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둥지 섬멸전(1)
마침내 그들은 드라칸의 둥지에 진입했다.
[이제부터 심도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현재 수심 150미터 진입 중.]
고오오-.
거품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마그마의 열해.
그 깊은 홍련의 바닷물 속으로 진입한 것은.
다름 아닌 유성과 유리라는 이름의 두 인간들이었다.
조종석에 앉은 채로,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유성이 돌연 통신 채널을 통해서 입을 열었다.
“정말 기가스에 타지 않으신 맨몸 그대로의 상태로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은 비교적 버틸 만하겠지만 가면 갈수록 더 뜨거워질 텐데요.”
[상관없다.]
유성의 말에 그녀 유리의 음성은 놀랍도록 태연했다.
확실히 그녀의 음성이 이토록 평온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유성의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의 어깨 위에 올라탄 채로 이 끓어오르는 마그마 속에서도 멀쩡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유리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평소 착용하고 다니던 복장만을 제외한다면, 기가스에 탑승하지도, 따로 보호 장비를 두르지도 않았다.
구태여 따지자면, 지금도 그녀의 전신에서부터 새어 나오고 있는 마력을 옅게 피부의 위로 두른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옅게 펼쳐 두른 마력층이, 마치 기가스의 두꺼운 장갑과 같이 이 열기에서부터 그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여유로운 듯 피식 웃고는 유성 쪽을 걱정했다.
[네 걱정을 먼저 해라, 유성. 내 마나가 모두 떨어지기도 전에 네 마나가 먼저 바닥날 테니깐 말이지.]
그 말에는 유성 또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 깊숙한 고온열해의 심해에서는, 제아무리 유성이라도 멀쩡할 수는 없다.
그가 지금 이토록 태연함을 가장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가 기가스에 탑승해서였을 뿐이다.
아마도 조종석에서부터 벗어나 외부의 열기에 조금이라도 노출된다면, 유리와 같이 이 열기에 버틸 능력이 없는 유성으로서는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타버려도 이상치가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유리가 말을 건네왔다.
[그를 위해서 덕지덕지 덧붙인 장갑이잖느냐. 이번에는 내가 주축이 될 테니 유성, 너는 내 보조를 맞추는 데에만 집중하도록.]
“그러도록 하죠.”
유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는 조종간을 타고서 전해지는 은은한 둔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결코 느끼지 못할 이 미세한 변화를 그는 진작부터 감지하던 찰나였다.
‘확실히. 평소보다도 기체의 반응이 다소 둔중하기는 하군. 못해도 20퍼센트 이상은 속도가 느려졌겠지.’
본래 유성의 제로 브레이커는 오로지 빠르기만을 위해서 극한까지 경량화를 시킨 기체였다.
그런 그의 기가스에 이번에는 마그마의 심해에서 흘러넘치는 열기에서부터 버티기 위해 두꺼운 장갑을 두 차례나 덧대어 붙였다.
당연히 막대한 중량의 증가로 인해 속도가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완전체와의 전면전을 이어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이 무거운 중량감은 단순히 속도만을 늦추는 것뿐만이 아니라, 기체의 한계를 큰 폭으로 낮추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고오오오.
그들은 끝도 없는 마그마의 밑바닥을 향해서 내려갔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아래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보글거리는 몇 방울씩의 기포들과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주홍빛의 마그마뿐.
보통의 인간이라면 두려움으로 인해 한시도 버티지 못할 이 미지의 환경에서.
그는 놀라울 정도로 고요한 차분함을 유지한 채로 생각에 잠겼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적색열해뿐.
바로 앞의 시야조차도, 당장 아무것도 구별이 되질 않는다.
이 마그마의 바닷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오로지 마치 태양빛처럼 눈이 부신 강렬한 밝기의 열색만이 전부였다.
그런 그들의 통신 채널을 타고서, 한 줄기의 음성이 들려왔다.
[현재 수심 200미터 진입 중.]
이제 겨우 200미터 인가. 앞으로 남은 구간은 550여 미터 정도다.
놈들의 둥지는 저 까마득한 아래쪽에 위치한 750여 미터 아래에 있었다. 아직도 가려면 한참은 남은 상황.
그때 유리가 저 지상 위에 있을 이들을 향해 물었다.
[제이슨, 마크. 그쪽은 어떻지?]
[아, 유리 대장님!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큭, 바쁘기는 합니다!]
[하하! 못해도 마흔 마리 이상이 덤벼드는군… 요!]
이미 전함 메타트론은 전투가 한창이었다.
그들의 본진이 있는 저 상공위에서조차도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한 참이다.
둥지의 코앞에까지 접근한 침입자들을 막기 위해서, 대다수의 드라칸 무리들이 저 바깥으로 튀어 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들 중에는 완전체의 존재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놈, 레드 피닉스는 아직까지도 둥지의 심부에 틀어박힌 채로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결국 침입자들을 지극히 경계한 녀석은, 가장 우선해서 보호해야 할 대상인 여왕체의 옆을 지키고 있다는 말이었다.
결국 그들이 생각했던 상황 그대로의 전장이 만들어진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쯧.]
하지만 유리는 이 상황이 그다지 마음이 드는 편이 아니었던지.
이내 혀를 차며 말문을 열었다.
[이대로는 저 위쪽이 먼저 당하게 생겼군.]
“동감합니다.”
[먼저 내려가겠다. 속도를 조금 높이자고.]
그 말을 끝으로.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의 어깨에 걸터앉아있던 유리가 그대로 자리를 박차더니 저 깊은 심해를 향해서 추락할 듯한 기세로 속도를 가속했다.
금세 그녀와 유성 간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잠시간 그 모습을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응시하던 유성은.
이내, 짧은 웃음을 흘리고는 그 또한 속도를 더하기 시작했다.
먼저 앞서나간 유리의 뒤를 따라, 그의 기체 제로 브레이커가 더욱 깊은 심해를 향해 가라앉았다.
* * *
통신 채널을 타고서, 전함 메타트론의 오퍼레이터로부터� 음성이 날아들었다.
[현재 수심 720미터 진입 중. 잠시 후, 마그마의 심해 밑바닥에 도달합니다.]
마그마의 바다.
그 깊숙한, 지면의 끝자락에 마침내 도착했다는 내용의 알람이었다.
이제껏 그들이 상정하고 있던 순간의 직면이었다.
[현재 수심 730미터, 740미터, 750미터. 예정된 목표 지점, 도착.]
쿠웅.
오퍼레이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그마의 심해에 자리한 지면에 발이 다다랐다.
유성은 기가스의 다리를 타고서 전달되는 미세한 진동을 감지했다. 지면에 발이 다다른 데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진동이었다.
기가스와 한 명의 인간은 느릿하게 마그마의 심부를 헤치며 나아갔다.
지독한 중압감이 유성을 짓누르듯 눌러오는 게 느껴졌다. 막대한 심해의 압력이었으나, 그럼에도 버틸 만했다.
‘그저 조금 따스한 정도밖에 느껴지질 않는군. 이제 이 정도쯤은 충분히 버틸 만해.’
마나 사용자의 그릇이란 건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하기 마련이다.
극한의 상황을 마주하고 이겨내면 이겨낼수록. 그리고 거듭 마주하는 그 상황이 격하면 격할수록 더더욱.
실제로 그러한 성장의 증표가 바로 유성 그 자신이었다.
이제까지의 전투와 위기가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그를 이만큼이나 성장시킨 것이다.
치직-.
그런 그들을 향해, 잡음이 조금씩 섞여오며 지직거리기 시작한 통신이 들려왔다.
[둥지까지 11시 방향으… 로 20여 미터. 조심하십시오.]
“확인.”
짤막한 대답과 함께, 통신이 끊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목표로 했던 장소에 진입했다.
마그마 속에 자리한 시커먼 동굴.
그곳에 진입하자, 의외로 멀쩡한 동굴의 내부와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용암이 굳어 형성되었을,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재질의 시커먼 흑색 동굴. 바로 이곳이 드라칸의 둥지였다.
유성은 모니터 화면에 표시되는 비정상적일 정도의 마력 반응에 눈을 가늘게 떴다.
‘주변의 마력 농도가 비정상적이로군. 이렇게까지 높은 건가.’
과연 벌써부터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이 튀어나올 만했다.
주변의 대기를 떠도는 진한 마력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졌다.
이토록 풍부한 마력 농도라면, 제아무리 어린 여왕체라고 하더라도 단시간에 괴물들을 찍어내듯 생산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치가 않았다.
과연,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둥지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보초는 시작부터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
[■■■■!]
침입자들인 유성과 유리를 발견한 두 마리의 드라칸들.
거의 기가스에 준할 정도로 오래도록 성장한 두 개체들이 그들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적대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전투체 둘입니다.”
[알았다, 유성. 내가 왼쪽을 맡지.]
“알겠습니다.”
대화는 그 정도만으로 충분했다.
쾅!
유리는 마치 포탄이 연상될 듯 막대한 기세와 함께 쏘아졌고, 마찬가지로 유성 그 또한 거의 시간차가 없을 정도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콰득!
그들이 내지른 각각의 거창과 대검이, 드라칸의 머리 부위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
짧은 단말마. 그것을 끝으로.
쿠웅.
놈들의 몸체가 힘없이 지면으로 쓰러진다.
둥지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군체 무리의 초병, 전투체들.
놈들은 놀라우리만치 간단히 쓰러졌다.
하지만 정작 유리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못했다.
그녀는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서 침묵하는 드라칸의 사체에 올라타 있었는데, 곧 입을 열면서 통신 채널을 통해 말을 건네왔다.
[유성.]
“말씀하시죠.”
[이놈들, 원래 이렇게 강한가? 내가 알던 전투체들보다 훨씬 갑각이 단단한데?]
“유리 님께서 알던 놈들과 같은 수준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이것들은 환경에 적응한 개체들이니까요.”
심해의 극심한 압력과 열기에 아무렇지 않게 버틸 수 있도록 진화한 무리였다.
심지어 상황을 보니 이미 몇 차례쯤의 진화는 끝마친 상태였다.
못해도 두세 번가량의 개량과 진화를 반복하며, 이미 그들이 알고 있던 통상의 수준과는 많이도 궤가 달라진 것들이었다.
하물며 이곳의 마나 농도는 보통이 아닌 만큼 놈들의 진화는 전반적인 능력을 상승시키는 데에 있어 큰 폭으로 보탬이 되었을 터다.
스윽.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유성의 시선은 죽어있는 놈들의 사체로 향했다.
이 시커먼 동굴과 마찬가지로 진한 암석 색감의 갑각 표면을 두른 드라칸들. 육안으로만 봐도 이것들의 단단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유성이 보고 있는 것은, 그보다도 세밀한 종류의 것이었다.
모니터 화면을 조작하자 놈들의 표면이 더욱 확대되듯 보였다.
다소 시간의 흐름이 느껴질 정도로 드문드문 갈라지고 금이 간, 시간의 작용이 느껴지는 갑각질의 표면이 보인다.
‘갑각질에 노화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 말인즉슨, 이미 이것들이 성장할 수 있는 한계에까지 도달한 개체들이라는 소리겠지.’
전투체 등급의 끝에 다다른 개체들. 그만한 개체들이 하나도 아니고 입구에서부터 둘이나 있었다.
확실히 무리의 규모가 가진 성장세가 심상치 않은 녀석들이었다.
이런 괴물 놈들에게 시간을 주면 그만큼 내몰리는 것은 그들 인간이었다. 확실히 서두를 필요가 있다.
유성은 푸른 눈을 빛내며 속으로 속삭였다.
‘리브.’
[응. 알고 있어.]
대답과 함께, 기가스의 내부에서부터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