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찾아드는 종말(2)
하지만 아직, 알파의 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각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될 겁니다.”
그 직후.
위이이잉-.
저 수도의 바깥, 어딘가에서부터 울리기 시작하는 강한 경보음의 소리에.
“…제기랄.”
유성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지구 시절에서부터 몇 번이고 들어왔던 이 익숙한 소리는.
시대가 변했어도 변하질 않았다.
이건 시민들의 대피를 알리는 경보음이었다. 전투가 났을 때, 가장 먼저 울려퍼지는 그것 말이다.
“설마 이 도심의 한 가운데에, 게이트라도 열리는 건가?”
그것만은 아니기만을 바라며 묻는 유성의 음성에.
잠시간 말없이 그를 응시하던 알파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 *
파직! 파지직!
도심가의 한복판.
그곳의 상공에, 돌연 강렬한 전격 파동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하고.
도심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무인 터렛과 기가스들이 그곳을 예의주시한 상태 그대로 침묵하고 있었다.
이미 다수의 기가스 분대가 현장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분대의 통합 채널로 관측 통신병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마력 입자 대량 포화 중! 앞으로 5분 안에 게이트가 발현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얼마 남지 않았나. 수준은? 게이트 발현 전에는 막지 못할 수준인가?]
[규모가 상당합니다! 억지로 틀어막으려 했다가는 자칫 공간 붕괴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알겠다.]
관측 통신병의 보고에 현장에 투입된 기가스 분대의 분대장, 라오르트 중위는 담담한 음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손은 조종간을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저 너머에서부터, 대량의 드라칸들이 넘어올 것이라는 내용이 주는 무게감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드라칸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기가스나 함선의 터렛이 없이는 결코 막아내지 못할 상대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 발현을 시작하고 있는 이 대규모 마력 반응의 끝에 나타난 상대는 과연 어떠할까.
모르긴 몰라도, 틀림없이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다. 지극히 위험한 것들이 떼거지로 튀어나올 것이라는 것.
그 사실을 떠올린 라오르트 중위는 이를 꽈득 깨물었다.
‘아주 제대로 죽어 나가겠군. 빌어먹게도.’
고작 이보다도 절반 규모조차 되지 않는 마력 게이트에서부터 타고 넘어온 드라칸의 무리들조차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행성 곳곳에 방치하고 있는 것이 현재 그들이 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마치 떡하니 나타나기라도 하듯이 수도의 상공 한 가운데에 나타난 이 게이트의 마력 반응은.
역대 마력 수치들과 비교해보더라도 훨씬 압도적이었다.
으득!
그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았다.
‘젠장 맞게도, 자칫 운이 나쁘면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르겠군.’
듣기로 완전체가 등장하던 때의 마력 수치가 대충 지금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새로이 열리는 이 게이트에서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 등급의 상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그것도 무수히 많은 드라칸 군단과 함께 말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아마, 생각을 해볼 필요조차 없이 뻔할 뻔자다.
틀림없이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겠지.
‘감당이 될까?’
힐끗 보니, 통신 채널의 각 소대원들 또한 하나같이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분대장으로서 당장에라도 저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라오르트 중위라도 표정이 쉽사리 풀리질 않았다.
쿠오오오-!
곳곳에서는 이미 다수의 전함들이 지척까지 내려와 진을 치고 있었다. 언제라도 함포를 쏴갈길 수 있도록, 푸른 마력 입자가 머무는 것마저도 보일 정도다.
아마도, 저들의 생각은 빤히 보인다.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일거에 죄다 퍼부을 셈이겠지. 이 도심에 한 걸음도 허락지 않으려는 생각인 듯하다.
하지만 과연, 그게 그렇게 생각대로만 이루어질까.
후우.
애써 거칠어지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저편에서 대기하고 있을 통신병에게 물었다.
“…현재 대피 수준은?”
[너무도 갑작스럽게 시작된 탓에 혼선을 빚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게이트 반경 10여 킬로미터 내에 추정상 못해도 네 자릿수의 인명이 머무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돌겠군.’
그 말에.
라오르트 중위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최악 중의 최악이다.
도심의 한복판에서 벌어지게 될 전투. 막을 수도 없고 그대로 받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마당에, 너무도 갑작스레 이어진 이 사태의 발발에 사람들은 제대로 대피조차 못한 상태.
그들 기가스 분대와 각 전투 인원들은 어떻게든 전선을 유지하려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얼마 못 가서 금세 사람들이 있는 영역에까지 전투가 확산될 거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희생자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올 터.
전함의 포격이란 건, 말 그대로 압도적인 에너지를 한데 머금어 분사하는 방식.
막대한 입자 포격 방식의 공격은 제아무리 조심하려 한들 틀림없이 민간에까지 닿게 될 터였다.
고작 10여 킬로 정도의 영역은 너무도 비좁은 전장이었다.
도래하고야 말 그 암담한 현실에.
그는 결국 육성으로 혀를 차고 말았다.
“정말로 돌겠군.”
하지만 이내, 그는 아직 한 가지의 대답을 더 요구해야 했다.
“황성에서의 답은? 혹시 황족은 이미 대피를 끝마친 건가?”
[…아직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황성에서 떠오른 함선은 1척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가.”
가장 먼저 자리를 이탈해야 할 황족들. 황제와 그의 유일한 혈연인 황녀, 아리스는 어째선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만한 혼란이 일어났으면 어떤 식으로든 대피를 해야 마땅할 터인데 이런 침묵 상황이라니.
설마 그쪽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일었다.
‘아니. 아니지. 지금은 더 이상 그쪽으로 고개를 돌릴 여유가 없다.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기도 벅차.’
인근한 도시의 방위 전력에 지원 요청을 했으나, 과연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전선이나 유지할 수 있을지나 의심이 되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때까지 이들 중의 몇이라도 살아서 있으면 다행일까 싶었다.
‘듣기로 저번의 게이트에서 등장했다던 완전체는, 불과 수분 여 만에 전함 서너 척을 몰살시켰다던가.’
그 믿기지 않을 괴물이 등장할 가능성이 큰 이 게이트의 앞에서.
전선의 가장 앞에서 싸워야 할 그들 기갑 파일럿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보면 되었다.
완전체가 나타난다면 이중의 누구 하나 놈의 일격을 막아낼 실력자는 없다.
그러니 사실상, 죽을 것을 빤히 알면서도 전장에 투입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빌어먹을. 그는 속으로 몇 번이고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수도를 방위하는 각성자, 엘 바이어스 가의 유리 후작이라도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일었지만 저 멀리 다른 전선에 투입된 그녀가 이곳에 올 여력이 있을 턱이 없다.
그쪽에서도 이미 완전체 하나가 튀어나왔다고 들었으니까 말이다.
벌써부터 초조함을 이기지 못한 그의 손에 땀이 베어나오기 시작했다.
조종간을 잡은 손이 끈적였다.
그리고 잠시 후.
쿠오오오-!
이제껏 심상찮은 마력 에너지를 출렁이며 뿜어내고 있던 허공에, 난데없이 이변이 발생했다.
시커먼 점과 같은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삐이익-!
강렬한 경고음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마력 반응이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게이트 발생 시작! 10, 9, 8……!]
관측 통신병의 음성이 모든 기갑 파일럿들의 통신 채널을 통하여 초읽기에 들어갔다.
[……3, 2, 1! 발현됩니다!]
그러한 외침과 함께.
강렬한 빛이 번쩍이며, 그 작디 작던 시커먼 점이 삽시간에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며 커졌다. 무려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전함이 통행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서.
그리고 마침내.
터억.
그 열린 게이트의 문턱을 붙잡고서, 뭔가가 저편의 어둠 너머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
그것은 마치 주변의 빛을 빨아들일 듯 시커먼 무기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또한, 그 중심에는 타는 듯이 붉은빛을 발하는 여덞 개의 눈이 보였다.
“…….”
[…….]
일순간 모두가 침묵에 잠겼다.
뇌리의 사고가, 강제로 누군가가 버튼을 눌러 정지시킨 듯이 생각을 멈췄다.
마치 죽음이라는 존재를 형상화시키기라도 한 듯한, 그 불길하기 짝이 없는 존재의 등장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것은 정말이지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존재’ 였다.
“……!!”
일 초. 혹은 이 초.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뒤늦게나마 이성을 되찾은 라오르트 중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나타났다! 즉각 대응에 돌입해!”
그의 말과 거의 동시에.
주변의 상공에 부유한 채로 대기하고 있던 다섯 척의 전함과 전 기가스 분대원들이 일제히 게이트 너머의 그것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눈부신 빛의 포격과 사격, 그리고 포탄들이 줄을 지어 쏟아졌다.
저편의 세상과 연결된 그 암흑의 공간을 무너트리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모두가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이내.
[아, 아……?]
[저게, 저게 대체 무슨?]
통신 채널을 통해, 그 광경을 목도한 모두가 경악을 내비쳤다.
[■■■■■?]
놈은.
단지 한 손을 들어내는 것만으로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공격조차도 닿지 않았다 해야지 더 정확한 표현일 터였다. 왜냐하면.
푸른빛의 거대한 장막이, 놈의 앞에 펼쳐진 채로 그 모든 공격들을 완벽하게 가로막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공격들이 힘을 잃고서 흩트러졌을 때.
놈은 그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손을 천천히 내뻗어, 전함을 ‘움켜쥐어 보였다.’
쿠구구궁.
녀석이 힘을 줌과 동시에, 전함이 삐거덕거리며 접혀 들기 시작한다.
압도적이며, 차라리 신화적이라고까지 표현해야 할 그 광경에.
기갑 파일럿들의 눈이 암담함으로 젖어들기 시작한다.
수도의 한 가운데에서부터 발발한,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처절한 전투의 시작이었다.
* * *
쿠구궁. 쿠궁.
멀리서부터 강렬한 소음과 진동이 연달아 울린다.
그 소리의 정체를, 유성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다급히 통신 단말을 들어 몇 번이고 제 부모님을 향해 통화를 걸었다.
하지만.
“소용없습니다, 대장.”
눈앞에 있는 아리스 황녀, 아니 알파의 말처럼.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통신에 응답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통신조차도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이고 도심의 저 멀리서부터 연거푸 울려대는 전함의 입자 포격에 의해, 그 미약한 통신 신호따위는 죄다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유성 또한 그마저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연거푸 통신을 거는 일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대장.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그들을 살리기에는 늦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럴 가능성의 여지조차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요.”
“그게 무슨 소리냐, 알파.”
유성의 음성은 진작에 가라앉아 있었다.
마력이 일렁이는 그의 푸른 눈동자가, 은은한 기세를 내비치고 있었다.
그 시선은, 마치 당장에라도 알파를 물어뜯을 듯이 사납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