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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28화 (128/200)

128화. 게이트(2)

“엄청난데?”

타인의 시선을 피해 뒤쪽으로 저택에 들어선 유성은.

곳곳에 빼곡할 정도로 쌓인 전쟁 물자들과 거대한 기가스들이 줄지어 나열된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그럴 수밖에 없긴 하지.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까.”

그러한 유성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라피스 또한 살짝 쓴웃음을 드러내 보였다.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저택 안에 무장한 기가스가 꽤 있는걸. 이 정도라면 당장에라도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물량 수준이야.”

“우리 가문은 땅이 넓은 만큼 유사시엔 주둔지의 역할을 겸하고 있거든. 지금 이곳에 쌓여 있는 물품들도 모두 황성에서부터 요청이 들어온 거야. 사실상 전쟁 물자인 셈이지.”

“그런가.”

하기야 이해가 가는 행동이었다.

유리 엘 바이어스 후작이 머무르는 후작저인 이곳 대저택의 넓이는, 수도의 황성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가장 넓은 빈 공터나 다름없었다.

수도의 어느 장소보다도 압도적으로 넓은 이 대지를, 전시 상황인 이때에 가만히 놀려둔다는 것은 확실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유성의 의문은 단지 그뿐만은 아니었다.

쿠우웅-.

그의 시선은 곳곳에서 푸른불을 뿜어내며 이륙할 준비를 하고 있는 함선들에 향해 있었다.

서너 척에 달하는 대형 함선들의 격납고가 열린 채로, 줄을 지어 근방의 전쟁 물자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다들 저걸 어디로 옮기고 있는 거지? 대충 보아하니 아무리 봐도 물품들을 몽땅 함선에 싣기라도 할 셈인 거 같은데?”

“아. 그거?”

그 말에 라피스도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할머님께 자세히 듣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저건 황성에서의 요청이래. 듣기로는 아무리 늦어도 내일까지는 이곳의 물자 전부를 챙겨서 옮겨야 한다더라고.”

“좀 어처구니가 없군. 온종일 옮기기만 해도 족히 일주일은 걸릴 듯한데 이틀 내에 끝내라니.”

“그렇지? 나도 거기에 동감해.”

아닌 게 아니라 주변은 이미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수백,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를 만큼이나 많은 군인들이 곳곳에서 소리치며 물자들을 함선으로 쌓아 올리고 있었으니까.

요란한 진동과 소음 또한 여럿 울려대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조금 과장해서 이곳의 대저택이 무너진대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일 듯한 기세다.

저만한 분량을 이틀 내에 옮기란 것에는, 어떤 식으로든 크나큰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근방의 어딘가에 다급한 격전지라도 있는 것일까.

“일단 들어가자.”

“그래.”

라피스의 이어지는 말에, 유성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라피스의 말처럼, 마침내 저택의 안으로 들어선 그의 눈길이 벽면의 한쪽을 향했다.

그는 분명 아무것도 없을 벽면을 향해 시선을 준 채로 생각했다.

‘시선이 아직까지도 느껴지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착각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듯한데.’

분명하다.

대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유성과 라피스, 둘의 사이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득할 정도로 먼 곳에서부터.

‘대충 군의 누군가일 것은 확실한 것 같지만…. 어째서 지금 시점에 감시가 들어왔는지는 알지 못하겠군. 설마 벌써 나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간 건가?’

사실, 유성은 전투에 나선 시점에서부터 더 이상은 그의 이름과 능력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막연한 생각 따위에서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라프티리아 함장이나 아스트라 부함장이 정보와 그들에 대한 목격담을 차단하려 한다고 한들,

한두 번도 아니고 연이어 몇 번이고 출전한 파일럿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이미 수많은 군인과 일반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목격하기까지 했으니.

유성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실적인 전개 방향일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무려 완전체에 맞설 정도의 파일럿인데, 그만한 인재를 이 상황에 모른 체할 리가 만무하지. 어떤 식으로든 찾아내려 할 수밖에.’

유성은 분명 명실상부한 전력이다.

일단 군에서 완전체를 상대할 만한 전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필연적으로 조만간 압박이 들어올 터였다.

그러한 전력은 족히 전함 몇 대와 맞바꾼다고 한들 이상치 않은 희소한 전력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의 알파, 그 녀석이 저지를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녀석이라면 이런 식으로 유성의 반발을 살만한 행동을 저지르진 않는다.

이미 유성이 상당 부분 약화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꿰차고는 있겠지만, 고작 인간의 시선 하나 느끼지 못할 그가 아니었으니까.

아물며 이토록 어수룩한 상대여서야 애당초 그럴 기미조차 없다.

‘그렇다면.’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것은 연합의 수뇌부에 자리하고 있을 누군가의 수작인 거로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미 유성에 대한 이름이 연합의 누군가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나중에는 그를 포섭하기 위한 공작이라도 부릴지 모르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유성은,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이상으로 귀찮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아마도 분명히 그렇겠지.

“응? 유성, 왜 한숨을 쉬어?”

“조금 그럴 일이 있어서. 그보다 리브는 그 사이에 어디로 간 거야?”

그 말에 라피스는 실실대며 웃었다.

“글쎄에.”

“글쎄, 라니. 그게 무슨 대답이야?”

그 해괴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유성은 저도 모르게 한쪽 눈을 치켜떴다.

“여기엔 은근히 가지고 놀 게 많거든. 내 방에 있던 공이나 인형이 신기했나 봐.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것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거든.”

“그런가. 확실히 리브라면 그럴지도.”

유성은 그 실없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리브라면 그럴 만하다.

어쩌면 바깥의 심각한 상황조차도 모르고서 노는 데 정신이 팔려있다 할지라도, 그리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오히려 그편이 더 리브에게는 어울렸다.

“그럼 유성.”

“음?”

그를 부르는 소리에, 유성의 고개가 라피스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손을 흔들며 말을 건네왔다.

“나, 잠시 머리 좀 다시 염색하고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 내 방 알지?”

“알았어.”

그 말을 끝으로.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라피스의 뒷모습을 보던 유성은, 이내 그녀가 말했듯이 복도를 지나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아득할 정도로 길게 이어진 고풍스런 복도를 지나 어느 내실로 들어서는 문 앞에 선 유성은.

간만에 마주하는 이 정경에 나직한 반가움을 느꼈다.

이곳에 다시금 방문하는 것도 꽤나 오랜만이었다.

끼이익.

천천히 문을 열어젖힌 유성은 잠시간 방안을 둘러보다가, 이내 짧은 감상을 내뱉었다.

“여긴 여전하네.”

이 정도면 거의 유성의 가족이 사는 집 전체의 넓이만 하다.

방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넓다. 단순히 라피스가 머무는 하나의 방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였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온 태양계에 이름을 떨치는 가문의 집안 영애란 것은 이러한 것이었다.

잠시간 주변을 둘러다 보던 유성은 마치 제집처럼 익숙하게 걸어가더니 가운데에 놓인 고풍스런 침대에 털썩 누웠다.

그리고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잠시간의 복잡한 생각은 금세 물 흐르듯 흘러가고 그는 이전의 기억들을 상기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그가 해내야만 할 일부의 기억들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얼마 전. 유성이 엘 바이어스 후작가의 가주, 유리 엘 바이어스를 만났을 때.

라피스의 안위를 확인하고 해야 할 일을 끝마쳤던 그녀가 또 다른 전장으로 떠나기 전에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유성. 수도로 돌아가면 황성의 황녀를 만나라.]

[황녀를… 말입니까? 설마 아리스 황녀를 말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녀 말이다.]

당시, 고개를 끄덕인 유리는 말했었다.

[나도 자세한 이유는 잘 알지 못하겠다만……. 어째선지 그녀가 널 부르더구나. 이 사태가 터지고 난 직후에 남겼던 말이다. 꽤나 오래되긴 했는데, 혹여나 널 만나기라도 한다면 한 번쯤 들러 달라고 하는 것을 보아서, 어쩌면 이미 네 정체가 그녀에게 탄로났는지도 모를 일이지.]

“…이유를 모르겠군.”

유성은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구태여 유리에게 그를 언급하면서까지 만나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유리가 황녀에게 그러한 언급을 받았던 시기는 사실상 이 사태가 터지고 난 직후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정체가 발각되었다는 가정을 하기에도 다소 이른 시점이었다.

‘유리님이 말한 때는 아직 내가 함선 메티스에 타고서 베자리우스 콜로니에 도착도 하지 않았을 시기의 일이다. 그렇다면, 분명 어떤 식으로 생각하기에도 타이밍이 맞질 않아.’

당시의 함선 메티스는 콜로니의 붕괴로 인한 강렬한 에너지 파장으로 인해 그 어디로의 통신조차 불가능한 시기였다.

그런 때에 어째서 유성을 구태여 집어서 말을 했던 것일까.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겠어.’

확실히 생각하면 할수록 의문만 늘어날 뿐이다.

그에게는 황녀와의 접점이랄 게 없었다.

비록 라피스와는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로 지냈다 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라피스와 만날 만한 접점이 있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둘은 그리머지 않은 곳에서 지내왔다.

반면 일평생을 황가의 일족으로 지내며, 성 안에서만 지낸다는 황녀와 유성 간의 접점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굳이 유성의 이름까지 언급해가면서 지목했다면. 그것은.

‘설마… 내 정체가 탄로 난 건가?’

하지만 이내 부정한다.

그럴 리가 없다. 앞뒤가 도통 맞질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없지. 확실해.’

그렇다면 결국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인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유성은, 도통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애당초 감조차 잡히질 않았으니까.

한숨을 내쉰 유성은 나직히 중얼거렸다.

“이건 알 수가 없겠어. 아무래도, 직접 가봐야 알겠군.”

* * *

한편, 그와 같은 시각.

삐익.

수도의 한 관측 센터의 영역에서는.

돌연, 무언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뭐지, 이건?”

모니터 화면을 주시하고 있던 관측 담당의 인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도의 상공 어딘가에서부터 근원을 알 수 없는 다소 미약한 마력 반응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평상시라면 결코 있을 리가 없는 마력 반응.

난데없이 그 원인조차 규명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 사실에 의문을 느낀 관측사는 자신의 상사를 불러내어 그 정체를 물었다.

“여기 이건 뭡니까? 뭔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마력 반응이 저 하늘 위에서부터 감지되고 있는데요?”

“뭐길래? 마력이 어떻다고?”

부하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던 상사는.

잠시간 모니터 안에 비친 상황을 주시하더니, 이윽고 눈이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이, 이건?”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바로 도시에 경계령 울려.”

“예, 예? 경계령을요? 아무리 그래도 상부에 의논이라도 일단 하고서 결정하는 게 맞지 않겠-.”

제 귀를 의심한 부하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하지만 정작, 상사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조차도 없는 듯해 보였다.

그는 오히려 부하의 되물음마저도 그대로 잘라내고서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야, 이 자식아! 이거 그 드라칸 놈들이 튀어나온다는 게이트 전조 반응이야!”

그제야, 부하의 표정 또한 무서울 정도로 굳었다.

게이트. 강렬한 마력 반응과 함께 튀어나오기 시작한다는, 그 괴물 놈들의 차원문에 대해서는 그 또한 들은 게 있었다.

혼란이란. 언제나 생각지 못한 순간에 일어나는 법이었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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