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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16화 (116/200)

116화. 레드 피닉스의 둥지(5)

“…….”

유성이 눈을 떴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오래지 않아, 그는 자신이 정신을 잃었음을 알아차렸다.

‘일격. 치명적이었군.’

그는 대번에 자신이 어떻게 당했는지를 파악했다.

그것은 본능이나 육체의 감이 아닌 완전한 이해에 바탕을 둔 판단이었다.

빤히 보였음에도 막지 못했다.

그것이 유성과 유리의 차이였다.

그는 육체 능력에 제한이 걸릴 정도로 약했지만, 반대로 유리는 강했다.

막대한 육체 능력을 바탕으로 각성자의 경지에 올라선 유리에게 대응할 방법은 없었다.

압도적인 힘은 기술과 기교마저도 박살 내는 법이었으니.

‘간단한 이치다. 힘은 기교를 이기고, 기교는 이능을 이긴다. 그리고 다시 이능은 힘을 이기지. 이번에는 그 상성 간의 우열이 너무도 컸군.’

생각을 마친 유성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목덜미에서 섬뜩한 감각과 함께 진한 통증이 느껴지는 탓에, 다시금 털썩 제자리에 누웠다.

“끄응.”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막대한 충격을 받은 육체는 지금까지도 욱신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이로군.’

그는 다소 부실한 감이 느껴지는 목덜미를 매만지며 애써 거칠어진 숨을 내쉬었다.

어째선지 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었다. 그의 다리가 움직이질 않는다.

“음?”

그에 유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그가 하반신을 움직이려 하였으나 움직이질 않는다. 감각조차도 느껴지질 않았다.

‘기가스에 탔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테지만, 한낱 대련에서 거기까지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인간의 기술이 도달할 수 있는 극의 궤도에 달한 유성이다.

그런 유성이기에 그녀에 대한 파훼법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단순한 대련에 거기까지 열을 올릴 필요는 없었다.

유성의 전력은 어디까지나 기가스에 탑승했을 때 드러나는 것.

보통의 수준이 고작인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기가스에 탔을 때 제약이 걸리는 것은 유리일 터였다. 그녀의 육체가 가진 내구도와 강함은 기가스 이상이었으니까.

텁.

유성은 제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곤, 그대로 힘을 주었다.

“흡.”

우둑!

딱히 곤란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그저 태연히 어긋난 목뼈를 맞출 뿐이었다.

감각이 없었던 하반신에 순식간에 원래의 감각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반신 마비라는, 반신불수의 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목 관절을 다시금 끼워 맞추는 것만으로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투둑, 투두둑.

실시간으로 목 관절의 뜯기고 터져나간 일부의 근육과 신경들이 이어 붙는 것이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신경과 시신경들에, 그의 눈꺼풀과 손가락이 간헐적으로 얕게 떨려 왔다.

‘대강 회복된 것 같은데.’

유성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제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감각이 정상적이다. 운신에 어려움도 별반 느껴지지 않았다.

이처럼 유성 그 정도로 세밀하게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마나 사용자라면 장애마저도 잠시 잠깐 불편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찰나조차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만에 불안정한 상태에 들어선 육체가 수복을 완료할 정도로 강건한 회복력을 지니기 때문이었다.

병상에서 몸을 일으키고 걸음을 내디디려던 유성의 움직임이 잠시간 비틀거렸다.

아직 신경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불안정한 걸음 끝에 그는 태연히 걷게 되었다. 금세 그마저도 회복한 것이다.

괴물 같은 회복 능력이 아닐 수 없지만, 이마저도 유성이라서 조촐한 축에 속하는 편이었다.

진짜 각성자인 유리의 경우에는 이보다도 더한 신체 능력을 가졌을 테니까 말이다.

그때 천장의 스피커가 울리며 소리가 들려왔다.

[파일럿 유성. 파일럿 유성. 지금 바로 통제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파일럿 유성은 지금 바로 통제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호출 신호였다. 그 소리에 유성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눈을 뜨자마자 바로 부르다니.’

그가 눈을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호출을 보내오다니.

아마 그의 의식이 눈을 뜨는 순간을 측정하고서 곧장 내보내는 소리일 터였다.

* * *

“그래서 그 레드 피닉스라고 하는 녀석이 저 앞에 있다는 건가?”

“그런 셈입니다.”

유리 엘 바이어스.

그녀는 아스트라 부함장을 마주한 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기잉.

그때 뒤편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익숙한 음성이 뒤편에서부터 들려왔다. 무심한 듯 가라앉은 그 특유의 음성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왔군.”

유성이었다.

“멀쩡해 보이는구나, 유성.”

그의 등장에 유리는 분명 십수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신불수의 상태가 틀림없었을 유성을 떠올리며 낮은 웃음을 흘렸다.

다른 이들이라면, 틀림없이 그러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유성은 낮은 한숨을 한 차례 내쉬었다.

“멀쩡해 보이는 게 다행인 줄을 아십쇼, 유리 님.”

그 말에 유리는 태연히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나도 일반인을 상대로 그 정도로까지 힘을 쓰진 않는다고. 내 힘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잠깐의 주체를 하지 못했을 정도로 사납게 달려든 건 너잖아? 나도 놀랐다고.”

“…뭐. 그런 걸로 치죠.”

유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음같아서는 한마디 하고 싶지만, 그러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유성 그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최강의 각성자였다.

괜히 그의 내면에 있는 한 마디를 고스란히 꺼내 들었다간, 이 통제실의 바닥에 그대로 내다 꽂힌다 하더라도 이상할 일이 없었다.

“그보다 유성 군.”

그런 그들의 사이에 껴드는 하나의 목소리가 있었다.

몸 상태가 좋지 못한 라프티리아 함장을 대신하여 한시적으로 전함 메타트론의 임시 함장직을 맡고 있는 아스트라 부함장이었다.

“아, 네. 아스트라 부함장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아닐세.”

짤막하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하는 유성의 모습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가볍게 손을 들어 대답했다.

“그보다 좀 다급한 안건이 있어서 말일세. 몸 상태가 아직 좋지 못한 건 이해하지만, 들어줄 수 있겠나?”

“네. 이미 몸은 대부분 회복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부함장님.”

“그런가. 고맙군. 일단 이쪽을 보게나.”

고개를 끄덕인 아스트라 부함장은 곧장 손을 들어 그들의 앞에 있는 대화면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다소 복잡한 그래프와 함께 일부 지형지물이 표시되어 있었다.

“레드 피닉스(Red Fhoenix). 놈과 놈의 무리가 머무르는 곳의 구조를 해석해낸 이미지네. 쉽게 말해 둥지의 모습인 것이지.”

“그렇군요.”

유성은 대답과 함께 시선을 화면으로 향했다.

그의 눈에 미로라고 해도 될 만큼이나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지형이 담겼다.

“이제 곧 우리는 놈의 둥지가 자리한 지표면의 바로 위에까지 도착할 걸세. 도착까지는 아마도 열두 시간가량이 소모될 거야. 내일 아침의 해가 떠오르는 순간이지. 그리고 그때부터는.”

“다시금 녀석과의 2차전이 이어지겠군요. 예의 레드 피닉스와 말입니다.”

“그래. 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이어지는 유성의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 또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놈과 그 둥지를 완전히 말살해야만 한다. 자네 말처럼, 또 다른 완전체가 등장한다는 치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니까. 물론 우리가 이 화산 지대를 넘어 인간의 영역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도 말이지.”

* * *

한편, 격납고에서는.

“이야. 라피스 아가씨, 못 본 사이에 훨씬 아름다워지셨군요.”

“맞습니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신 것 같습니다.”

유리의 직속 부대원들.

엘 바이어스 소대원들은 라피스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이전까지 착용하고 있었던 전시용의 파일럿 복장 대신, 다소 화려한 색감이 어우러진 복장을 걸친 상태였다.

소대원들은 축 늘어진 라피스의 어깨를 두들기며 애써 응원을 해주었다.

“힘 좀 내십쇼, 아가씨. 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을 겁니까?”

그 말에 라피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평소보다도 조금 힘이 빠진 듯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렇게 티가 나나요?”

“그럼요. 고작 이번에 있을 임무에 속하지 못했다고 해서 기죽는 게 빤-.”

빤히 보였다, 라고 말을 하려고 하였던 엘 바이어스 소대의 제이슨이었으나.

옆에서부터 빤히 노려보듯이 바라보는 동료들의 서슬 퍼런 시선을 받고는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니 구태여 전장에 투입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안전한 게 최고라고요.”

“…….”

말은 바꾸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형편없는 대화를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던 동료 소대원들은 답답함에 눈을 감았다.

‘이런 맙소사.’

‘저런 것도 위로라고 하는 건가. 빌어먹을 제이슨 녀석.’

소대원들은 엘 바이어스 가문의 직속 부대였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줄곧 유리의 부하였지만, 동시에 곧 자라나게 될 다음 세대의 주역인 라피스의 명을 받들기도 할 이들인 셈이었다.

그들에게 라피스란 다음 시대의 가주이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줄곧 지켜봐 왔었던 딸과도 같은 사람이기도 했다.

때문에 간만의 재회를 하게 된 그들 사이의 대화에는 분명 거리낌이 없어야 정상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현재 라피스는 출전 대기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평소 그녀가 탑승하던 기가스, 스크래퍼 또한 이번만큼은 완벽하게 발이 묶인 채였다.

한 마디로 그녀가 이번 전투에서 나설 일은 거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진짜 파일럿들이 나타났으니, 생도인 그녀는 이번에는 대기하도록 하라, 라는.

제아무리 라피스가 기량과 마력을 높인다고 한들 결국 그녀는 생도에 불과했다.

소위로 임관했을지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결국 이 전투가 모두 끝난다면 당장에라도 원래의 생도로 돌아갈 임시 신분이었으니까 말이다.

제대로 된 파일럿으로의 훈련을 거치고 정규 파일럿의 자리에 매김한 소대원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생도에 불과한 라피스.

그들 사이의 우열은 비교조차도 할 필요가 없이 분명했다.

라피스보다도, 당연히 엘 바이어스 소대의 실력이 윗줄인 것은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한 사실이었다.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조금 힘이 빠진 기색의 라피스는 그들에게 물었다.

“제이슨, 레온. 제가 그렇게 실력이 뒤떨어지나요? 전장에서 빠져야 할 정도로?”

“그, 그것이.”

제이슨은 잠시간 말을 흐렸다.

그렇다, 고 하기에는 울적한 기색이 선한 라피스를 마주한 채로 대답하기에는 다소 곤란한 대답이었다.

그는 옆의 동료 소대원인 레온을 힐끗거리며 도움의 눈길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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