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행성 테라의 수도(5)
제47 격전지에서의 전투가 끝난 지, 사일 가량이 흘렀을 때.
상공을 가르고 드높은 구름을 헤치며 나아가던 전함 메타트론은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 속도는 이전에 비할 바가 없을 만큼이나 빨랐다.
더 이상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었기에.
그 결과, 그들은 어느새 인류의 심장부인 연합의 수도에 도착해 있었다.
쿠구구구-.
상공에서부터 전함 메타트론이 내려서는 광경이 보이는 비행로의 부근에는, 이미 다수의 사람들이 한껏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하나같이 간절하거나, 혹은 무언가를 심히 걱정하기라도 하는 표정.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이며 전함에서부터 한창 내려서고 있는 군인들의 무리를 살폈다.
“엄마, 저기 오빠 있다!”
그중에서 알고 있는 얼굴을 발견한 이들의 안색이 환해진다.
사람들은 지인을 발견하고는 다급히 손을 흔들며 외쳤다.
“지크 오빠!”
“에일렌? 어떻게 여기에?”
그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한 군인이 걸음을 서두른다.
걸음은 금세 잰걸음이 되고, 이내 그마저도 길다는 듯이 다급한 뜀박질이 된다.
“어머니! 에일렌!”
“지크!”
그들은 내려서는 군인들을 힘껏 껴안으며 힘든 복귀를 끝마친 데에 성공한 이들을 반겨주었다.
곳곳에서 그러한 광경들이 잇따라 펼쳐지고 있었다.
우주에서 콜로니가 붕괴되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지난 긴 시간 동안을 줄곧 크고 작은 전투에 임했던 그들.
언제 무슨 일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던 상황이 몇 번이고 연달아 펼쳐졌던 그들.
그런 상황을 뚫고서, 가까스로 생환한 가족이나 친인척들의 모습에, 저마다 눈가가 이내 붉혀졌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애가 타는 듯한 시선을 하고서 전함이 있는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의 부부 또한 있었다.
나잇대에 비해 젊어 보이는 여인이 옆의 남편을 향해 다소 불안한 표정을 한 채로 물어왔다.
“분명…… 유성도 저기에 타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렇다고 들었었는데. 조금 늦는군.”
그렇게 대답한 그는, 이내 목이 메인다는 듯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저벅. 저벅.
그런 남녀의 뒤편으로, 옅지만 분명한 발소리가 흘렀다.
오로지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고 있던 그들은 뒤편의 작은 소리를 들을 새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특유의 침착하면서도 서늘한, 다소 가라앉은 듯한 그 익숙한 음성을 듣는 순간.
그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섰다.
“유…!”
그 익숙한 음색이 유성임을 확신한 그들이 뒤돌아선 순간.
환한 얼굴로 유성의 복귀를 맞이하려던 두 부모님은.
순간 당황해서 그 자리에 우뚝 굳어버렸다.
그들은 떨리는 음성으로 유성을 보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너…… 머리 색이?”
“유, 유성아?”
그 말에, 유성은 조금 쓰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제아무리 그라도 그 근본이 인간인 이상에는 언제나 차디찬 이성만이 존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제껏 여러 답변들을 생각해왔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무엇 하나 떠오르질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그저 새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을 매만지고선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조금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거든요.”
“일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머리색이, 그런 식으로 변할 수가 있단 말이냐.”
그들이 기억하는 유성의 머리 색은 분명 칠흑빛의 색이었다. 그 정도로 진한 색이 저렇게나 한순간에 새어버릴 일은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유성은 그저, 그의 부모님들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럴 만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 말대로였다. 그럴 만한 일들이 있었다.
붕괴하는 인공 콜로니 행성을 빠져나오는 그 긴박한 순간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특히나 대기권을 가로지르는 강하전만큼은, 제아무리 유성이라 할지라도 어찌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제 유성의 머리 색이 이전과 같은 흑색이 아닌 완연한 백발이 되어버린 것도, 모두 그러한 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 쓰게 웃는 아들의 모습에.
그의 아버지는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힘든 일이 있었나 보구나.”
그렇게 말하며 말없이 안아주는 두 분의 품은.
참으로 따스했다.
* * *
번쩍.
눈을 떴을 때, 유성이 마주한 것은 언제나 익숙하게 마주해오던 삭막한 합금 재질의 색감이 아니라.
따스한 색이 유난히도 돋보이는 느낌의 천장이었다.
“……뭐지?”
의문은 잠시에 불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성은 자신이 집에 돌아왔다는 것을 상기했다.
‘아. 수도에 돌아왔었지. 부모님들을 다시금 만나 뵈었었고.’
금세 지난날의 기억이 빠르게 스치듯이 복기 되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가족들 간의 해후란 순식간이었다.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보냈다.
“하아.”
멍한 잠기운 속에.
유성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는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저도 모르는 사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제는 꽤나 흥분했군.’
유성도 사람이다.
감정의 표현이란 게 비교적 드문 그라도 가끔은 미소라는 것을 지을 줄 알았다.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는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어머니가 참으로 호들갑이셨지. 자꾸 어딘가를 가자고 부추기기 바쁘셨었으니. 이미 외식으로 배를 채우고 나서도 다시 또 외식을 하자고 하셨었던가.’
유성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찌뿌둥한 몸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는 긴 하품과 함께 일어서서, 거실로 나섰다.
그의 눈이 가만히 집 안의 풍경을 훑었다.
익숙한 모습이다.
그가 아카데미의 생도로서 나선 이래로 일부 가구들의 배치가 조금 바뀐 것을 제외한다면, 크게 바뀐 것들은 없었다.
후우.
그는 숨을 들이켰다.
이 집안에 다시금 돌아오기를, 그동안 얼마나 오래도록 바래 왔던가.
어쩌면 다시 마주하지도 못하고서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이 몇 번이고 있었을 정도로 그는 치열한 순간들을 보내왔다.
‘이 소파도 그대로로군.’
잠시 소파를 쓰다듬던 그는, 자리에 털썩 앉고는 텔레비전을 켰다.
소파에 몸을 기댄 그는, 화면 속 방송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
[지,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주둔군의 기지와도 그리 멀지 않은……!]
삑.
[현재 행성 테라의 북반구 지점에서부터 활발한 고마력 반응이 일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해당 영역에는 이미 물경 세 자릿수에 달하는 드라칸들이 활동을 하고 있으며-.]
삑. 삑.
리모콘을 조작해 채널을 넘길 때마다.
그 도저히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질 리가 없는 기이한 형체의 괴수들이 보인다.
유성의 눈매가 좁혀졌다.
‘드라칸, 드라칸. 온통 드라칸 놈들의 얘기뿐이로군.’
그러다 돌연, 채널을 넘기고 있던 그의 손이 멈춰섰다.
그의 시선이 어느 한 채널의 화면을 집중하듯 응시했다.
“저건.”
그곳에서 유성은.
전혀 의외의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채널에 나오는 주인공은, 유성 그나 뉴스 리포터는 물론이고 온 태양계의 모든 이들이 익히 아는 인물이었으니까.
[수도를 지키는 강환의 후작, 전대 기사단장이신 유리 엘 바이어스께서 직접 출격하셨다고 합니다. 현재 대륙의 극서부 전선 지역에 나타난, 일명 ‘완전체’라고 불리우는 특수개체 등급의 드라칸을 직접 상대하기 위해 다른 각성자들에게 힘을 보태러-.]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성의 안색이 다소 굳었다.
뉴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라피스의 혈육인 유리 엘 바이어스, 바로 그녀였다.
가만히 채널을 지켜보고 있던 유성의 표정은 가면 갈수록 심각해졌다.
해당 영역에 출몰한 드라칸의 수가 물경 오백에 달한다는 점에서나, 두 개체의 상위체 등.
쉬이 흘려넘기지 못할 소식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각성자가 된 지 수십 년밖에 되지 않은, 비교적 얼마 되지 않은 인물 하나 또한 사망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유리 님께서 직접 나가셨다는 전선이라는 게 정말 어지간히도 심각한가 보군. 이렇게 일반인들의 소식통에까지 세세하게 전달되는 걸 보면 말이지.’
일전에 유리가 전선으로 급히 복귀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었다.
실제로 그녀는 한 줄기의 탄환이 되어 급박하게 전선으로 날아갔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여지없이 공개될 정도라는 것은.
그곳에 번진 전쟁의 화마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는 의미일 터였다.
민간에게 모두 포착될 정도로 말이다.
이곳에 와서도 그러한 혼란의 불씨는 여전히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보였다.
물론 유성 그 또한 테라의 상황이 마냥 평화로울 것이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돌아가는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덜컹.
그때, 닫혀있던 현관문이 열리더니 어딘가 외출을 하고 돌아온 듯한 부모님들이 그를 마주하며 미소지었다.
“아들. 일찍 일어났네?”
“이른 아침부터 어딜 다녀오세요, 두 분 다?”
그 말에 어머니가 유성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답했다.
“연구소에 조금 볼 일이 있어서 말이지. 너도 이미 모를 수가 없겠지만, 그 드라칸들의 생체조직 연구에 대한 보고 거리가 조금 있어서.”
“그… 렇군요.”
유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부모님들은 연구소 소속의 연구원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과 같은 때에, 느긋하게 집안에만 있을 수는 없는 것도 당연할 터였다.
방긋 미소지은 어머니가 그와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 그리고 유성. 둘 다 커피 마실래요?”
“음. 물론.”
“아, 네. 물론이죠.”
그 물음에 들려오는 두 남자의 대답은.
놀라우리만치 비슷했다.
* * *
그날.
다소 이른 감이 있는 저녁을 함께하며, 유성은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한동안 달그락거리던 식기 소리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조금씩 사그라들다가 이내는 완전히 멎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이프를 손에서 놓았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유성과 눈을 마주쳤다. 그 시선에 어린 것은 선한 걱정의 기색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떠한 말조차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잠시간 눈을 감은 채로 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머리의 색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들을 수 있겠니?”
그것은 다소 조심스러운 기색이 선한 음성이었다.
이제껏 둘은 유성에 대한 소식의 대부분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중간중간 이어지는 전함 메타트론의 통신 담당자들로부터 간략하게 잘 있다는 식으로만 전달되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유성이 통신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라피스도 그녀의 혈육인 유리 그녀와 대화를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소식을 전달하길 거부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그의 부모님들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말이다.
“사실.”
잠깐의 무거운 침묵 끝에, 유성은 이내 입을 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전혀 상상조차도 못하신 일이겠지만. 저는 이번에 복귀한 전함, 메타트론의 파일럿으로 활동을 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