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실마리 (1)
“알파. 넌 언제나 한결같군. 늘상 알 수 없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소대장, 이시혁의 말에 그녀, 소대원 알파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파일럿 복장을 착용했던 그들의 전신에는 찢기고 긁혀진 듯한 자상들이 가득했다.
그들이 치렀던 전투의 흔적이었다. 그들은 불과 수십 분 전까지 전장에 투입되었다가 이제야 휴식을 취하고 있던 상태였다.
알파는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단지 이시혁 소대장, 그와 같이 말수만이 적다는 뜻은 아니었다. 내성적이라거나 침착하다는 뜻 또한 아니었다.
다른 이들과는 세상을 마주하는 시선의 관점 자체가 다르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곧, 그로서는 전혀 이해 못 할 말을 묻기도 했다.
“대장, 그걸 아십니까?”
[뭘 말이지?]
[시간은 늘 평행하게 움직입니다. 언제나, 어떠한 행성에서든 늘상 그렇지요. 우리들 지구의 행성이 1분의 시간이 흐르면, 다른 곳에서도 또한 1분이 흐르겠지요.]
“그건 당연한 결과지. 그걸 왜 묻는 거지?”
[하지만 때때로 시간이 뒤틀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둘 사이의 시간은 달라지게 됩니다. 대장과 저만이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속성의 각성 능력이, 바로 그것을 이용한 점이지요. 공간 속성 또한 마찬가지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고요.]
잠시간의 침묵 끝에, 이시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전투적인 요소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군인이었다.
시간의 상대성 이론에 정통한 각성자 알파와는 달랐다.
“이해가 가질 않는다.”
[쉽게 말해,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욱 강력한 뒤틀림이 일어난다는 소리입니다. 지금의 저희들은 이곳에서 단지 수 초, 혹은 수 분의 뒤틀림을 일으킬 뿐이지만, 아득히 먼 다른 곳에서 지구에 능력을 발휘한다면 수 년, 혹은 수십 년 이상의 시간을 뛰어넘은 무언가가 발생할 수도 있겠죠.]
잠시간 침묵하던 이시혁이 이내 피식 웃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너답지 않게 말이 길군, 알파.”
그 말에, 알파는 옅은 웃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은 감정이 내비치지 않는 기색이었다.
예지자이자 뛰어난 각성 능력을 가진 각성자였던 그녀는 언제나처럼 이시혁의 앞에서 의미 모를 웃음을 흘렸다.
[기억하셔야 할 겁니다, 대장. 언젠가 깨달을 날이 있을 테니까요.]
‘그렇군.’
천천히 눈을 뜨던 유성은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꿈속의 기억,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는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차렸다.
‘행성 지구와 테라 사이의 그 터무니없는 거리감. 바로 그로 인해서 시간이 뒤틀린 거다.’
정신을 차린 유성은 자신이 어딘가에 눕혀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누군가에 의해 옮겨진 상태였다.
* * *
인류의 문명 대부분은 괴멸했다.
하늘은 불길한 회색빛을 머금었고,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단절된 채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몇 남지 않은 인간들의 연합은 저 우주와 하늘 위에서부터 드라칸과 싸우고 있었지만, 그것은 지상에 남은 인간들에게는 먼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이제 인간은 끝이었다.
지킬만한 인력인 기가스들의 대부분이 전장에 차출된 지금, 무너진 폐허에 남은 몇 안 되는 인간들의 가장 큰 과제이자 목적은 생존이 되어버렸다.
지상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인간들 중의 대부분은, 그저 살아남는 것마저도 벅찰 정도였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그들을 지켜주던 정부는, 효력을 잃은 지가 오래였다.
“근처에 뭐 없지?”
“서둘러!”
지상은 철저한 위험 지대였다.
이제 이 지상은 일반 인간들은 감히 돌아다닐 엄두를 내기조차 어려운 죽음의 일대가 되었다.
이 근방에는 드라칸들이 드물지만, 그 대신 변종 괴수들이 차지하는 구역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는 여전히 인간들이 있었다.
한창 망을 보던 네 명의 일단이 오래된 마트로 진입했다.
“하아, 하아.”
바깥 남아 망을 보며 주변을 돌아보는 이의 턱밑으로 땀이 맺혔다.
그의 눈길이 연신 불안하게 움직였다.
그는 좌우간을 살피며 상황을 둘러보고 있었다.
언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지상은 이제 적막한 죽음의 지대였다.
남자가 을씨년스러운 도심가를 경계하며 다급히 소리쳤다.
“아직도 멀었어?”
“우리도 서두르고 있어!”
[아우우우우-!!]
그때, 도심 저편의 어딘가에서부터 고요를 깨트리는 무언의 포효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사람들의 인상은 대번에 새파래졌다.
녀석은 이곳을 지배하는 지배자, ‘변종 늑대’ 였다.
무려 드라칸에 맞먹을 정도로 강력한 탓에, 그 두꺼운 털가죽에는 총알조차 박히지 않는 괴물이었다.
이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드라칸이었지만, 이런 변경 구역을 지배하는 것은 그러한 전쟁의 영향으로 생겨난 변종들이었다.
드라칸들은 지금도 저 우주에서 기가스들과 온갖 전투를 치르고 있다. 폐허인 이곳에는 드물었다.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있어 최악의 방향으로 변화했다.
변이를 일으킨 변종 괴수, 혹은 드라칸.
둘 중의 어느 쪽이 튀어나와도 그들에게는 그것들을 상대할 만한 여유나 여력이 없었다.
그때 가방을 터질 정도로 채운 그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들이 작은 목소리로 망을 보고 있던 동료를 향해 소곤거리듯 속삭였다.
“젠장, 다 챙겼어!”
“이만 뜨자고! 서둘러!”
망을 한창 보던 남자의 얼굴 위로 화색이 띠었다.
그의 눈이 가득 찬 가방의 모습으로 향했다.
저거다. 저거라면 이제 지하철역 아래의 깊숙한 곳에 숨은 자신의 가족들이 한참은 먹고 지낼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저 가방은 천금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목숨줄이었다.
가방을 걸쳐 맨 그들은 돌아갈 때조차 신중했다.
이 폐허를 지배하는 변종 늑대가 언제 나타날지를 몰랐기에, 그들은 몸을 낮추고 끊임없이 눈동자를 굴려 사방을 살폈다.
민첩한 그놈은 저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부터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뚝. 뚝.
땀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총기를 움켜쥔 손에는 긴장으로 인해 베어져 나온 땀이 흥건했다.
축축한 감각. 불쾌하지만 신경을 쓰진 않았다. 익숙한 경험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복귀는 성공적이었다.
그들 중 누구 하나 목숨을 잃는 이는 없었다.
* * *
“아빠!”
“유현아!”
남자와 아들이 재회했다.
곳곳에서 그러한 모습이 펼쳐졌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남편의 무사함에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륵 흘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제껏 보아온 모습이지만 오늘도 무사했다. 참 다행인 일이다.
남자의 일행 중 누구 하나 줄지 않았다.
사람의 수가 줄게 된다는 것은, 이탈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을 뜻했다.
* * *
유성이 눈을 떴을 때, 지하철역은 소란스러운 상태였다.
아마도 그가 깨어난 것에는 저 바깥에서부터 들려오는 소음 때문일 터였다.
‘여긴…… 어디지?’
잠기운에 정신이 흐릿했다.
평소라면 한없이 유연하게 이어져갔을 사고가 제대로 이어지질 않았다. 뒤통수가 저릿하게 아려왔다.
유성은 정신을 잃기 전, 자신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그는 계단을 한참을 굴러 지하에 굴러떨어졌다. 온몸은 물론이고 머리에까지 강한 충격을 입었었다.
‘그런가. 적잖은 데미지를 입은 거야.’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어떻게든 사고를 이어갈 순 있었다.
사건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짜내어 그것들을 잇는 것은 격한 전투를 이어오던 군인이었던 이시혁에게 있어선 필수적인 과정들이었다.
그래야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때 그 청년은 아직 누워있나?”
“네, 아직 누워있을 거예요.”
그때 바깥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청년. 누워있음.
유성은 대번에 그것이 자신을 뜻하는 단어와 말들임을 직감했다.
저벅. 저벅.
바깥에서 누군가가 이곳으로 접근해왔다.
스윽.
누워있는 유성의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누군가 창문 너머에서부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성의 손이, 느릿하게 꿈틀거렸다.
이내, 그의 주먹에 힘이 뿌득 들어갔다. 옷에 가려 드러나진 않았으나, 이 순간 그의 빽빽한 근육이 율동하며 빠르게 힘을 끌어 올렸다.
흐릿하던 정신은 금세 하나의 본능만을 끌어올렸다.
움직인다. 저들이 이곳으로 들어옴과 함께 즉각.
덜컹.
그리고 마침내, 누가 안으로 들어서는 진동을 감지함과 함께, 유성이 번개처럼 몸을 일으켰다.
“이런 미친?!”
“뭐야! 방금 저거 봤어?!”
“꺄악!”
유성의 날 선 이리 같은 반응에, 사람들은 놀라 무기를 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일반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하고 갑작스러웠다.
사람들은 품에서 무기를 꺼내들었다.
철컥, 장전된 총기가 유성을 노렸다.
꿀꺽.
그를 겨눈 남자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키는 게 보였다.
모두가 경직되고 긴장한 가운데.
“거기! 무슨 소란이야?!”
뒤편에서부터 한 중년인이 소란스러움을 감지하곤 재빨리 전철 안으로 들어섰다.
유성을 비롯한 모두의 눈길이 그쪽으로 향했다.
전철 안으로 들어선, 수염이 적잖게 길러진 남자, 중년인의 눈길이 좌우를 살폈다.
그의 눈이 유성과 총을 든 동료에게로 향했다.
서로가 대치하는 상황을 보곤 대번에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했다.
“아, 아. 그렇게 된 건가?”
유성은 일어났고, 사람을 경계했다.
놀란 그의 동료 또한 지금과 같이 무기를 빼든 것일 테고 말이다.
“이봐, 청년. 그러지 말게.”
중년인은 손바닥을 보이며 유성을 향해 말을 건넸다.
불과 방금 전에 정신을 차린 유성은 여전히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손에 들린 무기는 없었으나 낮게 낮추어진 자세가 흡사 맹수를 보는 듯했다. 사납기 그지없는 태세가 느껴졌다.
유성 그의 정신은 혼미했다. 뒷머리가 지끈거렸다.
평소라면 매끈하고 유연하게 돌아갔을 그의 머리가 아직까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동물적인 감각에 의지해 반응만 했을 뿐이다.
“우리는 자네를 구했어. 적대하려던 게 아니야.”
“구… 했다고요?”
“그래. 여긴 지하철역의 가장 안쪽이라네. 지금 자네가 누워있던 이곳은 우리들이 평소 잠자리로 애용하던 전철 안쪽이지.”
중년인의 말에는 차분함이 있었다.
그제야, 유성은 털썩 다시금 자리에 주저앉았다.
제자리에 무릎을 꿇은 유성의 눈은 힘이 탁 풀린 상태였다.
그제야 그의 눈길이 제대로 상황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전후과정. 그런가. 정신을 잃기 전 들렸던 사람들의 음성이다. 이들이 날 구해준 거로군.’
유성이 입을 열었다.
“쿨럭. 죄, 죄송합니다. 상황을 이해하는 게 늦었어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정신이 아직 온전치 못한 모양이로군. 이해하네.”
“가,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유성은 풀썩 앞으로 엎어졌다.
다시금 시야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의 반쯤 감긴 눈에 피가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위치로 보아, 아마도 머리의 어딘가에 타박상을 입은 게 아닐까 싶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이 녀석 피 흘리는데 괜찮아? 죽는 건 아니겠지?”
“괜찮을 거야. 깊숙한 안쪽을 다친 게 아니라 겉에서 흘러나오는 피니까. 아마 수 시간 후면 다시금 정신을 차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