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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20화 (120/200)

120화. 둥지 섬멸전(3)

드라칸의 무리를 통솔하던 여왕체의 사망.

그 변화는 즉각적으로 이어졌다.

[■■■■!]

[■■■?!]

전함 메타트론과 기가스를 연달아 덮치던 드라칸들이 난데없이 이변을 보이며 제멋대로의 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놈들은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완전히 돌변했다.

괴성을 지르고 주변의 동족을 공격하는 듯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 눈에 띌 정도의 변화에, 제이슨이 의문을 표했다.

[이건?]

[아무래도 저 아래쪽의 일이 성공한 것 같군.]

그 말을 받아친 것은 동료였다.

놈들이 난데없는 행동 양상의 변화를 보이는 이유는 명확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저 아래쪽으로 향했던 이들 때문이겠지.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통신 채널을 타고서 익숙하기 그지없는 유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임무 완료. 여왕체 사살 확인.]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금껏 이 상황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아스트라 부함장이 입을 열었다.

[지금이다. 격뢰창의 사용을 허가한다.]

남은 모든 드라칸들의 박멸에 대한 허가 신호.

불과 수십 초 남짓한 시간 이후, 저 위쪽에서부터 강렬한 빛줄기와 함께 무언가가 추락하듯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번-쩍!

그 강한 빛을 한데 머금은 창의 추락에.

인간과 드라칸.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그리고 이내 그 빛이 드라칸의 무리에 적중한 순간.

쿠구구궁-.

강한 충격파가 발산되며 놈들이 삽시간에 지워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투의 끝을 알리는 파멸의 섬광이었다.

* * *

전투를 끝마친 지 불과 서너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쏴아아아-.

라피스는 한창 땀을 흘린 육체를 쏟아지는 물줄기로 식히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떨어지는 찬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하아, 살 것 같다.’

마나 사용자의 몸이란 건 다루면 다룰수록 더욱 빠르게 가열하는 열 엔진과도 같다.

전투를 막 끝냈을 시점의 라피스 그녀 또한 그 같은 현상에 처해 있었다.

그녀가 막 샤워를 끝마치고서 욕실에서 나왔을 때.

돌연 바깥에서부터 음성이 들려왔다.

[라피스, 거기 있느냐?]

익숙한 음성이다.

그 정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구태여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저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할머니이자 엘 바이어스 가문의 가주, 유리 엘 바이어스였으니까 말이다.

“아, 네. 금방 열어드릴게요! 지금 가요.”

대답과 함께 그녀는 다급히 달려나가 닫혀있던 문을 열어젖혔다.

기잉-.

부드러운 소음과 함께 열리는 자동문. 그 너머에는 유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이 감격적인 대면의 순간에, 유리 그녀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미간을 좁힐 뿐이었다.

“흠.”

문턱에 걸터 서 있던 유리의 시선이 라피스의 위아래를 가만히 훑었다.

흡사 품평이라도 하는 듯한 그 눈빛에 그녀는 잠시 주춤했다.

“왜, 왜 그러세요, 할머님?”

라피스가 타올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에, 이내 유리가 지적하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쯧. 여자아이가 조신하질 못하구나. 내가 그렇게나 일러주었건만.”

그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라피스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제, 제 방이잖아요!”

* * *

해프닝은 잠시에 불과했다.

이내 그들은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둘은 이제껏 유리 그녀가 이곳에 도착한 이래로 한 번도 제대로 된 해후를 가질 순간이 없었다.

유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리자면 참으로 우습기 그지없지만, 그럼에도 여유가 딱히 마땅치 않았던 탓이다.

혀를 찬 유리가 품에서 통신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쯧. 라피스, 이걸 봐라.”

“이게 뭐예요?”

“잔말 말고 일단 이 영상이나 보기나 해.”

유리가 재생한 것은 하나의 영상이었다.

[끄아악!]

[도망쳐!]

[■■■■■.]

라피스는 해당 영상 속에서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상황의 연속에 의문을 드러냈다.

“이건……?”

“불과 한 시간 전에 행성 테라의 북부 지구에 나타난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 출몰 영상이다.”

그 말에 대번에 라피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다시금 되물었다.

“…정말로 이게 완전체인 건가요?”

그런 그녀를 마주하며.

유리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누구 하나 녀석을 막지 못하더군. 듣기론 이미 혼자서 4척이나 되는 함대가 대파했다고 하니까 말이지. 이미 각성자 하나도 놈을 막으려다 역으로 당했을 정도이니까.”

“대체 누가…….”

“볼드워커 가문의 애송이 말이다. 불과 50여 년 전에 각성자가 되었던 그 녀석 말이지.”

라피스의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볼드워커 가문. 꽤나 유명한 명문가다. 실제로 늘상 새로운 후계자가 각성자에 근접할 정도의 재능을 타고나는 데다, 이번 세대에서는 무려 각성자를 배출하기까지 한.

마나적 재능에 있어서는 이름이 뒤지지 않는 가문이었다.

그녀는 유리가 어째서 이런 내용들을 구태여 자신의 앞에 일일이 늘어놓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눈치 없는 바보가 아니다.

고작 단일 개체로서 4척이나 되는 전함을 격파했다.

확실히 터무니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전투력이었다.

그 수준이 이미 상위체로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를 뛰어넘었기에.

그 상대란 부정할 나위조차도 일절 없는 완전체임이 확실해 보였다. 그만한 상대란 오로지 완전체라는 이름의 괴물뿐이었으므로.

“무서울 정도로 성장세가 빠른 괴물들이다.”

벌써부터 각 지역에서부터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들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인류와 접전을 벌이기 시작한 개체들만 하더라도 이미 둘이나 되는 셈이니, 어쩌면 개중에는 조용히 침묵하는 상태 그대로 성장만을 반복하고 있을 놈들이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나, 이것은 놈들의 성장세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곳의 마력이 풍부하기 때문인가.

그도 아니라면 다른 무언가의 복합적인 요소 때문인가. 현재로서는, 인간들 중의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 확신치 못했다. 그저 조심스럽게 가늠할 뿐.

유리는 털썩, 라피스의 곁에 걸터앉고는 말을 건넸다.

“이제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 그 레드 피닉스란 녀석을 처리하기가 무섭게 다른 녀석이 튀어나왔으니까. 나도 조금 서두를 필요가 생겼어.”

“…그, 렇겠죠.”

라피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복잡한 빛을 띠고 있어서, 완전히 납득을 한 듯한 모양새인 것은 아니었다.

“각성자가 되어라, 라피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유리가 말했다.

“완전체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각성자들 뿐이니까 말이야.”

완전체의 앞에서는, 설령 대기권의 바깥에서부터 요격이 가능한 인류 최대의 무장인 전함조차도 한낱 덩치만 큰 포대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것도 둔해 빠져 너무도 우습게 피해낼 정도의 표적.

그렇기에 완전체의 상대는 오로지 각성자 뿐이었다.

오로지 그들만이 놈들의 빠르기와 강함에 담담히 반응하고 역공을 취할만한 능력이 있었으므로.

하지만 문제점 또한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었다.

온 우주를 뒤져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수가 적은 것이 그들 각성자였다.

그런데 그중의 하나가 지금 고작 전함 한 척의 호위를 위해서 전장에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현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라피스가 보기에도 명백한 인력 낭비임은, 분명한 듯 보였다.

그게 제아무리 혈육인 라피스의 존재 때문이라고 한들, 그 이상으로 많은 다수의 인명이 걸린 완전체와의 전투를 피할 구실은 되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행성 테라는 지금 중대한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그녀라도 오래 자리를 비울 수만은 없었다.

그 말에 씁쓸하게 웃은 라피스가 물었다.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 건가요?”

“오늘 밤까지다. 지금이 이미 초저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기껏해야 서너 시간 정도가 남은 셈이지.”

“짧네요. 상당히.”

하지만 유리는 그리 개의치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스윽 몸을 일으키고는 대꾸했다.

“각성자는 언제나 부족한 법이지. 하물며 저런 괴물 놈들과 싸울 상대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테고 말이야.”

그러한 유리의 통신 단말기에는.

적어도 수십 통 이상의 통신이 도착해 있었다.

그러한 통신 요청의 대부분이 연합의 것임을 떠올려 본다면.

한눈에 보기에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이곳에 왔는지가 선히 보였다.

어쩌면 다소 무리를 한 것일지도 몰랐다.

지금도 겉으로는 멀쩡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내내 이어졌던 전투 끝에 유리 그녀라도 피곤함을 느끼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나로서는 이제 슬슬 한계로구나. 전선으로 돌아가야만 해. 이미 볼드워커의 애송이가 죽은 직후 나 이외의 각성자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고 하는구나.”

“…….”

라피스는 잠시간 침묵했다. 급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러했다.

‘하긴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는 드라칸들로 인한 피해가 누적되고 있을 테니까.’

그들이 탄 전함 메타트론에 유리가 발이 묶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금 이 순간에서도 계속되고 있을 전선의 다른 곳에서는 피해가 누적될 터였다.

하물며 다른 등급의 상대도 아니고 무려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마저도 나타났다고 한다면.

상황은 이미 최악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러한 전개의 끝에는.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에 마니어스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사람이란 당장 직면한 상황만을 보는 게 아니라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끝맺고 연합의 다른 전장을 향해 움직여야 했다.

이건 남의 일이 아니다.

당장 그들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고 해서 무작정 흘려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장에 피해가 누적되면 누적될수록.

그리고 전투를 거듭한 드라칸들이 세를 키우고 성장하면 할수록.

인류 ‘전체’ 의 여력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드라칸을 상대할 만한 인간의 전력은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그 주요한 전력은 기가스를 움직일 만한 일부의 마나 사용자들과 기가스뿐. 각성자인 유리의 전장 합류가 늦어질수록.

전선에서 놈, 완전체를 상대할 전함과 기가스들의 수만 줄어들겠지.

이처럼 인류가 지닌 여력에는 한계가 존재하는 반면.

드라칸은 그렇지 않았다.

놈들은 끝없이 세력을 확장하고, 단 한 마리의 여왕체만이 존재하더라도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그 수가 불어나기까지 한다.

자원의 여유만 어느 정도 갖추어진다면.

특수종으로 분류된 그 위험한 개체들, 상위체마저 복사라도 하듯이 늘어나게 될 터였다.

‘교환비의 수준이 다르다. 막을 수 있다면, 내 선에서 서둘러야 해.’

결론적으로 언젠가 지금 유리가 늦을 하루, 한 시간이, 후일의 그들에게 있어 목을 조이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결코 과장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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