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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33화 (133/200)

133화. 찾아드는 종말(4)

“후우-.”

긴 숨을 내쉬자, 머리에 쓴 헬멧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긴장이 된 탓이었다.

처음으로 잡아보는 이 새로운 조종간의 감각이 다소 낯설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굳힌 라피스는 곧장 모니터 화면의 시스템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잠금을 개방하는 것이었다.

“좋아. 조종에는 문제가 없어. 동화율도 40 이상. 순조로워.”

라피스가 바라보는 모니터 화면에는 [상태 양호.] 라는 표식이 떠 있었다.

그녀가 탑승한 이 새로운 기체가 그녀의 의식과 사고를 따라 문제없이 동화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라피스가 타던 스크래퍼보다도 훨씬 나은 듯이 느껴졌다.

‘착각인가? 흡사 날 위해서 만들어진 것만 같은-.’

삑.

그런 그녀의 생각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통신 채널이 켜졌다.

황녀의 호위 기사, 반스 데일이었다.

그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 기가스는 역대 엘 바이어스 가문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하여 제작된 기체입니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엘 바이어스 가를 위한 전용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전략무장인 초중초월 적성병기, 아크 드레드노트.

정말이지 너무도 거대해서, 차라리 기가스가 아닌 함선에 비견될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그것을 입에 담으며.

반스 데일이 말했다.

이 수 세대에 걸쳐 제작되어진 거대한 기체는, 오로지 엘 바이어스 가문만이 조작할 것을 대상으로 하여 건조되었다.

그중에서도 최근 백여 년 동안이나 활발하게 활동했던 각성자 유리 엘 바이어스 후작을 중점적으로 대상으로 하여 제작되어진 기체이기도 했다.

사실상, 유리 그녀를 닮은 구석이 많은 라피스 또한 조종에 큰 문제가 없도록 만들어졌다는 의미였다.

[아크 드레드노트는 근접전을 치르는 것 또한 가능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오로지 원거리전만을 상정하였다는 것을 명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접속 시스템은 중추 신경 결합 시스템인 트라인 버스터입니다.]

라피스는 반스 데일의 설명을 듣는 동시에, 푸른 광채를 발하는 눈동자로 모니터 화면을 빠르게 넘겼다.

‘트라인 버스터, 가동.’

투두둑.

그녀의 신경 다발을 기가스와 연결하는 시스템.

시스템의 가동과 함께, 조종석의 등판에 장비되어있던 척추 연결 장치가 마치 지네의 다리처럼 활짝 펼쳐졌다.

그 무수한 연결 장치의 끝부분이 다리처럼 꿈틀거리듯 움직이더니 그녀의 목에서부터 척추에 이르기까지 강제적인 결합을 시도했다.

연결 시스템의 끝부분에 위치한 바늘 부분이 척추에 푹 꽂히며, 신경과 직접적인 연결을 이어나간다.

“웃.”

기가스와의 강제적인 의식 연결.

이를 악문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런 섬짓한 감각은 금세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대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감각이 빠른 속도로 확장되기 시작한 기이한 느낌이었다.

함선만큼이나 거대한 기가스와의 결합을 통해, 그녀는 거대한 육체를 손에 넣었다.

쿠르릉.

그녀의 의지를 따라, 강렬한 광채를 발하며.

아크 드레드노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기가스를 올려다보던 반스 데일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라피스 소위. 현재 전함 메타트론이 근방의 상공을 지나치고 있을 겁니다. 그들과 합류하십시오.]

“…알겠습니다.”

* * *

퍼버벙.

무인 포탑에서부터 연속된 폭음과 함께 탄환이 쏟아졌다.

하지만 드라칸의 무리는 한둘이 아니었다.

도시의 곳곳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놈들의 수는, 물경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무수했다.

단순히 많다, 적다 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막을 수 없는 하나의 재앙과도 같았다.

“…결국 이렇게 끝장이 나고야 만 건가.”

하오넬은 닥쳐오고야 말 결말에 신음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들은 결국 도심지의 상공에 생겨난 게이트를 막아내지 못했다.

가능한 최대한의 전력을 한곳에 집중하여 게이트가 생겨난 직후 곧장 틀어막으려 하였으나 그마저도 실패했다.

기가스로 이루어진 분대는 물론이고 도시 방위를 위해 나섰던 전함들은 이미 모조리 전멸당했다.

사실상 이 도시에 놈들을 막을 전력은 이제 없다고 단언해도 될 정도였다.

이제 저 무수한 드라칸 놈들이 지상을 뒤덮을 터였다.

저항을 할 방법도, 그럴 만한 전력도 없다.

남은 것은 그저. 이 도시가 놈들에게 먹히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보는 이들의 입이 턱, 막히는 것은.

단지 그것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게 완전체인가.’

놈. 완전체.

모니터의 화면으로 비추어지고 있는 그 거대한 드라칸을 바라보며, 그는 그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드라칸 무리의 중심에 선 채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었다.

크게 확장된 푸른빛의 동공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신을 노리는 포탑에게 공격을 가했다.

놈은 단순한 상대가 아니었다.

녀석의 공격 반경에 들어서는 순간, 그 상대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폭사했다.

그것은 기가스이든 전함이든 간에 관계없었다.

저 무지막지한 거체의 내부에 숨겨진 마력이, 주변의 모든 것을 폭발시켰다.

그들의 전력은 분명 일반적인 드라칸 놈들을 상대로는 주요한 데미지를 입힐 만큼이나 적잖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틀림없이 계획대로만 되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어느 정도 어려움은 겪었을지언정 전선을 유지한 채로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의 존재가 그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저 압도적인 힘을 머금은 존재는 일말의 저항조차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접근도, 저항도 허용치 않았다.

그저 착실히, 주변의 모든 것들을 파괴해나갈 뿐이었다.

그 참담한 현실에, 사령관 하오넬은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사, 사령관님!”

“왜 그러지?”

“현재 기동 중인 기가스가 관측되었습니다!”

“…뭐라고?”

하오넬은 제 귀를 의심했다. 그것은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이미 전투에 투입되었던 모든 기가스 분대가 전멸했는데, 난데없이 기가스라니?

당연히 그 말도 안 되는 현실에 그는 반가움을 드러내기보다 의문부터 드러냈다.

“그게 무슨 소리이지? 더 이상 이 도시에는 기갑 파일럿이 존재하지 않을 텐데?”

이곳은 연합의 수도 거점이었다.

평소부터 곳곳의 전력 투입을 위해 제작되어진 기가스들이 즐비하게 대기 중이었다.

그러니, 당연하지만 남는 기가스의 여력은 있었다.

하지만 문제점은 그게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가 따로 있었을 뿐이지.

바로 기가스를 움직일만한 기량을 가진 기갑 파일럿이 부족하다는 것.

과거 지구 시절에 비해 400년 이나 지난 미래라고 하더라도.

제아무리 마나 사용자의 수가 늘어났다고 한들, 그 수는 분명 희소하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그중에서도 기가스에 탑승할 정도로 숙련된 자들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가스가 움직이고 있다니?

“설마 지원군이 도착한 건가?”

“그, 그건 아닙니다. 해당 기가스는 황성 소속의 대기 기체였습니다.”

“뭐?”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황성에는 제대로 된 기가스가 단 한기도 없었다.

주변 격전지의 방어를 위해 남아있던 모든 기가스들이 황제의 명령으로 강제로 차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닙니다. 여기에 분명 황성 소속의 기가스라 등록되어 있습니다. 기체 넘버…… 이건?”

“왜 그러지?”

“뭔가가 이상합니다, 사령관님. 기체 넘버가 1로 등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정보 화면을 사령관인 하오넬에게로 넘겨주었다.

“이, 건……!”

곧 화면을 직시한 하오넬의 입이 저도 모르는 사이 벌어졌다.

쿠오오오-!

하늘을 가르며 완전체를 향하여 일직선으로 날아가고 있는 그것은 번들거리는 황금빛을 발하는 장갑을 두른 기체였다.

기가스의 옆으로, 해당 기체의 정보가 나열되었다.

[기체 번호 : 001.]

[기체명 넘버링(Numbering) 나인즈 텐(Nines Ten).]

하오넬은 물론이고 이곳의 장교급 중, 그 기체를 모르는 인물들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해당 기가스는 약 일백여 년 전부터 언제나 황성의 중앙 홀에 서 있던 장식품과 같이 오래된 기체였으니까.

화면에 표시된 푸른 점 하나가 상공을 가로지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하오넬은 생각했다.

늘상 한 자리에 서 있기에, 이제껏 단순한 장식용으로 알았을진대.

설마 그것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 * *

‘죽인다.’

쿠오오오-!

하늘을 가로지르는 이 도시 내에 남겨진 유일한 기가스 나인즈 텐.

그 금색빛의 화려한 기체를 조종하며 나아가고 있는 파일럿의 이름은 다름 아닌 유성이었다.

유성의 뇌리에는 오로지 한 가지의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의 눈에 일렁이는 푸른 마력이, 마치 귀기처럼 살기를 드러냈다.

‘모조리 죽인다.’

그의 내면은 서늘함을 넘어서서 냉기가 새어 나올 듯이 차가웠다.

하지만 그것은 평소와 같은 냉정함에서부터 기반된 서늘함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싸늘하기 그지없는 살기에서부터 비롯된 분노에 가까웠을 뿐.

[■■■!]

[■■■■-!]

유성의 접근을 알아차린 드라칸 중의 일부가 그를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대번에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밀며 달려들었지만, 그는 그저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방해다……!’

키잉!

어느새 기가스의 양손에는 푸른빛을 흩뿌리는 광검이 각각 들려 있었다.

새파란 마력을 날카로운 입자로써 분출하는 초진동검이었다.

그는 대번에 녀석들을 스치듯 지나쳐갔다.

서걱!

섬뜩한 감각이 기가스의 두 팔을 타고 그에게로 전해졌다.

정지한 듯 잠시간 하늘의 위에 멈춰 있는 놈들에게는 시선조차도 주지 않은 채로, 유성은 그대로 놈들을 지나쳐갔다.

달려드는 놈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가 드라칸의 무리를 향해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그를 향해 달려드는 놈들의 수 또한 비례하듯 불어났다.

하지만 그중 무엇하나 그를 막는 놈이 없었다.

그에게 긴장감은 조금도 보이질 않았다.

드라칸의 발톱과 이빨은, 그에게 닿지 못한다.

“죽어!”

평소의 냉정함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의 눈에는 푸른 마력이 타는 듯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어떤 사각, 어떤 방향에서부터 달려드는 놈들이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인식하여 역으로 몸을 갈라버렸다.

촤아악!

푸른 마력을 불처럼 분출하며 초진동검을 휘두르자, 그를 지나쳐간 드라칸 놈들이 푸른 체액을 뿜어내며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가 한 번의 가속과 쇄도를 자행할 때마다, 반드시 한 마리 이상의 몸체가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그 섬전 같은 살육의 행위와 함께, 그가 드라칸의 무리 깊숙이 파고들었을 찰나였다.

[■■■,■■■?]

마침내 놈들의 무리 깊숙한 곳에 있던.

그 거대한 놈, 완전체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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