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유리 엘 바이어스(2)
스륵.
녀석의 동공이 좌에서 우로 움직이며 눈앞의 상황을 훑었다.
놈, 완전체는 이제까지처럼 정면에서의 접전을 이어 나가지 않았다.
대신, 눈동자가 잠시간 눈앞의 상황을 주시했다.
이제껏 놈이 싸우던 상대인 제로 브레이커. 거기에 더해 네 기의 기가스.
모두가 쉽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기가스의 어깨 위로 올라탄 작은 인간의 형체였다.
[…….]
자신만만한 인상의 그녀를 마주하는 순간, 완전체였던 놈은 확신했다.
저 작은 여자야말로 이 중에서 가장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다른 다섯 기의 기가스들 전부를 합친 것보다도 더더욱.
그것은 본능의 영역에서부터 느껴지는 확신 어린 감이었다.
자신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던 것도 저 여자였다.
놈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상황이 좋지 않다.
놈은 빠르게 셈을 했다. 싸우면 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길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그토록 강맹한 공격을 가했던 저 여자의 합류가 걸렸다.
저 여자는 위험하다. 크기는 자신의 손가락만큼이나 작다지만, 절대적인 힘의 규격이라면 그리 작아 보이질 않았다.
그 말인즉슨 완전체인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의미.
이제까지처럼 제로 브레이커 하나라면 승리가 확실하겠지만 한눈에 봐도 저 기류는 이 싸움에 힘을 보태러 온 모양새였다.
결국 지원군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제아무리 흥분감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의 놈이라고 할지라도, 그 정도의 셈 정도는 할 줄 알았다.
콰득!
이내, 놈은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이를 악다물었다.
[■■■■!]
사납기 그지없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모두에게 보이며. 녀석은 그대로 뒤편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모두를 경계하는 그 모습 그대로, 눈을 떼지 않던 녀석은.
족히 일백여 미터를 널찍하게 벌린 이후에서야 그대로 몸을 돌리고서 쏘아지듯 날아가기 시작했다.
쿠아아아!
금세 놈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가로지르는 소음이 터져 나왔다.
마하의 속도에서부터나 가능한, 소닉붐이었다.
순식간에 붉은 선을 그리며 멀어지는 완전체 드라칸. 그 모습에 유성은 이제껏 참아내고 있던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가버렸군.’
조금만 더 전투가 가열되었다면 적잖은 수준의 부담이 몸에 쌓일 뻔했다. 아니, 틀림없이 그러했겠지.
그러한 만큼 이 타이밍에서의 지원은 확실한 효력이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유성 또한 도박을 했어야 할지 모를 정도.
결과적으로 지금의 상황은 놈에게든, 그게 아니라면 유성이나 전함 메타트론에게든 긍정적인 상황인 셈이다.
유리 엘 바이어스의 등장은 상황을 동결시킬 만큼의 효력이 있었다. 유성에게는 다행인 소리다.
[유, 유성.]
치직-.
그때 통신 채널이 연결되었다.
힐끗 시야를 돌려 확인해보니 익숙한 얼굴인 라피스였다.
강렬한 포격과 에너지의 잔류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대기의 상황 탓인지 다소 불량해진 통신 채널에서, 그녀는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유, 유성.]
“…말해.”
[저 녀석을 추격하진 않는 거야? 지금이라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것도 같은데?]
그 말에 유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그러고는 싶었다. 녀석은 무려 날개 중의 하나를 잃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사실상 속도가 저 강함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녀석에게 있어, 그것은 단순한 부상만이 아닌 전투력의 손실로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기는 해. 가능하다면 말이야.”
[가능하다면?]
그러니 유성도 가능하다면 놈을 추격하고 싶기는 했다. 어디까지나 그것이 가능한 전개였다고 한다면 말이다.
“무엇보다-.”
잠시간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흐리던 기색이었던 유성은 이내 말을 이었다.
“이미 힘이 빠진 나는 말할 것도 없지만, 무기를 날려 보냈던 유리 님한테는 다시금 공격할 만한 게 없잖아?”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거다.
놈은 비행 능력에 특화한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이었다.
그런 녀석이 작정하고 물러나려 한다면 이쪽에서는 애당초 잡을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러니 사실상 처음부터 답은 정해진 셈이었다.
제로 브레이커의 활짝 펼친 네 장의 날개로도 간신히 놈을 추격하는 정도에 그친 수준에 불과했다.
하물며 한낱 인간의 몸인 유리 엘 바이어스라면, 그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하지는 못할 수밖에 없다.
전함과 라피스의 포격마저도 통하지 않는 상대.
그러니 결국 답은 하나였다.
놈이 물러서고자 한다면, 그들로서는 따라잡을 수가 없다. 도저히.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녀석을 내쫓아낸 것만으로 그들은 만족해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유성은 고개를 들어 놈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정도로 성격이 거친 놈이 이대로 순순히 사라져줄 리는 없겠지만 말이지.’
* * *
쿠웅!
전함 메타트론의 갑판 위로 작은 형체의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맨몸으로 추락하는 듯한 기세와 함께 떨어져 내린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유리 엘 바이어스’ 였다.
이전 시대의 최강이라 불렸던 검성. 동시에 금강의 창기사라고까지 불렸던 인물.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키더니 이내 기가스, 스크래퍼의 앞에 천천히 다가가 섰다.
스크래퍼를 가만히 올려다보며 유리는 미소지었다.
“오래간만이로구나. 라피스.”
* * *
십여 분 후. 전함 메타트론의 통제실.
그곳에 때아닌 다수의 인파가 한데 모여있었다. 그것도 평상시라면 보인 적이 없었을 다소 생소한 인물들이 말이다.
아스트라 부함장은, 맞은편에 선 상대방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간만에 뵙습니다. 엘 바이어스 후작님.”
“그래. 라프티리아, 그 아이는 어떻지? 여전히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건가? 부함장?”
그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살짝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 후작님. 일어서서 걸음조차 내디디지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더군요. 단순 과로입니다만, 마력이 바닥난 상태입니다.”
“흠. 그런가.”
유리는 가볍게 턱을 매만지며 상념에 사로잡혔다.
“하긴 그 아이는 예전부터 조금 무리하는 경향이 있기는 했지. 그러한 면모는 성인이 된 지금에 와서도 여전한가 보군.”
“예. 조금 그렇기는 하죠.”
아스트라 부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전의 체면은 다소 거둔 채로 순순히 눈앞의 상대를 마주했다.
유리 엘 바이어스 후작. 엘 바이어스 가문의 가주이자, 전대 검성.
그녀는 무려 1세기도 더 전부터 활동했던 각성자였다.
유리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는 이 우주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1세기도 전부터 절정에 달한 최강의 기사로서 이름을 날렸던 탓인지, 그 명성은 지금도 온 태양계에 널리 퍼져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적잖은 수준에 들어선 나이’를 이유로서 은퇴했다.
실질적인 이유로는 분명 그러하였으나, 실상은 그와는 전혀 달랐다.
왜냐하면 여전히 유리의 육체는 은퇴를 하기 전과 비교하더라도 별반 차이가 없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전해지는 말들로는 예전보다도 더욱 젊어졌단 말도 있을 정도였다.
각성자는 늙지 않는다. 죽는 그날까지 전성기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다.
그들의 육체는 언제까지나 힘이 넘치며, 또한 막대한 마력이 그러한 육체를 뒷받침한다.
하물며 그중에서도 유독 왕성한 육체 능력을 선보이기로 유명했던 유리 엘 바이어스라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터였다.
단지, 그러했던 유리가 은퇴를 한 것은 단순히 체통 상의 이유였다.
언제까지고 유리가 중앙의 전권을 손에 쥔 채로 놓지 않고 있으니, 연합의 일부 고리타분한 노인네들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한 현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아스트라 부함장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는 자신보다도 족히 한참은 작을 반대편의 여인을 말없이 응시하며 생각했다.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시군. 주름 하나 보이질 않아. 이게 바로 육체적인 전성기를 구가하는 각성자라는 거겠지.’
아스트라의 생각처럼.
그녀의 몸 상태는 노화가 진행된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바로 지금 이 시대에 들어서서야 보다 완숙되고 완성되어 최대의 성장치에 들어선 탓에, 지금에서야 절정의 육체를 지니게 되었다.
사실상 지금이야말로 그녀의 힘이 가장 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하고 한동안 칩거했던 데에는, 그녀의 연세가 이미 일백 세를 넘어섰다는 것이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상 표면적인 상황이 은퇴의 의의 전부인 셈이다.
“그래서.”
뚜둑.
유리는 가볍게 목을 풀며 말문을 열었다.
“내 손녀딸. 라피스 그 아이는 괜찮나?”
“단순히 몸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건강한 편이죠.”
그녀의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가 무슨 의도에서부터 그러한 소리를 내뱉는지를 안다는 듯이, 덧붙였다.
“그리고 빌객스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껏 그녀는 라피스를 한 번도 건드리거나 관심을 표한 적도 없으니까요.”
“그래?”
“네. 오히려 그녀가 가지는 현재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녀가 어째서 전함 메타트론에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는지, 그리고 이토록 얌전한지. 라피스에게 한치의 시선조차 주지 않는지. 바로 그게 주요한 이유를 차지하고 있죠.”
“꽤나 흥미로운 얘기로군.”
하지만 아스트라 부함장은 그다음을 구태여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 너머의 내용들은 전적으로 유성과의 약속 때문이다. 이미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그가 다소의 불만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한 내용들이었다.
아마 이제껏 마주했던 유성의 성격상, 인상을 찌푸리며 옅은 불쾌감 정도는 드러내지 않을까.
때문에 그는 대신 다른 내용을 꺼내 들었다.
유리에게 말해야 하면서도 우선적인 사항에 속하는, 중요한 요소에 관한 것이었다.
바로 빌객스의 현 상황이었다.
“현재 저 아래쪽의 지상에서부터 인양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지표면의 한 가운데에 빌객스, 그녀가 타고 있는 기체가 단단히 처박혀버린 탓에, 다소 어려움은 있습니다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살아는 있고?”
“예. 살아는 있습니다만, 제아무리 그녀라도 그만한 충격을 감당하기란 어려웠던지 현재는 혼수상태입니다.”
“하긴. 그야 그렇겠지. 수백 미터도 더 되는 높이에서 추락해서 땅에 처박혔으니, 그 녀석이라도 멀쩡할 리가 있나.”
“하, 하하하.”
그는 애써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등 뒤로는 식은땀이 연신 흘러내렸다.
그만큼 난폭한 기세가 그녀에게서부터 은연중에 흘러나오고 있었던 탓이다.
한눈에 봐도 유리의 얼굴은 난폭한 듯 보였다.
말투나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빌객스와 마주쳤다간 그 자리에서 대뜸 주먹이라도 휘두를 듯했다.
아스트라 부함장은 그런 그녀를 향해 부탁하듯 말했다.
“가능하면, 빌객스는 가만히 놔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라피스 소위를 건드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티끌 하나 없는 사실이죠.”
“그건 봐서.”
“하, 하하하…….”
곤란한 상황. 곤란한 대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트라 부함장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난처함 속에서도 웃는 것 정도뿐이었다.