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찾아드는 종말(3)
콰앙!
이미 도시는 불바다였다.
쿠구구구-.
상공에서부터, 별안간 화염에 휩싸인 전함이 떨어져 내리는 게 보인다.
지상에 추락한 그것이 굉음과 함께 막대한 범위에 이르는 폭발을 일으켰으나, 누구 하나 그곳에 시선을 돌릴 여유가 있는 자들은 없었다.
“베이란!”
라오르트 중위가 부하의 이름을 부르짖기가 무섭게, 그가 탑승하고 있던 기가스가 쏟아지는 섬광에 그대로 관통당하더니 폭발했다.
삑! 삐익!
연신 모니터의 화면이 붉은 불을 내뿜고 있다. 부대원들의 표식이 빠른 속도로 지워져 나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동료들이 차례로 죽어 나가고 있는 게 보인다.
“젠장!”
하지만 동료의 죽음에 슬퍼할 여유도 없이, 라오르트 중위는 급히 기가스를 움직였다.
사방에서부터 시커멓게 몰려드는 드라칸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사방에서부터 금세 포위해버릴 듯한 기세의 사나운 그것들로 인해, 그는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큭!”
다음 순간 뒤편에서부터 쏘아지듯 달려든 드라칸을 가까스로 회피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회피해낸 것은 아니었어서 놈이 스치듯 지나쳐가며 장갑을 뜯어내었던 탓에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그대로 당할 뻔했다.
으득.
이를 악문 라오르트 중위는 힐끗 시선을 돌려 모니터 화면을 주시했다.
거기에는 예의 그 거대한 무기질 형상의 드라칸이 보였다.
등장과 함께 전함 하나를 그대로 손에 쥐어 으스러트린 거대한 드라칸.
터무니없을 정도의 덩치를 지닌 녀석은 단숨에 도심의 한복판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녀석에게서부터 뿜어져 나온 강렬한 마력이, 주변 일대에 막대한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놈이 움직일 때면, 여지없이 하나 이상의 기가스가 추락하고 있었다.
‘단순한 상대가 아니다.’
그는 이미 몇 차례고 게이트의 격퇴에 나선 전적이 있었다.
그러던 와중 발견한 상위체는, 분명 유난스러운 강함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절대로 이 정도는 아니었다.
상위체 등급의 드라칸은 분명 전투체나 양산체에 비한다면 터무니없을 정도의 강함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까지 아득한 수준은 아니었다.
따라서 분명했다.
‘이놈은 상위체를 아득히 뛰어넘는, 완전체 등급의 괴물이다.’
놈에게서부터 마력으로 이루어진 파장이 터져 나올 때마다, 여지없이 그 막대한 에너지를 버티지 못한 주변의 기가스와 전함들이 폭발을 일으켰다.
그 위력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라오르트 중위 또한 폭발의 범위 내에 있지 않았음에도 계기판과 각종 전자 신호들이 오류를 일으킬 정도였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 어떤 파일럿이라 할지라도 저 공격의 범위 내에서는 버텨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단 한 번이라도, 저것에 닿으면 거기서 끝이었다.
‘접근할 방법이 없어. 이토록 무력하기 짝이 없다니.’
도시를 보호하기 위한 방위 전력이었던 그들이었으나, 정작 저 거대한 완전체를 앞에 두고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
그토록 철저하게 진을 치고 있던 주변의 전함들도, 그리고 기가스 분대들도.
이미 대부분이 대파하여 남아있는 자들은 기껏해야 소수에 불과했다.
딱히 그들만이 그러한 것도 아니었다.
당장 분대장 라오르트 중위마저도 피하기에 급급할 뿐이었으니까.
굳이 놈 하나뿐만이 아니라도, 주변에는 적들이 얼마든 존재하였다.
사실상 이미 전투의 향방은 이미 답이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저건 막을 수가 없다.
달려든다고 해도 반드시 패배하고야 말 강대한 상대. 하지만 막아야만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하나 무턱대고 달려든다면 그저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이를 악문 채로 놈의 주위만을 홀로 부유하던 찰나.
쿠오오오-!
돌연, 놈의 체내에서부터 강렬한 마력 파장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
그 모습을 목격한 라오르트 중위의 눈이 부릅떠졌다.
익숙한 광경, 이미 몇 차례고 목격한 적이 있는 모습이다.
바로 저것이야말로, 주변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던 그 파멸의 기운이었다.
놈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명명백백했다.
기운을 끌어모으는 놈의 여덟 개에 달하는 눈동자들은 오로지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전함, 라이제던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전함 라이제던스에게는 더 이상의 여력이 없었다.
밀려드는 주변의 드라칸들을 견제하고, 어떻게든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 보였다.
거기다 갑판 위로는 타오르는 불길마저 존재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저것에 직격당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놈의 준비는 모두 끝마쳐졌다. 한데 끌어모으던 기운이, 더 이상 밝아질 수 없을 만큼이나 광채를 발하며 빛을 번뜩인 그 순간.
번-쩍!!
다시금 예의 그 에너지 파장이 퍼져 나가며 주변을 빛으로 물들였다.
“아, 아아.”
라오르트 중위는.
모니터 화면을 빛으로 물들이는 그 강한 폭발에 휩싸인, 마지막 남은 전함 라이제던스의 추락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만 했다.
이윽고 불길에 휩싸인 채로 추락하기 시작하는 전함이, 지상과 맞닥트리며 강한 폭발을 일으켰다.
* * *
같은 시각.
수도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던 연구소.
쿠구궁-.
유성의 아버지, 유신은 저 멀리서부터 보이는 불길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표정으로 물었다.
“…유성은?”
“안 돼요. 통신 단말이 먹통이에요.”
그들 부부는 오늘 이 순간에 이르러서까지 출근을 한 상태였다.
대피 권고가 불과 한 시간여 전부터 시작되었던 탓에, 제대로 준비를 할 겨를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진작에 연구소를 벗어났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유성과 아무런 연락이 닿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창문 너머로 내비치는 저 멀리서부터 피어오르는 도심의 혼란을 바라보며, 유성의 어머니가 물었다.
“어떡하죠?”
“기다리기엔 시간이 촉박해. 전투가 벌어진 현장과 이곳 연구소는 그리 거리가 떨어져 있지 않은 편이니까.”
그들이 있는 지점은 게이트가 열린 지점과는 족히 한참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당장은 안전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당장에라도, 그들은 언제 재난에 휩쓸려도 전혀 이상치가 않았다.
저 멀리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함의 포격이 쏘아지고 시커먼 드라칸들이 상공을 날아다니는 게 보이고 있는 판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전황은 압도적이었다.
드라칸의 수는, 하늘을 뒤덮을 듯 새카맣기 그지없었고, 반대로 기가스는 적었다.
이 수도에 자리하고 있는 방위용 기가스는 고작해야 스물을 조금 넘던 수준.
심지어 그마저도 전장으로 차출되었던 탓에 남아있는 이들도 거의 없을 터였다.
게이트를 넘어오는 드라칸의 수가 이제껏 세 자릿수에 달했다는 것을 떠올려볼 때에.
저들이 패배할 것은 진작부터 확정된 현실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쿠구궁.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소중한 아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물론 지금 당장 서둘러 도망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사실은 알았다.
유성이 남다른 똑똑함을 겸비한 아들이라는 것 또한 잘 알기에, 그들이 아니라도 알아서 잘 할 것은 충분히 생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부모인 이상에는 죽음이라는 위기가 닥쳐오는 공포 앞에서도 움직이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는 사이에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고.
결국, 주먹을 움켜쥔 유신이 낮게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나.”
눈을 질끈 감은 그가 말했다.
“움직이자.”
“네, 네? 하지만 유성은….”
“그 녀석은 이제 각성자에 도달한 초인이야. 일반인인 우리들과는 다르게 알아서 충분히 잘 할 놈이란 거, 알잖아.”
일반인인 그들은, 유성을 걱정하기보다 자신들의 생사부터 우선적으로 신경 써야만 했다.
그것이 타당하고 정확한 정답이었다.
자신들의 아이 유성은 총명하다. 그리고 또한 뛰어나기도 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수재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천재라고 해야지만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터.
그런 녀석이 구태여 어리석게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신경을 쓸 것은, 오로지 그들 자신들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녀는 말꼬리를 흐리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유성이라면 알아서 할 것을 알지만, 그와는 별개로 부모의 마음이란 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순간.
강렬한 빛줄기의 파동이 저편에서부터 물들었다.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푸른 섬광의 모습에 그들의 고개가 창문 쪽으로 향했다.
이전부터 몇 번이고 하늘을 물들였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그 강렬한 빛줄기가 이내 자신들을 향하는 모습에.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불과 수 분 전. 저 빛에 닿았던 전함의 결말이 어떻게 끝났던지가 기억난다.
아마도, 무엇 하나 버텨내지 못했었지.
최후를 예감한 그들은, 저도 모르게 자신들의 자식을 떠올렸다.
“유성….”
콰득.
이내, 그 섬광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집어삼켰다.
쿠오오오-.
잠시 후. 빛줄기가 그들을 스치고 지나쳐갔을 때.
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던 곳은, 그저 타들어 가는 불길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 * *
수분 정도가 지났을 때.
콰앙.
하늘에서부터 추락하듯 떨어져 내린 한 기의 기가스가 있었다.
그곳에서부터 뛰쳐나온 한 명의 인영이 무너진 연구소의 안으로 발을 들였다.
파일럿, 유성.
그는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듯 심상찮은 소리를 내는 건물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내부를 살피며 연신 소리를 내질렀다.
“어머니! 아버지!”
오늘도 그들이 근무를 위해 출근했음을 알고 있던 그였다.
황녀와의 대화는 그에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도록 만들었고, 그사이 일은 이미 벌어진 뒤였다.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토록 피로감에 찌들어 있던 그들의 모습을 보았으면서도, 말리지 못했다.
오늘 하루만큼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길 강하게 권했어야만 했다.
차오르는 후회를 억지로 집어삼키며 부모님이 평소 거주하는 층에 도달한 그는.
곧,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불길에 그슬리기라도 한 것처럼 온통 시커먼 현장.
그 앞에,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두 명의 형체가 보였다.
‘설마.’
마른침을 삼키며, 애써 아닐거란 생각과 함께.
주춤주춤 나아간 그는, 새까맣게 탄 그 두 명의 형체 앞에 섰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그는 입을 다물었다.
“…….”
처참한 광경이다.
완전히 시커멓게 타서 형체조차도 구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천천히 그들을 살피던 유성의 눈이, 한쪽에 잘려나간 채로 굴러다니는 팔 하나로 향했다.
“……!”
그곳에 끼워진 익숙한 반지를 발견한 유성의 눈이, 이내 크게 뜨였다.
모를 리가 없는 반지다. 저것은, 바로 그의 부모님들이 결혼을 기념하여 꼈었던 반지였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그의 눈앞에 죽어있는 이들의 정체는.
틀림없이-.
유성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못이 박힌 듯이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