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레드 피닉스의 둥지(4)
탕!
“이봐, 유성.”
“큭……! 마, 말씀하시죠?”
유리는 다소 버거운 듯 보이는 유성을 마주한 채로, 웃는 얼굴로 말을 물었다.
“라피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지?”
“좋은 친구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좋은 성격을 가진 녀석이죠. 다소 바보 같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대화와 함께, 접전의 기류가 느슨해졌다. 유리가 휘두르는 검의 무거움이 한층 가라앉았다.
“녀석이 지닌 재능은?”
“유리 님께서도 이미 알고 게시지 않습니까? 라피스 녀석은 당신의 장점마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유성이 보기에.
라피스는 세대를 거듭하여 마나 능력이 발전해나가는 이 시대의 결정체와 같은 마나 사용자였다.
단순히 열린 가능성의 한계만을 따져본다면 당장 눈앞에 있는 유리마저도 그녀에게 뒤질 정도다.
세대가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들 인류의 전체 역량 모두가 향상되고 있었으니까.
하물며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엘 바이어스 가문의 혈통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터다.
이미 보통의 인간들과는 그 궤를 달리할 정도로 격차가 아득히 벌어져 있을 만큼이나 말이다.
아마도 범인이 보기엔 이미 엘 바이어스 가문의 강함이란 건 드라칸과도 별반 다를 데 없어 보일 정도로 아득하겠지.
“그 소감이 듣고 싶군.”
“언젠가. 녀석은 유리 님과 같은 각성자의 경지에 발을 들이겠죠. 그건 녀석이 살아있다면 분명하게 실현될 미래일 겁니다. 그리고 그때가 된다면-.”
그 뒷말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유리가 웃음을 흘렸다.
“나의 장점인 육체 능력과 녀석이 날 때부터 가진 강점을 모두 가진 각성자가 된다는 건가?”
“그 말대로입니다. 오히려 그녀는, 유리 님보다도 더욱 강해지겠죠.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의 끝이 더 높으니까요.”
탕!
둘의 검격에서 푸른 불똥이 튀었다.
그 말대로다.
라피스는 뛰어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유성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진짜 천재라 표현해야 할 터였다.
육체가 재능을 머금고 있는 존재. 평범한 그릇인 그와는 다르다.
그녀만 한 재능을 지닌 혈통의 존재는 이 인류가 속한 태양계 전체를 따져봐도 불과 다섯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가문을 이루고, 하나의 혈통으로서 이 우주에 자리 잡았다.
기술과 기교로 부족한 나머지 부분을 억지로 때우는 그와는 다르게, 타고난 재능과 쉽게 지치지 않는 육체 능력. 거기에 마력적인 재능마저 갖추고 있다.
‘게다가 유리 님의 육체 능력마저 어느 정도 물려받았으니…….’
녀석은 반드시 각성자가 될 터였다. 늦든, 아니면 빠르든 간에 말이다.
재능의 문은 이미 그녀의 앞에 열려 있다.
단지 그것이 언제 개방되는가는 전적으로 시간에 달려 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스윽.
유성은 허리춤에 걸려 있던 한 자루의 검을 더 빼 들었다.
그 모습에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눈매가 이리처럼 가늘어졌다.
“쌍검? 아니, 한 자루는 길이가 다르군. 좀 더 길어. 이도류라도 시도할 셈인가 보지?”
“유리 님을 상대로는 힘으로 이겨먹을 수가 없죠. 그렇다면, 차라리 기술의 가짓수를 늘려서 상대하는 게 오히려 최선인 법입니다.”
상대는 다름 아닌 그 유리 엘 바이어스였다.
한때나마, 온 태양계에 그 이름이 널리 퍼졌을 정도로 강대한 기사.
최강의 칭호를 한 시절이 저물 동안 내내 손에 쥐고서 놓지 않았던 기사 중의 기사였다.
비록 지금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탓에 다음 세대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강함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일백 살을 훌쩍 넘어섰다고는 해도, 각성자라면 육체적인 능력은 오히려 지금에서야말로 최고의 전성기에 속할 테니까. 사실상 다음 세대에게 그 최강이라던 칭호를 물려준 것도 사실상 단순한 나이상의 체면치레일 테지.’
각성자에게 나이란 한낱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통상의 인간이라면 이미 초로의 노인이어야 맞겠지만, 각성자란 그 통상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바깥의 영역에 속한 초인.
설령 세 자릿수에 달하는 나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오히려 이전 이상으로 절정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쉽게 말해, 유리 그녀는.
바로 지금이 육체적으로 가장 강한 시기일 거라는 소리였다.
저벅.
유리가 한 발을 내딛자, 반대로 유성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강렬한 돌풍이 불어닥치는 전함 메타트론의 갑판 위였으나, 둘의 주변은 고요했다.
어떠한 바람조차도 완벽하게 빗겨나갈 정도로, 둘에게서부터 흘러나오는 기세는 대단했다.
푸른 마력이 마치 아우라(Aura)처럼 흘러나왔다.
돌연 그녀에게서부터 새어 나오던 기세가 역변했다.
끼기긱거리며, 강한 마력이 주변을 짓이길 듯 흘러넘쳤다.
“큭, 무슨?”
쾅!
그녀가 발을 디디고 있던 지면이 움푹 파였다. 그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그 단단하던 전함의 장갑이 움푹 파였을 정도다.
전함의 장갑은 우주에서의 활동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게끔 만들어진 것.
그런데 그것이 단지 기세만으로 으스러지다니?
“하하. 이 정도로 놀라는 건가?”
그녀는 여전히 평온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빈틈투성이다. 어디를 어떻게 노려도, 완벽하게 찌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건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내가 어디를 어떻게 노려도 그녀에게는 조금의 타격조차 가지 않는다는 거겠지만.’
그녀는 사람의 피와 살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 탄성과 피부의 강건함은 드라칸 이상임을.
유성은 잘 알고 있었다.
그와 유리는 구면이었다.
인류의 고향인 본성 테라에 지낼 때부터, 어린 시절부터 라피스와 친했던 탓에 자주 마주치고는 했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육체가 보통 수준이 아님은 진작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는 쓰게 웃었다.
‘제법 얻어맞겠는데 그래.’
유성은 자신의 패배를 확신했다.
실력은 자신이 윗줄. 하지만 타고난 육신의 레벨이 다르다.
마력의 총량이 아니라, 단순한 육체 능력의 격차다.
유성이 기가스에 타고 있다는 전제가 아닌 이상.
그가 유리를 이길 가능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할지라도 순순히 져줄 생각은 없었다.
이것은 기회였다. 그가 가진 무딘 육체의 날을 조금이라도 벼려낼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
번뜩.
유성의 눈이 푸른 달처럼 빛을 낸 순간, 그의 몸이 단숨에 십수 미터를 건너뛰듯 도약했다.
그는 코앞에 직면한 유리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오.”
그 전조조차도 없는 난데없는 기습에.
유리는 반사적으로 감탄성을 드러냈다. 그러다 이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 너, 공간을 다룰 수도 있군?”
옅은 흥미의 기색을 드러내며, 검을 위로 치켜든 그녀는. 너무도 가볍게 그 일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유성은 진작부터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지면에 바싹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는 다리 끝에 온 힘을 주어 튕겨 나가듯이 그녀를 향해 기습적인 일격을 퍼부었다.
거의 동시에 휘둘러진 듯한 수많은 검세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핑!
그것을 유리가 차분히 하나하나 막아내자마자 유성은 검을 화살처럼 내던졌다.
고개를 틀어 가뿐히 공격을 회피해낸 유리가 다시금 시선을 돌렸을 때,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수도를 세운 채로 달려드는 유성의 모습이었다.
“그다음은 체술인가?”
탕.
그녀는 손에서 검을 놓았다. 목검임에도 상당한 무게를 지닌 강화재질의 검이 갑판 위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흘렸다.
“뭐. 좋지.”
어떠한 무기도 쥐지 않은 두 인간이 고속으로 움직이는 전함의 위에서 맨손으로 서로의 타격점을 노렸다.
그 공세가 너무도 빠른 탓에 서로의 움직임이 푸른 물줄기가 흐르는 듯 보일 정도였다.
사방을 에워싸듯 몰려드는 유성의 공격에, 유리가 나직한 평가를 내렸다.
“체술 다음은 극한의 기교라. 마력을 한데 응집하면 그런 식으로 무기의 형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건가?”
“누구나 조금만 연습한다면 가능한 잡기술에 불과합니다, 유리 님.”
“그걸 잡기라 칭하다니. 하하.”
유리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을 흘렸다.
“넌 괴물이구나, 유성. 제아무리 두 번째의 삶을 가진 인간이라지만 백 살을 넘어서는 내가 감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고매한 경지의 기교라니.”
“제가 보기엔 유리 님이 더 괴물 같습니다만.”
맞받아치는 유성의 손에는 수 미터에 이르는 거검이 들려 있었다. 바로 마력이 한데 응집되어 완성된 무형의 에너지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마력이 그의 양손에 나뉘어 쥐이더니 이내 뚜렷한 쌍검의 형상을 취했다. 때로는 기다란 클레이모어로 변하기도 했다.
그의 공세는 변화무쌍했다. 마력은 기실 형태의 제한이란 게 없는 무형의 에너지.
푸른빛을 흘리는 그의 마력은, 뚜렷이 정해진 형태조차 없이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변화하며 그 형상을 뒤바꾸었다.
대검, 한손검, 심지어는 그 형상마저도 완전히 다른 방패나 쌍검의 형상까지도.
그의 변화 어린 기술을 그녀는 오로지 타고난 힘 하나로 모조리 깨부수고 있었다. 맞부딪힐 때마다 뭉쳐진 유성의 마력이 유리처럼 부서졌다.
“진짜 완벽한데? 어디를 어떻게 날아올지 미래를 아는 듯이 막아내고 있다니.”
그녀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본래부터 유리에게는 힘을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순수한 근력파인 탓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는 각성자였다. 그런 그녀의 연격을 이렇게나 철저하게 막아내다니. 아니, 이래서야 오히려 유성 쪽이 압도하고 있지 않은가?
“하하!”
유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유쾌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소리쳤다.
“유성! 머잖아 최강의 각성자로 태양계 전체에 이름을 널리 퍼뜨리겠어! 틀림없이 언젠가 내 손녀딸이야말로 가장 먼저 도달할 거라 여겼던 자리를, 그 옆의 친구 녀석이 가로채는 셈이라니!”
“그렇게나 높이 쳐주시진 않으셔도 괜찮은데 말입니다.”
“아니, 천만에. 넌 최강이야. 아니, 이미 그러한가? 육체가 발목을 잡고 있을 뿐, 시간이 그마저도 해결해 준다면 완전체조차도 맨몸으로 짓밟을 괴물이로군! 향후 백여 년 동안은 네 자리를 넘볼 이가 누구 하나 없겠어!”
“…….”
오롯한 현실만을 그대로 담아 내뱉는 그 각성자의 확신 어린 목소리를 마주하는 유성의 대답은 고저가 없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조금도 변화가 없이 무심한 듯 보였다.
맨몸으로 드라칸의 단단한 갑각질마저 깨부수는 최강의 기사가 평가하는 확신 어린 발언에도, 전혀 기쁜 기색이 아니었다.
당연한 것일 터다.
그는 유성, 아니, 이시혁이었다. 그는 언제나 강했다.
인류 최초의 마나 사용자인 형제들 중에서도, 경지만 놓고 본다면 언제나 수위권의 강자였던 그다.
강함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있어 아무런 가치도 지니질 못한 것이었다.
고작 그런 것 따위에 목메기에는 너무도 치열하게 살았으니까.
인간들이 매기는 한낱 강함이라는 단어보다, 더욱 압도적인 괴물들이 우주에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강함은 그저 수단에 불과하다.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그는 강해졌다. 그 당연한 소리를 듣는 자에게 감흥이란 건 있을 수가 없다.
“이봐, 유성.”
“네. 말씀하시죠.”
“한 번 전력으로 덤벼보지그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잖아. 너.”
“…보였습니까?”
그것은 유성 그마저도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다. 그런 그에게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오히려 그녀는 반문했다.
“그래. 내가 기술이라고는 전혀 없이 오로지 힘뿐인 둔탱이라고는 해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고.”
“원하신다면 기꺼이.”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다면, 충분히 보여줄 수는 있는 일이다.
그다지 어려울 것은 없는 일이니.
“초속검. 초중발도.”
대답이 끝난 직후, 거의 급작스러운 수준의 동작과 함께 유성의 검이 푸른 빛을 번뜩이며 유리의 앞에 도달하고 있었다.
“…뭐?”
그 전조조차도 없는 푸른 섬광의 접근에, 그녀의 얼굴이 당황으로 바싹 굳은 것도 잠시.
퍽.
이내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격에 적중당한 것은 유리 그녀가 아닌 유성 쪽이었다.
바닥으로 쓰러지려 하는 유성의 눈에 보이는 것은.
주먹을 회수하며 씩 웃고 있는 유리의 모습이었다.
“허락하면 네 성격상 곧장 달려들 줄 알았지. 하지만, 설마 그 정도라니, 나조차도 깜짝 놀랐는걸?”
부우욱.
그 뒤를 이어서,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음이 들려왔다. 소닉붐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유성, 그의 의식이 끊겼다.
* * *
털썩.
유성은 그대로 갑판의 위로 쓰러졌다. 목이 뒤로 한참은 꺾인 채로 말이다.
“아.”
흡사 숨이라도 끊긴 듯, 조금의 미동조차 없는 유성을 향해.
유리는 쩝,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하다, 유성. 네가 너무 강했던 탓에 순간 자제를 못 했구나.”
…다만 안타깝게도.
이미 목뼈에서부터 척추에 이르기까지 관절 부위가 모조리 박살이 나 의식을 잃은 유성에게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