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무너진 한국(1)
통신 채널을 통해서, 라피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유성! 지금 그쪽으로 갈게!]
펑! 퍼버벙!
그녀의 말과 거의 동시에, 바깥에서부터 격렬한 폭음이 들려왔다.
이제껏 몇 번이고 그 소리를 들어왔던 유성은 저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를 수가 없었다.
아마도 분명할 터다.
지금 그녀는, 바깥 지점에서부터 이 거대한 완전체 드라칸을 향해 공격을 퍼부으며 갑각질을 부수려고 하고 있었다.
[으아아아!]
하지만 유성은 그녀가 안간힘을 쓰는 동안에도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대답하는 그의 깨진 이마에서부터 피를 주륵 흘러내렸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어차피 라피스에게도, 또한 리브에게도.
이토록 두꺼운 놈의 갑각질을 뚫고서 넘어올 만큼의 능력이라곤 없다.
그는 문득 자신의 모습이 저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를 생각했다.
온몸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으며 또한 땀이 흘러내린 탓에 머리는 착 가라앉았다.
어쩌면 볼썽사나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그만한 독기를 품고서 정신없이 싸워댔으니 이런 몰골일 건 어쩔 수 없겠지.’
그는 이내 생각을 멈추고선 다시금 정면의 시야를 바라보았다.
라피스의 곁에는 눈물젖은 얼굴을 한 리브 또한 함께 보였다.
“리브.”
통신 채널은 잡음이 심했다. 연신 지직거리는 소음들과, 간혹 완전히 끊겨버릴 듯이 화면이 설핏 깨지기도 하였다.
“넌 똑똑하니까 어떻게 해야할지 알고 있을 거다.”
유성은 지직거리며 잡음이 심한 통신 채널의 너머로 보이는 리브를 향해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지금 바로 그 녀석의 기가스를 강제로 장악해서 이 자리에서 멀리 벗어나도록 해.”
유성은 자신을 구해달라는, 그런 가능성조차 없는 소릴 하지는 않았다.
지금 그가 탄 기가스는 이미 벗어날 수 없는 영역에 속해버렸다.
당장 그가 상대하고 있던 이토록 거대하기 그지없던 완전체 드라칸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차츰 저 블랙홀과 같은 무기질의 게이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며 먹히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마당에, 그보다 비교조차 못할 정도로 작은 축에 속하는 이 나인즈 텐이라는 기체로는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마력이 이미 진작 바닥이 나 버렸으니까 말이다.
[아빠! 아빠는?!]
“난 여기까지다.”
유성은 담담히 자신의 현실을 얘기했다.
그는 여기까지다.
만에 하나의 상황에서라도, 그가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남은 결말은 바로 하나뿐.
저 시커먼 게이트의 공간 저편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뿐이었으니까 말이다.
펑!
순간 그의 대답과 함께, 조종석의 뒤편에서부터 불길이 치솟았다.
타닥거리는 불똥이 튀었지만, 여전히 눈 하나 꿈쩍 않은 채로.
오로지 모니터 화면만을 응시하며 언제나와 같은 차분한 눈매를 한 유성이 말했다.
“대답해, 리브.”
[아, 알았어.]
리브는 유성의 말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최선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리브는 손을 벌벌 떨면서도, 이내 유성에게도 늘 그러했듯이 투명한 영체의 상태로 돌아갔다.
그리곤 그들이 타고 있던 기가스, 아크 드레드노트의 거대한 마력핵 안으로 자리 잡았다.
키이잉-.
이내, 제로 브레이커가 매번 보였던 예의 변화가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푸른 혈관과 살점이 급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하며, 기가스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리브! 리브 뭐하는 거야?!]
[…아빠가 내린 마지막 말이야.]
라피스가 조종간을 잡아당기며 통제권을 되찾으려 하였으나.
리브는 결코 그녀에게 다시금 통제권을 넘겨주지 않았다.
쿠오오오-!
이내, 그들 둘이 타고 있던 기체, 아크 드레드노트가 해당 영역에서부터 빠르게 멀어져가기 시작한 순간.
마침내 완전체와 유성을 모두 잡아먹었을 정도로 크게 확장한 게이트가 주변의 모든 것들마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도시조차도.
* * *
쿠오오오-!!
도심의 저편에서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던 게이트를 바라보던.
황녀의 호위기사 반스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
“황녀님.”
그 말에.
그제야 침묵하고 있던 알파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가라앉은 듯한 눈매가 반스 데일을 응시했다.
“황녀라 부르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요.”
“황녀는 황녀이시니까요.”
반스 데일은 흐릿한 미소를 드러내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유성이라는 생도에게는 알파라고 불리셨을지 몰라도, 제게는 언제나 황녀전하이실 뿐입니다.”
그 말에 알파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다시금 정면의 시야를 향해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시커먼 블랙홀과 같은 무기질의 통로가 보인다.
압도적인 기세를 머금은 저 균열의 너머로, 이미 완전체와 유성은 잡아먹힌 지가 오래였다.
주변의 다른 드라칸들이나 이 도시마저도, 잠시 후면 저것에 금세 잡아먹히게 될 터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게이트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확장하고 있었으니까.
알파는 가만히 다가오는 종말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 목숨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미 수명이 다 된 배터리와 같은 수준이지.’
제아무리 그녀가 강대한 각성자라고 한들.
그 근본이 인간이라는 유한한 내구성을 지닌 육체에 속해 있는 이상 결국에는 그 한계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시간이라는 속성을 띤 그녀의 특수성은 인간의 관념에서부터 벗어나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그럼에도 그녀 또한 결국에는 한낱 필멸자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한 이유다.
왜냐하면, 결국 그 육체는 그저 언젠가는 바스러질 한낱 인간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먼 미래에까지 버텨낸 그녀의 육체는 마침내 한계에 달했다.
무너지고, 갈라져 이미 육체의 전반적인 구성물들 전체가 주저앉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무력해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비록 노쇠해 죽어가는 육체일지언정 아직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자신의 힘을 드러낼 기력 정도는 있었으니까 말이다.
만약 알파가 그것을 고스란히 온전한다면, 적어도 다른 인간들이 늙어서 쇠할 수십 년의 세월 동안은 더 버틸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추하게 쇠락하여 무너져 내리는 것보다, 나는 훨씬 가치 있는 일을 해내겠다.’
바로 묵묵히 자신의 죽음을 택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주변 도심마저 빨아들일 듯한 기세로, 무시무시하게 크기를 불리우고 있는 저 폭주하기 시작한 게이트를 향해.
스윽.
알파는 조용히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곧, 아주 작은 한 점의 황금빛이 그곳에 머금어지고.
그녀는 게이트를 향하여 그것을 쏘아 보냈다.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각성자로서의 힘이었다.
“…….”
점차 멀어져가는 자신의 힘을 바라보던 알파는.
뒤편에서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자신의 충실했던 호위기사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반스 데일.”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육체의 내부를 구성하고 있던 기력마저 완전히 사그라들고야 만 알파의 육체가.
선 채로 쇠락하여 먼지처럼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반스 데일은.
오래도록 그녀가 부서져 내린 장소만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그 모래알들마저, 불어온 바람에 의하여 사라졌다.
과거 시대의 잔재는, 흔적조차도 없이 지워져 버렸다.
* * *
유성은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는 초점이 없는 흐릿한 눈만을 뜬 채로, 알 수 없는 이 무기질의 공간을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돌연.
누군가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대장. 눈을 떠야 할 시간입니다.]
그 익숙하기 그지없던 음성과 함께.
어디서부턴가 기인한 황금빛의 마력이 그의 육체에 도달하여 스며들었다.
공허했던 그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커헉!”
유성은 막혀 있던 숨을 트였다.
컥컥.
유성은 정신없이 목구멍을 부여쥐며 연신 토악질을 했다.
그가 정신을 잃고 있었던 순간은 불과 수십 초에 불과한 찰나였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 그는 완벽한 심정지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호흡조차도 멈춘 채로.
하지만 그 극악한 상황 속에서조차 유성의 인지는 놀라우리만치 유연했다.
그는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빠졌던가를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기도가 이물질에 의해 막혔다. 뚫어야만 해.’
그는 얼마 남지조차 못한 마력을 끌어올려 활화산처럼 폭발적으로 내부의 막힌 구멍을 밀쳐냈다.
그의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부서진 뼛조각이었다.
피가 잔뜩 묻은 그것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뱉은 그가, 그제야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아.”
그리곤 거칠어진 숨소리를 서서히 가라앉히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고오오-!
주변에 보이는 것은 온통 이해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들뿐이었다.
이미 죽음을 맞이하여 조금도 꿈쩍치 않는 드라칸들이나.
부서지고 떠다니는 거대한 바위와 같은 것들, 혹은 건물들의 일부로 보이는 것들마저도 엿보였다.
그리고 심지어는 유성의 강한 적개심을 일깨웠던 예의 거대한 드라칸, 완전체마저도.
유성은 맨몸이었다.
그가 타고 있었던 기가스 나인즈 텐은 이미 완벽하게 부서지고 그 형체조차도 유지하지 못하여, 저편의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었다.
이곳은 기이한 공간이었다.
위와 아래, 그리고 방향이라는 것이 없었다. 마치. 마치, 중력조차 거의 존재치 않는 우주와도 같이.
“내가, 살아있다고?”
그는 폭주한 게이트에 휩쓸리고서도 살아있는 자신의 몸 상태에 의문을 느끼며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큭?”
유성의 육체가 어느 한 방향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급류에 탄 듯 강렬한 유속이었다.
그 하나만이 흘러가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주변을 의미 없이 부유하는 듯하던 모든 것들이 함께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타고 있던 기가스와 그 거대한 완전체를 비롯하여. 그 수많은 드라칸 놈들의 사체가 말이다.
‘버텨내야만 해!’
유성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휩쓸려 나가는 주변의 모든 것들에서부터 자신의 육체를 보호했다.
저항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치명적인 상처만 입지 않을 정도로, 간신히 육체를 강화할 수 있는 정도에 그쳤을 뿐이다.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을 흘려보내는 정체불명의 힘에 딸려 어딘가로 흘러가기를 한참.
돌연, 유성은 문득 깨달았다.
‘뭔가를, 넘어섰다.’
그 기이한 감각과 함께.
그의 시야가 잠시간 꺼졌다가 다시금 밝아졌다를 반복했다.
고오오오오-.
이윽고 유성이 눈을 떴을 때.
그는 황폐한 대지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멍하니 그 대지를 둘러다 보는 그의 귓가에.
돌연 누군가의 음성이 닿았다.
[선택의 시간이 도래했습니다, 대장…….]
“알파?”
그 익숙한 음성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유성의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 황폐한 대지에는 오로지 그 혼자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캉-!
그때, 멀리서 강풍에 나부끼는 철판 하나가 날아들었다.
재빠르게 몸을 굴러 회피한 그는 뒤늦게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표지판?”
[동서울까지 앞으로 7KM]
“…이게 대체, 무슨?”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그 표지판에 적힌 내용물은.
결코 심상치 않은 종류의 것을 하고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