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게이트(1)
거리의 한 가운데에서 유성이 마주한 것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평소 유난히도 익숙했던 기척이 느껴지길래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금발의 머리칼을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색은 다소 바뀌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그러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입을 열려던 순간.
“…뭐야, 라피-.”
“쉿!”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라피스는 황급히 유성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곤 주위의 사람들을 살피는 듯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그에게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성? 여긴 어쩐 일이야?”
“아. 음. 그게. 별다른 생각은 없었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이곳에 와져서 말이지.”
유성이 할 말은 그 정도뿐이었다.
정말 무심코 발이 가는 대로 움직여보니 도착한 곳이 이곳이었다.
이 익숙한 도심가에서, 유성과 라피스의 거처는 그리 멀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들이 함께 성장해올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
[아. 빠!]
그런 라피스의 어깨 위에는.
희미한 유령의 형상같이 변한 리브가 걸터앉은 채로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목소리마저도 작게 낮춘 것이, 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마도 주변의 시선을 조심하라고, 라피스가 진작에 주의를 주었을 터였다.
“그래.”
그 모습에 유성은 작게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는 대답이라도 하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히히. 보고 싶었어, 아빠.]
리브가 소리를 낮추어 작게 킥킥거렸다.
여전히 리브는 장난기 어린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괜찮을까 싶었는데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잘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내 고개를 내린 유성은, 눈앞의 라피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바뀌어버린 머리칼에 머물러 있었다.
“대충 저택 앞쪽의 상황을 보니 무언가 복잡한 일이라도 있던 건 알겠는데……. 머리 색깔은 또 왜 그런 거야?”
“아, 그게 말이지.”
유성의 물음에 라피스는 제 머리칼을 매만졌다.
그녀는 살짝 쓴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답했다.
“내 원래 머리카락을 하고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거든.”
그녀의 눈으로 보기에도 스스로 생소함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평소의 느낌 있던 물빛 색깔과는 전혀 다른 색감. 유성의 눈에도 조금 낯설어 보이기는 했다.
“줄곧 갇혀 있었던 탓에 답답하기도 해서, 임시로 염색이라도 하고 나왔지. 물론 금방 색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거야.”
“그래 보이네.”
“응?”
유성은 그녀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그의 말이 이상했던 듯, 고개를 한 차례 갸웃거린 라피스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 보인다고. 실제로 지금 네 머리카락에서 색이 다시 빠지고 있거든. 부분이기는 하지만.”
“뭐, 뭐?”
그 말에 황급히 거울을 꺼내어 제 모습을 이리저리 둘러다 보더니.
이내, 푸르게 변한 한쪽 부분을 보더니 질색하는 듯 움츠러들었다.
“이런, 진짜잖아!”
유성의 지적이 그녀의 걱정거리를 지적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금세 색이 빠질 듯한 위기감이라도 들었던 것인지, 주위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이내 유성의 팔을 붙잡았다.
“따라와, 유성!”
“뭐? 어디로 가려고?”
“뒷문으로 들어가자. 여기에 있을 수는 없잖아.”
유성은 자신을 이끄는 라피스의 손길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그녀를 뒤따랐다.
그러다 문득.
“…….”
그는 고개를 돌려 뒤쪽을 돌아보았다.
유성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선이, 잠시간 뒤쪽의 어느 한 방향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내 다시금 앞장서서 나아가는 라피스에게로 돌려졌다.
* * *
“…뭐야.”
카쉬파 그레고리 반시.
그녀는 걸쳐 메고 있던 저격총의 스코프에서부터 시선을 들었다.
카쉬파의 에메랄드 색감에 가까운 청록빛 동공이 저 멀리, 도심의 한복판을 헤쳐나가는 유성과 라피스를 잠시간 응시한다.
수많은 인파의 사이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는 한없이 작은 두 개의 점.
육안으로는 거의 판별조차도 되지 않을 만큼이나 먼 거리의 그들을 바라보며 돌연, 그녀는 이내 저도 모르게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본 건가? 이 거리에서 날?”
시선이 마주쳤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방금 전 유성의 눈동자는 스코프를 통하여 먼 거리에서부터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카쉬파와 허공에서 맞닥뜨렸다.
그 차분한 검은색 동공의 시선. 스코프를 통하여 지켜보고 있던 그녀와 허공에서 뒤얽히듯 맞닥뜨린 그 감각은 그저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그러한 것이었을까.
잠시간 가늘게 눈을 뜨고서 생각하는 듯하던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어.”
물론 그녀는, 그것을 착각일 거라 애써 흘려넘기려 했다.
그럴 일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일 킬로미터 이상은 족히 떨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아득했으니까.
만에 하나라도 저들이 그녀의 시선을 알아차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보다도 지금 그녀에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스윽.
카쉬파는 잠자코 다시금 총기를 들어, 눈 가까이로 스코프를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곧, 유성과 라피스가 저택의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본 카쉬파는 이내 스코프에서 눈을 떼고 통신 단말기에다 대고 말문을 열었다.
“접니다. 방금 전, 그가 저택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 알겠다. 조금 더 확인해라.]
“그러도록 하지요. 아, 그런데….”
그 직후, 카쉬파는 잠시간 말을 하길 주저했다.
카쉬파의 주인은 저 특이점인 ‘유성’에 대한 가능한 모든 요소를 알고 싶어하고 있었다.
예의 전함 메타트론에 탑승하여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접전을 몇 번이고 해내고야 만 불가해의 파일럿에 대하여.
때문에 세세한 것들이라도 보고하라는 언급이 있기는 하였으나, 과연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하는 것인지.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녀는 그것이 다소 망설여졌다.
말을 잠시간 흐리는 카쉬파의 반응이 다소 미적거리는 감이 있었던지.
이내 통신 단말기의 저편에 있을 상대 쪽에서부터 먼저 물어왔다.
[뭐지? 말하도록.]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간 말을 끊고서, 눈을 감았다 뜬 카쉬파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방금 전에 꼭 눈을 마주친 것 같았습니다.”
[정말인가?]
“아. 물론 착각일 거라 생각합니다. 저와 그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으니까요. 제아무리 각성자라도 이만한 수의 인파 속에서 시선 하나를 구별해낸다는 것은 불가-.”
그런 카쉬파의 의견 따위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통신 단말기의 상대방은 대번에 그녀의 말을 묵살하며 물어왔다.
[혹시 그와의 거리는 얼마쯤 되지?]
“글쎄요. 아마도 거리상 1킬로미터쯤 되는 것-.”
[그런가. 알았다. 넌 좀 더 그를 지켜보아라.]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은 끊겼다.
단말기를 품에 집어넣은 그녀는 곧장 다음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기 시작한다.
끼릭. 끼릭.
카쉬파가 저격총의 스코프 채널을 바뀐 상황에 맞추어 조금씩 돌려 나갔다.
이 시대의 모든 기술력이 한데 결집된, 이 기다란 저격 총기에 푸른 불이 들어오며 무엇인가가 켜졌다.
이내 목표하고 있던 스코프 채널을 찾아낸 그녀는, 이내 다시금 전방으로 시선을 향하며 저택의 안을 들여다보았다.
내부의 복도를 걸어가는 둘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주시해야 할 대상인 유성과 라피스.
둘 사이에 이어지는 대화가 다시금 들려오기 시작한다.
[…저택의 안에 무장한 기가스가 꽤 있는걸. 당장에라도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무장 수준이야.]
[상황이 상황이니까. 우리 가문은 땅이 넓은 만큼 유사시엔 주둔지의 역할을 겸하고 있거든. 황성에서부터 요청이 들어온 거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카쉬파는.
문득,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로. 저 남자가 우리들의 원종(原種)이라는 건가?”
어느새인가 카쉬파의 눈동자에는, 희미한 황금빛의 기류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 * *
한편, 그와 같은 시각.
전함 메타트론의 깊숙한 곳에 마련된 숙소의 모양을 한 감옥에서,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로 늘어지도록 뒹굴고 있었다.
고오오오.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이 그녀를 중심으로 스멀거리며 움직이는 흑색의 마력이, 지면에 가라앉은 채로 일렁이고 있었다.
“하아암.”
지루할 정도로 긴 하품을 한참 동안이나 늘어지게 하던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숙소의 문 바깥에서 무장한 채로 서 있을 군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너네들! 이쯤 해두고 슬슬 나 좀 내보내 주지그래?!”
[…….]
문 너머는 고요했다. 들려오는 대답도, 반응도 없다.
이러한 상황이 벌써 이틀째나 지속되고 있다.
“쳇. 죽어도 내보내지 않겠군그래.”
그녀는 문 쪽을 바라보며 들고 있던 고개를 털썩, 다시금 침대로 떨어뜨렸다.
아무런 답변조차도 없는 걸 보아하니 절대로 그녀를 내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선하게 엿보인다.
그나저나 이틀이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빌객스. 아니, 아그네스는.
문득,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드리웠다.
“쯧. 그러고 보니 벌써 이틀이 지나간 건가? 꽤 시간이 빠르군.”
그녀는 새하얀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이내 뜻 모를 소리를 낮게 중얼거렸다.
“나나 알파를 너무 원망하지는 말라고, 대장.”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예정대로였다.
유성이 수도에 도착하고서 정확하게 사흘이 지난 뒤의 날이면 ‘그 일’이 일어날 터다.
지금의 이 지루한 상황을 대번에 불태워버리는 듯 강렬한 사건이. 아니, 어쩌면 지금껏 이어진 혼란 이상으로 더욱 큰 사건이.
그날이 다가올 예정된 시각까지, 앞으로 이틀이 남았다.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보던 빌객스는 문득 생각한다.
그녀는 과거에 나눈 대화 중의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알파. 그녀가 남겼던 말이었다.
[대장은 틀림없이 날 원망하게 될 거야. 아니, 아마 죽이고 싶어할 정도로 크게 분노하겠지. 물론, 그때에는 이미 내가 없겠지만.]
[알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시의 빌객스는 크게 새겨듣지 않았다.
언제나 다른 세계선을 보는 존재였던 알파는 늘상 남들은 모를듯한 모호한 말을 꺼내고는 했다.
그러한 탓에 이런 현실이 닥칠 거라고는 당시의 그녀로서는 감히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본다면.
그 모든 것들이 이미 현실화하고 있었다.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이, 착실하게 말이다.
그렇다면-.
그 알파가 남겼던 나머지 내용들이 현실에 고스란히 풀리는 것 또한, 그리 머지않았다는 소리가 된다.
빌객스가 알고 있던 대장, 이시혁은 결코 자신의 부하들에게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그는 늘상 그러했다. 마치 기계처럼.
소대원들이 그를 신뢰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어떠한 치명적인 상황에서조차, 언제나 길을 여는 이성적인 판단과 생로를 열었던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그의 일면 중의 하나를 억지로 끌어 내리면서까지.
알파가 무엇을 노리려는지는 빌객스조차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알파. 넌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대체 대장의 심기를 거스르려 하면서까지, 뭘 원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