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찾아드는 종말(1)
인류가 완전한 드라칸의 영역이 되어버린 지구에서 도망친 백여 년간의 시간 이래로.
그들 인류가 행성 테라에 똬리를 튼 지난 삼백여 년 동안 이 땅의 기둥이자 연합의 중심축으로서 자리 잡았던 것은 바로 황족 리 아리안롯드가(家)였다.
그들은 지난 기나긴 시간 동안 여러 불미스러운 일의 준동에도 꿋꿋이 하나의 거대한 단일 세력으로서 자리하였으며, 언제나 연합의 가장 커다란 중심으로서 큰 혼란 없이 무마해왔다.
조용한 듯 결코 먼저 이를 드러낸 적이 없던 이 태양계의 지배자들인 황족.
그들이 이토록 공통적이며 늘상 조용한 듯 이례 없던 통치를 해왔던 것은, 단순한 시대적인 관점으로만 마주한다면 그저 정치를 ‘잘 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기나긴 세월 동안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가정하에 들여다본다면 과연 어떠할까.
아마도 그러한 가정이 덧붙여진다면.
사람들은 이렇게도 생각을 할 수가 있을 터였다.
마치 이것은, 단 한 명의 사람이 주욱 살아오며 통치를 해온 것만 같다. 라고 말이다.
“기실 처음부터.”
희미한 미소를 지은 아리스 황녀, 아니, 알파는 입을 열었다.
“이 땅에 존재하던 연합의 구심점이라는 황족은, 모두 저 ‘개인’을 의미한 겁니다. 대장.”
알파는 천천히 그를 돌아보더니 손을 들어 주변을 가리켜 보였다.
그녀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아니, 어쩌면 다섯 각성자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비밀을 거론하며 웃어 보였다.
“…….”
그러한 알파의 모습을 경계하기라도 하듯 가늘게 눈을 뜨고서 그녀를 노려보던 유성이 물었다.
“권력욕이라도 있었던 건가? 과거 지구 시절의 인간들처럼?”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재차 부정한 알파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여겼던지 이내 덧붙였다.
“대장도 아시겠지만, 과거의 인간들을 보면 참으로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저나, 대장이나, 그리고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군에 의해 강제로 병사말이 되어 싫든 좋든 싸워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구태여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유성이 알던 알파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아는 한, 자기중심적인 인간 본연의 성질에서부터 벗어난 거의 유일한 인간이었다.
자신만의 사고에 갇히지 않은 채, 세상의 바깥에서부터 흘러가는 관점을 응시할 줄 알았다.
강대한 시간선의 능력에 의해 언제나 흘러가는 모든 것들의 시간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밖에 없던 그녀다.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언제나 타인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를 알기에.
그녀는 태생적으로 그러한 성향을 갖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한낱 권력욕에 사로잡힌다는 점도, 구태여 이런 귀찮은 일을 떠맡으려 한다는 점도.
무엇 하나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그 전에 먼저. 말을 드릴 게 있습니다.”
“뭐지?”
“앞으로, 제 수명은 불과 하루가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의 물음에 알파는 너무도 평온한 듯 가라앉은 모습으로 담담히 대답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한다면. 내일이 도달할 즈음의 시간이면 이미 죽었을 거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군요, 시혁 대장.”
그 말이 너무도 뜻밖이었기에.
유성은, 저도 모르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
* * *
황녀 아리스의 호위기사. 반스 데일.
그가 라피스를 안내한 지점은.
황성의 안쪽에서도 상당히 깊숙한 지하에 위치한 곳이었다.
기이잉-.
길게 이어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끝도 없이 내려가고 있는 그의 모습에.
라피스는 재차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디로 향하려는 거길래 이렇게 계속해서 아래쪽으로만 내려가는 거지? 지하로만?’
그러한 라피스의 의문에.
조용히 그녀의 옆에 몸을 숨긴 채로 함께 하고 있던 리브가 작게 속삭였다.
‘엄마. 저 아래쪽에 커다란 뭔가가 느껴져.’
‘커다란… 뭔가라고? 리브?’
‘응. 마력이야. 엄청 커.’
이해 못 할 소리다.
무언가 대량의 마력이라도 저 아래쪽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일까. 그게 자신과는 대체 무슨 상관이 있길래?
하지만 곧, 그녀의 이어지는 생각을 일깨우는 호위기사, 반스 데일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라피스 엘 바이어스 소위님.”
“네, 네?”
순간 난데없이 그녀를 부르는 음성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하지만 반스 데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제가 보여드릴 것에 크게 놀라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놀라다니… 무엇을 말인가요?”
“크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기가스일 뿐이지요.”
“기가스요?”
기가스라니? 그렇다면 더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다.
황성의 가장 깊숙한 영역인 이곳에, 어째서 기가스가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것이 라피스 그녀와 연관이 있으리라고는 더더욱 생각하기 어려웠다.
덜컹!
그때, 이제껏 계속해서 아래쪽을 향해서 내려가고만 있던 엘리베이터가 강한 진동과 함께 멈춰섰다.
드디어 끝에 다다랐다는 의미였다.
“따라오시길.”
기잉.
열리는 문으로, 먼저 발을 내디딘 반스 데일이 짧게 입을 열었다.
앞장서서 나아가는 그의 뒤를 따라 라피스, 그리고 몸을 숨긴 리브 또한 함께 뒤를 따랐다.
‘주변이…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라피스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주변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뎠다.
바로 앞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그러한 라피스와는 반대로. 리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와.’
라피스로서는 이해 못 할 감탄사를 발하더니 흥분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엄청 크다!’
‘리브. 뭐가 크다는 거야?’
‘엄마는 보이지 않아? 저거!’
영체 상태의 리브가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지만, 라피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그저 어두컴컴한 공간의 연속만이 계속되기에 무엇 하나 분간되지 않을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라피스를 향해.
앞서 나아가던 반스 데일이 발걸음을 우뚝 멈춰섰다.
“이곳입니다.”
“이곳이요?”
“어두울 테니, 불을 켜드리죠.”
딱.
그 말과 함께, 반스 데일이 가볍게 손을 튕기자마자.
이내 눈부신 천장의 불이 커지며 칠흑같이 어둡던 이 공간이 밝혀졌다.
“웃.”
어둠을 밝히는 환한 빛.
난데없이 튀어나온 강한 빛의 세기에, 라피스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내 조금씩 그 강한 빛에 적응하기 시작한 라피스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하고는, 이내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을 때.
“저, 저게 대체?”
라피스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제 눈을 의심했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던 형상을 한 것이, 그녀의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도 거대한 푸른빛의 기가스였다.
정말이지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해서, 함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라피스를 향해.
반스 데일이 입을 열었다.
“역대 황족들이 대를 이어 지금까지 만들어낸 이제껏 없던 최대전장의 기가스입니다. 기체의 목적은 대 함대, 요새용의 전략무장인 초중초월 적성병기(超重超越 適性兵器). 이름은 아크 드레드노트(Arc Dreadnought)라 하죠.”
이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거대한 기가스는, 역대의 황족들이 지난 수 세대 동안이나 제작해온 대 병기였다.
터무니없는 수준의 인적, 물적 자원들을 ‘세대’ 에 걸쳐 소모시킨 끝에 마침내 완성하고 만 이것은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무려 70여 미터의 높이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 기가스의 전부는 아니었다.
기체의 양옆으로 마련된 4구의 기다란 대형 포대는, 그러한 기가스 이상으로 거대한 종류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전장의 길이만 족히 120미터에 달하는, 이미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그것은.
이미 웬만한 전함의 함포를 훨씬 뛰어넘을 사이즈라 봐야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로지 포격만을 위하여 만들어진 그 거대한 병기를 올려다보며.
잠깐의 침묵 끝에.
그는 덧붙였다.
“또한, 이제부터는 당신이 타게 될 기체이기도 합니다. 라피스, 아니, 라피스 소위.”
* * *
강대한 시간의 각성자 알파는 말했다.
“저는 인간으로서는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그 시간은 이미 대장이 유추하신 대로 무려 400년을 훌쩍 넘었죠.”
스윽.
말을 하며,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보였다.
파삭.
거기에는 마치 생기 잃은 오래된 고목이 부서지듯 금이 가고 떨어져 나간 피부 조각들이 있었다.
떨어져 나간 피부 안으로, 시뻘건 근육이 엿보였다.
“…….”
유성은 말을 하는 와중에도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피부 조각을 볼 수 있었다.
확실하다. 지금 눈앞의 알파는 죽어가고 있었다.
산 채로 노화하는 저 과정은, 과거 이시혁이었던 그 시절의 유성 또한 능히 겪었던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담담히 되물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기술력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연장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물며 황족의 중심이라는 너라면. 분명 그런 식으로 살아왔을 텐데.”
그런 그를 향해.
알파는 너무도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가능이야 합니다. 설령 이 육체가 아니라도 방법은 있지요. 황성에는 예비용의 다른 육체들이 몇 개는 더 있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살아온 거로군. 몸을 갈아타면서.”
“맞습니다.”
알파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작은 검지를 들어 저 아래를 가리키며 말을 덧붙였다.
“진짜 본체는 지금도 저 아래쪽에 잠들어 있죠. 한순간도 깨어날 만한 여유가 없기에 말입니다.”
그녀는 말했다.
“대장.”
“말해라, 알파.”
“대장은 이제부터 선택해야 할 겁니다. 드라칸에 대한 끓어오르듯 강렬한 복수심을 이행할지, 그게 아니라면 그들을 용서하고 존중할지에 대해서 말이죠.”
“이해가 가질 않아. 무슨 소리이지?”
이 느리고 여유로운 특유의 분위기에, 유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군인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구태여 그 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답답하지 않고서 곧장 답이 도출되는 결과론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하물며 이런 방식의 대화라고 한다면, 더더욱 선호하지 않는다.
“아. 그렇죠. 그러고 보면 대장은 이런 식의 대화를 싫어했다는 게 기억이 납니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깜빡했습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이, 알파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결론부터 말해드리자면.”
그 미형의 얼굴에 걸맞은 아름다운 웃음과 함께. 그녀는 말했다. 너무도 순수한 듯 보이는 얼굴로서 말이다.
“이제 이 땅은 송두리째 사라질 겁니다. 저와 대장은 물론이고, 이 수도 전역의 인간들 모두가 말이죠.”
그 환한 얼굴로 이어나가는 소리에.
유성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빠졌다.
“살아남는 것은, 우주의 저편으로 먹혀들게 될 대장. 단 하나뿐입니다. 당신은 그 지경이 되어서도 살아남겠죠. 이시혁이었던 당신이니까요. 그나마 불행 중의 다행이라고 한다면, 라피스 양은 운 좋게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정도이겠죠.”
마치 유성이 선호하던 그 단 하나뿐인 완벽한 결과만을 말한다는 듯 확고한 대답에.
더 이상 그는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모든 인간들이 죽는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자신의 부모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