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행성 테라의 수도(2)
“…지금 그 말.”
유성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명확했다.
그는 눈앞의 여성을 노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그건 너였군. 나도, 아그네스도. 죽은 우리를 이 시대에 불러모은 건 역시 너였어.”
“하하.”
그 말에 그녀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긍정도, 혹은 부정도 담지 않고 그저 모호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심증은 충분했다.
그녀의 성정을 예전부터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그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잠시간 말없이 눈앞의 상대를 응시하던 유성이 물었다.
“설마 다른 녀석들도 이 시대로 온 건가? 에더스나 쿠로는?”
“아니.”
그 말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들 뿐이야. 나와 대장, 아그네스가 전부이지.”
“예상외로군. 너라면 그 정도에 그칠 녀석이 아닌데. 언제나 확실한 걸 좋아하는 성향이잖아.”
“애당초, 대장도 알고 있겠지만 내 능력은 시간선에 대한 저항 능력이 미약한 인간에게만 써먹을 수 있는 거니까.”
그의 인상이 굳었다.
“…내가 아는 너라면 그 여지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간섭이 가능했을 텐데.”
하지만 말을 하는 그 시점에, 유성은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이 녀석과는 볼 꼴, 못 볼 꼴을 모두 보아가며 싸운 전우 사이였다.
눈앞의 상대는 그 치열한 대전쟁 시절, 미래 예지라는 게 유일하게 가능한 마나 사용자였다.
전쟁의 승패나, 각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이나 최적의 경로마저도 알아내는 터무니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능력은 군부의 핵심 기밀로 취급되었다.
유성은 그 심장부에 자리한 채로 늘상 그녀와 가까이했던 기밀에 해당하는 그녀에 대한 요소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불어나기 시작해 나중에는 모든 각성자들에게 간섭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각성자들의 정신과 미래마저 꿰뚫을 정도로.
유성은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네 힘이 약해졌다는 건가.”
그의 중얼거림에 그녀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하하, 역시 대장이야. 그것도 정답.”
유성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여전한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서 새로운 몸으로 환생을 했다는 사실에 줄곧 의문을 느껴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느 정도 의심은 하고 있었지. 어쩌면 무언가의 힘이 작용한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
그리고 그 의심은, 그의 생각대로 적중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능에 대한 저항력이 거의 전무한 나와는 다르게 빌객스는 아닐 텐데. 녀석의 이능에 대한 저항력은 나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대하다.’
유성의 짐작을 눈치챘다는 듯이, 그녀는 말했다.
“미리 말해두자면, 빌객스는 사전에 나와 협의를 한 상태였어. 물론, 전생의 기억인 터라 지금에 와선 그 기억이 지워져 정작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지.”
“그렇군.”
유성은 수긍하며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동안, 뜻 모를 시선으로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던 그가 말문을 열었다.
“너는 처음부터 인류가 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그놈들에게?”
“그야 물론이지.”
확답이었다.
그녀는 길게 볼 것도 없이, 곧장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 물 흐르듯 태연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오히려 유성이 멍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어, 대장.”
“…그게 무슨?”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하면 되려나. 만약 미래를 읽는 내가 대놓고 ‘앞으로 무슨 짓을 하든, 인류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라고 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류가 드라칸을 만난 시점부터, 그들 전부가 죽게 될 운명이었다라고 한다면?”
“온 세계가 혼란에 잠겨 들었겠지. 어쩌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그러한 전개는 굳이 미래를 읽는 자가 아닌 유성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의 말에 동의하듯이, 그녀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그 말대로야. 당시의 그들에겐, 두 가지의 선택이 있었어. 최선을 다해 싸우다 무너질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아무 저항조차도 하지 않고 단지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무너질 것인가.”
여기까지 대화가 흐르자 유성도 이제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대화가 시작된 순간부터 줄곧 그의 대답을 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네 말은, 그 최선을 다해 싸워나가다 끝내 무너지고 말 인류의 과정에 뜻이 담겨있었다는 소리인가?”
“거기까지.”
스윽.
거기까지 대화가 흐르자 그녀는 검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 이상은 직접 말해줄 수 없어. 이유는 알지?”
“예전부터 말했던 인과율 때문이로군.”
“그래. 그리고…… 아차, 이런 시간이 다 되어가네.”
무언가를 더 설명하려는 듯하던 그녀의 말이 끊겼다.
동시에 그녀의 몸은 물론이고 온 세계가 마치 흩어지기라도 하듯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유성 또한 무심코 제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모르는 사이, 그의 몸 또한 부서져가는 이 세계와 마찬가지로 점차 흩어져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고통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흩어진다는 감각조차도 없었다.
그런 그의 의문을 안다는 듯이 그녀가 설명했다.
“슬슬 대장이 일어나려고 하는 거야. 꿈에서 깨어나려고 하는 거지.”
“무언가 더 말해야 할 게 있는 건가?”
유성의 물음에.
그녀는 조금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호한 듯이 보이지만. 어쩌면 다소 복잡한 듯한 기색이 서려 있는 그러한 빛을 드러내며.
“대장. 드라칸을 그저 죽여야만 할 상대로 보진 마.”
“드라칸을?”
그가 채 의문을 모두 드러내기도 전에.
이 꿈의 세계는 모두가 부서지듯이 산산이 흩트려졌다.
번쩍.
유성은 감겨있던 눈을 떴다.
쇄액. 쇄액.
그의 곁에서는 여전히 곤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리브가 그의 팔을 힘껏 껴안은 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
입맛까지 다시는 것으로 보아 꽤나 깊은 수면 상태인 듯했다.
유성은 어두컴컴한 천장을 응시하며 방금 전의 대화를 되새겼다.
지금도 그녀가 남겼던 말이 선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드라칸을 그저 죽여야만 할 상대로 보지는 말라고.’
유성의 뇌리에서 드라칸이란 건 해충이었다.
그 생김새가 지구상의 곤충들과도 흡사하게 생긴 그 외계의 존재들은, 그저 덩치만 클 뿐인 해충에 불과했다.
그 괴물들은 아무런 가치조차도 없었다.
존재부터가 해악이며 반드시 죽어 없어져야만 할 그런 무의미한 존재.
바로 그것이 유성의 내면에 자리한 그것들의 유일한 가치이자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녀는 유성에게 구태여 그러한 말을 남겼던 것인가.
지구를 끝내는 집어삼켰던, 그 해충들을 지금에 와서 용서라도 하라는 것인가? 자신의 동료와 친구들을 모두 살해했던 그 괴물 놈들을?
유성은 눈을 감았다.
‘어려운 소리야.’
숨을 쉬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태어났음에도 머나먼 세상의 일을 동시에 마주하는 시간 능력자이기 때문인지.
종종 그녀는 다른 이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뜻 모를 소리를 하고는 했다.
이번의 만남에서도 또한 그녀는 여지없이 그러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렇기에 유성은 오래도록 그녀가 남겼던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만 했다.
“아빠아.”
유성의 팔을 힘껏 껴안은 리브가 잠꼬대를 했다.
그 음성에.
유성의 표정이 다소 씁쓸한 빛을 띠었다.
그녀가 남긴 말의 의미를 알아내기란, 정말로 어려웠다.
한 세상에 공존하기조차 불가한 그 괴물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그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잡힐 리가 없는 일이었다.
* * *
[전함 메타트론. 파일럿 동화율 시스템, 기동합니다.]
고오오오-.
함 내에 울리는 음성과 함께 기묘한 부유감이 느껴진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약간의 부유감이 실내를 메우고 있었다.
“후우우.”
통제실의 중앙에는 푸른빛을 흘리는 특수한 장갑을 착용한 한 여성이 조금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게 보였다.
조금은 긴장한 듯, 경직된 표정을 한 그녀가 장갑을 착용한 왼손을 조심스럽게 펼치자.
고오오오.
곧, 전함 메타트론의 엔진이 빛을 흘리며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오른손을 앞으로 밀 듯이 내밀자 이내 전함의 동체가 서서히 앞으로 움직였다.
그녀가 행하는 손의 동작과 움직임에 따라, 함선의 각 기능들이 동조 작업을 시작하며 활성화하고 있었다.
함선이 그녀를 따르는 게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시대가 변화하면 세상을 다루는 인간의 방식 또한 변화하기 마련이었다.
그처럼, 전함을 조작하는 방식은 상황과 때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었다.
한동안 전함 메타트론의 운용을 ‘임시 전담’ 하기로 한 루이스 소위의 행동을 지켜다 보던 아스트라 부함장이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그럼, 미안하네만 조금만 함의 운용을 대신 부탁하겠네, 루이스 소위.”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함장 님.”
그 힘 있는 단호한 음성 때문인지, 아스트라 부함장의 입가에 실낱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꽤나 믿음직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의 복도로 이어진 문으로 향했다.
전함의 조종을 맡은 루이스가 멀어지는 아스트라 부함장을 힐끗 돌아보았다.
비틀.
그녀가 돌아보았을 때, 아스트라 부함장의 걸음걸이는 조금 힘없이 비틀거렸다.
다소 불안정해 보이는 감이 있을 정도로, 저 비척거리는 걸음걸이가 심히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많이 피로하시군.’
제아무리 마나 사용자가 초인의 반열에 문턱이나마 들어선 존재라지만.
저 정도로 지독하게 혹사당해서야 제아무리 초인이라고 할지라도 멀쩡할 턱이 없었다.
하물며 아스트라 부함장은 현재 쓰러진 라프티리아 함장을 대신하여 임시 함장직마저 겸하고 있지 않던가.
본래부터 과중한 업무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잉.
닫히는 문과 함께, 아스트라 부함장은 통제실에서부터 모습을 감추었다.
하아.
루이스 소위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부함장은 저 길로 곧장 돌아가 정신없이 수면을 취할 터였다.
밑바닥까지 기력이 소모되었으니, 회복에 대한 어려움이 보통이 아니겠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슬슬 목표로 하고 있던 연합의 영토에까지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이미 드라칸의 영역은 진작에 넘어섰다. 녀석들을 마주칠 일은 거의 없을 터.’
이제 그들은 명명백백히 놈들의 활동 반경을 벗어난 뒤였다.
앞으로 조금만 더 있으면 연합의 영토에까지 닿을 수 있었다.
바로 그 때문에 임시 함장직을 겸하고 있던 아스트라 부함장이 오랜 근무를 끝마치고서 이제야 휴식기에 들어서게 된 것이었고 말이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것이 바로 드라칸 녀석들이었으니만큼 만일을 대비한 다음 서열의 책임자가 대신하여 근무를 맡았다.
바로 그것이 루이스 소위였고 말이다.
다소 직책은 낮은 감이 있지만, 그녀는 이 전함 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함선과의 동조 과정 교육을 끝마친 꽤나 능력 있는 인물이었다.
경험은 아직 일천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런 아무것도 없는 상공에서의 조종 정도라면 문제될 것도 없었다.
“루이스 소위님.”
“음?”
그때 저 앞의 모니터 화면을 주시하던 이들 중의 하나가 그녀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십여 분 뒤면 예정된 구역인 제47 격전 기지의 상공을 지나치게 됩니다.”
“알겠다.”
드디어 인간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도달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