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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23화 (123/200)

123화. 행성 테라의 수도(3)

인류는 드라칸을 피해 머나먼 우주로 도피했다.

그것은, 지금에 와서도 전 인류가 아는 400년 전 벌어진 대전쟁의 결과이자 진실이다.

하지만 그 상세한 내막에 대해 아는 것은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인간들뿐이었다.

드라칸과의 전쟁이 한창이었던 대전쟁 막바지의 시기.

그 긴 전쟁의 끝에 마침내 유일한 인류의 희망이었던 넘버즈들마저 차례로 스러져 갔다.

더 이상 인류에게는 싸움을 이어나갈 여력도, 그러할 만한 각성자들도 부족해진 상황.

어떤 식으로든 이 이상 전쟁이 계속되면 인간이라는 종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종의 생존을 위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이들이나마 살리기 위해 지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당시에 인류가 만들어내기 시작했던 것은 바로 ‘이민 선단’ 이라 불리우는 노아의 방주와도 비슷한 허무맹랑한 종류의 것이었다.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던 남은 전 인류를 함선에 태워 옮기자는 허무맹랑한 계획.’

총 열두 척에 달하는, 남은 인류나마 그곳에 실어서 옮기자는.

황당하고 실현이 가능할까조차 의문인 그 계획이 실행되었다.

분명 불가능해 보였다.

인류 시대의 종말을 코앞에 두고서도 하나로 뭉치지 못했던 인간들이다.

그런 이들이, 남아 있는 전 인력과 여력을 하나로 합쳐 방주를 만들어낸다는 게 애당초 가능할 거라 여기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하지만 목전한 종말 속에 인류의 생존이라는 공통된 목표 앞에서.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반목하는 와중에서도 끝내는 그 불가능한 게획을 성공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과정의 끝이 도래하는 직전에 마주친 최초이자 최악의 상대인 궁극체급의 드라칸, 언터처블.

놈의 출현으로 큰 위기를 겪은 인류였으나.

그럼에도 끝끝내 그들은, 마지막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소대를 출격시켰다.

여력조차 남지 않은 그들에게, 이것은 사실상 최후의 전력인 셈이었다.

그렇게 최초이자 최후의 각성자였던 이시혁 소대의 희생을 바탕으로, 결국 그들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열두 척의 이민 선단 제작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민 선단의 이주는 그렇게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었지. 그조차도 지극히 어려운 과정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지구를 비롯한 지구권 태양계의 온 우주에 그것들 드라칸의 세력은 가득 메워져 있었기에.

놈들과의 격렬한 전투가 없이는 다른 태양계로 이주를 떠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인류라는 종을 어떻게든 보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안해야 했다.’

이제는 전쟁의 지속으로 인해 몇 남지조차 않은, 마나 사용자들마저 소모품처럼 희생시켜가며 나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간신히 그들의 터전이었던 고향, 지구권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은하로 진출하였을 때.

그들 인류가 마주한 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진실이었다.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지. 아니, 경악적이었다. 이미…… 이미 우리가 지나쳐가는 온 우주가 드라칸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었으니까.’

이미 온 우주가 놈들의 것이었다.

어느 우주. 어느 태양계. 어느 행성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끝없이 펼쳐진 칠흑의 세상 전체가 놈들의 영역이었다.

우주라는 배경의 전장을 두고, 목숨을 건 전투가 매일같이 벌어졌다.

치열하고 참혹한 전투. 연이은 희생과, 수많은 사망.

얼마 남지 않은 마나 사용자들마저 대부분이 죽어 나갔다.

그들은 정말이지 긴 시간 동안을 싸워 왔다.

그 지긋지긋할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과도 같은 우주를 나아가면서.

모두가 지쳐가고, 이민선을 가득 채웠던 무한할 듯 보였던 자원들마저 서서히 고갈되었다.

그 여정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원치 않는 현실과 타의로써 말이다.

열두 이민 선단은 매일같이 의견 충돌로 다퉜다.

자원은 한정되었고, 거듭된 드라칸과의 전투로 인간들은 매일같이 죽어 나갔다.

쓸 자원이 부족해서 나중에 가서는 죽은 사람의 사체마저도 자원으로 써먹기 시작했다.

각각의 선단의 누가 전투에 나서야 하고 누가 빠져야 할지를 두고 함장들은 매일 갑론을박을 펼쳤다.

그러한 과정 속에 끊이질 않는 드라칸과의 전투까지.

결국, 그들은 한계에 봉착했다.

‘그 끝에, 인류는 여러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

치열한 전투와 드라칸들의 추격에 내몰려 열두 척의 이민 선단 중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선단들이 흩어져 버렸다.

그들은 다른 우주로. 먼 방향으로 영영 흩어져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들이 살았는지. 그게 아니면 모두 죽었는지.

그것은 그녀조차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을 다시 찾기 위해 돌아갈 만한 여력은 그들에게 없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들의 뒤를 쫓는 드라칸들로 인해 자원도, 싸울 인력도 부족해진 그들에게 남은 선택이라고는, 오로지 끝없는 전진뿐.

결국 오로지 남은 여섯 척의 선단만이 우주를 함께 나아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긴 시간 동안을, 그들은 우주에서 방랑하듯 떠돌았다.

‘백여 년을 넘는 무한하게 펼쳐진 우주 공간에서의 방랑. 그것은 정말로 긴 시간이었다.’

무려 하나의 세대가 아닌.

수 세대가 지나갈 동안 이어진 전투다.

행성 지구를 기억하던 세대의 인간들 대부분이 죽고, 다음의 세대가 다시금 죽어 완전히 그들의 고향이 잊혀져 갈 만큼이나 아득한 시간.

지구라는 단어조차도 이제는 생소해져 갈 정도로 길었다.

그 지긋지긋한 드라칸 놈들은 온 우주에 널리 퍼져 있었기에.

긴 여정 끝에 이제는 지구로 돌아갈 여력조차 잃어버린 최후의 이민 선단들은.

이제 하나둘 붕괴하고 망가져 불과 세 척만이 남았다.

모두가 한계점이 달한 그때.

그들은 마침내, 기적적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드라칸이 없는. 기적의 땅. 불가능할 거라 여겼던 무한한 여정의 끝이었다.’

그게 바로 지금의 행성 테라였다.

테라. 그것은, 제2의 지구를 뜻하는 의미를 품은 단어다.

지금 세대의 인간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곳 행성계의 이름에는 그토록 깊은 뜻과 바람이 담겨 있었다.

‘여긴 우리의 고향이다. 새로운 삶의 터전이야.’

불가능할 듯 보였던 희박한 확률 속에서 기적적으로 찾아낸 최후의 보루였다.

여기가 아니고선, 이젠 다시는 찾아낼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최초의 마나 사용자이자, 이민 선단에 최후까지 존재했던 각성자, 시간의 알파.

그녀는 그렇게 다른 동료들 모두가 죽음을 맞이할 긴 시간 동안 홀로 살아남아 이민 선단을 지켰다.

미래를 내다보는 그녀의 눈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위기 속의 선단을 어떻게든 지탱해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불가능 속의 희박한 활로를 찾아 무량대수에 가까운 놈들의 틈바구니를 헤쳐 도달한 것이었다.

보글…….

알파는 녹색의 배양액에서 미동도 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그곳에서만 지낼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벌써 사백 년이었다.

제아무리 강대한 각성자라도, 이토록 긴 시간 동안을 버티는 것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 시간의 알파는 그것을 해냈다.

[시… 혁 대장.]

꿈틀.

멈춘 듯 굳어 있던, 그녀의 손가락 끄트머리가 움직였다.

동시에 감겨있던 그녀의 눈이 흐릿하게 뜨였다.

그녀 자신의 최후가 머지않았음은 이미 숨을 쉬듯 훤히 느껴져 온다.

이미 육체가 한계에 달한 지는 오래 전의 일이었다. 단지 끈질긴 미련으로 이 땅에 억지로 붙어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차피 죽게 될 것이라면.

그 전에, 최소한 그녀가 해야 할 마지막 역할이 아직 이 시대에 남아 있었다.

‘오로지 대장만이 가능한 마지막 길을 이 내가 열어야만 한다.’

* * *

드라칸의 어린 여왕체, 리브.

리브의 마력을 다루는 능력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었다.

‘이미 통상의 마나 사용자들의 수준이라면 진작에 뛰어넘었다. 대체 어디까지 성장할 셈인 거지?’

리브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크기란 상당했다.

그에 더불어, 그러한 에너지를 움직이는 태생부터 뛰어난 능력이 그것을 보조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리브를 볼 때면, 유성은 묘한 의문이 들곤 했다.

‘리브의 마력이 지닌 성질이나 그 외형은 분명 라피스를 닮았다. 하지만 동시에, 마력을 운용하는 방식은 나를 닮았지.’

더 의심할 나위가 없을 터였다.

분명 리브는 두 사람의 장점만을 고루 이어받은 듯한 기이한 존재였음이 확실하였으니까.

심지어 그토록 강대한 소질을 지니고 있음에도, 지금 이 순간에조차도 조금씩 그 기량이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그는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유성은 리브를 볼 때면, 묘한 불안감이 싹트고는 했다.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다지만. 과연 리브가 나나 라피스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이나 성장을 한 뒤에도 괜찮을까?’

그것에 대한 답은 유성 그 자신도 알 수 없다, 였다. 모든 것은 그저 가정의 영역에 불과했다.

‘성격은 분명 인간의 아이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유성은 라피스와 함께 있는 리브를 보았다.

“자아. 리브, 아-. 해야지. 아-.”

“아-. 웁.”

리브는 입안에 들어온 당근을 두어 번 씹고서는 입가를 비죽이며 불만을 내비쳤다.

“엄마, 나 당근 싫어. 맛없어.”

“그래도 먹어야지.”

“…난 소세지가 더 좋은데.”

“그래도 채소는 먹어야지. 당근도 먹다 보면 맛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라피스가 슥슥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자, 이내 다시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인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히히, 알았어.”

우우웅.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사이, 돌연 그들의 통신 단말기가 울렸다.

통제실에서부터의 호출 통신이었다.

“내가 받을게. 예, 접니다. 부함장님.”

유성은 통신 단말기를 들고선 대답했다.

그에 통신의 저편에선 평소와는 달리 조금 생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성 파일럿?]

“…루이스 소위님? 어째서 부함장님이 아니라 당신이?”

루이스 소위.

평소에는 언제나 통제실의 한 켠에서 대기를 하던 임시 인력이었기에, 유성과는 따로 접점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저 얼굴을 외우고 있는 정도가 다였다.

[부함장님의 임시 대리직을 잠시간 맡았습니다. 현재 아스트라 부함장님께서는 수면 안정제를 투여받고 체력을 회복 중이기에, 통제실의 전권을 위임받은 상태이죠.]

그런가. 이해했다.

제아무리 부함장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쉬지도 않고 늘상 통제실에서 업무를 볼 수는 없을 테니, 나름의 여력이 생긴 지금에 와선 필요한 조치였겠지.

게다가 마나 사용자를 강제적으로나마 수면 단계에 돌입시키기 위한 약효가 보통 강한 게 아닐 터다.

모르긴 몰라도, 어쩌면 일전에 유성의 수술에 사용했던 것에 준할 만한 성능이지 않을까 싶다.

상황을 파악한 그를 향해, 루이스 소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현재 저희가 도달하게 될 제47 격전기지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겠지요?]

“예, 일단은. 진작에 전해 들었으니까요. 원래의 일정대로라면 그대로 상공 위를 지나쳐 갈 예정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현재 그곳에서 지원 요청을 부탁했습니다. 한창 위급한 상황이라더군요. 혹, 여력이 가능하다면 귀하의 참여 의사에 대해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황이 심각한 겁니까?”

[아마도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선 한 시간 이내로, 격전기지가 괴멸할 듯합니다. 드라칸의 수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다고 합니다. 다만, 상위체 이상 등급의 드라칸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상위체가 없다면 위험 요소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정도라면, 나설 여유는 충분하다.

오히려 지금의 그는 전력을 한층 끌어올릴 필요 또한 있었다.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담은 없군요. 그 정도라면 충분합니다.”

자신감이 차고 넘치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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