한 나이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얼굴의 이곳저곳에 나 있는 깊숙한 상흔들이 보인다.
한눈에 보기에도 몇 번의 연속된 죽음의 위기를 겪은 것임이 분명해 보이는 노장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것보다 나가서 싸우는 전투 인원임은 명백해 보였다.
그런 노장의 앞에 선 소대장 한신이, 고개를 숙이며 간단한 인사치레를 치렀다.
“제17번 소대장 한신, 정찰 임무를 끝마치고 방금 전 복귀했습니다.”
“그래. 돌아왔군. 보고 상으로는 소대원 둘을 잃었다지?”
“네, 그렇습니다. 드라칸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한쪽은 고압적인 하대. 다른 한쪽은 분명한 상관을 대하는 듯한 어조.
서열은 분명하게 나뉘는 게 보였다.
이안 중령이란 이름표를 붙인 그는 곧 천천히 소대장 한신의 옆에 나란히 선 유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유성과 이안 중령 간의 시선이 마주쳤다.
“저자가 바로 자네들을 구해주었다던 그 강화 인간인가? 군인 출신이라던?”
“네, 맞습니다.”
그들의 대화가 잠시간 이어지는 동안.
유성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동자로 그들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아마도 눈앞의 상대는 한국에 몇 남지 않은 지휘 체계의 인원 중 하나일 터였다. 계급은 중령. 이 난리통에는 보는 것조차도 한참은 드물 그런 계급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어떤 식으로든 나름대로의 분명한 연락책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끼익.
그때, 오래된 쇳소리와 함께 녹슨 의자에서부터 이안 중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군홧발 소리와 함께 턱을 쓸더니 유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유성. 자네는 어디 소속이지?”
대화에 지속된 시간이 적었다. 유성은 상대방이 어떠한 타입이고 어떤 것을 중시하는 지 손에 알아볼만한 기회가 적었다.
그나마 알아차렸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곳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 하나뿐.
‘내 대답에 따라서 이들의 행동양식 또한 바뀌기 마련이겠지.’
사람이란 건 늘상 상황에 따라 뒤바뀌기 마련이다.
어떤 식으로든 유성은 최소한의 행위만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이끌어내야 했다.
지금 그가 가진 것이라곤 제 자신의 몸뚱이와 세 치 혀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는 주변 상황을 기반으로 하여 정답에 가장 가까울 만한 소리를 언급했다.
“세계통합 방위 군단인 연합의 2번대 소대 어시스트 얼라이언스(Assist Alliance). 그게 내가 속한 소속의 이름이다.”
“……? 처음 듣는군, 그런 부대명 따위는.”
“넘버즈(Numbers) 들을 적극 보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된 그들 휘하의 보조 소대원이다. 대부분은 모르고, 그마저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니 모를 수밖에 없겠지.”
알지 못할 소리에 이안 중령의 미간이 서서히 모아졌다.
그의 눈이 경계심으로 가득 들어찼을 찰나.
그리고 그 말의 끝에.
잠시간 침묵하는 듯했던 유성은 뒷말을 덧붙였다.
“내 직속 상관은 각성자인 넘버즈 서열 2의 알파다. 나는 그를 적극 보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육체 개조 시술을 한 전투 인원이다.”
“……!”
그 말에.
남자, 이안의 눈이 대번에 치켜 떠졌다.
각성자. 그리고 알파.
그것이 뭔지는, 이 시대의 인간들이라 한다면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었으니까.
* * *
“…….”
유성은 침대에 누운 채로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꽤나 연식이 오래된 모양인지 그가 누워 있던 군용 침대가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흘렸다.
‘곧 상대방 쪽에서부터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오겠군.’
유성은 자신이 세계 통합 군단인 연합의 소속이란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연합은 세계 각국의 서열 따위를 막론하고 세계의 모든 강국들이 참여한 통합 군대다.
이곳에 참여한 국가들은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등 군사적 강국의 서열에 발을 걸친 이들이라면 모두 속해 있었다.
한국은 연합에 참여조차 하질 못했다. 본래부터 타고난 자원의 여력이 거의 없던 게 그의 모국인 한국이었다.
세계 통합 군단에 참여할 수 있는 최저 한도는 기가스와 전함의 보유 숫자였다.
전 세계에서도 단 네 국가만이 이곳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가장 자원이 풍부하고, 타고난 땅덩어리가 넓은 국가들만이 말이다.
물론 지난번 동아시아 연합군의 괴멸 사건으로 인해 중국은 무너졌을 테니 이제 그들은 연합에서 빠졌을 터다.
그 대신 다른 국가들 중의 하나가 새로운 연합의 인원으로 참여했겠지.
유성은 생각했다.
‘그나저나 어쩌면 알파나 내 전생자인 이시혁을 직접 마주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정황상으로만 따져본다면 나 자신보다는 알파 쪽이 더 가능성이 큰 건가.’
이 시절의 이시혁은 매일같이 전장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의 육체는 24시간 수많은 인원들에 의해 관리, 감시를 받으며 온종일 그 여력을 체크받는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을 때는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를 받곤 했다.
그러니, 차라리 그 자신의 전생체보다는 오히려 옆에서 그를 보조하는 알파를 불러내는 편이 더 나을 터였다.
유성이 알파의 휘하에 있음을 드러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간간이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회복하기도 하니까 말이지. 그 녀석은. 어떤 식으로든 내 전생자보다는 만날 수 있을 만한 여력 정도는 있겠지.’
지금 유성은 잠시간의 유예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의 상태다.
어떤 식으로든 이들은 그 대단한 넘버즈를 직속 상관으로 두었다 말하는 이 정체불명의 군인, 유성을 함부로 대하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알파가 그런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거나 오히려 부정한다면, 오히려 내몰리는 것은 내가 되겠지.’
물론 유성은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여기진 않았다.
그가 아는 알파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 소리가 귀에 흘러간다면 틀림없이 일말의 반응이나 흥미를 보일 테니까 말이다.
알파는 세상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조차도 이 대전쟁에서부터 승리하기 위한 한낱 ‘병사말’ 로 간주하는 편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유성이 녀석과 접점을 마련하기 위한 최선의 방도이자 해결책이었다.
유성은 확신하고 있었다.
‘녀석은 반드시 반응한다.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정확히 이틀 후, 아침.
유성은 알파의 통신을 받았다.
* * *
[그래. 놀랍군, 유성. 아직 살아있었나?]
“…그렇습니다. 아슬아슬하지만, 아직 숨은 붙어있었죠.”
알파와 유성.
그들은 서로를 대면한 채로 차분한 통신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스륵.
유성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옆에서 그를 가만히 관찰하고 있는 이안 중령을 응시했다.
이안 중령은 지금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조금의 거짓말이라도 새어 나왔다간 그 자리에서 포박하고도 남겠군.’
하지만 다시금 시선을 정면의 모니터 화면에 주시한 채로, 유성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동안 잘 있었습니까, 대장?”
[덕분에 말이지. 그보다 네가 한국에 있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어째서 거기에 있지?]
이 시대의 진정한 각성자. 넘버즈인 알파가 소리 내어 웃어 보였다.
그녀의 머리칼이 일렁거리며 나풀거리듯 흔들렸다. 진득한 마력의 증명이었다.
그녀가 구태여 ‘한국’을 언급한다는 것은 하나다. 왜 있지도 않은 거짓 소대를 언급까지 해가면서 자신을 불러냈냐는 것.
각성자들을 보조하기 위한 어시스트 얼라이언스는 창설 직전에 중단되었다.
그들을 보조하기 위한 여력조차도 부족했을 정도였기에, 애당초 계획만 설립되었을 뿐 실행까지도 가지 않았던 계획이다.
하물며 제아무리 알파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투에 투입된다고는 하지만 머나먼 한국 땅에까지 그녀가 적을 둘리가 없었다.
이 세계의 알파는 아직 유성과 마주한 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한 마디로 둘은 서로 처음 마주한 초면의 사이다.
철컥.
그때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상황을 주시하던 이안 중령이 공격할 태세를 마쳤다.
유성은 차분한 눈으로 화면 저편의 강대한 각성자 알파를 응시했다.
그녀는 내내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고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파는 몇몇 인사를 제외하고선 알지도 못할 어시스트 얼라이언스를 언급한 데다 전적으로 자신을 직속상관으로 집어낸 유성에게 흥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서 알파의 흥미를, 또한 이안 중령의 경계심을 해결하지 못하면.
유성은 틀림없이 막다른 길에 내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