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찾아드는 종말(5)
지금도 유성에게는 선명한 기억이었다.
눈을 감으면 그 기억의 잔향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재생되고는 한다.
가족 간의 감정이라는 것은, 말로는 다하지 못할 그 너머의 것이었다.
처음 이 세계에 태어났을 때가 떠올랐다.
* * *
“아들. 네 이름은 유성이란다.”
처음 그가 세상에 눈을 떴을 때.
더없이 자랑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던 부모님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은 유성을 품에 안으며 그 따스한 온기와 음성으로 이렇게 말을 하셨었다.
“사랑한다, 우리 아들.”
그 눈빛과 애정은, 유성 그가 유년기를 넘어서서 성장기를 보내고, 이윽고 생도가 되었을 때에도 끊기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에는 언제나 한결같은 감정이 서려 있었다.
마력을 통하여 상대방의 감정을 느낄 수 있던 유성은.
그들이 자신에게 품는 이 한없는 애정에 대해 필연적으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말로 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들의 몸에 서린 마력이, 눈을 감아도 선하게 언제나 느껴졌으니까.’
자신을 한없이 사랑해 주는 가족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것인가를 이번 생애에서야 비로소 느꼈다.
그것은 말로 다 하지 못할 행운이었다.
* * *
쿠오오오-!
유성을 내려다보고 있던.
놈, 완전체의 체내에서부터 강렬한 마력 파장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껏 수많은 기가스와 전함들을 격추시켰던 바로 그것, 파멸의 광채였다.
하지만 하늘을 가로지르며 놈을 향해 일직선으로 접근하고 있던 금빛의 기가스 나인즈 텐.
그리고 그곳에 탑승한 파일럿 유성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완전체를 노려보는 유성의 뇌리에는 오로지 한 가지의 생각만이 가득했다.
‘놈을 죽인다.’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분노에서부터 비롯된 무모한 돌진.
[■■■■!]
[■■■!]
그는 달려드는 드라칸 놈들을 모조리 베어 넘겼다.
시선조차도 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의 시선은 오로지 그 거대한 한 녀석만을 향해 있었다.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은 바로 놈과, 놈의 내부에 숨어있는 여왕체였다.
비록 정체를 녀석의 몸체 안에 감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훤히 느껴졌다. 그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노릴 테면 노려보라는 듯이, 일직선으로 유성이 고속으로 접근하며 기세를 끌어올리는 그 시점에.
놈의 준비가 끝마쳐졌다.
키이잉!!
끌어모으던 기운이 더 이상 밝아질 수 없을 만큼이나 밝혀진 그 광채가, 강렬한 파장을 발산하며 일거에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주변을 집어삼키자, 그것에 적중당한 건물들이 먼지처럼 산산이 분해되며 무너져내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기세는 멈추지 않고 급속도로 확장되더니, 이윽고.
번-쩍!
유성에게까지 닿았다.
“으아아아!”
빛에 휩싸인 유성이, 이를 악물고서 그것에 저항했다.
기체가 찌르르 울리는 게 느껴졌다.
조종간을 타고서 그 충돌을 버거워하는 것이 그대로 타고 전달되었다.
놈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아니, 당장 눈앞의 크기 차이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전함조차도 한 손에 움켜쥘 정도로 거대한 반면, 유성이 탑승한 기가스 나인즈 텐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
하물며 당장 주변에는 드라칸 놈들마저 즐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성은 온 힘을 다해 버텼다.
막대한 충격파를 견뎌내지 못한 그가 코피를 주룩 흘렸다.
투두둑.
하지만 두 눈의 핏발이 서고, 그마저도 채 버텨내지 못해 결국 실핏줄이 터져나가는 순간에서마저.
그는 끝끝내 놈을 향한 살기만으로 버텨냈다.
평소의 그라고 하였다면 놈을 냉정히 바라보고, 주변의 무리들을 착실히 정리할 생각을 먼저 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렇지 않았다.
유성에게 뒤는 없었다.
그저 그의 일념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단 하나.
바로 놈과 놈의 무리를 기필코 죽이고야 말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말이다.
‘반드시, 죽이겠다!’
정면에서 마력을 퍼부으며 그를 짓이겨버릴 듯 기세를 피우고 있는 상대를 노려보며.
유성은 투지를 불태웠다.
그도 알고는 있었다.
이것은, 무모함을 넘어서서 자살행위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그의 두 부모님들이 앞에 있었다라고 한다면.
그에게 뭐라고 할지에 대해서쯤은 충분히 알았다.
알 수밖에 없다. 모를 수가 없었다.
아마 당장에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라며, 소리를 내지를지도 모를 일이지.
하지만 유성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이 격렬한 감정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콰드드득!
기체의 두꺼운 금빛 장갑들이 쏟아지는 에너지 파장을 버텨내지 못하고 뜯겨나가며 흉한 내부 프레임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다리 하나가 형체조차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통째로 으스러졌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조차도 유성은.
오로지 놈에게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번-쩍!
그의 눈이 찬란한 금빛 광채를 발하기 시작하고.
모든 것이 느려진 세상 속에서, 그는 이 마력 에너지 파장을 강제로 거스르고 뚫기 시작했다.
기체가 으스러져도 괜찮다.
설사 뒤가 없다고 하더라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눈앞의 상대만큼은 반드시 함께 데려가겠다.’
오로지 그 일념과 함께, 놈의 강렬한 마력 파장을 뚫어내기 시작했다.
기체에 두른 그 혼자만의 마력이 순식간에 타들어 가듯 소모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의 마력은 크게 대단치 않은 수준이었다.
이제야 겨우, 기가스를 무리 없이 조종할 정도의 선에 이르렀던 그였기에 이 정도로 격렬한 운용 따윈 무리를 넘어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해냈다.
다름 아닌 유성이었으니까.
쿠오오오-!!
강렬하게 피워올린 금빛 광채와 함께, 마침내 놈의 앞에 도달하게 된 그가.
녀석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목표는 단 하나.
놈의 가슴팍에 박혀있는, 마력핵의 역할을 하는 ‘여왕체’였다.
융합체.
이 완전체가 비상식적일 정도로 강력하며 또한 비대하기 그지없는 체구를 취하고 있던 이유는, 바로 녀석이 움직이는 둥지였기 때문이다.
여왕체를 지키는 가장 훌륭한 자식인 동시에 가장 완벽한 성채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둥지.
동시에 여왕이 마력핵의 심장부 역할을 하기도 하는 융합 개체.
콰드득!
녀석의 두꺼운 갑각재질의 피부 표면에 닿자, 푸른 입자를 발산하는 초진동검이 거친 소음을 흩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의 공격마저 꿰뚫은 유성이다.
고작 그 정도조차 이겨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쩌적, 쩌저적.
이내, 금이 가기 시작한 놈의 갑각질 표면이.
금세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푸른 피부살을 드러내며 찢어졌다.
유성의 기가스 나인즈 텐이 그 내부를 파헤치며 들어섰다.
콰드득, 시야가 온통 새파란 마력을 머금은 놈의 살점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는 길을 잃지 않았다.
처음부터 너무도 분명하게 놈의 핵의 위치를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력으로 저 너머에 있을 여왕체를 향해 파고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그의 시야를 메우는 것은 오로지 놈의 새파란 살점 덩어리들만이 다였다.
그럼에도 마침내 일직선으로 나아간 끝에 보이게 된 것은.
고오오오-.
펄떡거리는 놈의 커다란 심장의 위에 자리한 채로.
수많은 혈관과 근육 줄기들로 완전체와 온몸이 엮여 있는 그것이 보였다.
[…■■,■■?]
바로 여왕체였다.
녀석이 유성 그를 향해 뭐라뭐라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서 놈의 심장과 융합을 한 여왕체를 향해 그대로 달려들었고.
그 결과.
콰직.
섬뜩하기 그지없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을 꿰뚫었다.
[…■.]
여왕체가 스치듯이 자신을 관통하고서 지나친 유성을 돌아본다.
아마도 짧은 탄식 비슷한 것을 흘렸을 여왕은, 이내 고개를 떨구며 침묵했다.
눈에서부터 빛을 잃은 녀석에게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하아. 하아.”
전투의 끝.
유성의 기가스가, 이 거대한 살덩어리의 한 부분에 내려앉았다.
기체의 상태가 온전치 못했던 탓에 기가스 나인즈 텐은 거의 주저앉듯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조종석의 안에서부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지금쯤, 바깥의 다른 드라칸들도 금세 여왕의 죽음을 알아차리곤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할 터였다.
아마도 놈들 중의 대부분은 알아서 저들끼리 싸우다 끝내는 자멸하고야 말겠지.
그가 죽어있는 여왕을 노려다 보며 숨을 내쉬고 있던, 그때였다.
번-쩍!
돌연, 죽어있던 여왕의 사체가 갑작스레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난데없는 광경에 유성의 눈이 치켜 떠졌다.
‘설마 여왕이 되살아나기라도?’
그건 아니었다.
녀석은 확실하게 숨이 끊어졌다. 축 늘어진 고개와, 한치도 놈의 피부 표면에 흐르지 않는 마력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곧, 유성은 저 에너지의 발산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완전체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던 여왕체가 죽음과 함께 녀석의 몸에 머무르던 막대한 마력이 폭주하기 시작한 건가.’
그렇다면 이 자리는 위험하다.
녀석의 에너지 파장에 대한 위험을 이미 스스로가 질리도록 경험해보았던 차였다.
유성 그조차도 단 한 번을 버텨내는 것도 벅찼을 정도로 놈은 강력하였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이곳을 빠져나갈 힘조차도 없군.’
유성은 설핏 쓴웃음을 흘렸다.
힘이 빠진 듯한 웃음이었다.
콰직. 콰지직!
완전체의 심장. 아니, 여왕체의 몸이 심상찮은 기류를 방출하며 푸른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코앞에서 바라보며 유성은 생각했다.
‘여기서 끝인 건가.’
이미 어떤 식으로든, 이제 유성이 이곳을 빠져나가기란 무리였다.
녀석을 격퇴하는 데에 온 힘을 끌어다 쓴 뒤였다.
처음부터 뒤는 없었다. 단지, 복수를 하는 데에만 온 힘을 다했었을 뿐이니까.
이제는 기가스를 조종할 힘도 없었다.
금세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푸른 파장을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후회는 없다. 하지만 라피스와 리브에게는 미안한 것도 사실이야.’
이것은 그의 독주였다.
처음부터 온전히 그 대가를 자신 스스로가 감당하기 위한 행동 말이다.
번-쩍!
그리고 마침내.
여왕체의 몸이, 마치 무언가에 빨려드는 듯한 광경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니.
그곳에 웬 새카만 무기질의 균열이 생겨났다.
차원의 틈새. 바로 게이트였다.
쿠구궁. 쿠궁.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게이트.
그곳에 휩쓸리기 시작한 그의 기가스가 조금씩 그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문득, 유성은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이토록 화를 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천만에.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그는 자신을 냉정함이라는 이름의 세 글자로 다스려왔다.
어떤 고난과 혼란이 있을 때에조차도 이토록 큰 감정을 드러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본래의 과거를 떠올려 본다면 그러한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언제나 자신을 통제해야만 하고, 또한 다스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전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생애 처음이었다.
‘의외로 후련한 것이로군. 화를 드러낸다는 건.’
처음 안 사실이다.
그 순간이었다.
돌연, 치직거리는 기가스의 통신 채널이 켜졌다.
[유성!]
[아빠!]
“…라피, 스? 그리고 리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