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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39화 (139/200)

139화. 실마리 (2)

번쩍.

유성이 눈을 떴을 때, 그가 마주한 것은 일전의 천장이었다.

그는 여전히 지하철 전철의 안에 있었다.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는, 자신의 팔다리가 단단히 포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묶여있다. 팔다리가 전부.’

그런 유성의 옆에서부터 인기척이 들려왔다.

“정신을 차렸나?”

“그렇습니다.”

“좋아. 이제야 좀 멀쩡해 보이는구만. 말투도 훨씬 차분해 보이고. 풀어줘도 말썽은 일으키지 않겠지?”

유성의 머리는 다시금 빠르게 돌아갔다.

일전과 같은 실수는 없을 터였다. 둔부에서부터 흘러내리던 혈흔은 멈췄고, 그 자신의 사고 또한 앞전보다 예민해졌다는 걸 알았다.

“문제는 없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차분한 음성과 확고해진 말투.

거기에 덧붙여진 사과는 남자에게 확신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중년인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일전에 한 가지 당부하겠네. 우리들은 보호해야 할 가족과 동료들이 있어. 혹여나 멋대로 날뛴다면 우리도 곤란해질 수 밖에 없네.”

유성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뒷말은 덧붙이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받아들였다. 은연중에 날뛰지 말라고 하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이들은 그를 구했지만, 아직 그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들에게 있어 한낱 외부인에 불과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은인께 함부로 민폐를 끼치진 않겠습니다.”

잠시간, 유성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는 유성의 눈에 일렁이는 침착함을 읽어냈다.

이전과 같은 흐릿함은 없었다.

중년인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흠. 좋아. 풀어주지.”

“감사합니다.”

중년인은 유성의 팔다리를 묶었던 밧줄을 풀었다.

그는 오래도록 피가 통하지 않아 저릿한 팔다리를 풀었다. 생각 이상으로 단단히 묶어두었던 것이, 어지간히 경계를 산 것 같았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나라도 그럴 거다. 그렇게 난데없이 날뛰었으니.’

지금 생각해본다면 이들이 보기에 유성의 움직임은 기이할 정도로 재빨랐을 터였다.

같은 인간이라고 여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실제로 지금도 창밖에는 다수의 남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들을 힐끔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품에 보이지 않도록 가려진 것은 무기들임이 분명했다.

애써 차분함을 유지한 듯 보였으나 유성은 그들의 눈에 비친 감정의 동요를 읽어냈다.

만약 그가 조금만 허튼 짓을 한다면 저들은 망설임 없이 총을 쏠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래되고 녹이 슬은 지하철역. 꾀죄죄한 다수의 사람들과 한켠에 피워진 고철 화로까지.

종말의 시대가 도래하여 지상에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거처였다.

여긴 생존자들이 숨어 사는 피난처였다.

그런 유성을 보며 중년인이 물었다.

“몸은 괜찮나? 생각 이상으로 다들 겁을 집어먹어서 워낙에 밧줄을 꽁꽁 묶어두었을 텐데 말이야.”

“예.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이고도 이 정도로 그친 데에 감사해야지요. 도움을 주신 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됐네. 우리도 이유 없이 자네를 구해준 것은 아니니까. 무작정적인 호의는 아니란 거지.”

그렇지 않다.

단지 구해진 것만으로도 그는 분명한 고마움을 느꼈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군의 지원을 받지 않는 생존자 무리인 이들은 매 끼니조차 제대로 떼우지 못하는 이들일 터였다.

지금은 도움을 바랄 수 없는 시대였다.

도움을 받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유성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따라오게.”

중년인의 안내에 따라, 그는 어둑한 지하철역을 걸어나갔다.

주변에는 온통 추위를 버텨내기 위한 오래된 외투를 걸친 이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간만에 보는 외부인인 유성을 힐끔거리다가 멀어졌다.

남자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여자나 아이들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죽었나 보군.’

단지 그 극단적인 비율 하나만으로도 유성은 많은 전후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 중의 대다수는 가족들을 잃었다. 어떤 식으로든, 남은 이들이 다른 이들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때 앞서 나아가던 중년인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물어왔다.

“내 이름은 천일이라 하네. 우리가 자네를 어째서 구했는지, 이해하고 있나?”

“아마도…….”

잠시간 주변의 상황을 둘러보던 유성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변은 온통 어두운 기색이 가득했다. 절망이 엿보였다.

“남자가 부족한 듯 보이는군요.”

그 말에 그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네. 우린 이제 여유가 없어. 남자들은 지금 자네가 본 이들만이 전부지.”

“제가 이곳에서 마땅한 역할을 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이유 없는 호의는 없어. 모두가 이득이 있기에 행동하는 셈이지.”

유성은 침묵을 지켰다. 맞는 말이다.

이들은 돌아오는 보상을 그에게서부터 기대하고 그를 구해주었다.

지금 와서 유성의 체격은 이제 단지 조금 건장한 수준을 넘어서 탄탄한 정도에 달했다.

언제나 단련과 전투를 거듭했던 그의 전신에는 유려한 근육들이 빼곡할 정도로 선을 이루었다.

“그렇지 않아도 때마침 식사 시간이기도 하지.”

자신을 천일이라 밝혔던 중년인. 그리고 그의 옆을 지키듯이 선 다른 남자들.

그들의 안내를 받고서 식사를 하던 이들의 대열에 합류한 유성은 그들이 내어주는 통조림캔을 받았다.

“들게. 배고프지 않나?”

유성은 그들이 건네어준 식량을 금세 먹어치웠다.

남자의 몫으로 제공된 것은 통조림 캔 하나 분량이었다. 턱없이 적은 양이었지만, 이들 중 그것을 가지고 불평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여자나 아이의 몫은 그보다도 적었던 탓이다.

꾸루룩.

금세 배고픈 소리가 새어 나왔기에, 그는 내색하지 않으려 하였으나 그 소리를 옆에서 들은 천일은 자신의 몫을 떼어 주었다.

옆의 남자들이 천일을 바라보며 눈총을 주었다. 그걸 왜 주냐는 듯한 시선이었다.

가뜩이나 천일은 오늘 사지나 마찬가지였던 지상을 힘겹게 헤치고 돌아온 마당이었다.

그 기류를 읽은 유성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아니, 들게. 최소한 사경을 헤매던 이이니만큼 그 정도는 괜찮지.”

연이은 재촉에 짤막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유성은 그것을 마저 먹었다.

물론, 그 양은 여전히 턱도 없었다.

저들도 그쯤은 알고 있을 터다.

* * *

“그나저나 옷차림이 그게 뭔가? 꼭 영화에서나 보던 군의 첨단 슈트같군.”

“군의 소속이었습니다. 모두 지급받은 것들이죠.”

“……!”

그 말에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지금 유성은 매끈한 유선형의 파일럿 슈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마치 근미래형의 모습을 담은 그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일반인이 착용할 만한 것은 아니긴 했다.

아마 이들이 유성을 구한 데에는 그러한 이유 또한 적잖게 있을 터였다.

그의 외관이나 흘러나오는 기도는 척 보기에도 일반인 같지 않은 범상찮음이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 옷차림새는 군에서 자주 보던 그것과 닮았다.

그래, 가령 텔레비전에서나 신문에서나 이들이 자주 보아왔던 마나 사용자들의 그것.

파일럿 복장과 같은.

어쩌면 이들은 유성이 자신들을 도와줄 마나 사용자이길 기대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천일이라는 이름의 중년인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혹시, 군으로 돌아갈 셈인가?”

“지금은 아닙니다.”

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먼저 받았던 은혜를 갚아야 했다.

어떤 식으로든 이들은 자신을 구했다. 그 값어치 높은 식량마저 건네준 참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적어도 그만큼의 값어치를 해야만 했다.

* * *

그로부터 이틀이 더 흘렀다.

유성은 이들에게서 지금이 대전쟁이 일어난 지 7년 째가 되는 종반의 어느 지점이라는 걸 들었다.

지금은 서력 2049년의 7월 경이었다.

“그렇군요.”

2049년. 그렇다면 이시혁 자신과 소대원들이 한창 활동하고 있을 시기였다.

그 중에는 분명 알파 또한 있을 터다. 그 중에는 빌객스, 아니 아그네스 또한 있겠지.

그들은 이 시점에 전투에 적극 투입되고 있었다.

각성자들은 매일같이 전 세계를 활보하며 대기권에서의 투입과 활강 작업을 반복한다.

그들의 기가스와 전함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알파를 만나야 해.’

알파만이 당장의 유성에게 있어 유일한 해답이다. 이 시대의 알파는 모든 기량을 잃었던 과거의 알파와는 달랐다.

지금의 그녀는 혼자만의 힘으로도 능히 완전체를 상대하는 최강의 각성자들, 넘버즈들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유성은 그 사실이 암담했다.

설령 코앞에서 그들을 마주하더라도, 유성은 그들을 마주하고 대화할 수단이 없었다.

‘나의 전생자. 이시혁의 소대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전적으로 드라칸과의 격전지에 투입될 경우 뿐이다. 그 이외에는 오로지 휴식을 취할 뿐이지. 소모된 기력을 회복해야 하니까.’

유성은 이들에게 지금 시대에서 이시혁이란 이름은 그 누구보다도 유명하다는 것을 들었다.

그는 분명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드라칸 놈들과 한창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전장을 찾아가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들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그 무수한 드라칸 떼에 의해 먼저 짓밟혀 죽겠지.’

유성은 그들이 당장 눈앞에 있어도 접촉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전히 현실은 막막하다.

그들과 접촉할 만한 기회도, 가능성의 여지도 드물었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아.’

유성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단지 가능성만이 한없이 적을 뿐이다.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 가능성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다.

‘가능성을 올리려면, 나 스스로가 움직여야만 하는 법이다. 생각만 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한없이 0의 확률에 가까이 수렴한다면, 그가 나서서 그 가능성을 올려야만 했다.

* * *

하루가 더 지났다.

다음날 아침, 유성은 지하철역의 생존자 무리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왔다.

생존에 필요한 자원들을 구해내기 위함이었다.

이들이 유성을 꼭 필요로 했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천일이 우려스럽다는 듯 물었다.

“무겁지 않나? 제아무리 그건 자네가 건장하다 해도 힘들 텐데.”

“괜찮습니다. 강화 시술을 받았으니까요.”

“그런가.”

이 시대에는 강화 시술을 받은 일반인 이상의 강력한 강화 인간들이 수두룩했다.

마나 사용자나 파일럿들만으로는 쏟아지는 드라칸들의 물량 공세를 막아낼 수 없기에 행한 조치였다.

일반인들 중에는 마나 사용자들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강화 시술을 받은 신체를 소유한 이들이 있었다.

그의 말에, 천일은 빠르게 납득했다.

양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묵직하다.

각종 식량품과 필요한 기름들.

유성은 그것들을 짊어졌다.

묵직했지만 버겁진 않았다.

그의 마력은 바닥이 났을지언정 그 뛰어난 신체 기능마저 바닥이 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우우우-!]

그때 저 멀리서부터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전에 그를 애먹였던 그놈의 울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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