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행성 테라의 수도(6)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전혀 상상조차도 못하신 일이겠지만. 저는 이번에 복귀한 전함, 메타트론의 파일럿으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유성의 부모님들에게도 눈치라는 것이 있다.
그의 아들이 유난히 다른 이들보다 감정 표현이 적다고 한다지만, 오래도록 함께 지내온 가족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떻게든 와닿는 게 있다.
유성이 무엇인가 숨기려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그들과 통신하기를 꺼린다는 것 또한.
가족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동안 통신을 꺼리던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냐?”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전함에 타고 있다고 할 때부터,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왔지. 단순한 일반인이라면 그곳에 탑승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알고 계셨습니까?”
“우리는 가족이다, 유성. 아무리 네가 내색하지 않으려 한다고 한들, 느껴지는 게 있기 마련이지.”
가족이라. 그 말에는 유성 또한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가족들을 놔두고서, 그는 몇 번이고 홀로 죽을 뻔한 위기들을 마주해왔다.
힘이 조금만 더 모자랐다면.
그리고 조금만 더 상황이 긴박했다면. 그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들을 연달아서 직면했다.
그랬다면 그의 가족들은 과연 어떠한 표정을 했을 것인가. 상상하기가 두려웠다.
그러다 돌연, 그의 어머니가 굳은 얼굴로 그에게 물어왔다.
“전함 메타트론과 메티스가 동시에 강하를 하던 순간의 방송은 우리들도 봤었단다. 그렇다면 그때 작전에 나왔다고 하던 두 기가스 중의 하나가 설마…….”
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맞습니다. 그 강하 과정에서, 저는 오로지 제 육체만으로 모든 열기를 받아내야 했죠.”
“그게 무슨…….”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어찌나 놀랬던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쥐고 있던 나이프를 놓쳤다.
그의 부모님들은 연합 수도의 실력 있는 연구원들이었다.
제아무리 기가스와 관련된 쪽의 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 되는 수준의 이들이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들은 유성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완벽한 흑발이었던 유성의 머리칼이, 불과 그 기간 사이에 모두 변화하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극한의 상황 속에 내몰린 채로 스트레스를 일거에 몰아받아야지만 가능한지도.
완벽하게는 모를지언정 어렴풋하게나마 상상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다.
딱. 딱.
아버지가 들고 있던 나이프가, 접시에 부딪혀 가늘고 규칙적인 소음을 만들어냈다.
그가 마치 성이라도 난 듯이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유성? 제아무리 기가스가 대부분의 열기를 막아준다고 한들, 그 내부는 족히 수백 도를 넘어서서 네 자릿수에 달하는 온도다. 그런데 정말로 네가 그런-.”
“아버지.”
유성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태도인 그의 말을 끊고는 진지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저라서 가능했던 겁니다. 아버지. 왜냐하면 저는.”
그는 증명하듯, 자신의 눈을 밝혔다.
고오오오-.
새파랗게 끓어오르는 듯한 푸른 광채가, 이내 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
“……!”
그 모습에, 그의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의 눈마저 서서히 커졌다.
지성적인 면에서는 남들보다는 뛰어났으나, 육체적인 재능에서는 평범한 이들에 불과했던 그들이었기에 유성에게도 무재(武才)는 없을 거라 여겼다.
마력에 대한 재능은 세대에 따라 흐르고 흘러 점차 시간을 두고 발전해나가는 것.
하지만 그 기반이 되는 재능이 아예 제로라고 한다면, 마력적인 재능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한 마디로 본래라면 유성은 결코 마나 사용자가 될 수 없는 평범한 일반인의 육체를 지닌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충격 어린 시선 속에 유성은, 그 이상의 것을 선보였다.
고오오오-.
새파랗게 끓어오르는 듯하던 광채는, 이내 마치 초고온의 불꽃이 극한까지 가열되듯이 그 색감을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새하얗기 그지없는 백색으로.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찬란한 금빛으로까지 변화했다.
마침내 지켜보던 그들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을 때.
그의 어머니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그 황금빛의 눈동자는. 설마……?”
유리와도 일면식이 있던 그들인지라 그 눈의 색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를 수가 없었다.
“정말, 이로구나.”
당황한 둘을 향해.
그는 무심한 듯이 대답했다.
“네. 각성자였으니까요.”
하지만 유성의 아버지는.
그 사실에 기뻐하기보다 오히려 굳은 얼굴이 되어 그에게 물었다.
“언… 제부터 각성자가 되었던 거냐.”
“어린 시절부터 줄곧 그러했습니다, 아버지.”
“예전부터?”
“전 언제라도 마나 능력을 각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감각과 능력들 모두가, 손에 잡힐 듯이 선했었죠. 단지 그러하지 않았던 것은.”
말을 끊은 유성은 잠시간 복잡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다 이내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한 치의 거짓이란 게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뛰어난 검술을 선보이며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샀으면서도, 그가 끝끝내 마나 능력을 각성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그것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생애에서만큼은 그토록 평온한 삶을 바라왔던 그였으니까.
하지만 그 삶은 이제 여기까지이다.
세상이 다시금 전화에 휩싸이려 하고, 드라칸이라는 인류의 적이 나타난 이상.
이제는 그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런가.”
아버지의 눈에 서린 빛이 조금 흐려졌다. 그의 어깨에 서려 있던 힘이 빠지는 것이, 유성에게도 느껴졌다.
그는 말했다.
“예전부터 네가 범상치 않다는 것은 늘 생각해 왔었지. 그 어린 시절부터 제아무리 상대가 봐준다고 하더라도 대후작이신 유리 님과의 대련이 이어져 나간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야.”
“…….”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유성은 본래부터 특출났다.
그는 무엇이든 뛰어났으며, 배움에는 결코 더딤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이미 인격이 완성되어 자리잡혀 있었던 유성.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여, 하고자 하는 일에서만큼은 반드시 대성을 하는 재능을 보여왔기에.
마력적인 재능에서의 아쉬움은 분명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샀다.
그런 그가, 금강의 창기사라고도 불리던 유리 후작과 대등하진 않지만 대련을 할 수 있다는 것, 손속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녀는 자그마치 각성자였으니까.
한낱 일반인이 각성자를 상대로 하는 대련이 성사된다니.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기이한 일이던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떠한 이슈도, 알려지지도 않았던 것은.
단순히 유성 그가 마나 사용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천재라고 한들.
그 근본이 되는 밑바탕의 육체가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의 것이어서야 이 시대에서는 감탄은 할 수 있을지언정 도저히 관심의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마나 능력을 각성하지 않은 한낱 일반인은, 뛰어나다고 한들 그 한계가 분명하였으므로.
그런데 이제 보니 그마저도 단지 힘을 숨겼기 때문인가.
한참 만에, 유성의 아버지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유성만큼이나 차분한 성정을 지니고 있던 그의 이성은 잠시나마 침잠되어 있었다.
“그래. 그랬구나, 유성.”
“네.”
“그래, 그렇다면 능력은 대체 언제부터 각성했었던 것이냐. 아무리 네가 대단했더라도 능력을 발전시키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들이 알던 아들 유성은 늘상 평범했다. 마력 수치는, 아카데미에 가는 그날까지도 일반인 정도의 수치에 불과했다.
“드라칸이 콜로니를 괴멸시킨 그날입니다. 필요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각성했을 뿐이었던 거죠.”
필요했다. 그렇기에 능력을 개방했다.
필요하지 않았다면, 유성은 평생토록 능력을 개방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쓰게 웃었다.
“우리 아들이, 아무래도 생각보다도 더한 천재였던 모양인가 보군.”
원래부터 뛰어난 수재일 거라 여겼던 아들의 본 모습이란.
그의 생각 이상이었다.
동시에, 그는.
아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 전쟁에 깊이 관여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사실도 깨달았다.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것 또한.
“이제는 모두가 알게 될 테니, 세상이 가만히 놔두질 않겠구나.”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는 결과임을 알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 * *
하루가 더 지난 다음 날.
유성은 홀로 수도의 거리로 나섰다.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꽤나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담겼다.
저 멀리 다수의 함선들이 부유하거나 도시를 떠나가는 모습이 보였으며.
개중에는 이 수도에서도 전쟁의 여파를 벗어날 수만은 없었던지 일부 무장을 끝마친 소수의 기가스들이 상공을 지나쳐가는 모습들이 목격되었다.
그는 주변의 건물들 중에 무엇 하나 파괴된 건물이 없다는 사실과 사람들의 얼굴에 불안감이 없다는 사실 또한 알아차렸다.
‘그래도 이곳은 여전히 안정적인 모습이로군.’
지난날 그들이 지나쳐 왔던 몇몇 도시들은, 불과 며칠 사이에 오래된 폐허가 연상될 만큼이나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곳 수도에만큼은 그러한 전화가 피어오르기 이전인 모양이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성은 어느새 라피스를 비롯한 엘 바이어스 가문이 머무르는 대저택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무슨 놈의 사람들이 이렇게나.’
그는 살짝 눈을 크게 치켜떴다. 전혀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엘 바이어스 가의 대저택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라피스 엘 바이어스 소후작 영애께서는 현재 저택에 계신 겁니까?”
“그녀가 함선 메티스에 탑승한 승객들을 직접 호위했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입니까?”
“소후작 영애와 함께 전투에 투입되었다고 하던 정체불명의 파일럿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답변해주세요!”
저택의 앞은 사람이 발에 챌 정도로 붐비는 탓에 소란이 일고 있었다.
다수의 기자들은 물론이고, 일부 성난 군중들마저 간혹 보였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것은 가문 소속의 사병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일부 사병들의 익숙한 면면들이 여전히 보였다.
‘여기도 어지간히 난리로군.’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발을 디딜 수도 없을 정도로 붐비는 그 모습에, 유성은 조용히 발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다.
“……?”
유성은 제 앞을 지나는 금빛의 머리칼을 한 익숙한 얼굴의 한 여성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거리의 한 가운데서 우연히 마주한 그녀의 모습에 유성은 저도 모르게 눈을 치켜떴다.
“…뭐야, 라피-.”
“쉿!”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라피스는 황급히 유성의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