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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36화 (136/200)

136화. 무너진 한국(2)

과거, 이시혁이 살던 시대는 온갖 역풍들이 휘몰아쳤다.

방사능에서부터, 폭발과 독기.

그 밖에 강력한 모래폭풍까지.

그것은 한국 땅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무너진 한국.’

유성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상상으로조차 불가능한 그런 종류의 대지 위에 서 있었다.

파라락.

바람결에 흩날려온 신문 자락을 붙잡자.

그곳에는 결코 흘려듣지 못할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틀 전 동아시아 연합군 전멸 확인.]

[2049년 7월 8일.]

2049년.

신문에 적혀 있는 날짜는, 그의 눈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유성은 슬슬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과거로 돌아왔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여전히 저쪽 세상의 전투에서 기절한 채로 꿈을 꾸고 있거나.’

하지만 유성의 사고는 앞뒤를 명확히 떠올릴 수 있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나는 완전체의 심장과 융합해있던 여왕체를 쓰러트렸지. 둘 사이의 막대한 마력은 강한 붕괴 파장을 일으켰고 나는 거기에 휩쓸렸다.’

그의 기억은 명확하게 사건의 전후를 기억했다. 끊김이 없었다.

그렇기에 유성은 이것이 결코 허상이나 꿈에서부터 비롯된 망상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문득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꽉 움켜쥐고 있던 주먹의 힘을 풀었다.

‘제기랄. 난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가.’

우습게도 유성은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움직이던 사람이라고 여겼으면서도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의 뇌리에는 드라칸들의 침공에 사망한 부모님과 라피스, 리브의 얼굴이 연이어 떠올랐다.

유성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이성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할 만한 비현실이 눈앞에 펼쳐지자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너진 도심지. 그리고 곳곳에 세워진 오래된 고철 차량들이나 새하얀 백골.

그 모두가, 그가 살아온 행성 테라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분명 어폐가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적어도 눈앞의 광경으로만 본다면, 지금 그가 선 이 대지는.

과거 지구의 그곳임이 틀림없었다.

꽈득.

유성은 생각했다.

‘받아들여야만 해.’

욱신!

걸음을 내디디자, 온몸이 찢어질 듯 통증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특히나 과하게 마력을 뽑아내어 썼던 심장의 부근이 당겨오며 아파 왔다.

심지어 피부의 일부분이 벗겨져 시뻘건 근육이 드러났을 정도였으니, 더 말할 것이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감각이 돌아온 것을 느끼자 그는 자신의 한쪽 눈이 유난히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내 왼쪽 눈이…….’

유성은 왼쪽 눈두덩이 부분을 매만지고선 그곳의 살갗이 유난히도 크게 도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폭발에 의해 벌어진 시공간의 틈새를 헤매이는 사이 온갖 기류에 휩쓸렸던 그다.

이것은 실명의 전조일 수도, 혹은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악화의 조짐일 수도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한들 이상하지 않았다.

마나 능력이 회복된다면 더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심장마저 옥죄이는 지금, 그는 육체를 수복할 여유가 없었다.

‘이대로 회복을 하지 못한 채로 놔둔다면, 그 결과는 실명이거나 혹은 이 상태로 고착화되거나. 둘 중 하나인 건가.’

하지만 이내,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다지 특별할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고작 시력에 미련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억지로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그는 황폐한 대지를 걸어 나갔다.

무리한 전투 끝에 한계에 달한 육체는.

몇 번이고 대지에 넘어지길 반복했다.

* * *

해가 저물었다.

황폐한 폐허에는 마침내 어둠이 찾아왔다.

타닥. 타닥.

유성은 메마른 눈빛으로 타오르는 모닥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빛을 잃은 동공에 불길이 비쳤다.

‘지금 내가 있는 지점은 서울 초입부 지점인가.’

신문에 나온 동아시아 연합군의 전멸 소식은 2049년이었다.

해당 소식은 언젠가 그가 이시혁이었던 시절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한국, 중국, 일본의 3개국 연합으로 가장 큰 규모였으나 드라칸에 의하여 대패를 했던 일화다.

당시의 그는 다른 전투에 투입된 탓에 그저 소식으로만 들었을 뿐이지만, 해당 소식이 전해진 이후 더 이상 여력이 없어진 동아시아는 그 뒤로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

한창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던 유성은 문득 자신의 사고에 대해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막대한 마력 에너지를 머금은 두 융합체 간의 폭발.

그에 휩쓸린 유성은 분명 틀림없이 시공간의 틈새에 휘말렸다.

그 결과 자신이 기억하던 이 머나먼 우주 저편에 위치한 과거의 지구에 도착해버렸다.

‘딱히 사건의 전후관계가 이상하지는 않아. 왜냐하면 다른 우주에서 넘어올 만한 수준의 게이트를 열 정도의 능력을 지닌 융합체였다면, 시간선에 간섭할 만한 능력을 지녔어도 전혀 이상치 않으니까.’

한 마디로 짧게 정리하자면 이것은 유성이 놈의 심장을 터뜨림과 함께 일어난 일종의 ‘폭주’ 였다.

만약 놈이 시간 능력마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진작 알아차렸다면 유성은 절대로 놈에게 가까이 접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400년 이후의 미래 기술력으로도 흉내가 불가능한 시공간을 일그러트리는 현상을 아무렇지 않게 해낼 정도의 녀석들이 발할 반동은 결코 평범치 않을 것임은 누구라도 손쉽게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후우-.

하지만 이내, 유성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와 후회는 무의미했다. 이미 사고는 벌어진 뒤였다.

[크르르르-.]

“…….”

그때, 폐허의 저편에서부터 낮은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유성은 오로지 고개만을 들어 어둠 속을 응시했다.

곧 상대의 형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갑각류의 곤충군이었다. 흡사 메뚜기를 수백 수천 배로 확대하게 되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커다란 놈.

형상은 메뚜기를 닮은 주제에 흘리는 소리는 마치 야수의 그것과도 같았다.

아무리 봐도 지구의 생명체는 아닌 듯했지만, 저것은 틀림없이 지구의 것이 맞았다.

왜냐하면 그 형태의 근본이 지구상의 것을 하고 있었으니까.

‘방사능이나 대기 중의 마력으로 인해 변이를 일으킨 곤충류인 건가.’

그 시절의 지구에서는 딱히 드문 것도 아니었다.

지구에서는 매일같이 전투가 벌어졌으며, 또한 온갖 과다 에너지가 대지에 방류되었으니까.

저런 식으로 기괴한 변이를 일으킨 개체들은 심심찮게 보인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치 않았다.

갉작. 갉작.

놈은 유성을 노려다 보며 쉬지 않고 주둥이를 놀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입맛을 다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스윽.

유성은 폐허를 걸어오는 사이 주워들었던 쇠지렛대를 천천히 붙잡았다.

놈을 자극하지 않도록 느릿하게.

하지만 이내.

터벅. 터벅.

놈은 조용히 물러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녀석이 불길을 사이에 두고서 한 치도 접근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성은 놈이 불길을 경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유성은 놈이 사라진 방향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늦은 한숨을 내쉬었다.

‘까딱 잘못했으면 잡아먹혔을 수도 있었겠군.’

눈을 감은 그는 지독한 무력감이 찾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상으로 인해 한 점의 마나조차 끌어올릴 수 없는 제 자신의 상황이 허탈했다.

‘어쩌면 내일 아침이 내 마지막일지도 모르지.’

기괴한 변종들이 우글거리는 이 황폐한 대지의 한 가운데에서, 그는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그리 높게 점칠 수가 없었다.

* * *

며칠이 지난 사이에 유성은 좀 말라 있었다.

풍부한 칼로리의 섭취가 불가능했기에 그는 자신의 원래의 건장했던 체구를 유지하지 못했다.

꿀꺽. 꿀꺽.

유성은 건물의 폐허에서 똑똑 떨어져 내리는 물에다 고개를 들이민 채로 그것을 정신없이 마셨다.

꼬박 하루 만에 마셔보는 물이었다.

‘방사능이나 오염물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내 처지에 가릴 수는 없겠지.’

유성은 지금 뭐라도 섭취해야만 했다.

하루하루가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물론, 좋지 못한 쪽으로 말이다.

다행히 물을 찾아내어 마실 수는 있었지만, 이틀 동안은 무엇 하나 먹어보지도 못했다.

근육이 빠지고 그만큼 근력 또한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하는 자신을 느꼈다.

‘회복이 더디다. 이대로라면 예상보다 훨씬 회복기가 길 거야. 그렇다면 눈은…….’

그는 쓴웃음을 흘렸다.

아마도, 큰 이변이 없다면 이대로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었다.

그는 조금 빨라진 걸음걸이로 대지를 나아갔다.

여전히 저리고, 또한 무거운 걸음이었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어느 정도 나아졌다.

비록 마나 능력을 끌어올릴 수는 없어도 그는 명색이 준 각성자였다.

그만한 능력자의 육체는 탄성부터가 보통의 일반인과는 달랐다.

고오오-.

그의 눈동자의 빛이 한순간이나마 파랗게 물들이다 이내 원상태로 돌아왔다.

‘아마도 위기의 상황에서는 한 번 정도. 대기 중의 마력을 끌어모아서 대처가 가능하겠군.’

유성은 도심지를 살폈다.

하지만 그곳에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동아시아군이 참패를 당한 이후로, 이곳에서의 인류 영역은 큰 폭으로 축소되었다.

아마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확실치는 않지만, 그 이후로 이곳에는 크게 대단한 집단이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집단들조차도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인데.’

과연 그들을 찾아내어도 그 뒤가 걱정되었다.

마나 능력자인 자신을 곤히 내버려 둘지가 의문이었다. 유성 그 자신이라도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그건 희박한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아마 어떤 세력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옭아매려 할 터였다. 지금 세상은 400년 후인 미래 세상보다도 마나 능력자가 수 배는 드문 시대였다.

‘그럼에도 내가 향할 만한 선택지는 그뿐이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

부모님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 아직 라피스와 리브는 남아있었다.

돌아갈 이유라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기필코 돌아가겠다.’

* * *

쏴아아아-!

유성의 머리 위로 소나기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그는 근처의 폐건물 안으로 잠시 들어가 대피했다.

‘무슨 오염물을 머금었을지 모를 빗줄기니까.’

이때의 지구는 엉망진창이었다.

하루는 비가 내리고 그다음 날에는 우박이나 눈이 내리기도 했다. 이상했지만 이상하다고 볼 수는 없는 일상적인 현상이었다.

전투는 까마득한 상공이나 혹은 우주에서도 연일 이어졌기 때문이다.

금방 그칠 줄 알았던 소나기는 밤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렬한 기세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큰일이로군.’

그럴수록 유성의 표정 또한 더욱 딱딱해졌다.

그에게는 한시가 급했다. 당장에라도 돌아갈 방도를 찾아야만 하기에 조급함이 내면의 저편에서부터 조금씩 스멀거리는 게 느껴졌다.

“후우. 아니, 침착해야 한다.”

유성은 억지로 자신의 내면을 가라앉혔다.

침착함만이 그의 가장 강한 무기였다.

그것을 잃게 된다면 그는 틀림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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