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행성 테라의 수도(1)
“…….”
바닥만을 내려다 보던 라피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안 돼. 불가능하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진작에 꿰뚫기라도 했다는 양,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빌객스나 유성은 이 싸움을 도와줄 수 없어. 물론 너도 마찬가지다, 라피스. 중앙 연합의 늙다리들이 너희들의 재능을 눈여겨보기라도 했다간 더 이상 숨 쉴 틈조차 없을 테지.”
그렇게 말을 한 유리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라피스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이제 나는 가보마, 손녀야. 더 이상은 이곳에 머물기에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
그 말에 잠시간 바닥만을 내려다보던 라피스는, 이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고 싶을 거예요, 할머니.”
* * *
늦은 한밤중의 시각. 격납고.
꽈악.
유리는 자신의 복장을 한창 점검하고 있었다.
그녀는 몸매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는 매끈한 재질의 방호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한창 복귀 준비를 하는 유리의 뒤편으로.
아스트라 부함장이 나타났다.
“왔나? 부함장.”
“예, 유리 님.”
물론 유리는 진작부터 그의 인기척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도 의외로군요.”
“뭐가 말이냐.”
“돌아가시기 전에 빌객스에게 무언가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스윽, 고개를 돌린 유리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쓸데없는 것이라도 말한다는 양 농담이라도 하듯 가볍게 대꾸했다.
“괜히 얌전히 있는 녀석을 구태여 건드려 성질을 돋울 필요는 없는 거지. 그렇지 않나?”
“그렇기는 하죠.”
아스트라 부함장 또한 동의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그러하긴 했다.
이곳의 모두가 그 이유만은 제대로 알지 못해도, 분명 그 빌객스가 유성을 따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정작 그 둘이 이유를 밝히진 않기에 감을 잡지도 못한다지만 무언가 모종의 이유가 있음은 틀림이 없었다.
그에 대해서 대충 유리 그녀는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는 있었다.
‘빌객스는 과거 대전쟁 시절의 인물이라던 유성을 대장이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거기에 둘 모두, 강한 실력자라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
둘은 진작부터 구면이라는 소리가 되었다. 이미 400년도 더 전의 시절부터 말이다.
유리가 보기에 빌객스는 통제 불능의 인물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여지없는 전력으로서 통용되는 것은 전적으로 유성의 존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유성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빌객스가 과연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당장은 얌전해 보인다고 한들 빌객스는 빌객스였다.
우주 시대가 개척된 이래로, 그 이름을 태양계 전체에 널리 퍼트려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다는.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
그런 여자가 이제껏 해온 전적은 결코 사라지진 않는 일이다.
또한 그 성정은, 비록 유성의 아래에 가라앉은 듯 잠재워져 있어도 여전할 터였다.
녀석은 수백 명 이상의 사람을 죽인, 세상에 유래를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대학살자였다.
그러니 앞으로의 불안정한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그 둘은 함께 있어야만 했다.
물론 그로 인한 다소의 불안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미 온 태양계가 혼란스러운 이때 약간의 모험은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유성은 유리를 마주한 채로 충분한 신뢰 어린 증명을 해보였다.
그는 분명히 보증해 보였다.
그런 그가 녀석을 다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유리의 눈이 틀렸기 때문일 터다.
“복장은 모두 착용하셨습니까?”
“그래.”
그때 유리의 뒤편에서부터 말을 건네오며 다가오는 엔지니어의 말에, 그녀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잠시간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던 엔지니어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문을 열었다.
“예. 빈틈은 없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중간에 끊은 것은, 격납고의 천장에서부터 울려오는 스피커의 소리였다.
[그럼 함포. 발사합니다. 유리 후작님, 포탑의 안으로 진입하시기 바랍니다.]
“알았다.”
거대한 탄환이 들어가야 할 포탑.
그러한 함포 안에 들어서는 유리는 가볍게 몸에 두른 약간의 방호구를 제외한, 그 이상의 어떠한 보호무장도 더 추가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거창, 마상창만이 무장이었다.
유리는 함포의 정중앙에 선 채로 올곧은 차징(Charging) 자세를 취했다.
마상창을 가슴팍 가까이로 끌어당기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것은 흡사 지금 당장에라도 일직선의 정면을 향해 쏘아질 것만 같은 예리함이 서린 자세였다.
“…….”
유리가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그에 대해서는 투시 모니터를 통해 모두 보여지고 있었다.
그녀의 어른거리는 형체가 모니터에 비춰졌다.
잠시간 모니터를 걱정스레 들여다보던 치프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옆의 아스트라 부함장에게 물었다.
“이봐, 아스트라 부함장.”
“예. 말씀하시죠, 치프.”
“정말 저게 가능한 건가? 걱정하지는 않아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군. 저러다 죽어도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그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치프를 보더니, 씩 웃어 보였다.
“네. 제가 보증하죠.”
그러한 그들의 뒤편에는, 다소 굳은 표정의 이들 또한 함께 있었다.
유성과 라피스가 바로 그들이었다.
유성은 지금, 함포의 안에 스스로 들어선 유리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알곤 진한 황당함을 느꼈다.
‘어처구니가 없군. 정말로 저게 가능이나 한 건가?’
그것은 유성마저도 듣고서 믿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스스로가 함포의 탄환이 되어 먼 거리를 쏘아진다니, 저런 방식의 이동 방법은 이제껏 그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당연한 거다.
듣도 보도 못했고, 감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있을 리가 없는 그러한 방식이었다.
제아무리 각성자라도 함포의 탄환이 되어 쏘아진다는 것은, 몸이 버텨낼 리가 없었다.
그 유성조차도 듣자마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정말 무식한 방식이군. 제아무리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지만, 정말로 저런 방식으로도 몸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다는 건가?’
확실히 믿지 못할 소리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지켜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터다.
우우웅.
그때, 돌연 그의 곁에 있던 라피스의 통신 단말이 울렸다.
함포의 안에 들어간 유리에게서부터 전해진 통신이었다.
퍼뜩 놀란 라피스가 다급히 단말의 화면을 켰다.
[라피스.]
“아, 아아. 네. 할머니.”
[허둥거리기는.]
통신의 저편에서부터 한 차례 낮게 웃는 유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를 보지 않고 있음에도, 그 표정이 선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지금 한창 웃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봤을 땐 조금 더 진전된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라피스.]
“네, 네?”
순간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라피스가 반사적으로 되물었고.
유리가 이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라는 이야기다, 라피스. 진도가 전혀 나가질 않지 않느냐.]
“아. 그, 그런…….”
그 말에.
라피스가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
‘음? 무슨 소리지?’
유성은 의문스럽다는 듯이 힐끗 옆의 라피스를 바라보니, 어째선지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라피스가 당황으로 얼룩진 머릿속을 회복하기도 채 전에.
유리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기대하마, 라피스.]
그 말을 끝으로.
쿠우우웅-!!
유리가 들어섰었던, 함포가 강한 굉음과 함께 쏘아졌다.
* * *
하늘을 향해 쏘아진 함포.
유리는 순식간에 수십 킬로를 넘어서, 전함 메타트론의 관측 영역에서부터 벗어났다.
금세 하늘에 기다란 궤적을 그리며 멀어지는 그녀의 뒤를, 네 기의 기가스들인 바이어스 소대가 뒤따르는 게 보였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불과 수 초조차 걸리지 않는 그 막대한 속도감을, 끝내는 오로지 맨몸으로 버텨내는 그 무지막지한 능력에.
“…….”
잠시간 입을 벌리고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성이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정말로 저 데미지를 버텨내고서 날아가다니.”
그야말로 괴물이 따로 없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설마 저 정도의 행적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정말이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텁.
그러한 유성의 어깨에 손을 툭 얹은 것은.
“아스트라 부함장 님.”
그 말에 그, 부함장은 슬쩍 웃었다.
“너무 놀라는 게 아닌가? 유성 자네라면 그리 놀랄 일이 없는 냉철한 인물일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야.”
“저도 그런 줄 알았지만, 설마하니 유리 님이 저렇게까지 가능한 분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으니까요. 솔직한 말로, 감탄보다는 사람인지조차 의문일 정도입니다.”
“뭐? 하하하!”
유성의 말이 뭐가 그리도 우스웠던지, 아스트라 부함장은 소리높여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듯, 유성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부함장이 저렇게나 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그도 보지 못했던 탓이다. 언제나 아스트라 부함장은 늘상 적당한 선에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해 왔었으니까 말이다.
* * *
그날 새벽. 어두운 방 안.
“허억. 허억.”
유성은 잠을 뒤척이고 있었다.
그는 꿈속에서 흡사 악몽이라도 마주하는 듯이 연신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채 꿈에서 깨어날 생각을 못한 채로 계속해서 뒤척이기만 할 뿐이었다.
호흡은 계속해서 가파라지고, 온몸에서부터 축축할 정도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꽈득.
눈을 감고 있는, 유성의 주먹이 세게 움켜쥐어졌다.
순간적으로 그에게서부터 새어 나온 푸른 마력이 마치 청색의 불꽃이 연상되듯 타올랐다.
그러한 유성의 뇌리에서는.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일어나. 대장.]
번쩍.
난데없이 울려퍼진 한 줄기의 음성.
그 소리를 들은 유성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오로지 칠흑만이 존재하는 어두운 세계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조차 제대로 분간이 가질 않는, 온통 어둠뿐인 세상.
그곳에서부터 눈을 뜬 유성은, 잠시간 주변을 둘러보다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꿈을 통한 접속 방식. 이건 설마 너인가?”
“그래.”
저벅. 저벅.
대답과 함께, 어둠의 저편에서부터 걸어오는 것은 한 명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등장에, 유성이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너였군.”
“그래. 나 이외에 어느 누가 이런 방식으로 감히 각성자에게 접속할 수 있겠어? 각성자의 정신력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강대한걸.”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말없이 주변을 살피던 유성이 물었다.
“지금 이건 단순한 꿈인 건가?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네가 어딘가에서부터 내게 접촉한 건가?”
“대장. 그건 좋을 대로 생각해. 하지만 이건 알아두었으면 좋겠어.”
“…뭐지?”
눈을 가늘게 뜨고서, 경계하듯 노려보는 유성의 말에.
그녀는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대장이 죽은 뒤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먼 시대에 환생을 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지금 유성의 눈앞에 있는 여성은.
그가 이제껏 사용해왔던 모든 시간에 관련한 속성기들을 알려준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