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행성 테라의 수도(4)
“하아. 하아.”
“제기랄. 대체 이 빌어먹을 벌레 놈들은 언제까지 튀어나올 셈인 거지?”
총알과 포격이 빗발치는 격전지의 한복판.
사방에서부터 물밀 듯이 시커먼 적의 군세가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다.
[■■■■!]
[■■■-!!]
황폐한 대지를 자신들의 색으로 물들이며, 지평선을 가득 메울 듯 끝도 없이 밀려오는 거대한 해일.
그 무수한 드라칸들의 앞을.
기가스들이 쿵쿵거리며 달려나가 사력을 다해 틀어막고 있었다.
적, 적, 그리고 또 적이다. 어딜 둘러봐도 온통 놈들로 가득하다.
그러한 전장의 한복판에 투입된 군인들에게는 정말이지 막연함 그 자체였다.
제47 격전기지는, 현재 전투가 한창이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드라칸들로 인해 연일 지독한 몸살을 앓았던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는 듯 무지막지한 기세로 밀고 들어오는 놈들로 인해 순식간에 온 전열이 박살 나고 있었다.
콰득! 퍼엉!
곳곳에서 기가스들이 덮쳐오는 드라칸 떼를 버텨내지 못하고서 터져나가고, 총알을 쏴 갈기던 군인들은 사나운 기세로 들이닥치는 놈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짓밟혀 으깨어졌다.
투두두!!
자동 포탑의 총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한 번도 쉬지 않고 탄환을 쏴 갈긴 반동으로 인해 한계에 달했다는 반증이었다.
물경 수백 마리가 넘는 드라칸들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고 있기에 포탑이 쉴 틈조차도 없었다.
이제는 포격음으로 인해 근방의 군인들의 귀가 먹먹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나 공격을 퍼붓고 있음에도 이 사태가 해결이 되지 않을 정도로 녀석들의 수가 많다는 거였다.
비명도, 총알 소리도, 폭음도, 무엇 하나 제대로 구별되지 않는다.
누가 죽는지도 모르고 옆에 있던 동료가 어느 순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이미 이곳은 혼란만이 가득했다.
앞의 전열은 박살 난 지가 오래였다. 후방도 사실상 마찬가지.
그저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제 이곳은 끝났다.
앞으로 불과 수분이면 순식간에 뒤편의 주둔기지까지 드라칸들이 밀어닥칠 터다.
군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 살아남을 인간들은 없을 것이다. 자신들도 당장은 저항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부질없는 행위이며 금세 멎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죽을 운명임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총구를 놈들에게로 향하고, 그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손을 놓으면, 정말로 모든 것이 끝장이란 것을 알기에. 포기하면 끝이 더욱 빨리 찾아올 것을 알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쿠구구구-!
그러다 문득.
“어, 어?”
그들이 있는 하늘의 위에서부터 시커먼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가, 전장의 한복판으로 추락하듯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 *
[파일럿 유성, 그리고 라피스 소위와 빌객스. 모두 탑승 완료.]
[강습 수송기 알파 트루퍼. 지금부터 이륙한다. 다들 준비됐나?]
[유성입니다. 준비되었습니다.]
유성의 대답과 함께, 수송기의 조종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이륙, 시작하겠다.]
유성과 라피스. 그리고 빌객스까지.
그들 셋 모두 수송기에 탑승한 상태였다.
강습 수송기.
그것의 역할은 기가스의 수송이었다.
그 날렵한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이나 커다란 덩치를 가진 수송기는, 전장의 한복판에 육중한 거체인 기가스들을 강습, 투하시키는 역할을 가졌다.
기이잉-!
기갑 파일럿들을 실은 수송기가, 전함 메타트론의 갑판 위에서부터 이내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잠깐의 짧은 부유감이 느껴져 왔다.
“후우.”
하지만 그러한 감각을 몸소 여유로이 느낄 새도 없이.
긴 숨을 내쉰 유성은 손에 들고 있던 헬멧을 머리 위에 썼다.
파일럿 복장을 착용한 그의 전신이, 순간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단련된 마나 사용자로서의 근육이 복장의 내부를 꽉 채웠다.
우웅-.
유성은 습관적으로 조종간을 만졌다.
조종간을 타고서 미세한 진동이 손을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현재 그는 기가스의 조종석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강습 수송기, 알파 트루퍼는 그들을 전장으로 실어주는 역할을 가진 수송기다.
기가스에 탑승한 기갑 파일럿들은 그러한 수송기에 실린 채 전장으로의 투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쿠구궁. 쿠웅.
연신 기류와 맞부딪혀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수송기에서.
유성은 힐끗 통신 채널을 켰다.
거기에는 이제는 꽤나 자신감이 차오른 게 한눈에 보이는 라피스가 보인다.
‘이제는 나름대로 적응했군.’
유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처음의 전투에서만 하더라도, 식은땀을 흘리며 한창 심각한 표정이나 짓더니 이제는 전투에 임할 투지가 명확하게 보인다.
몇 번이고 이어진 이 격렬한 상황에, 라피스 그녀 또한 서서히 적응해나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쾅-!
그 순간, 난데없이 굉음이 터졌다.
수송기에 강렬한 진동이 덜컹거리며 울렸다.
그들 세 기가스들을 실은 수송기가 세차게 흔들렸다. 마치 당장에라도 수송기가 박살이 날 듯 거칠기 짝이 없는 진동이었다.
유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건 설마 적습인가? 원거리형 드라칸의 포격?’
그런 그의 생각을 대신 대답이라도 해주려는 듯, 수송기 내부의 스피커를 타고서 현재의 상황이 전달되었다.
[현재 전장에 진입 중이다. 다수의 원거리형 드라칸들이 지상에서 대규모 포격을 날리고 있다. 주의 부탁한다.]
쿵! 쿠구궁!
폭음이 쉴 새 없이 수송기를 때렸다.
기체 내부가 거칠게 뒤흔들리고 있다.
전장에 진입하려는 그들의 수송기를 발견한 일부 원거리형 드라칸들이 쉴 새 없이 포격을 날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잠시간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빌객스가 한 차례 불평을 내뱉었다.
[큭! 이거, 분위기가 영 안 좋은데? 아주 제대로 환영해주잖아?]
이런 상황에서, 수송기가 그리 오래 버틸 리가 만무했다.
과연, 그의 예상이 적중하기라도 했다는 듯 바로 뒤이어 조종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상황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이 이상 진입할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여기까진가. 최대한 안쪽까지 진입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유성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면서도 곧장 대답했다.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겠죠. 저희는 지금 이 지점에서 그대로 내리겠습니다. 뒤쪽의 격납문을 열어주시길.”
[그러지.]
짤막한 대답.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송기의 뒤편에 위치한 격납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쿠오오오-!
굳게 닫혀있던 격납문이 열리면서.
푸른 하늘이 그대로 드러났다.
세찬 강풍이 고스란히 수송기의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는 입을 열었다.
“라피스, 빌객스. 준비는?”
[문제없어.]
[나도, 대장!]
그 말에, 유성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라피스의 음성에는 적당한 수준의 긴장감과 활기가 함께 섞여 있는 게 느껴진다.
저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다시금 주의를 일깨워주려는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이건 충분한 위험 상황이다. 상황이 다급해지면, 주저 없이 바로 빠져나가.”
[알겠어!]
[그래.]
“좋아. 그럼-.”
위잉! 위잉!
시끄러운 소음과 적색 신호불이 울리며 수송기의 내부를 밝혔다.
그 속에서, 그는 조종간을 붙잡은 채 긴 한숨을 토해내었다.
“후-.”
긴 숨을 내쉬자 머리에 쓴 헬멧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물론, 새삼스럽게 큰 긴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전투라면 익숙했다. 이제는 지긋지긋할 정도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안전할 거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라도 늘상 공평하다. 제아무리 전투에 익숙해졌다고 한들, 단련되었다고 한들, 죽음은 한순간에 찾아오기 마련이지.’
찰나의 순간. 찰나의 예상치 못한 일격.
그것들을 막지 못하면, 유성은 물론이고 그들 셋 중의 어느 누구라도 그대로 죽고야 말 터였다.
‘오늘도. 살 수 있었으면 좋겠군.’
꽈악.
그는 조종간을 붙잡으며 마력을 불어넣었다.
두 눈의 안광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육체에 잠들어 있던 마력이 조종간을 타고서 기가스의 핵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
번-쩍!
기가스의 안광이 새파란 빛을 발하며 번뜩였다.
유성이 입을 열었다.
“전원. 지금부터 지상의 강습 지점으로 향한다.”
그가 조종간을 통해 마력을 기가스에 불어넣는 순간.
그의 기가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린 격납고의 뒷문을 건너뛰어, 그대로 하늘을 향해 뛰어내렸다.
부웅-.
부유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이었다.
쿠아아!
금세 아찔한 수준의 저항감이 느껴지며, 유성이 탑승한 기가스가 하늘에서부터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속도는 금세 빨라졌다.
조종석의 모니터 화면을 통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지상의 전황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은 온통 폭발과 굉음으로 가득했다.
혼란스러운 전장이었다.
쐐애애액!
순식간에 지상과 충돌할 듯한 기세로 가까워지는 그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
‘드라칸!’
그가 떨어지는 발아래에 드라칸이 있었다.
잔뜩 커진 두 동공이 드라칸의 모습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이대로라면 유성은 놈과 정확히 맞부딪힐 터다.
‘하지만 문제없어.’
유성은 하늘에서부터 추락하는 자세 그대로 등에 걸려 있던 거대한 대검을 뽑아 들었다.
우웅!
그러자 기가스가 쥔 대검의 날에서부터 선명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마력이었다.
유성은 그것을 역수로 붙잡은 자세 그대로.
지상의 놈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곧, 이변을 느꼈던지 지상의 드라칸 또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놈이 짧은 의문을 표한 그 순간.
쾅-!!!
굉음과 함께, 유성의 기가스가 지상에 추락했다.
강렬한 진동이 대지에 울리며 매캐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전신을 찌르르 울리는, 강렬한 반동 감각이 기가스의 두 팔을 타고서 그에게로 전해졌다.
유성은 낮게 중얼거렸다.
“일단 한 놈.”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확실했다.
구태여 놈의 생사를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 그가 추락하듯 떨어져 내린 지면의 온 바닥이.
온통 드라칸이 흘린 푸른 체액과 살점 조각들로 범벅이었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지. 전열은 내가 막는다. 빌객스는 원거리형 드라칸을, 그리고 라피스는 주둔지의 후방을 보호한다.”
[알겠어!]
[맡겨 두라고, 대장!]
들려오는 것은 자신감 넘치는 대답.
그것들을 들으며, 유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가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을 리브를 향해 말을 건넸다.
‘리브, 처음부터 전력으로 갈 거야. 괜찮겠지?’
[응! 얼마든지!]
오히려 맡겨 달라는 듯 힘찬 리브의 대답과 함께.
그의 기체, 제로 브레이커의 핵에서부터 뻗어 나온 푸른 혈관과 살점들이 전신을 빠른 속도로 뒤덮기 시작한다.
활짝 펼쳐진 제로 브레이커의 네 장의 날개 쓰러스터가 푸른 불꽃을 내뿜으며 쏘아졌다.
그가 힘껏 휘두른 대검이, 궤적을 그리며 일검에 두 놈의 목을 동시에 베어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